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그 후 1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9.18 14:01:40
  • 호수 14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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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참사는 예고하지 않고 급습하지만, 예견해 방지할 수 있다.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일어난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년이 됐다. 하지만 아직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 기구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핼러윈데이가 한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이태원 참사 1주기도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다. 이태원 참사는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용산구의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와 해밀톤호텔 서편 좁은 골목 등지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며 발생한 압사사고다.

끔찍했던
압사사고

이 사고로 159명이 사망했고 196명이 부상을 입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차는 도로 상황이 원활하지 못해 최초 신고 이후 40분 이상이 지나 도착했고, 경찰의 도로 통제 후에야 구급차 진입이 원활해졌다. 이날 사고는 과밀한 핼러윈 축제 인원, 경찰‧행정당국의 안전관리와 통제 부족, 국민의 안전불감증으로 발생한 사고지만, 사고 징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우선 이태원 뒷골목은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엔 항상 사람이 많았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구간에서는 정체가 길어진 적도 있다. 게다가 이전부터 클럽들이 즐비해 택시가 잡히지 않고 차가 막히는 구간으로 유명했다. 또 사고 당일에는 오후부터 차량이 통제되지 않았고, 인파가 몰려들어 수많은 사람이 위험을 감지했다.

사고 발생 직전까지 경찰이 공개한 112 신고만 11건이었다. 신고 내용은 모두 압사사고에 대한 우려였는데, 경찰은 사건을 종결시켰다. 심지어 관할 경찰서인 용산경찰서 이태원파출소가 사고 지점 바로 건너편에 있었는데도 대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월6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서 열린 ‘이태원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날 문 교수는 “시스템, 법에 다중 인파 밀집을 재난 유형으로 넣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잘 짜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며 “안전관리위원회, 재난안전대책본부, 긴급구조통제단이 한국 재난관리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3축”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태원 참사가 예방 불가능한 사고가 아니었으며, 이 문제를 미리 해결했다면 비극적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즉, 피해자가 운이 나빠서 사고를 당한 게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 발생한 참사라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되는 시점에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아직 독립적 조사기구도 만들어지지 않아 유가족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의결했다. 특별법은 ▲독립적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구성 ▲특별검사 수사가 필요한 경우 특검 임명을 위한 국회 의결을 요청할 수 있는 규정 명시 ▲피해 배·보상 등의 내용을 담았다.

또 특조위는 국회의장 추천 1명, 여야 추천 각각 4명, 유가족 단체 추천 2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독립적 조사 기구 없이 흐지부지
유가족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아


반면 여당은 특조위 구성 비율 등을 문제삼으며, 이태원 참사의 성격을 단순 사고라고 주장했다. 특조위를 통한 진상조사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특조위 11명 구성을 4대7(여당 대 야당)로 할 수 있게 했다.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느냐”고 물었고, 같은 당 권성동 의원은 “이태원 참사는 좁은 골목길에 인파가 몰려 난 사고로, 그 원인이 간단하다. 우리 국민은 사고에 대한 의혹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특조위가 꾸려지지 않으면,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게 된 원인 규명을 명확하게 할 수 없다. 이 경우,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국내 대형 참사로는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침몰 사고가 있다. 지난 2014년 4월16일 인천서 제주로 오가는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서 침몰해 승객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영구 실종된 대형 참사다.

특히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탑승해 학생 250명, 교사 11명이 사망했다. 일반인 사망자는 43명으로, 학생 75명, 교사 3명, 일반인 94명의 총 172명이 구조됐다.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던 만큼 당시 사회적 충격이 엄청났다. 단원고가 있는 경기도 안산시와 사고 해역이 있는 전라남도 진도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희생자의 영정을 안고 도보 행진을 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박근혜정부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만들었지만, 유가족들은 이 시행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족협의회와 대책위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자고 특별법을 만들었으나 정부의 시행령으로는 진상조사가 불가능하다. 정부는 이를 철회하고 특별조사위원회가 제출한 시행령을 공포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정부를 향해 “유가족과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아는 정부가 배‧보상 액수가 얼마니 하며 돈으로만 대답하고 있다. 죽음 앞에 돈 흔드는 모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결국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이 과정 중 정부, 유가족, 시민단체가 끊임없이 언성을 높였지만, 과정이 어떻든 간에, 결국 조사기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유가족이 요청해야만 조사기구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반대로 유가족이 요청하지 않으면 조사기구가 만들어지지 않고 사고는 유야무야 끝날 확률이 높다.

반복되는 
후천적 인재

물론 모든 분야가 이런 것은 아니다. 항공·철도·도로 분야의 대형 교통사고를 중심으로 조사하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있다. 이곳은 항공·철도 사고 등의 원인 규명과 예방을 위한 사고 조사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국토교통부 소속기관이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대표적으로 ▲2013년 대구역 3중 충돌사고 ▲2014년 7월 태백선 누리로 충돌사고의 사고 원인 분석과 예방에 힘썼다.


한국철도공사는 ‘2022 철도안전관리 수준 평가’서 낮은 등급을 받았다. 지난 5월에는 경북 영천시 중앙선 북영천역 근처를 지나던 화물열차 1량이 궤도를 이탈하는 사고가 났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포항과 태화강 등지서 동대구역을 오가는 대구선 무궁화호 열차 10여편이 운행이 중단돼 승객들은 열차 이용에 불편을 겪었다.

이때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사고 원인 규명을 했다.

반복되고 있는 후천적 인재 참사를 막기 위해서 시민단체는 입을 모아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먼저 생명안전기본법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피해를 최소화하고 수습 과정서 인권을 보호하는 것 ▲사고의 원인과 문제점 조사 ▲유사 문제의 재발 방지 ▲안전영향평가제도 ▲시민참여 ▲추모와 공동체 회복 등을 위한 목적이 있다.

이 법은 세월호 사건을 기점으로 2015년 논의되기 시작했고, 2020년 11월 국회서 발의됐다. 생명안전기본법에는 사고가 발생한 후 독립 조사기구 설치 등에 관한 규정이 들어 있다. 지금도 사고가 발생하면 경찰이 수사하고 재판을 진행해도 구조적인 원인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용균재단 등 46개 재난·참사 피해자 단체와 종교·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지난 5월31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 동행’ 발족 기자회견을 열었다.


159명 사망 196명 부상
“개인의 불운이 아니다”

이날 발족식에는 대구 지하철 참사·스텔라데이지호 참사·세월호 참사·가습기살균제 참사·이태원 참사·삼풍백화점 생존자, 한익스프레스 참사 가족, 고 이한빛 PD 어머니, 경동건설 산재가족, 고교실습생 산재 가족, 청년건설이용 노동자 김태규씨 가족, 쿠팡 코로나 피해 가족, 어린이 교통안전 피해 가족 등 참사 피해 가족을 비롯해, 김훈 작가, 어린이, 장애인, 시민, 종교인 등이 참석해 발언했다.

이들은 “현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비롯한 안전관련법령들은 안전과 재난관리를 위한 행정체계와 기능을 주로 규정하고 있다. 안전 문제를 국가의 관리 대상으로 삼았을 뿐 국민과 피해자의 생명과 인권문제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후진적인 대형 재난과 일터에서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 이후 끊임없는 재난과 산재, 억울한 희생을 막고자 생명안전기본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2020년 11월13일 국회에 발의된 이후 2년6개월째 법안은 심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재난·참사 피해 가족들과 시민사회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발족식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김훈 작가는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해 생명안전을 정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국민이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법 청원도 진행 중이다. 지난달 29일부터 시작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에 관한 입법 청원이 진행 중이다. 청원 기간은 오는 28일까지다. 청원자는 김순길 4·16연대 사무처장이다.

김 사무처장은 “시민의 관점서 안전 시스템을 제대로 마련하려면 생명과 안전이 이윤보다 중요하다는 가치가 형성돼야 한다. 피해자 권리와 함께 독립 조사기구 설치와 안전에 대한 국가와 기업 책무 등을 규정한 기본법 제정으로 생명 존중 안전 사회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관련 업계 전문가는 “참사의 원인을 알아야 재발 방지 대책도 가능하다. 참사의 원인을 안다는 것은 누가 어떤 법률적 잘못을 저질렀는지 파악하는 것만이 아니다. 수사는 누가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원인 알아야 
방지 대책도

이 관계자는 “당자사들이 구조적 원인을 밝힐 순 없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많은 이들이 구조요청을 보냈지만, 경찰과 소방관이 바로 출동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는, 왜 그들이 구조요청을 위험신호로 인식하지 못했는가가 더 중요하다”며 “그래서 구조적 원인을 밝히는 독립적인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하고, 생명안전기본법에 독립적 진상조사기구를 담고 있다. 참사를 개인의 불운이나 어쩔 수 없는 재난으로 간주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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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