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부당해고 논란’ 공인노무사회 무슨 일이…

“알만한 사람들이 더한다더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김철준 기자 = 한국공인노무사회(이하 공인노무사회) 소속 직원이 부당해고를 당한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 이밖에 수습노무사가 현장교육 과정에서 노무법인 대표에게 갑질을 당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노동법 전문가 단체라는 노무사회가 근로자들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노무사가 부당해고에 갑질이라니, 알만한 사람들이 더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20대 임원 선출 선거가 한창인 공인노무사회 측은 쉬쉬하는 분위기다. 연임에 나선 이황구 19대 회장도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공인노무사회 사무국 직원 2명이 지난해 부당해고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9월10일 작성된 공인노무사회 업무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당사자인 과장급 A씨와 차장급 B씨는 올해 초 공인노무사회를 상대로 노동위원회(노동위)에 구제 신청을 제기했다.

갑질 횡포

노동위는 부당해고임을 인정하면서, A씨와 B씨에 대한 구제 신청을 받아들였다. 노동위 부당해고 인정에 대해 공인노무사회는 A씨를 원직에 복직시켰지만, 재차 해고했다. B씨에 대해서는 2900만원의 합의금을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2차례의 걸친 A씨의 해고 처분을 노동위에서 부당해고로 인정한 것이다.

공인노무사회는 “A씨가 허위 경력을 기재했기에 해고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발생 원인에 대해 “직원 채용 시 객관적으로 경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 향후 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B씨가 해고된 이유는 A씨의 허위 경력 기재를 도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공인노무사회가 지난 5월 B씨에게 지급한 합의금은 공인노무사로 구성된 회원들의 회원비인 것으로 드러났다. 합의금은 해고 예고 수당 500여만원, 휴업수당으로 지급된 70% 외에 평균임금에 해당하는 부족분 30%분과, 상당액의 위로금이 포함된 액수를 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B씨에게 미지급된 연장근로수당 1100만원도 포함돼 논란이 가중됐다.

한 노무사는 <일요시사>와 통화에서 “노무사의 권익을 보장하고 관리·감독해야 할 단체가 연장근로수당을 1100만원이나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임금체불을 했다는 것이고, 매우 실망스럽다”며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은 행정 낭비로 수천만원의 회비가 공중분해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인노무사회도 엄연한 상시근로자 50인의 사업장이며, 노동법 적용 대상 사업장이다. 노동법 위반 사건이 발생한 만큼, 노동부의 감독이 필요하다. 

이황구 공인노무사회장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진 상황이다. 이 회장이 직접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서진배 공인노무사회 사무총장의 연봉이 6800만원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공인노무사회는 서 사무총장의 대학원(박사과정) 학비 500여만원도 지급했다.

회계감사 보고서에는 서 사무총장의 학비가 ‘업무역량개발비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교묘하게 기재됐다. 이에 대해 공인노무사회원들은 게시판 등을 통해 적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무국 직원 노동위에 구제 신청
원직 복직 조치 이후 다시 해고

공인노무사회는 해당 문제에 대해 감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업무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서 사무총장에 대한 학비 지원 명목으로 2021년 연간 500만원의 ‘업무역량개발비’를 책정했다. 보고서엔 ‘당초 회원들은 이 부분이 적정한지, 사무총장 학비 지원에 따른 학사 참여가 충실한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적혀있다.


공인노무사회 감사보고서를 작성한 C씨는 <일요시사>와 통화에서 “사무총장의 근로계약서상 연봉에 학비가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무총장을 채용하기 위해 높은 연봉을 책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에 한 노무사는 “사무총장 연봉이 학비를 포함해 7300만원에 달하는 것을 두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사무총장에 대한 복지 차원의 지원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무총장의 학비 지원을 근거도 없는 업무역량개발비로 지급하고, 다른 직원에게는 지원하지 않아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다. 2021년부터 지급된 사무총장의 학비나 사무국 직원의 연장근로수당조차 지급되지 않은 것은 공인노무사회의 회계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공인노무사회는 “사무총장의 학비 지원 근거는 물론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이를 환수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집행부가 바람직한 결과를 산출하지 못한 부분은 아쉬운 점”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 공인노무사회는 지난 3년간 한 노무사와 연간 2억5000만원의 달하는 인적자원관리(HRM) 사업을 3년간 근거도 없이 수의계약으로 체결해 부정한 회비를 사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를 두고 공인노무사회 관계자는 “배임 등의 문제까지 생긴 상황이니 수사 당국과 고용노동부가 감독하고, 재발방지 방안을 노무사회에 마련토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무사의 권익 신장을 위해 설립된 공인노무사회가 역할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습노무사가 6개월의 수습 과정서 노무법인 대표 등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다. 수습노무사의 경우 공인노무사회의 교육을 이수하지 못하면 노무사업을 하기 어렵다.

이를 악용한 노무사회 교육연수위가 수습노무사들의 연수교육에서 권한을 남용하는 일도 발생한다.

수습 과정을 거친 노무사 D씨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나 또한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해 고용노동부에 신고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근로자를 위해 일하는 노무사들이 오히려 노동법을 어긴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공인노무사회는 수습노무사보다 노무법인 대표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처우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사무총장 학비 포함 연봉 도마에
조직내 이황구 회장 책임론 일어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 수습노무사가 노무법인 면접 과정서 “수습은 근로자가 아닌데 왜 임금을 줘야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또 ‘2023년 수습노무사 갑질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노무사들에게 2년 이내 결혼할 생각이 있는지 릴레이로 답하게 하는 등 성차별·시대착오적 질문도 있었다.

부당한 해고, 징계 등에 대한 구제 신청을 대리하는 노무사조차 갑질을 당하는 것이다. 현직 노무사와 수습노무사로 구성된 ‘수습노무사 개선티에프’(TF)가 지난 19일 공개한 2023년도 수습 공인노무사 갑질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습노무사들은 ‘채용 면접서 사적인 질문을 받았냐’는 질문에 39.1%가 “그렇다”고 답했다. 

채용 면접서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에 해당하는 발언을 들었다는 응답률도 5.8%였다.


실제로 한 수습노무사는 교육노무사로부터 “유흥업소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며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번 조사는 7월12일∼20일까지 공인노무사회가 주관하는 집체교육 수강 인원 13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법으로 정해진 근로 시간을 지키지 않고 연장근로에 가산 수당도 지급하지 않는 사례도 나타났다. “정해진 근무 시간 외 조기 출근이나 야근을 강요한다”(28.9%), “업무시간 외 카카오톡, 문자 등으로 업무지시를 받았다”(26.7%)는 수습노무사가 30%에 달했다. 근무시간 외 노동에 대해선 68.1%가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하거나 일부분만 받았다”고 답했다.

폭언 등 직장 내 괴롭힘도 있었다. 수습노무사 15.9%가 “상사가 업무지시 중 위협적인 말이나 폭언을 한다”고 답했다. “고참이 업무를 가르치면서 괴롭힌다”는 응답도 11.6%였다.

규모가 작은 노무법인의 경우, 대표노무사가 직접 교육에 나서면서 수습노무사들은 철저한 ‘을’의 지위에 놓일 수밖에 없어 갑질이 빈번하다. 노동 관련 법률사무 및 심판대리를 수행하는 노무사가 갑질을 당하는 믿기 어려운 사례가 속출하자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습노무사 처우개선 티에프 측은 “수습노무사들은 어렵게 구한 수습처이기에 부당한 처우도 감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여있다”며 “부디 노동관계 법령의 전문가인 공인노무사들이 본인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직시하고 시정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에서 “노동 과정서 부당 노동행위 피해를 당했을 경우, 노무사라도 주저 말고 고용노동부로 진정을 내면 된다”며 “사업장서 부당 노동행위가 있으면 근로 개선지원과 등과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7일 수습, 현직 노무사 34명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고용노동부, 한국공인노무사회, 한국공인노무사회 교육연수위원회를 대상으로 수습교육 당시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수습노무사는 자격증을 취득한 뒤 한 달 동안 한국공인노무사회가 진행하는 집체교육을 받고, 노무 법인서 5개월 동안 수습기간을 거쳐 공인노무사가 될 수 있다.

진정서에는 집체교육을 주관한 공인노무사회와 그 교육연수위원회는 수습노무사들의 병결(병으로 인한 결석) 신청을 거부하고 불출석 처리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노무사 연수를 이수하기 위해선 집체교육 출석률 90% 이상을 충족해야 해, 출석률은 중요한 교육 이수 요건 중 하나다.

애먼 수당

한편, 22일 공인노무사회 20대 임원 선출을 위한 선거가 한창이다. 3개 후보조가 출마한 가운데 기호 1번 이황구 후보가 연임에 도전한다. 

공인노무사회에 따르면 지난 10일, 임원 선거 입후보 등록 마감 결과 기호 1번 이황구-신동헌-안은지(회장-부회장-부회장) 후보 조, 기호 2번 박기현-김명환-박진형 후보 조, 기호 3번 이완영-이성진-이상호 후보 조가 출사표를 던졌다. 박기현 후보는 11기 고참이며, 재선 경력의 이완영 후보가 경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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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