찬반 팽팽한 ‘비동의간음죄’ 논란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4.09 09:02:47
  • 호수 14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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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도 못 만지는 뜨거운 감자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폭행이냐, 협박을 당했느냐? 이는 피해자가 강간을 당했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통한다. 지금은 이런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세계 흐름으로, 강압적인 상황에서는 협박이나 폭행이 아니더라도 강간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강간은 사람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간음하는 행위’를 말한다. 형법 제297조(강간)에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사람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기재돼있고, 제297조의2(유사 강간)에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해 구강, 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한 사람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잠재적 피해자
잠재적 가해자

즉 강간은 폭행이나 협박이 들어가야 성립되며, 성범죄 중에서 가장 중한 범죄다. 5대 강력 범죄기도 하며 살인죄를 제외하고 강도와 동급으로 죄질이 나쁘게 취급된다. 정신적, 신체적 피해가 막대하고 후유증이 오래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폭행과 협박이 없어도 강간죄에 해당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바로 ‘비동의간음죄’다. 비동의간음죄는 ‘성폭행은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과 성관계를 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비동의간음죄는 2011년 유럽연합의 EU 이사회서 ‘이스탄불 협약’으로 불리는 ‘여성에 대한 폭력 및 가정폭력방지협약’서 동의 없는 성적 행위를 성폭력으로 보도록 권고한 이후 시작됐다. 2020년 기준 34개국이 이 협약을 비준했다.


또 2010년 유엔 여성지위향상국(DAW)은 여성폭력 입법권고안을 담은 핸드북을 통해 ‘명백하고 자발적인 동의’를 강간 판단 기준으로 삼고 ‘강압적 상황’이 존재하는 경우, 강간이라고 봤다. 2017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성범죄는 자유로운 동의의 부재를 기준으로 정의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국내서도 비동의간음죄가 주목받았다. 국회에서는 정의당을 주도로 비동의간음죄 신설 입법 움직임이 일어났다. 더불어민주당은 4·10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국민의힘은 반대했다.

지난달 26일 민주당 총선 정책공약집에는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삶의 질 수직 상승을 위한 민주당의 약속’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4년 전 총선서도 이를 10대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던 바 있다.

민주당이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발표하자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나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피해자가 내심으로 동의했는지로 범죄 여부를 결정하면 입증 책임이 검사에서 혐의자로 전환된다. 그렇게 되면 억울한 사람이 양산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총괄선대위원장은 “성관계 후 나중에 한쪽이 ‘사실은 나 그때 하기 싫었는데 억지로 한 거야’라고 주장하고, 보통의 성관계가 그렇듯 상호 동의를 입증할 특별한 증거가 남아 있지 않으면 결국 강간으로 규정될 심각한 위험성이 있다”며 “민주당은 비동의간음죄서 도대체 어떤 경우가 비동의고 어떤 증거가 있어야 동의가 입증되는지 구체적인 기준을 들어 보시라”고 지적했다.

녹음, 녹화, 목격자 없다
기획·조작되는 성폭행은?

그러자 민주당 정책실장은 지난달 27일, 기자들에게 공지를 통해 “비동의간음죄는 공약 준비 과정서 검토됐으나 장기 과제로 추진하되 당론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실무적 착오로 선관위 제출본에 검토 단계의 초안이 잘못 포함됐다”고 밝혔다.


이어 “토론 과정서 논의 테이블에 올라왔지만, 당내 이견이 상당하고, 진보·개혁 진영 또는 다양한 법학자 내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어 검토는 하되 이번에 공약으로 포함하기에 무리가 아니냐는 상태로 정리됐는데 실무적 착오로 취합·제출 단계서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서 비동의간음죄가 이슈인 만큼 시민들에게도 논란인 가운데, 여성계는 찬성 입장이다. 여성계는 “비동의간음죄는 성폭력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행 강간죄는 성폭력 피해자의 항거 여부에 따라 죄의 경중을 물어 피해 유발의 책임을 물어보는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비동의간음죄에 찬성하는 직장인 A씨는 “영미법 국가의 강간죄 관련 정의 중 ‘동의’란 당사자가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하며, 관련된 행위와 속성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완전한 인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정의한다”며 “특히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은 무조건 강간죄로 인정되는 이유다. 당사자의 동의가 없다는 말은 강제로 성행위가 이뤄졌다는 말과 같다”고 주장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폭행·협박의 기준은 명확하지만, ‘동의’는 판단 기준이 불분명하고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직장인 B씨는 “비동의간음죄는 성관계할 때마다 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계약서를 쓴다고 해도 나중에 상대방이 ‘사실은 동의하지 않았다’고 하면 졸지에 범죄자가 되는 것 아니냐. 무수한 무고를 만들 수 있는 악법”이라고 지적했다.

34개국
사례는?

논란이 일면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비동의간음죄를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섹스 신청서’ 양식이 확산됐다. 실제로 2021년에는 성관계 당사자들이 서로 동의를 기록·보관하는 애플리케이션 ‘그래그래’가 출시된 바 있다.

문제는 이미 여성이 성폭행당했다고 무고로 남성을 신고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소속사 대표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며 무고 혐의로 재판을 받은 아이돌 출신 BJ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박소정 판사는 지난달 21일, 무고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C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진술 내용이 일관되지 않고 사건 당시 CCTV 영상과도 일치하지 않으며, 전반적인 태도와 입장에 비춰보면 신빙성이 낮다. 범죄 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검찰이 구형한 징역 1년보다 높은 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C씨가 소속사 사무실의 문 근처서 범행이 이뤄졌다고 진술하면서도 문을 열고 도망칠 시도를 하지 않은 점, 범행 장소를 천천히 빠져나온 뒤 회사를 떠나지 않고 소파에 누워 흡연하고 소속사 대표와 스킨십을 하는 등 자유로운 행동을 보인 점 등을 토대로 C씨의 진술이 허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간미수는 피해자를 폭행 등으로 억압한 후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것으로, 성관계에 이르는 과정서 일부 의사에 반하는 점이 있었다고 해서 범행에 착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며 “당시에 상대방에게 이끌려 신체접촉한 뒤 돌이켜 생각하니 후회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고소했다면 허위고소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지인에게 즉석만남을 가장해 ‘가짜 성폭행’을 기획한 뒤 거액을 뜯어내는 경우도 발생했다. 충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공갈) 등 혐의로 4명을 구속하고, 22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이들 일당은 대부분 20대였으며, 범행에 가담한 여성 중에는 미성년자도 포함됐다.


무엇이
다를까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1년7개월에 걸쳐 미리 여성들을 섭외한 후 즉석만남을 가장한 술자리를 마련했다. 이때 지인들을 불러 성관계를 유도했다. 성관계 후에는 회사에 성범죄 사실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식이었다.

피해자는 대부분 20대로 적게는 수백만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돈을 건넨 것으로 확인됐다. 일당은 성관계를 유도하는 유인책, 실제 성관계를 하는 여성, 여성의 보호자로 사칭해 피해자를 협박하는 인물 등 다양한 역할을 나눠 의심을 피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마약류인 졸피뎀을 피해자에게 몰래 먹여 정신을 잃게 해 당시 상황을 기억 못하게 하는 수법으로도 범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일당은 평소 알고 지내던 친구, 선배 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일당에 당한 피해자는 28명에, 피해 금액은 총 3억여원에 달했다.

경찰은 금융계좌 분석, 휴대전화 포렌식, 압수수색 등 3개월 수사 끝에 피해자를 모두 특정했다.

한 명의 여성이 여러 명의 남성을 허위로 신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목적은 합의금이었고, 60대 여성은 1심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주지법 형사3단독(정재익 부장판사)은 무고 혐의로 기소된 D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D씨는 2019년 9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남성 5명을 강간·준강간·강제추행 혐의 등으로 허위 신고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주로 생활정보지에 ‘결혼할 남성을 찾는다’는 내용의 광고 글을 올린 뒤, 이를 보고 연락한 남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 남성과 합의 후 성관계하거나 신체접촉을 한 뒤 경찰 등 수사기관에 “성폭행당했다”고 신고했다. 그는 남성들이 합의를 시도하면 신고를 취하하고,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수사기관에 거짓 진술을 했다. D씨는 이 같은 수법으로 남성 2명에게 각각 30만원과 70만원을 받아낸 것으로 드러났다.

동의의 구체적인 기준이 뭔지?
“피해자 거부해도 협박 없으면?”

그는 ‘돈을 잘 벌어다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10년 넘게 함께 산 사실혼 관계의 남성을 강간 혐의로 신고하기도 했다.

정 판사는 “피고인은 남성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무고 행위를 반복했으므로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하고, 무고한 남성들이 처벌받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물론 반대의 상황도 있었다. 성폭행 피해를 당한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허위신고했다고 가짜 증언을 시키고 직접 증거까지 위조한 남자친구가 재판에 넘겨졌다. 일반적으론 여성 쪽이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허위신고하지만, 이 건은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

이 남성은 5000만원 때문에 성폭행 가해자와 짜고 이 같은 짓을 저질렀던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의 여자친구가 전 남자친구로부터 성폭행과 폭행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화를 내기보다는 돈을 벌 기회로 삼았다.

검찰에 따르면, 전 남자친구인 가해자 측은 “여자친구의 진술을 번복하게 해주면 50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5000만원이 탐났던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허위로 신고했던 것이라고 진술을 번복하자고 설득했고, 구체적인 허위 진술 내용을 읽도록 연습을 시키면서 녹음했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허위 진술하지 않을 태세를 보이자, 녹음본을 편집해 진술이 바뀐 것처럼 꾸며 증거로 제출했고, 직접 법정에 출석해 녹음한 경위 등에 대해 거짓말까지 했다. 그래도 검사를 속일 수는 없었다. 제출된 녹취록과 피해자 증언이 엇갈리면서 남자친구와 가해자의 범행이 탄로 났고, 검찰은 그를 증거 위조와 위증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거부 표현해도
폭행 없으면…

이런 이유로 비동의간음죄는 뜨거운 감자다.

한 성범죄 관련 변호사는 “현재 한국에서는 성관계 시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표현했어도 폭행이나 협박이 없으면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강간 사건서 당시의 폭행이나 협박이 녹음, 녹화, 목격자 등 직접적인 물증으로 입증되기 어렵다”면서도 “피해자의 거부 의사 표현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과 피의자의 협박이나 유형력의 행사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게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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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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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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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