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56)체제 선전 도구된 구호나무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3.11.13 13:27:14
  • 호수 14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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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정도전이란 유학자는 왕 이성계에게 전국 8도 사람들의 기질론을 만들어 바쳤다. 

심심해서 재미삼아 그런 것 같진 않으니 아마 통치하는 데 참고하려고 파악해 본 노릇일까? 그런데 수많은 사람을 한 마디씩으로 묶어 규정한 건 그닥 올바른 일이 아닌 듯싶다.

더구나 땅이 넓은 것도 아니고 손바닥만한 판인데 그걸 또 세분해 딱 고착화시킬 필요가 뭔가.

옛사람 통찰

그는 경상도를 태산교악(泰山喬嶽)이라 하고 전라도를 풍전세류(風前細柳)라고 묘사했는데, 사실상 경상도에도 전라도 같은 사람이 살고 전라도에도 경상도 같은 기질을 지닌 사람이 거주한다.


충청도에 청풍명월(淸風明月)만 있는 것도 아니며 강원도에 암하노불(岩下老佛)만 모여 있진 않다.

황해도의 석전경우(石田耕牛), 경기도 사람을 표현한 경중미인(鏡中美人) 또한 다양한 인간의 한 면만 본 것 같다. 평안도는 맹호출림(猛虎出林)이요, 이성계의 고향 땅인 함경도는 이전투구(泥田鬪狗)라고 했다.

옛날과 요즘의 뜻이 좀 달라진 경우도 있다. 진흙탕에서 이익을 위해 개싸움질한다는 이전투구는 원래 풍산개 두 마리면 호랑이도 잡는다는 강인성을 의미했단다.

아마 다른 것도 시절에 따라 바뀌었을 수 있다. 우리는 옛사람의 통찰로부터 각 도(道)의 장점만 모아 전국민적인 기질로 발전시키고 단점일랑 싸그리 내버려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의 한 지방보다 작은 땅에서 뭔 8도 기질로 나눠 가타부타하랴. 내 한 마음속에 다 들어 있다고 보는 게 훨씬 타당하리라.

통일 후의 수도를 놓고도 서울이니 평양이니 이전투구할지 모른다. 그러나 서울도 안 되고 평양도 안 된다. 제3의 좋은 땅을 골라 행정수도를 새롭게 건설하고, 서울과 평양은 옛 도읍의 아름다움을 지닌 현대인의 도시로 순화시켜야 한다.

사람의 심성은 고정불변하는 물건이 아니다.


서울과 평양의 특권을 나누어 각 지방에 넘기고 그 특색에 맞게 골고루 발전시킬 때, 통일 한국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은 반 쪼가리 불구 상태를 극복하고 보름달처럼 환히 빛날 것이다. 장담할 순 없고 아마도….

구호나무 한동안 교주 영감을 따라 양동 뒷골목을 들락거리던 피에로 씨가 어느 날 좀 상기된 얼굴로 내 방엘 들어왔다. 그는 버릇이 돼 버린 눈깜박임질을 몇 번 연속하더니 헛기침을 뱉곤 말했다.

“좋은 아이디어가 생겼는데 말씀이야.”

“뭔데요?”

“북한의 성공학에 대해 잘 연구해서 책을 한 권 내 보면 어떨까?”

“굶어 죽는 사람이 많다는데 무슨 성공학까지 있을라구요.”

“아니지. 그럴수록 살아남기 위해 무의식적으로라도 성공학을 구사하게 돼 있어. 더군다나 거기에도 나름 성공해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한번 시도해 볼 만하다구.”

“아니, 통일 대박에 관해 탐구한다더니….”

각 도 장점으로 전국민적 기질 발전
통일 이후의 수도·행정 문제 보니…

“당연히 하고 있지. 이건 서로 연결이 된다구. 북한의 잘사는 사람들을 연구한 뒤 그걸 대한민국의 성공인들과 비교해 고찰한다면 통일 대박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봐.”

“아마 그런 면도 있긴 있겠죠. 그런데 쉽지 않을 텐데요.”

“윤 여사의 카운셀링을 좀 받아야지 뭐.”


“글쎄요, 그분 같은 경우 북한에서 살기 어려워 이곳으로 탈출해 왔잖아요.”

“그래도 어쨌건 보고 들은 건 있겠지. 그리고 실패도 뒤집어서 보면 타산지석으로 참고할 점이 있잖냔 말야.”

“물론이죠. 하지만 그곳은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결정돼 버리잖아요. 집안이 좋거나 두뇌와 신체 능력이 탁월하지 않으면 그 신분을 벗어나기가 어렵다는데 무슨 보편적인 성공학이 가능하겠어요.”

“그건 우리 한국과 비슷하구만 뭐. 비슷한 것으로 대박 승부를 걸 필욘 없지. 찾아보면 아마 북한만의 성공학이 있을 거야.”

“세습 금수저들의 특별한 성공학. 제목을 그렇게 지으면 되겠네.”

“금수저 물고 나온 놈이나 영재로 선발돼 특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모두 다 성공하는 건 아니잖겠어. 그 속에도 극심한 경쟁이 있을 테고 그걸 극복해낸 자만이 진정한 성공인이 되겠지.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멋진 스토리를 꾸미면 히트 칠 것 같은데 말야.”


“글쎄요, 사람을 감동시킬 만한 요소는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윤 여사가 보내 준 탈북민 수기 파일을 읽어 보니, 부모덕이든 자기 능력으로든 경쟁을 통과해 나름 성공했다는 사람 중에서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져 죽을 뻔하다 겨우 탈출해 내려온 사람도 많더군요. 철저히 세뇌되어 체제에 복종하지 않으면 뛰어난 천재도 실패자로 전락하는 세상의 성공학은 대체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세상 바닥은 다 비슷할 텐데 뭘. 어쨌든 간에 적응자는 선택이요, 부적응자는 퇴출되는 게 우주적 법칙 아닌가 말씀이야.”

“타고난 순응형은 복종이든 아부든 쉽게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진실하게 살고 싶은 사람에겐 일종의 지옥이 아닐까 싶어 씁쓸하군요. 탁월한 영혼과 정신을 지닌 사람들에게 김일성 수령의 범상한 자손들을 신처럼 우러러보아야 한다는 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어요? 참된 학자나 예술가들에겐 정신적인 고문이겠죠. 그러니 그들은 자살하거나 낙오되고, 굽실굽실 추종하는 데 능한 자들만 살아남을 거예요. 보통 인민들도 아마 고요한 밤이면 자기 생각과 천성적인 감정이 그리워 이따금 한숨을 쉬지 않을까요?”

“어릴 때부터 뭔가 자기네 나름의 정신교육을 시켜 놓으면 대부분 잘 적응할 것 같기도 한데….”

억눌린 의식

“인간은 로봇이 아니잖아요. 아무리 철저히 교육해도, 아니 그럴수록 억눌린 잠재의식이 튀어나와 실수를 할 텐데…. 김씨 왕조에 관한 비판은 좁쌀 반쪽만큼도 허용하지 않는다잖아요. 고의든 실수든 발각되는 순간 성공적이었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고, 본인은 알몸뚱이 신세로 총살당하거나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가는 사람들에게 성공학이란 풀 끝에 맺힌 이슬의 생존법 정도밖엔 안 될 듯….”

탈북 수기에서 본 구호나무 얘기가 떠올랐다. 원래 그건 일제 강점기에 독립군들이 나무 껍질을 벗겨내어 조국 광복의 염원과 항일 투쟁의 구호를 새겨놓았던 나무이다. 그런데 1986년 김일성의 지시로 백두산 유격대가 새긴 구호나무 발굴 작업이 시작되면서 북한 체제의 선전 도구로 이용되고 있단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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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