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장세동 소환한 김용현 경호처장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2.27 11:06:24
  • 호수 1468호
  • 댓글 0개

다시 발동된 ‘심기 경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전두환정권 시절 ‘심기 경호’의 창시자인 장세동 전 청와대 경호실장과 똑 닮은 자가 있다.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은 요즘 ‘입틀막’(입을 틀어막는다는 뜻의 신조어)에 재미를 붙인 모양새다. 돌이켜 보면 그의 특기다. 김 처장은 2022년 북한 무인기가 용산 대통령실 일대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 안까지 침투했을 때 “침범하지 않았다”며 은폐를 시도했다.

한 달 새 무려 3번째. 강성희 진보당 의원은 지난달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국정기조 전환을 요구했다. 당시 강 의원은 “이러시면 안 됩니다. 대통령님, 국정기조를 바꾸셔야 됩니다”라고 말했다. 발언 직후, 경호원들은 곧장 강 의원의 입을 틀어막고 번쩍 몸을 들어 퇴장시켰다. 당시 김 처장이 강 의원을 손으로 내려치는 모습도 카메라에 포착됐다. 

과도한 제압
폭발한 야당

‘과잉 의전’ 등 논란이 일자 김진표 국회의장은 책임자인 김 처장에 대한 인사 조치를 요구했다. 강 의원의 행동이 “경호상 위해 행위”라고 했던 대통령실은 국회의장의 인사 조치 요구에 대해선 입장을 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김 처장의 ‘강성희 진보당 의원 과잉 의전’ 논란을 ‘국회의원 폭력 제압 사태’로 규정하며, 윤 대통령의 사과와 김 처장의 경질을 요구했다.

지난달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는 ‘윤석열정권의 국회의원 폭력 제압 및 거짓 해명 규탄 기자간담회’서 “윤 대통령이 (강 의원과)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상태서(경호관들이 강 의원의) 입을 막고 사지를 들고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며 “경호처의 행위는(윤 대통령) 신변 경호가 아니라 심기 경호였다”고 주장했다.


박 부대표는 “김 처장의 경질이라든지 대통령 사과까지 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에선 “민주당이 사건을 정쟁 소재로 삼으며 적반하장식 행태를 보인다”고 응수했다. 김민수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은 경호의 부실함이 문제고, 대통령의 경호는 과한 것이 문제가 되느냐”고 논평했다.

김 처장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의 과잉 경호는 전형적인 심기 경호의 표본이다. 심기 경호는 ‘대통령의 마음이 편안해야 국정도 잘 되니 심기까지 경호해야 한다’는 뜻으로 전두환정권 시절 장세동이 만든 신조어다. 장세동이 전두환씨가 ‘산책하다 돌부리에 걸린다’며 도로 평탄화 작업을 지시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마찬가지로 윤 대통령이 지나간 자리는 김 처장에 의해 입도 뻥끗할 수 없다. 지난 1일 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의료개혁 관련 민생토론회서 정부 의료정책에 반대하던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이 입을 틀어막힌 채 경호원들에게 끌려 나갔다.

윤 대통령과 학연···충암고 1년 선배
추미애와 갈등 때 ‘술친구’로 알려져

사건 당시 김 처장 휘하의 경호처 직원들은 “행사장 주변은 대통령 등 경호에 관한 법률상 경호구역”이라며 퇴장 조치의 근거를 밝혀왔다.

이날 토론회는 소아과 진료 예약 전쟁, 응급실서 환자가 방치되는 사례 등 공공의료체계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짚어보고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자리서 임 회장은 “택배기사도 이동하고 병원 직원들도 왔다갔다 하는데 내가 왜 나가야 하느냐고 얘기했는데 막무가내로 나가라 했다”며 “옥신각신 하다가 일방적으로 입을 틀어막고 끌어내더라”고 토로했다.


경기분당경찰서는 임 회장을 퇴거불응 혐의로 입건해 수사했다. 그는 사건 당시 출동한 경찰에 의해 분당경찰서로 옮겨진 후 4~5시간가량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열린 카이스트 학위 수여식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날 윤 대통령의 축사를 듣던 한 졸업생이 R&D 예산 복원에 대해 항의했다. 그러자 경호처 직원들에 의해 강제 퇴장당했다. 이 졸업생은 녹색정의당 대전시당의 신민기 대변인으로 확인됐다.

신 대변인은 학위복을 입은 위장 경호원들에게 입을 막히고 팔다리가 들린 채로 끌려 나갔다.

해당 사건과 관련해 카이스트 동문들은 대통령경호처를 경찰에 고발했다. 카이스트 동문 26명은 이날 오전 10시께 김 처장과 경호처 직원 등을 대통령경호법 위반(직권남용), 폭행, 감금 등 혐의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졸업생 주시형씨는 고발장 제출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호처 직원들은 말로 항의한 졸업생의 입을 막고 끌고 나가 체포했다”며 “경호처의 이런 행위는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을 남용 및 과잉 행사해서 국민의 기본권, 특히 신체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 폭력행위”라고 강조했다.

학위복 입은
위장 경호원

이어 “해당 폭력행위에 직접 가담한 대통령경호처 직원은 물론 김 처장과 대통령이 이를 묵인 혹은 방조한 것은 아닌지 법에 따라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졸업생 김신엽씨는 “IMF 때도 삭감된 적이 없었다. 윤정부는 R&D 예산을 4조6000억원이나 삭감했다”며 “헌법을 수호할 책임이 있는 대통령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다른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마땅한데, 윤정부는 정반대의 길을 택하고 일방적으로 예산을 삭감했다”고 비판했다.

R&D 예산을 삭감하고 졸업생을 강제 연행한 윤정부를 규탄하는 서명에는 카이스트 구성원 수백명이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과 김 처장이 합작한 ‘입틀막’ 정권의 기반은 학연으로 진하게 맺어졌다. 김 처장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로 학창시절 학도호국단장으로 유명했다. 학도호국단은 1975년 정부가 ‘학원의 총력안보체제를 구축한다’며 학생회 대신 만든 조직이었다. 현재 학생회장과 비슷한 자리다. 

김 처장은 훗날 “학교서 공부도 잘하고 의리가 있는 2학년 후배가 있다는 소문이 나 호기심에 내가 먼저 만나자고 윤 당선인을 불렀다”고 회상했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했다고 전해진다.

김 처장이 1978년 육군사관학교(육사 38기)로 입교하면서 윤 대통령과 연락이 끊겼다. 나중에 동문회를 통해 서로의 연락처를 알게 된 두 사람은 전화로 근황을 주고받고 안부를 묻는 사이로 지냈다.


두 사람의 관계는 2020년 더욱 깊어졌다.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 대통령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대립하면서다. 직무정지로 야인 생활을 하던 윤 대통령이 편하게 술 한잔하자며 김 처장을 불렀다.

“캠프를 
맡아달라”

윤 대통령 측근에 따르면 “김 처장이 사회 각 분야의 저명인사를 윤 대통령에게 소개해 줬다”고 후술했다. 이후 윤 대통령은 정치 입문을 결심했고, 캠프에 제일 먼저 합류한 ‘1호 멤버’가 김 처장이었다.

처음엔 김 처장이 “캠프를 맡아달라”는 윤 대통령의 요청을 완곡하게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김 처장은 윤 대통령에게 “선거서 이기려면 충암고, 서울대 동문이지만, 검찰 출신이 아닌 사람들을 중심으로 캠프를 꾸려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창시절부터 이어진 끈끈한 인연으로 윤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2022년 5월10일 김 처장을 임명했다. 동시에 청와대 이전 TF 부팀장에도 앉혔다. 취임 후 그는 대통령경호에 필요한 구역서 군·경찰 등을 지휘·감독할 수 있도록 관련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다.

대통령경호처는 2022년 11월9일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이하 대통령경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을 보면 경호처장은 경호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경호구역서 경호활동을 수행하는 군·경찰 등 관계기관의 공무원 등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한다. ‘경호구역서 경호활동을 수행’이라는 제한을 두지만, 경호처가 군·경을 지휘·감독하는 것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로 처음이다.

이에 경호처의 군·경 지휘권 확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논란이 확산되자 경호처는 “내부지침 등의 형식으로 규정돼있던 내용을 시행령으로 명확히 한 것일 뿐 기관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결국 김 처장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른 경호 부실 우려를 불식시키고 목적을 이뤄냈고, 윤 대통령의 입틀막 정권을 완성하는 데 공을 세웠다.

대통령실 이전 공신
잇단 ‘입틀막’ 도마

대통령실 이전 후 반년 만에 북한 무인기의 침범으로 책임론에 휩싸이기도 했다. 2022년 5월10일 용산구 용산동3가의 국방부 청사는 대통령실로 재탄생했다. 같은 날 청와대는 국민들에게 전면 무료 개방됐다.

얼마 지나지 않은 2022년 12월26일 북한 무인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대한민국 영공을 침범했다. 그 가운데 1기가 용산 대통령실 일대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 안까지 침투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대통령실 경호의 허점이 노출됐다.

당시 군은 “적 무인기는 비행금지구역(P-73)을 침범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가 번복했다. 이후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월5일 북한 무인기가 용산 대통령실을 촬영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같은 날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자신들의 작전 실패와 경호 실패를 거짓말로 덮으려고 했던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김용현 경호처장 등을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처장은 군 복무 시절에도 북한의 무인기와 악연이 있다.

2014년 3월 경기도 파주서 북한 무인기 1대가 추락했는데, 이 무인기가 촬영한 사진 중 청와대를 찍은 사진이 발견됐다. 무인기의 청와대 상공 비행을 방공 레이더망으로 포착하지 못한 데 대한 질책이 쏟아졌다. 당시 김 처장은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을 맡고 있었다. 당시 야당은 물론 여당인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도 비판에 가세했지만, 인사 조치는 되지 않았다.

김 처장은 2022년 10월, 가까운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국방정책자문단 8인으로 활동했던 예비역 준장 조모씨를 국방부 인사기획관에 내정하려 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이때 국방정책자문단을 이끌던 인물이 김 처장이었기 때문에 ‘김용현 사단’이라고 불렸다.

이종섭 장관은 그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이 사안을 추궁하자 극구 부정했다.

이후 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이 장관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국방부장관 후보자 청문회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게 “신 후보자가 육군사관학교 후배인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의 추천으로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됐다고 들었다”며 “과거 윤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했는데도 장관 후보자로 낙점된 것은 경호처장과 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궁했다. 

북한 무인기
은폐 시도도

앞서 신 장관은 윤 대통령을 두고 “군 미필자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청문회서 기 의원이 윤 대통령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느냐는 취지로 묻자, 신 장관은 “(그런)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면서도 “그것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후보자(윤석열 대통령)와의 각별한 인간관계 이런 부분까지 포함하면 당연히 이 분(김용현 경호처장)이 중간에 뭔가 역할을 하지 않았겠느냐”라는 질문엔 “호사가들이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 김 처장의 입김이 국가안보 분야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는 대목이다.

<smk1@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