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으로 튄 흉악범 6인 추적> <단독> ‘필리핀 도박왕’ 부실 기소 미스터리

1조3000억 물렸는데 겨우 40억만?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필리핀 도박왕’ 사건 재판이 수개월째 공전 중이다. 피고인 ‘조삼’ 김모씨가 시간 끌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한 대형 로펌이 또 사임신고서를 제출해 해당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사정당국 안팎에서는 검찰도 문제라고 비판한다. 공판에 제대로 임하지 않고 김씨의 혐의를 부실하게 들여다봤다는 지적이다. 

“계좌 내역이 있다면서요. 출력물이잖아요. 원본 파일을 제출해 달라는 건데.” 지난 6일 진행된 ‘필리핀 도박왕’ 사건 재판 도중 판사가 검찰 측에 한 말이다. 공판 담당 검사가 재판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지적한 셈이다. 검찰의 부실한 대비가 피고인 ‘조삼’ 김모씨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혐의 적용도 논란이다. 비슷한 사건으로 알려진 ‘민준파’ 사건과는 사뭇 다르다. 

조삼은
누구냐?

김씨의 공판은 그가 지난해 9월20일 구속 기소된 이후 총 6번 진행됐다. 약 6개월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재판 진행이 더뎠던 건 김씨 변호인 측의 연이은 사임 때문으로 보인다. 김씨가 선임했던 대형 로펌은 총 5곳이었다. 개인 변호사들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총 13명이 사임계를 제출해 왔다. 일부 로펌은 공판 직전 검찰 측 기록에 관한 복사 및 열람을 신청하고 나서 사임했다. 

증인들이 출석하지 않아 재판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기도 했다. 김씨의 혐의 입증에 난항을 겪고 있지만 공판 담당 검사가 재판에 집중하지 않는 태도도 문제다. 김씨는 자신이 바지사장으로 내정된 이후 현금을 움직이는 자금책이었을 뿐 총책은 따로 있다며 일부 혐의를 부인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이 모르는 부분이 포함된 부분과 중복으로 산정된 부분이 있어서 실제와 다르다. 1조3000억원이라고 기소돼있지만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정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검찰 측에 문제가 되는 계좌에 관한 증거기록과 전산자료를 일괄해서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검찰 측은 “찾아 보고 있으면 제출하겠다. 관련자들이 다 재판 중이라 시일이 걸릴 것 같다”고 답했다. 

이에 재판부는 “왜 시일이 걸리냐? 아니 계좌 내역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출력물을 말하는 거다. 그 원본 파일을 제출해 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 측은 “증거기록을 샅샅이 뒤져 보지는 못했다. 확보해서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계좌가 여러 개가 있고, 회원 입금한 돈이 계좌로 넘어가고 다시 일부는 반환되거나 순환이 이뤄졌다. 변호인 측이 주장한 건 순환되는 걸 걷어내면 1조3000억원은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검찰도 수사할 때 순환되는 건 걷어내고 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 부분에 관한 입증은 검찰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 공판 검사 수차례 지적
이러다…혐의 입증 물거품 우려

핵심 증인들의 불출석도 이어졌다. 재판부는 “증거조사부터 해야 할 것 같다. 구속 만기가 다 되도록 진행된 게 없다. 이건 피고인에게도 유리한 게 아니다. 변호인들이 뒤늦게 선임된 건 이해하지만, 1차 기소된 사건 구속기한도 다 됐는데, 이 상태면 재판 진행 자체가 되질 않는다”고 비판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판사가 직접 재판 진행이 더딘 문제를 언급할 정도면 인내심에 한계치에 온 것”이라며 “검찰이 판사가 지적한 증거조차 제대로 보완하지 않은 부분은 아직 초임 검사이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변호사도 “현재 단계서 피고인이 노리는 건 불구속이다. 실형을 피할 수 없으니 최대한 혐의를 빼려는 전략을 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이 증거를 보완해야 하는데 어쩌면 입증에 실패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형 보이스피싱 범죄였던 민준파 사건은 김씨의 범죄와 유사했다. 이 사건도 김씨처럼 필리핀 마닐라서 시작됐다. 민준파 조직원들은 마닐라 콘도 등에 사무실과 숙소를 마련한 뒤, 개인적인 인적 관계를 이용하거나 필리핀 현지 사이트에 “상담원을 구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게시하며 신규 조직원들을 모집했다.

이들이 범행 초기에 가장 신경 쓴 것은 보안 유지로 실제로 조직원들은 실명을 쓰지 않았다. ‘승이’ ‘맹구’ 등 가명 또는 별명을 써서 신분을 철저히 위장했다. 이 조직(민준파)의 총책이 되는 팀장 최민준이 ‘민준’이란 가명을 쓴 것도 이때부터다.

이들은 조직원들의 여권을 거둬 여행사에 맡겨 버리는 방식으로, 조직원의 이탈을 적극 방지했다. 한 번 가입한 조직원은 마음대로 탈퇴할 수 없었고, 내부 사정을 밖에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수시로 교육받았다. 

피해액 200억 
‘민준파’ 유사

나중에 민준파 부총책이된 A씨가 보이스피싱에 발을 들인 것도 이 무렵이다. 2016년 1월 A씨는 큰 돈을 벌고자 필리핀으로 갔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뜯어내기 시작했고, 최씨와 A씨는 팀장과 팀원으로 2017년 1월까지 58억원에 가까운 돈을 챙겼다.

최씨와 A씨는 2017년 가을쯤 금융기관을 사칭해 저금리 대출을 미끼로 하는 보이스피싱 범행조직을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총책 최씨와 A씨는 ▲콜센터 직원 ▲출집(보이스피싱 인출책) ▲장집(대포 체크카드 모집책) ▲국내 인출책 ▲국내 환전책 등으로 구성된 조직을 꾸렸다. 콜센터 조직은 팀장급 별명이나 팀 구성원들의 특성에 따라 10여개 팀으로 구성됐다.

최씨는 2021년까지 약 4년간 보이스피싱 범죄를 일삼으며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2020년 2월 ‘민준파’의 존재를 인지한 후 2017년도부터 2020년까지의 3년간 발생 사건을 분석했다. 경찰은 조직원들을 특정해 범죄단체조직죄, 사기 등의 혐의로 국내 조직원들을 순차적으로 검거했다.

경찰은 이후 총책 최씨 등 조직 윗선까지 검거하기 위해 약 2년간 장기 추적을 거듭했다. 총책의 동선을 확보한 경찰은 현지 사법기관과 공조하며 1주일간 잠복한 끝에 지난해 9월 드디어 최씨를 검거했다. 나흘 뒤에는 총책의 검거 사실을 눈치채고 급하게 다른 곳으로 도피를 준비하던 A씨와 조직원 4명도 모두 검거했다.

이들은 같은 해 10월 수원지검으로 구속 송치됐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최씨와 A씨는 2017년 12월쯤부터 약 4년간 피해자 560명으로부터 적게는 200만원부터 많게는 3억3000만원까지 뜯어 총 108억원을 가로챘다. ‘민준파’ 이전의 보이스피싱 조직서 얻은 범죄수익을 합하면 피해액은 총 160억~170억원으로 늘어난다.


대놓고
공판 지연

검찰은 당시 합수단은 법리 검토를 통해 단순 사기죄서 법정형이 높은 특경법 위반으로 혐의를 변경하며 법원에 중형 선고를 요청했고, 최씨에겐 동종범죄 역대 최장기형인 징역 35년과 추징금 20억원이 선고됐다. A씨에겐 징역 27년과 추징금 3억원이 선고됐다. 기존 보이스피싱 총책에 대한 최장기형은 징역 20년(안산지원·피해액 54억원)이었다.

사건 내용을 보면 민준파 사건과 김씨의 사건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 안팎에서는 김씨의 혐의를 두고 사기도박 혐의가 추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 내용에 밝은 한 수사관은 “수년간 이뤄진 조직적인 범죄고 수사 과정서 김씨가 보이스피싱을 주도했다는 정황도 여럿 포착된 바 있다”며 “검찰의 추가 기소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다른 수사관도 “1조3000억원대 부당이익은 역대급 범죄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 상황으로는 중형이 선고되기 어렵지 않나 우려가 된다. 타인을 기만한 증거는 재판 과정에서 드러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추가 기소가 이뤄지는 걸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민경철 법무법인 동광 대표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이용자를 속인 행위를 입증해야 한다. 승률을 조작했다거나 이용자들을 속였다는 근거가 필요하다. 단순히 인터넷상에 도박장을 개설하거나 상대방과 도박하는 구조를 만들고 수수료 형식으로만 수익을 냈다면 사기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남부지검의 한 검사도 “차후 공소장 변경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검찰서 신중하게 기소했을 것”이라며 “피고인이 전관을 썼다고 해도 재판부서 솜방망이 처벌을 하기에는 어려운 사례”라고 말했다.

계좌 증거도 준비 못해…느슨한 대응
6개월 시간 끌기…사임 변호사만 13명 

김씨의 부당이익 1조3000억원 중 검찰이 특정한 금액은 40억원에 불과하다.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사정당국 수사관들의 추가 조사 이후 금액이 늘어날 수는 있다. 그러나 김씨가 조직원들을 통해 현금을 은닉하거나 벌어들인 수익 일부를 필리핀 길거리 환전소서 대량으로 바꿔치기는 방법을 지속해온 만큼 추적에만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사정당국 관계자도 “코인 거래소도 추적이 어려운데 수십서 수백만원을 환전소서 현금화한다면 추적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김씨가 은닉한 금액을 추적할 순 있어도 이미 현금화된 돈은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정당국은 김씨의 두 번째 아내로 추정되는 B씨가 김씨의 수익 일부를 차명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대포통장으로 관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직 필리핀에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조사 중”이라며 “범죄수익환수를 담당하는 수사관들이 들여다보고 있다”고 전했다.

부자가 아니었던 B씨는 김씨를 만난 이후 생활고에 시달린 적이 없다. 마땅한 직업이 없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다. B씨는 현재 마닐라 지역 중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꼽히는 곳에 거주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의 자식은 일반인이 다닐 수 없는 국제학교에 다니며 호화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김씨의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기관 관계자들도 B씨에 주목하고 있다. 김씨가 은닉한 추가 금액을 B씨가 소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해외 파트 담당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김씨가 필리핀 현지서 잡혔을 당시 초호화 생활을 했던 건 차명으로 운영하는 계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고급 리조트에 거주하며 마이바흐 등 고가 외제 차량 10대를 타는 초호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와이프를 굉장히 신뢰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가난한 동네서 살던 B씨가 월세 1000만원이 넘는 곳에서 거주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기 혐의
적용 안 해

한편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일 김씨의 보석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 김씨 측 변호인은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반면 검찰은 김씨가 필리핀서 검거된 뒤에도 허위 사건을 만들어 송환을 지연시키는 등 또다시 해외로 도피할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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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