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범죄 ‘초동수사’ 까칠한 조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3.04 15:12:42
  • 호수 1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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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죽고 사는데 법타령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강력범죄는 초동수사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이뤄지는지가 중요하다. 범죄가 발생한 시점서 피해를 막을 순 없지만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찰의 강력범죄 수사 시 발목을 잡는 게 있다. 바로 성인 실종 신고자를 수사할 법령이 없는 것이다.

강력범죄는 폭력이나 무기를 사용해 저지르는 범죄를 말한다. 폭행, 살인, 방화, 강도, 절도, 성폭력이 여기에 해당된다. 당연히 범죄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초동수사를 하는 것이다. 초동수사가 신속하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피해자의 생존 여부가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보통 강력범죄는 ‘성인 실종신고’로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들을 수사할 법적 근거가 없다.

위험성
알려도…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실종신고 당시 14세 미만인 아동은 ‘실종아동을 발견하기 위한 수색과 수사를 한다’ ‘개인 식별 목적을 위한 혈액, 모발, 타액 등의 검사 대상물로부터 유전자를 분석한다’ ‘경찰서는 실종아동의 발생 신고를 접수한 때에는 지체 없이 수색 또는 수사의 실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등의 법률로 실종아동을 찾아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있다.

반면 실종 성인을 찾기 위한 법령이 전혀 없는 상태라 실종신고가 들어와도 찾기가 쉽지 않다. 실종 당시 생명의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신고하면 ‘단순 가출’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가출인은 실종 수색을 할 수 없다.


경찰이 개인적인 판단으로 수사를 하고 싶어도 ▲사생활 침해 ▲보복 ▲채권추심 등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실종자의 수는 줄지 않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만 18세 미만 아동 실종신고 사례는 연평균 약 2만명에 육박하지만, 성인 실종신고는 연평균 7만여건으로 아동 실종과 비교하면 약 3.3배나 많다. 미해제 건수는 평균 540여건으로 약 29배 많은 수치를 보인다.

법적 근거가 없는 성인 실종신고로 발생한 강력범죄 사례로 ‘마포 오피스텔 감금 살인 사건’이 있다. 2021년 3월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의 한 오피스텔서 20대 남성 두 명이 또래 남성을 감금해서 장기간 갈취, 폭행한 끝에 피해자를 기아로 사망하게 만든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경찰의 부실 수사 논란으로 재점화됐다. 경찰에 따르면, 대구 출신이었던 피해자는 성인이 된 후 아버지에게 “서울에 가야 한다”고 카드를 한 장 받고 친구 두 명을 따라 상경했다. 당시 친구들은 학창 시절에 피해자에게 장기간 학교폭력을 행사했던 친구였다. 

학교폭력의 정도는 심각했다. 학교 탈의실 안에서 유사 성추행을 했고, 피해자의 바지를 벗겨서 인터넷 방송에 송출하기도 했다.

“친구와 서울에 간다”는 아들이 연락이 되지 않자, 아버지는 지역 경찰서에 아들의 실종신고를 두 차례나 했다. 당시 경찰이 바로 수사에 들어갔더라면 강력범죄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경찰서는 증거불충분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매년 늘고 있는 성인 실종자
전화 통화로 확인만 하고 끝


전화로만 피해자가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했고, 피해자는 가해자와 함께 있는 상태라 구조 요청을 할 수가 없었다.

경찰 수사는 피해자의 카드 내역을 조사해 수소문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후 인근 편의점 사장이 폭력을 당한 것을 직감해 경찰에 사건을 인계했고, 피해자는 건강검진을 받고 입원했다. 이때 피해자는 아버지를 만나 “가해자가 서울로 올라오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고, 전화 통화한 것은 피해자가 시켜서 대답한 것”이라고 말했다.

즉,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우리와 같이 있지 않다고 대충 말하고 끊으라”고 시켰던 것이다. 피해자의 체중은 감금 전 52㎏이었으나, 발견 당시에는 34㎏으로 심각한 기아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장기간 기아 상태에 놓였으며 강제적으로 음식 공급이 끊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후 수사담당관의 잘못이 인정돼 정직 2개월, 심사담당관은 견책, 담당 과장에게는 불문 경고의 징계를 내렸다.

이 같은 성인 실종신고의 문제점은 전 남편을 살인한 후 유기했던 고유정 사건서도 드러났다. 2019년 5월18일 고유정은 자신의 차량을 가지고 제주도에 입항했다. 일주일 뒤 전 남편 사이서 태어난 아들과 함께 펜션서 머물다 같은 달 25일 전 남편을 살해하고 이틀 뒤 펜션을 나와 제주도를 빠져나갔다.

피해자의 남동생은 경찰에 “형이 전 부인을 만나러 갔다가 연락이 두절됐다”고 신고했고, 경찰은 제주도 펜션서 혈흔을 발견해 고유정의 주거지인 충북 청주서 전 남편 살해 등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실종됐다는 동생의 신고를 받은 후 고유정과 통화했다. 고유정은 경찰에게 “전 남편이 자신을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도망갔다”며 거짓말했고, 담당 경찰은 그대로 믿었다.

대부분
단순 가출

재판을 앞둔 시점 고유정은 “계획적 살인이 아닌, 성폭행 방어 과정서 저항했다”고 주장했다. 

실종신고 당시 고유정의 말을 그대로 믿은 것 외에도, 경찰의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살해 현장 주변 CCTV를 최초로 확보한 것도 경찰이 아닌, 피해자의 유족(동생)이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증거물 중 하나인 졸피뎀이 든 가방도 초기 체포 과정서 놓쳤다. 이 가방은 고유정과 재혼한 남편(나중에 이혼)이 제출해 확보했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여러 CCTV와 고유정의 진술 내용을 분석한 결과, 잔혹한 범죄 이후 행동에 심리적인 장애가 드러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경찰은 고유정 사건 부실 수사에 대해 인정했고, 범죄 관련성이 높은 실종사건에 대한 매뉴얼을 마련했다.

초동조치와 수사 과정 등에서의 부실 의혹에 대한 과실을 확인한 경찰청은 고유정 사건을 계기로 현행 실종자 분류 체계 판단을 정밀화했다. 경찰은 현재 15개가량의 항목으로 구성된 체크리스트를 통해 실종자를 크게 고·중·저 3단계로 나눴다.


경찰은 실종자 분류 체계 체크리스트에 ‘범죄 관련성’을 반영하기 위한 기초작업을 했다. 현행 미성년자와 여성, 장애인, 치매 노인 등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고위험 기준에 범죄 가능성도 세밀하게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실종 사건서도 원한 관계 등 범죄 가능성이 높은 경우, 세밀하게 따져볼 것이다. 체크리스트는 일선 수사관 의견 청취를 거쳐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종자 체크리스트 등 매뉴얼 수정은 고유정 사건 진상조사에 따른 후속 조치다. 경찰이 실종 사건과 관련해 유사 피해와 부실 수사 의혹이 제기되지 않도록 돕는다. 사건 초기부터 피의자인 고유정의 진술만 믿고 사실 확인을 부실하게 했다는 게 고유정 사건 감찰의 결론이다.

가해자
말만 듣고…

경찰은 실종 수사뿐 아니라 종합적인 판단과 신속한 대응을 위한 대책으로 ‘종합대응팀’을 신설했다. 초기 수색·인력투입 등이 관건인 실종 사건과 사회적 관심사가 높은 주요 사건을 체계적으로 다루겠다는 설명이다.

고유정 사건 진상조사를 위한 경찰청 합동점검단 관계자는 “일선 수사 과정에 본청, 지방청의 의견을 반영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다만 경찰청과 지방청 단위서 직접 수사에 개입하는 종합대응팀과 관련해 검찰의 지휘권을 침해한다는 논란도 있었다.


고위험군이란 ▲택시 탑승 후 지인이나 애인 또는 가족에게 전화나 문자로 탑승 사실을 알린 후 귀가하지 않고 소재 불명 ▲통화 당시 다투는 소리, 우는 소리, 악 소리 등 범죄 피해가 의심되는 상황이 있는 경우 ▲구조 요청 전화와 문자(큰일 났다, 살려 달라 등) 발송 후 신고자가 보낸 회신을 읽지 않는 경우 ▲최근에 타인으로부터 신변 위협을 받은 전력이 있는 경우 ▲전화 통화 시 다른 사람이 실종자 전화를 받은 경우 ▲금전거래(대출, 입금, 송금, 계좌이체 등)와 관련된 장소 또는 사람들(대부업체, 직업소개소 등)을 만나러 간 이후 연락이 두절된 경우 등을 말한다.

그러나 고위험군이라고 판단돼 경찰이 수사해도, 마포 오피스텔 감금 살인사건처럼 성인 실종자가 직접 범죄 피해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는 상황이 있다.

또 고유정 사건과 같은 유형은 실종신고 접수 및 수사 개시를 주저하기가 쉽다. 현장 경찰관들은 부부싸움 후 홧김에 가출, 회식 후 연락두절,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아 불안한데 감금된 것 같다’ 등 단순 가출로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 ‘강성 비난’을 대비해 지나치게 많은 경찰력을 동원하게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 역시 초동수사와 경찰력 낭비의 경계가 모호하다. 모든 경찰관이 범죄 및 교통사고 예방 등 본래의 기능을 멈추고 현장에 출동할 경우, 치안 공백과 경찰업무의 피로도 증가 문제점도 발생한다.

가정불화나 개인 사정 등으로 잠시 집을 떠나거나 가족들과 연락하지 않는 경우인데도 최대한 빨리 찾기 위해 극단적 선택이나 범죄와 연관된 것처럼 허위·과장 신고하는 사례가 잦아져 경찰력 낭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신고해도 현장 출동 불가능
“범죄 연관성 있어야 간다”

실제로 2021년에는 거짓 실종신고로 수개월에 걸쳐 경찰관들을 고생시킨 여성이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은 경우도 있다. A씨는 2020년 제주지역 경찰서에 찾아가 “16년 전 친척 집에서 당시 4살이었던 아이를 잃어 버렸다”고 실종 신고했다.

A씨 친척도 경찰에 “당시 일하고 집에 와 보니 아이가 없었고, A씨에게 알려주려 했으나 연락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력범죄 연루 가능성이 있다고 본 여성·청소년수사팀과 형사팀 경찰관들은 실종 현장 인근을 탐문하는 한편, 2004년 발생한 변사 사건을 수개월 동안 일일이 확인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A씨의 실종신고는 거짓으로 드러났다. 아이를 B라는 이름으로 출생신고했던 A씨는 후에 개인적인 이유로 C라는 이름으로 재차 출생신고를 했다. 그러다 최근 B에게 병역판정검사 통지서가 나오자 제적시키기 위해 경찰에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신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실종됐다던 아이는 A씨와 함께 살고 있었다. 대전지법 형사8단독(부장판사 차주희)는 위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20시간 사회봉사도 함께 명령했다.

차 부장판사는 “공무원들의 정당한 직무 집행이 방해되는 결과를 낳은 피고인의 죄책이 가볍지 않다. 이중으로 출생신고된 아이에게 병역통지서가 나오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범행에 이르게 된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한편, 성인 실종자가 매년 늘어나는 상황인 데 반해 현행 실종자정보시스템은 노후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0년간 실종 법령‧제도 등이 변하고 실종 사건 데이터양이 증가했지만, 현행 시스템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현행 실종자정보시스템에서는 발생지, 목격지 등 장소에 대한 정보를 텍스트로 관리하고 있어 실종자 동선이나 행적을 한 눈에 파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영등포구 여의도동 33번지서 실종’과 같이 실종자의 위치는 텍스트로 표기된다.

이는 지도상 좌표 값으로 변환할 수 없어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 중인 112시스템, 지리적프로파일링(GEO-Pros), 폴리폰 등과 연계도 힘든 실정이다.

중요한
현행법

경찰 관계자는 성인 실종자에 관해 “현행법에 따르면 성인에 대한 실종신고가 들어와도 영장 없이 수색할 방법이 없다. 더구나 범죄와 연관이 없다면 단순히 소재 파악을 위한 영장은 나오지도 않는다. 112에 극단적 선택 의심신고가 들어와 생명과 신체에 위해가 가해질 우려가 있다면 위치를 추적할 수도 있지만, 단순 가출신고는 수색할 방법이 없어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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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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