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마약 다단계’ 대해부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1.21 15:36:31
  • 호수 14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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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돈이 돌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옥장판, 다이어트 식품, 화장품 등은 대표적인 다단계 제품으로 꼽힌다. 이 틈새를 노린 상품이 있다. 바로 마약이다. 한때 건설업자들 사이서 마약이 유행했고, 이들은 다단계 유통을 통해 판매했다. 덩치가 커지면서 눈에 쉽게 띄자, 마약밀매는 점조직 형태로 바뀌었다.

보통 다단계는 ‘제조업자→도매업자→소매업자→소비자’와 같은 일반적인 유통경로를 거치지 않는다. 다단계라는 이름처럼 많은 단계의 회사와 판매원이 거래에 참여하는 유통 방식을 말한다. 즉, 자사 제품을 구입한 고객을 판매원으로 이용해 제품 판매와 유통망을 확대해나가는 판매 방식이다. 

피라미드식
유통 방식

본사는 상품 판매 출자자를 모집하고, 출자자가 다시 다른 출자자를 가입시키면 보수를 받는 구조다. 통상 이를 두고 피라미드식 판매 방식이라고 말한다. 다단계 특징은 판매원의 능력에 따라 이익을 받는다는 것인데, 문제는 판매조직이 상품의 판매와 관계없이 무원칙적으로 확대되고 말단 출자자가 대량의 재고를 책임지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다단계 제품엔 딱히 제한이 없지만 화장품, 다이어트 식품, 건강식품 등이 가장 많이 유통된다. 최근에는 코인(가상화폐)까지 다단계 제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마약도 다단계 판매가 이뤄진 적이 있다. 지금은 마약 다단계 조직이 사라졌지만, 마약은 한때 다단계 블루오션으로 큰돈을 벌게 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마약이 널리 퍼지기 전의 일이다. 지금은 마약사범이 2만명이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16세부터 69세 이상 성인 5000명을 대상으로 한 마약 실태 설문조사에서 “평생 단 한 번이라도 ‘의사의 적절한 처방 없이 치료 목적 이외의 용도’로 마약을 사용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3.2%가 “사용한 적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는 전체 국민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3.2%는 약 160만명, 조사 대상인 19~69세를 기준으로 보면 최소 120만명에 달하는 수치다. 연간 출생아 수가 25만명 남짓이니 5년간 태어나는 국민을 모두 더한 숫자와 비슷하다.

마약 다단계 판매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A씨는 공업고등학교 토목과를 졸업하고 지방 건설업체에 입사했다. 당시 주택건설은 호황기였고, 자연스레 그의 꿈은 현장 소장이 되는 것이었다. 현장 소장은 하도급 업자 선정, 근로자 합숙소 운영자 선정 등 건설업체 현장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이 같은 연유로 당시 건설 쪽 하청업자들은 일이 끝나면 항상 현장 소장을 데리고 술집을 갔다. A씨는 현장 소장을 따라다니면서 유흥주점에 들러 건설업자들과 도박을 했다.

술 대신 하니 피로가 없다고?
건설 노동자 은밀히 총책 활동

그는 “하청업자는 현장에 있는 사람과 친해져야 한다. 그런 과정서 술을 마시고 노름을 한다. 보통 고스톱을 치는데 투고까지는 아니고 쓰리고, 포고까지 간다”며 “건설 현장은 돈 판이다. 소장에게는 100만원을 주는데, 나한테는 10만~20만원 준다. 이러니 소장은 못 되더라도 현장서 ‘돈이나 모으고, 벌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A씨는 건설 현장서 벌어지는 도박판을 보고 자신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돈맛’을 봤지만, 애당초 건설 현장서 이뤄지는 도박판은 큰 규모가 아니었다. 게다가 도박을 해보니 자신이 재능이 있지도 않았다. 

A씨는 도박에 빠져 일이 끝나면 음주와 함께 도박을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냈다. 현장 소장이 돼 일찍 결혼하고 싶다는 꿈도 물거품이 됐다. 또 건설업체 현장 일 자체가 체력적으로 힘들어 일을 계속하기 위해 술을 마셨다. 문제는 과음하면 숙취로 결근이 잦아졌고 작업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때 우연히 목수 기능공이 A씨에게 필로폰을 권유했다. 필로폰은 술과 다르게 숙취가 없어 A씨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그는 단순히 필로폰을 투약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A씨에게 필로폰은 돈을 끊임없이 벌도록 해주는 통로였다. 건설 노동자에게 필로폰을 판매해 돈을 벌겠다고 마음먹었다. 필로폰은 숙취가 없어 다음 날 일에 지장이 없는 데다 작업 능률까지 높일 수 있었다.

목수 기능공을 찾아가 마약을 구하는 상선을 집요하게 캐물었던 A씨는 상선에게 마약을 댄 공급자를 찾았고 또 다른 공급자까지 찾았다. 그는 건설 노동자들에게 필로폰을 “지친 몸을 회복시키고 며칠을 야간 작업해도 끄떡없는 신비한 약”이라고 꼬드겼다.

능력에 따라
이익 받는다

다만 마약이라고 설명하진 않았지만, 건설 노동자들은 A씨가 판매하는 약이 마약인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건설 노동자들은 주말도 없고 잔업과 철야 작업이 많아 비가 와야 쉴 수 있는 형편이었다.

A씨는 “그때 건설경기가 제일 좋을 때였다. 주택 100만호 건설이라고 해서 여기저기 말뚝 박고 아파트와 빌라를 지었다. 일을 많이 하는 만큼 몸은 피곤했지만, 돈을 벌었다”며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지만, 내가 그때 마약 한 방에 10만원 받았는데 술값보다 쌌다”고 말했다.

이어 “술을 과하게 마시면 다음 날 일을 못 하니까. 그런데 필로폰 주사를 맞으면 다음 날 힘이 엄청나게 난다. 그러니 한 번 마약을 맞으면 뽕뽑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마약을 투약하고 밤새 일을 지속하면 몸이 축날 수밖에 없다. 건설 노동자들은 마약에 중독됐고, 그만큼 A씨는 돈을 쓸어모았다. 이미 수익 기반이 잡혔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때 A씨의 머리에 스친 것이 바로 다단계였고, 바로 다단계 사업을 모방한 영업전략을 구축했다.

마약 판매에 이어 다단계 사업을 하는 것은 큰 부담을 주는 일이었다. 둘 다 불법이었기 때문인데, 분명한 것은 마약 다단계가 제대로 자리만 잡으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다. 

A씨의 영업전략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을 판매자로 변화시켜 등급(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을 만들고 판매량과 소비자 모집 능력을 고려해 승급 기회와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었다. 다단계 사업은 호황이었다.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일부 건설 노동자들은 본업을 그만두고 다단계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도 생겼다.


A씨는 “나는 국내 최초로 마약을 다단계 판매에 적용했다. 원래 마약은 점조직이라 내 밑에 누가 있어도 알 수 없는데 수익률 배분에 있어 내가 100을 먹으면 다이아몬드에 70을 주고, 사파이어에겐 50을 줬다”며 “그러니 아랫사람이 더 팔려고 엄청 열심히 영업했다. 자석 장판 이런 다단계 판매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중독 후
판매자로 

이때 번 돈으로 A씨는 현장 기능사에서 주택건설 업자로 변신했다. 건설업 경영자가 마약밀매를 하는 것은, 건설 현장 기능사가 하는 것과 질적으로 달랐다. 자신의 위치가 땅에서 하늘로 올라선 셈이었다.

원래 꿈이었던 소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애당초 A씨가 그런 꿈을 가진 것은 고졸 학력에 회사 소장 정도만 가능했다고 여겨서다. 국내 건설계서 초창기 소장은 고졸 출신이 많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것도 옛말이 됐다. 이처럼 마약 밀매 사장이 되니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주택건설 업자가 된 뒤 A씨는 낡은 단독주택을 매입해 그 부지에 연립주택을 신축했다. 현장 기술과 자본력이 있었지만 대형건설 실적이 없어 대규모 아파트를 신축할 기회를 잡지 못했던 탓이다.

건설업으로 제대로 성공하면 대박이 나지만, 분양이 막힐 경우 도산의 위험도 따른다. 대부분의 건설업자들은 도산했지만, A씨는 마약 다단계로 벌어들인 자금력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A씨는 자기 삶을 보상받 듯 수입 자동차에 운전기사까지 고용했다. 밤에는 유흥주점서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시는 등 말 그대로 돈을 하늘에 뿌리고 다녔다.


그렇다고 마약 다단계가 현금이 무한정 솟아나는 화수분은 아니었다. 주택 경기가 퇴보하고 마약 다단계 자금마저 바닥이 나자 A씨는 도산했다. 바로 계속된 과소비 때문이었다.

A씨는 “원래 땅장사, 노가다, 건축업자는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신다. 그전에 룸살롱에선 맥주도 팔았는데 양주만 마셨다”며 “그것도 국산 양주 먹으면 격 떨어진다고 외국 양주만 먹었다. 팁을 주면 하루에 100~200만원 깨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단계별 승급 기회와 인센티브
상선에 또 다른 공급자 연결

이어 “주머니에 늘 돈이 있으니 아무 생각 없이 썼다. 돈을 벌려고 건설업을 했는지, 술을 먹기 위해 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때 사업한 사람들 거의 다 망했는데, 나는 마약을 판매했기 때문에 오래 버틴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주저앉을 그가 아니었다. A씨는 도산 후 마약 밀매로 재기하기 위해 상선과의 루트 재정비에 나섰다. 과거에 자신에게 마약을 공급받았던 사람들을 다시 조직해 소매 조직을 결성했고, 부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도 잠시, 부활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체포돼 4년 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A씨 다단계 조직과 지위를 노린 내부자에 의해 밀고돼 체포됐던 것이다.

A씨는 “만약 내가 초창기에 마약 판매했던 것까지 다 했으면 무기징역이 나왔을 텐데 용케 피했다. 원래 마약은 단순히 사용하는 사람이 잡히면 초범으로 집행유예를 받는데 공급자들은 형이 아주 세다”며 “판매자를 막아야 구매자들이 사라지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봐도 4년은 적당하다. 마약은 감형이나 가석방 같은 것이 전혀 없어 선고받은 대로 다 살아야 한다. 그만큼 판사와 법무부도 악질로 보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마약으로 번 돈으로 누렸던 호화로운 삶은 이제 끝났으며, A씨 인생은 교도소 내에서 재력과 권력을 가진 사형수를 만나면서 변했다. 사형수는 가족 면회도 오지도 않는 등 고독하고 불우한 사람이었다. 종교단체서 후원하는 약간의 영치금으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면서 생활했다.

A씨는 사형수에게 자신의 영치금을 털어 속옷, 책, 간식 등을 구매해 전달했다. 이 과정서 사형수를 교화하는 종교인들의 저서, 사형수의 일화, 일상을 직접 보면서 마약 판매가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깨달았다. 잠을 자기 전에는 누워서 교수대에 서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A씨는 “사형수 형님을 보면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꼈다. 나도 중국이었으면 이미 사형당했을 것이다. 이들은 단 하루의 시간이라도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면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도록 노력할 거라고 말한다. 이제는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형수로 한 달만 살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A씨는 출소 후 마약 밀매자인 것을 숨기고 일하기 위해 선원이 됐다. 선원 인력업체는 늘 인력이 부족하기에 신원을 조회하거나 과거 경력을 묻지 않고 주민등록증 하나만 보여주면 가능했다. 그는 물때를 맞추기 위해 선주의 집에 기거하며 생활했다.

그 끝은…
초라한 말로

A씨는 마약과 멀리 하기 위해, 머물던 현실과 완전히 격리된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돈만 있으면 다시 마약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망망대해 위 어부의 삶은 마약 밀매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A씨는 자신을 ‘마약 밀매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있는 무기수’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마약을 팔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바닷일을 하면서 느낀 건 교도소서 느낀 것과 다르지 않다.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다. 나 같은 사람에게 돈은 망하는 지름길이고, 마약 밀매 수입은 미친 돈”이라고 덧붙였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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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