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꿈나무마을 아동학대’ 보도 후…

3년6개월 만에 재판 열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훈(가명)의 삶은 인내의 연속이었다. 보육원에서는 학대를 견뎌야 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변화를 기다려야 했다. 자신을 괴롭힌 보육교사를 단죄하기 위해 지난 기억을 들춰야 했던 시간. 지훈은 이제야 첫걸음을 뗐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아동보육시설인 꿈나무마을서 아동학대 의혹이 불거졌다. 꿈나무마을은 2019년까지 재단법인 마리아수녀회가 서울시로부터 위탁을 받아 운영하던 곳이다. 현재는 예수회 산하 재단법인 기쁨나눔으로 운영 주체가 바뀌었다. 박지훈(가명)군이 아동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한 시기엔 마리아수녀회가 꿈나무마을을 운영하고 있었다.

악몽의 시간

지훈이는 2021년 9월 꿈나무마을 보육교사 성모씨, 장모씨, 정모씨 등 3명을 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당시 <일요시사>가 입수한 고소장에는 지훈이가 5년여(2011~2016년) 동안 어떻게 신체와 정신이 망가졌는지가 빼곡하게 기록돼있다. 고소장에 따르면, 지훈이는 보육교사뿐만 아니라 그들의 조종을 받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폭행을 당했다. 

고문에 가까운 기합을 당했고 무거운 책을 들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1만번이나 반복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정서적 학대 수준도 엄청났다. 다른 아이들로부터 ‘지능이 낮은 아이’ ‘장애인’이라는 말을 들었고, 보육교사가 ‘투명인간’으로 지목하면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아 다른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밥 역시 혼자 먹어야 했다.

친구와 다퉜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행정입원) 되는 일도 일어났다. 지훈이가 학교에 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선생님의 적극적인 항의로 병원서 나올 수 있었다. 꿈나무마을서 지낸 시간은 지훈이에게 악몽과도 같았다. 하지만 지훈이는 그 악몽을 지우는 대신 극복하기로 마음먹었다. 

시민단체 고아권익연대가 지훈이를 지원했고 유정화 한강법률사무소 변호사가 대리인이 됐다. 지훈이의 아동학대 피해 소식은 2021년 10월 <일요시사>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1344호 ‘<단독> 매질에 정신병원까지…천주교 산하 ‘꿈나무마을’ 아동학대 고발’ 참고) 

최초 보도 이후 꿈나무마을은 물론 마리아수녀회서 운영하는 부산 소년의집서 아동학대를 당했다는 제보가 이어졌다. 해당 제보를 바탕으로 ‘<단독> 꿈나무마을 아동학대 의혹 ‘삼가면 힐링농장’의 비밀’ ‘<단독> 꿈나무마을 보도 이후…“수녀님도 때렸다” 증언 나왔다’ 등 추가 의혹을 보도했다. 

당시 고아권익연대는 기자회견을 열고 꿈나무마을에 대한 철저한 감사와 시설 폐쇄, 법인 취소를 요구하고 나섰다.

보육원 피해 소식 2021년 10월 처음 알려
길고 긴 지훈이의 기다림…첫 공판 열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몸과 마음이 바르게 성장해야 할 시기에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가해진 다양한 방식의 학대 행위로 인해 정신적 상처가 매우 크다”며 “보육교사 3인과 마리아수녀회의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설에 대한 감사와 관리 책임이 있는 서울시와 은평구에 꿈나무마을 보육원 시설폐쇄와 마리아수녀회 법인 취소가 응당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마리아수녀회는 2022년 1월 사과문을 게재했다. 사과문에는 “의혹 제기 자체만으로도 참담함과 당혹감을 느끼며 무엇보다 긴 시간 동안 혼자 아픔을 삭이며 감내해 왔을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면서 “이미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아프다는 표현을 해 왔을 텐데 이들의 외침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아픈 시간을 오래 보내게 해서 정말 미안하고 잘못했다는 말을 먼저 전하고 싶다”고 사과했다.

마리아수녀회 측에서 사과문을 내놓고 수습에 나섰지만 실제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피해자가 존재하지만 그 피해를 보상할 방법을 제시하지 않은 채 사과문으로 사태를 봉합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문제는 마리아수녀회 측의 사과와는 별개로 지훈이 제기한 소송의 진행 속도가 매우 더뎠다는 점이다. 고소를 진행한 지 2년여 만인 지난해 11월 보육교사 3명이 기소됐고 지난 11일 서울서부지법서 첫 공판이 열렸다. 고소 이후 3년6개월 만이다. 햇수로는 무려 4년 만이다. 

유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서면 인터뷰서 “고소장을 제출하고 경찰조사가 이뤄지다가 중간에 담당자가 바뀌면서 지체됐다. 특히 가해자와의 관계서 증인의 진술 일관성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또 검찰서 보강수사 명령이 경찰에 내려오면서 추가로 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기소 이후 가해자의 주소지가 확인되지 않아 실주소지 확인 작업을 거치는 과정서도 시간이 소요됐다. 

2021년 9월 아동학대 혐의 고소
“보육 현실 보여주는 재판될 것”

유 변호사는 기소 과정서 고소 내용이 많이 누락된 부분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피해자의 진술을 온전히 뒷받침할 추가 증거 확보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 범죄의 특성상 학대당한 신체 부위에 흉터가 남아있거나 사진 등 물적 증거가 없는 이상 가해자가 부인하는 상황서 기소까지 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당시 지훈이는 휴대폰을 상시 소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극도의 불안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이 당한 학대 피해를 물적 증거로 남겨야 한다는 판단 자체가 어려웠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실제 지훈이가 학대 피해를 당한 시기는 11~16세로 꿈나무마을의 통제 아래 있던 때였다.

재판은 가해자의 학대 행위가 상습적이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게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 변호사는 “지훈이는 진심 어린 사과를 받거나 피해 보상을 받은 바가 없다.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중이다. 가해자가 1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지훈이를 학대했다는 점을 재판부가 인정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고 전했다.

유 변호사는 “이번 재판은 사회 최약자들이 살아가는 보육원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부는 보육원에 아이들의 보육을 맡겨 두고 지원금을 지급하거나 형식적인 검토자의 위치서 벗어나 학대 피해를 당하는 아이들이 피해 상황서 즉각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제도적이고 물적인 장치를 적극적으로 구축해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벌의 시간

아동학대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전용 연락망을 개설하거나 제3의 피신 장소와의 연계, 심리치료 지원, 경찰이나 아동보호기관의 즉각적인 개입 등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이번 재판이 그 제도 보완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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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