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팽팽한 ‘비동의간음죄’ 논란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4.09 09:02:47
  • 호수 14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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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도 못 만지는 뜨거운 감자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폭행이냐, 협박을 당했느냐? 이는 피해자가 강간을 당했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통한다. 지금은 이런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세계 흐름으로, 강압적인 상황에서는 협박이나 폭행이 아니더라도 강간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강간은 사람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간음하는 행위’를 말한다. 형법 제297조(강간)에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사람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기재돼있고, 제297조의2(유사 강간)에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해 구강, 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한 사람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잠재적 피해자
잠재적 가해자

즉 강간은 폭행이나 협박이 들어가야 성립되며, 성범죄 중에서 가장 중한 범죄다. 5대 강력 범죄기도 하며 살인죄를 제외하고 강도와 동급으로 죄질이 나쁘게 취급된다. 정신적, 신체적 피해가 막대하고 후유증이 오래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폭행과 협박이 없어도 강간죄에 해당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바로 ‘비동의간음죄’다. 비동의간음죄는 ‘성폭행은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과 성관계를 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비동의간음죄는 2011년 유럽연합의 EU 이사회서 ‘이스탄불 협약’으로 불리는 ‘여성에 대한 폭력 및 가정폭력방지협약’서 동의 없는 성적 행위를 성폭력으로 보도록 권고한 이후 시작됐다. 2020년 기준 34개국이 이 협약을 비준했다.


또 2010년 유엔 여성지위향상국(DAW)은 여성폭력 입법권고안을 담은 핸드북을 통해 ‘명백하고 자발적인 동의’를 강간 판단 기준으로 삼고 ‘강압적 상황’이 존재하는 경우, 강간이라고 봤다. 2017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성범죄는 자유로운 동의의 부재를 기준으로 정의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국내서도 비동의간음죄가 주목받았다. 국회에서는 정의당을 주도로 비동의간음죄 신설 입법 움직임이 일어났다. 더불어민주당은 4·10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국민의힘은 반대했다.

지난달 26일 민주당 총선 정책공약집에는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삶의 질 수직 상승을 위한 민주당의 약속’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4년 전 총선서도 이를 10대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던 바 있다.

민주당이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발표하자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나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피해자가 내심으로 동의했는지로 범죄 여부를 결정하면 입증 책임이 검사에서 혐의자로 전환된다. 그렇게 되면 억울한 사람이 양산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총괄선대위원장은 “성관계 후 나중에 한쪽이 ‘사실은 나 그때 하기 싫었는데 억지로 한 거야’라고 주장하고, 보통의 성관계가 그렇듯 상호 동의를 입증할 특별한 증거가 남아 있지 않으면 결국 강간으로 규정될 심각한 위험성이 있다”며 “민주당은 비동의간음죄서 도대체 어떤 경우가 비동의고 어떤 증거가 있어야 동의가 입증되는지 구체적인 기준을 들어 보시라”고 지적했다.

녹음, 녹화, 목격자 없다
기획·조작되는 성폭행은?

그러자 민주당 정책실장은 지난달 27일, 기자들에게 공지를 통해 “비동의간음죄는 공약 준비 과정서 검토됐으나 장기 과제로 추진하되 당론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실무적 착오로 선관위 제출본에 검토 단계의 초안이 잘못 포함됐다”고 밝혔다.


이어 “토론 과정서 논의 테이블에 올라왔지만, 당내 이견이 상당하고, 진보·개혁 진영 또는 다양한 법학자 내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어 검토는 하되 이번에 공약으로 포함하기에 무리가 아니냐는 상태로 정리됐는데 실무적 착오로 취합·제출 단계서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서 비동의간음죄가 이슈인 만큼 시민들에게도 논란인 가운데, 여성계는 찬성 입장이다. 여성계는 “비동의간음죄는 성폭력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행 강간죄는 성폭력 피해자의 항거 여부에 따라 죄의 경중을 물어 피해 유발의 책임을 물어보는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비동의간음죄에 찬성하는 직장인 A씨는 “영미법 국가의 강간죄 관련 정의 중 ‘동의’란 당사자가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하며, 관련된 행위와 속성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완전한 인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정의한다”며 “특히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은 무조건 강간죄로 인정되는 이유다. 당사자의 동의가 없다는 말은 강제로 성행위가 이뤄졌다는 말과 같다”고 주장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폭행·협박의 기준은 명확하지만, ‘동의’는 판단 기준이 불분명하고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직장인 B씨는 “비동의간음죄는 성관계할 때마다 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계약서를 쓴다고 해도 나중에 상대방이 ‘사실은 동의하지 않았다’고 하면 졸지에 범죄자가 되는 것 아니냐. 무수한 무고를 만들 수 있는 악법”이라고 지적했다.

34개국
사례는?

논란이 일면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비동의간음죄를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섹스 신청서’ 양식이 확산됐다. 실제로 2021년에는 성관계 당사자들이 서로 동의를 기록·보관하는 애플리케이션 ‘그래그래’가 출시된 바 있다.

문제는 이미 여성이 성폭행당했다고 무고로 남성을 신고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소속사 대표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며 무고 혐의로 재판을 받은 아이돌 출신 BJ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박소정 판사는 지난달 21일, 무고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C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진술 내용이 일관되지 않고 사건 당시 CCTV 영상과도 일치하지 않으며, 전반적인 태도와 입장에 비춰보면 신빙성이 낮다. 범죄 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검찰이 구형한 징역 1년보다 높은 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C씨가 소속사 사무실의 문 근처서 범행이 이뤄졌다고 진술하면서도 문을 열고 도망칠 시도를 하지 않은 점, 범행 장소를 천천히 빠져나온 뒤 회사를 떠나지 않고 소파에 누워 흡연하고 소속사 대표와 스킨십을 하는 등 자유로운 행동을 보인 점 등을 토대로 C씨의 진술이 허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간미수는 피해자를 폭행 등으로 억압한 후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것으로, 성관계에 이르는 과정서 일부 의사에 반하는 점이 있었다고 해서 범행에 착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며 “당시에 상대방에게 이끌려 신체접촉한 뒤 돌이켜 생각하니 후회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고소했다면 허위고소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지인에게 즉석만남을 가장해 ‘가짜 성폭행’을 기획한 뒤 거액을 뜯어내는 경우도 발생했다. 충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공갈) 등 혐의로 4명을 구속하고, 22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이들 일당은 대부분 20대였으며, 범행에 가담한 여성 중에는 미성년자도 포함됐다.


무엇이
다를까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1년7개월에 걸쳐 미리 여성들을 섭외한 후 즉석만남을 가장한 술자리를 마련했다. 이때 지인들을 불러 성관계를 유도했다. 성관계 후에는 회사에 성범죄 사실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식이었다.

피해자는 대부분 20대로 적게는 수백만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돈을 건넨 것으로 확인됐다. 일당은 성관계를 유도하는 유인책, 실제 성관계를 하는 여성, 여성의 보호자로 사칭해 피해자를 협박하는 인물 등 다양한 역할을 나눠 의심을 피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마약류인 졸피뎀을 피해자에게 몰래 먹여 정신을 잃게 해 당시 상황을 기억 못하게 하는 수법으로도 범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일당은 평소 알고 지내던 친구, 선배 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일당에 당한 피해자는 28명에, 피해 금액은 총 3억여원에 달했다.

경찰은 금융계좌 분석, 휴대전화 포렌식, 압수수색 등 3개월 수사 끝에 피해자를 모두 특정했다.

한 명의 여성이 여러 명의 남성을 허위로 신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목적은 합의금이었고, 60대 여성은 1심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주지법 형사3단독(정재익 부장판사)은 무고 혐의로 기소된 D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D씨는 2019년 9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남성 5명을 강간·준강간·강제추행 혐의 등으로 허위 신고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주로 생활정보지에 ‘결혼할 남성을 찾는다’는 내용의 광고 글을 올린 뒤, 이를 보고 연락한 남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 남성과 합의 후 성관계하거나 신체접촉을 한 뒤 경찰 등 수사기관에 “성폭행당했다”고 신고했다. 그는 남성들이 합의를 시도하면 신고를 취하하고,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수사기관에 거짓 진술을 했다. D씨는 이 같은 수법으로 남성 2명에게 각각 30만원과 70만원을 받아낸 것으로 드러났다.

동의의 구체적인 기준이 뭔지?
“피해자 거부해도 협박 없으면?”

그는 ‘돈을 잘 벌어다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10년 넘게 함께 산 사실혼 관계의 남성을 강간 혐의로 신고하기도 했다.

정 판사는 “피고인은 남성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무고 행위를 반복했으므로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하고, 무고한 남성들이 처벌받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물론 반대의 상황도 있었다. 성폭행 피해를 당한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허위신고했다고 가짜 증언을 시키고 직접 증거까지 위조한 남자친구가 재판에 넘겨졌다. 일반적으론 여성 쪽이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허위신고하지만, 이 건은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

이 남성은 5000만원 때문에 성폭행 가해자와 짜고 이 같은 짓을 저질렀던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의 여자친구가 전 남자친구로부터 성폭행과 폭행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화를 내기보다는 돈을 벌 기회로 삼았다.

검찰에 따르면, 전 남자친구인 가해자 측은 “여자친구의 진술을 번복하게 해주면 50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5000만원이 탐났던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허위로 신고했던 것이라고 진술을 번복하자고 설득했고, 구체적인 허위 진술 내용을 읽도록 연습을 시키면서 녹음했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허위 진술하지 않을 태세를 보이자, 녹음본을 편집해 진술이 바뀐 것처럼 꾸며 증거로 제출했고, 직접 법정에 출석해 녹음한 경위 등에 대해 거짓말까지 했다. 그래도 검사를 속일 수는 없었다. 제출된 녹취록과 피해자 증언이 엇갈리면서 남자친구와 가해자의 범행이 탄로 났고, 검찰은 그를 증거 위조와 위증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거부 표현해도
폭행 없으면…

이런 이유로 비동의간음죄는 뜨거운 감자다.

한 성범죄 관련 변호사는 “현재 한국에서는 성관계 시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표현했어도 폭행이나 협박이 없으면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강간 사건서 당시의 폭행이나 협박이 녹음, 녹화, 목격자 등 직접적인 물증으로 입증되기 어렵다”면서도 “피해자의 거부 의사 표현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과 피의자의 협박이나 유형력의 행사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게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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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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