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슈킹’ 김봉현 30억 미스터리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10.13 15:36:11
  • 호수 14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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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세탁 당했다” 감쪽같은 배달 사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임 사태’ 주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 계좌를 털린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1200억원대 횡령 혐의로 기소돼 2심서도 징역 30년형을 선고받은 김봉현 전 회장. 그의 이기심으로 한 중소기업은 파산 위기에 놓였다.

2018년 김봉현 전 회장은 수원여객운수(수원여객) 최고재무책임자(CFO) 김광우, 스타모빌리티 사내이사 김중희 등과 공모해 수원여객의 회삿돈 241억원을 빼돌렸다. 이들은 수원여객이 기업을 인수할 것처럼 허위 서류를 작성하고 인수자금을 횡령했다. 실제로 2018년 말 수원여객은 전기버스 생산 협력사 하이테크시스(하이테크)를 인수하겠다며 계약서 한 장 없이 30억원을 송금했다.

달콤한 유혹
작업 당했나

하이테크는 자동차 시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2009년부터 한국지엠의 주거래처였다. 이후 한국지엠이 경영 악화를 겪자 덩달아 18억원의 빚을 떠안게 되며 제품 생산에도 차질이 생겼다.

돌파구를 찾던 하이테크 측은 거래처를 모색하는 과정서 거래처였던 우노이앤피 사장 정모씨에게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2018년 정 사장은 하이테크 측에 “경기도의 버스 운영사 수원여객이 전기버스를 생산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는 하이테크가 수원여객의 협력사로 일할 수 있도록 중매자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였다.


2018년 10월19일, 정 사장이 하이테크 측에 전달한 이메일에 따르면 “수원여객이 전기버스 약 100대를 구매하고자 한다”며 “30~40% 물량을 지자체 특색에 맞춰 디자인 및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당사(하이테크)의 역할 및 자세한 내용은 추후 전달하겠다”고 제안했다.

수원여객은 전기버스 제작을 위해 하이테크의 자동차 제작 기술이 필요했다.

그는 “정부 산자부의 추후 계획은 (내연기관 버스를)전기 버스로 단계적인 교체를 하니 좋은 기회라 사료된다”고 덧붙였다.

이후 정 사장은 하이테크 측에 “협업을 원했던 수원여객이 하이테크를 30억원에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하이테크는 “직원들만 해고하지 않는다면 흔쾌히 인수해달라”고 했다.

인수계약을 앞둔 상황서 정 사장이 “하이테크 계좌번호를 주면 인수조건으로 30억원을 주겠다”고 하자, 하이테크 측은 그에게 계좌번호를 넘겼다.

2018년 10월26일 수원여객은 하이테크에 30억원을 입금하면서 인수계약서를 보내지 않았다. 당시 수원여객과 하이테크, 우노이앤피 정 사장이 함께 인수계약을 약속한 날이었다. 

수원여객, 하이테크 인수 시도
계약서 한 장 없이 바로 송금


하이테크 측에 따르면 수원여객 관계자는 오지 않았고, 인수계약서조차 보내지 않았다. 수원여객 측은 정 사장에게 “날짜를 다시 잡아 인수계약을 정식으로 하자”고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자 하이테크 측은 정 사장에게 “계약서도 없이 돈부터 보내는 건 껄끄럽다”며 돌려주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이에 정 사장은 “(인수금을)수원여객으로 입금하면 인수에 차질이 생긴다”며 “인수계약을 정식으로 할 때 까지 우리 회사(우노이앤피)로 입금해두면 된다”고 제안했다. 하이테크가 수원여객이 아닌 정 사장에게 30억원을 돌려준 이유다.

실제로 하이테크는 수원여객서 인수금을 받은 당일, 우노이앤피 계좌로 인수금을 반환했다. 

수원여객의 인수계약을 기다리던 하이테크는 원치 않는 답변을 받았다. 2018년 12월14일 수원여객 측은 하이테크에 40억원에 달하는 전환사채 인수계약을 제안했다. 이에 하이테크는 매각하지 않겠다고 정정했다. 

인수를 거절한 하이테크 측은 정 사장에게 전화 통화로 “수원여객에게 30억을 돌려주라”고 재촉했다. 그해 12월31일, 정 사장은 수원여객에 30억원을 돌려줬다는 은행 입출금 거래내역 등을 하이테크 측에게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2019년 1월경 수원 남부지방검찰청은 김봉현 일당이 수원여객의 자금 241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수원여객이 수원서부경찰서에 김봉현 일당과 하이테크 등 자금이 유출된 기업을 고소하면서다. 김봉현 일당이 횡령한 수원여객 자금 중 30억원이 하이테크에 인수자금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수원 남부지검과 수원여객 측 이세중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김봉현의 하이테크와의 공모 여부를 따졌다. 검찰 조사에서 하이테크는 “정 사장의 소개로 수원여객을 소개받았을 뿐, 김봉현을 알지 못했다”고 진술하면서 입증할만한 자료를 제출했다.

진술 자료를 확보한 수원 남부지검(권영배 수사관)은 2019년 2월 “(하이테크는)김봉현 일당과 관련이 없음을 확인했다. 하이테크에 입금됐던 30억원이 수원여객에 입금됐으니 걱정말라”며 “수원여객이 김광우에게 인감 및 권한대행을 맡긴 문제로 발생된 사건”이라고 수사를 종결했다.

1년 이상 소식이 없던 수원여객은 2020년 7월16일 법무법인 광장을 통해 지급명령신청서를 하이테크 측에 보냈다. 하이테크 측이 김봉현 일당과 공범으로 몰린 것이다.

돌려주니 
가로챘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김봉현과 고향 친구인 수원여객 최고재무책임자(CFO) 김광우는 2018년 10월경부터 인터넷 및 모바일뱅킹을 통해 회사의 소유 자금을 이체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이들은 2018년 10월19일부터 2019년 1월16일까지 총 26차례에 걸쳐 수원여객 우리은행 계좌에 예치된 자금 241억원을 하이테크 등에 이체하는 방식으로 횡령했다.


또 김광우는 수원여객 명의로 50억원 상당 한도대출에 신규 가입한 후 대출금을 모두 인출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유출했다. 이 과정서 김광우는 수원여객 대표에게 각종 보조금 수령 신청서 등 서류 작성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받은 법인인감도장, 사용인감도장으로 각종 서류를 위조했다.

수원여객 대표 의지와 상관없는 기업 인수 절차도 밟을 수 있었다.

김봉현 일당의 횡령 사실은 뒤늦게 포착됐다. 수원여객은 2019년 1월16일 김광우가 무단결근하자,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계좌 현황과 잔고를 확인했다. 유동자금이 고갈된 사실을 파악한 수원여객은 김광우의 자금이체 경로를 파악했다.

그 결과, 김광우가 횡령한 241억원 중 30억원이 하이테크로, 나머지는 주식회사 서원홀딩스 등 수원여객과 관련 없는 5개 회사로 이체됐다. 수원여객 자금이 김봉현이 실질적 소유주인 서원홀딩스에 흘러간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지급명령을 받은 하이테크 측은 “정 사장을 통해 수원여객에 30억원을 즉각 돌려줬는데 왜 공범이냐”며 토로했다. 함께 지급명령을 받은 우노이앤피 정 사장과 하이테크는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에 나섰다. 

당시 하이테크 측 변호인은 “김광우가 작성한 하이테크시스 등에 관한 서류들은 모두 전환사채인수계약이나 금전소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음에도 자금을 송금한 후 회계처리를 위해 사후에 작성한 것”이라며 “김광우가 김중희 스타모빌리티 사내이사에게 하이테크 법인인감도장을 만들어 하이테크 명의의 문서에 날인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검찰 조사에서 김봉현 일당은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 행사 범행을 인정했다.

앞서 하이테크의 진술과 소명자료를 통해 수원 남부지검은 “(하이테크가)김봉현 일당과의 연관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수원지방법원은 하이테크가 수원여객에 30억원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자 하이테크 측은 항소를 제기한 상황이다.

일면식 없는 
회장님 등장

지난 8월30일 판결문에 따르면, 수원지법은 하이테크가 수원여객에 3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유는 정 사장이 김봉현 일당과 수원여객을 인수해 이를 다시 매각하고 수익을 남기기로 한 계획을 세웠다고 봤기 때문이다.

2020년 5월 김봉현 일당은 수원여객을 탈취하기 위해 각종 허위 서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공소장을 통해 밝혀졌다. 고소당할 위기에 처하자 김봉현은 자금 횡령의 공범인 김광우를 지난해 1월 해외로 도피시켰다. 잠적한 김봉현은 김광우에게 거액의 도피자금을 보내주고, 다른 나라로 이동시키기 위해 전세기까지 빌렸다.

실제로 김광우는 수원여객 측의 고소장이 접수되기 직전인 2019년 1월 해외로 달아나 1년 넘게 도피행각을 벌이다가 김봉현이 경찰에 검거된 지 20여일 만인 2020년 5월 캄보디아 이민청을 통해 자수했다.

이후 김봉현은 법무법인 2곳에서 8명의 변호인단을 꾸려 대응했다. 당시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수원지검 산업기술범죄수사부(엄희준 부장)의 김봉현 공소장에는 이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이른바 ‘수원여객 탈취사건’은 김봉현과 라임 사태의 또 다른 핵심 인물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라는 것이다. 둘은 이 사건을 공모하면서 밀접한 관계로 발전했고, 라임 펀드에 모인 투자자들의 돈을 기업사냥에 활용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판결문에는 김봉현이 정 사장으로부터 전기버스 사업과 관련한 인수대상 회사로 하이테크를 소개받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김봉현은 2018년 10월경 하이테크 대표이사에게 “수원여객이 하이테크의 전환사채를 인수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송금할 예정인데, 그 돈을 정 사장에게 송금해달라”고 요구했고 김광우는 하이테크에 30억원을 입금했다.

공범 몰린 하이테크 “누군지 전혀 몰랐다”
김봉현 일당 ‘수원여객 탈취사건’ 재조명

하이테크 측은 김봉현이 사전에 지시한 대로 30억원을 우노이앤피 계좌로 전달했기 때문에 공범이라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현재 하이테크 측은 김봉현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그의 계획 또한 몰랐다는 입장이다. 지난 9월 항소를 제기한 하이테크는 제보를 통해 “정 사장은 자신이 아는 변호사를 소개해주면서 ‘승소할 수 있는 사건이니 변호사비’가 필요없다고 안심시켰다”고 토로했다. 

수원여객 측 이세중 변호사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하이테크가 수원여객에 30억원을 입금해야 할 필요가 있냐”고 묻자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하이테크 측의 항소심을 맡은 손수일 변호사는 <일요시사>와 한 통화서 “민사재판서 왜 하이테크가 공범으로 인식이 됐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며 “김봉현과 하이테크의 관계가 전혀 없었음에도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31일 수원여객은 김봉현 전 회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서 승소했다. 앞서 수원여객은 김봉현 등 3명에게 전체 횡령액 206억원 중 피해가 해소된 51억원을 제외한 금액 중 24억1000만원과, 범행에 가담한 하이테크 등 기업을 상대로 30억원 배상요구를 하는 등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수원지법 민사17부(맹준영 부장판사)는 수원여객이 김봉현 등 5명과 이 횡령 사건에 가담한 주식회사 2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지난 8월31일 밝혔다. 재판부는 “김봉현 등은 54억1000만원을 수원여객에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김봉현 일당은 2018년 10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수원여객 회삿돈 241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이 횡령한 회삿돈 가운데 86억원은 수원여객 계좌로 되돌아가 실제로 사라진 돈의 액수는 155억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여객이 회수한 86억원 중 30억원은 하이테크 인수자금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김봉현은 라임자산운용 관련 횡령 혐의로 기소돼 1심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김봉현 측은 “수원여객이 업무감독을 소홀히 해 횡령 사건이 일어난 것”이라며 “과실상계나 책임제한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책임제한을 인정하게 되면 가해자로 하여금 불법행위로 인한 이익을 최종적으로 보유하게 해 공평의 이념이나 신의칙을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배척했다.

“억울하다”
이상한 판결

또 일부 피고가 관련 형사사건 1심 재판서 무죄를 선고받았거나, 기소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불법행위 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횡령 행위에 공모, 가담했고 이들의 행위가 객관적으로 원고 자금 횡령 행위와 관련돼 원고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판단했다”고 판시했다.

한편 <일요시사>와 만난 하이테크 사내이사 최선옥은 “나는 하이테크시스 법인의 사내이사라는 이유로 김봉현과 공모했다는 오해를 샀다”며 “라임 사태가 터졌던 2019년경 나는 제주도서 전기차 충전소와 관련된 개인사업체를 운영했을 뿐, 전혀 김봉현을 몰랐다”고 말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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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