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그 후 1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9.18 14:01:40
  • 호수 14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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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참사는 예고하지 않고 급습하지만, 예견해 방지할 수 있다.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일어난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년이 됐다. 하지만 아직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 기구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핼러윈데이가 한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이태원 참사 1주기도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다. 이태원 참사는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용산구의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와 해밀톤호텔 서편 좁은 골목 등지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며 발생한 압사사고다.

끔찍했던
압사사고

이 사고로 159명이 사망했고 196명이 부상을 입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차는 도로 상황이 원활하지 못해 최초 신고 이후 40분 이상이 지나 도착했고, 경찰의 도로 통제 후에야 구급차 진입이 원활해졌다. 이날 사고는 과밀한 핼러윈 축제 인원, 경찰‧행정당국의 안전관리와 통제 부족, 국민의 안전불감증으로 발생한 사고지만, 사고 징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우선 이태원 뒷골목은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엔 항상 사람이 많았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구간에서는 정체가 길어진 적도 있다. 게다가 이전부터 클럽들이 즐비해 택시가 잡히지 않고 차가 막히는 구간으로 유명했다. 또 사고 당일에는 오후부터 차량이 통제되지 않았고, 인파가 몰려들어 수많은 사람이 위험을 감지했다.

사고 발생 직전까지 경찰이 공개한 112 신고만 11건이었다. 신고 내용은 모두 압사사고에 대한 우려였는데, 경찰은 사건을 종결시켰다. 심지어 관할 경찰서인 용산경찰서 이태원파출소가 사고 지점 바로 건너편에 있었는데도 대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월6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서 열린 ‘이태원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날 문 교수는 “시스템, 법에 다중 인파 밀집을 재난 유형으로 넣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잘 짜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며 “안전관리위원회, 재난안전대책본부, 긴급구조통제단이 한국 재난관리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3축”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태원 참사가 예방 불가능한 사고가 아니었으며, 이 문제를 미리 해결했다면 비극적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즉, 피해자가 운이 나빠서 사고를 당한 게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 발생한 참사라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되는 시점에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아직 독립적 조사기구도 만들어지지 않아 유가족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의결했다. 특별법은 ▲독립적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구성 ▲특별검사 수사가 필요한 경우 특검 임명을 위한 국회 의결을 요청할 수 있는 규정 명시 ▲피해 배·보상 등의 내용을 담았다.

또 특조위는 국회의장 추천 1명, 여야 추천 각각 4명, 유가족 단체 추천 2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독립적 조사 기구 없이 흐지부지
유가족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아


반면 여당은 특조위 구성 비율 등을 문제삼으며, 이태원 참사의 성격을 단순 사고라고 주장했다. 특조위를 통한 진상조사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특조위 11명 구성을 4대7(여당 대 야당)로 할 수 있게 했다.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느냐”고 물었고, 같은 당 권성동 의원은 “이태원 참사는 좁은 골목길에 인파가 몰려 난 사고로, 그 원인이 간단하다. 우리 국민은 사고에 대한 의혹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특조위가 꾸려지지 않으면,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게 된 원인 규명을 명확하게 할 수 없다. 이 경우,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국내 대형 참사로는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침몰 사고가 있다. 지난 2014년 4월16일 인천서 제주로 오가는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서 침몰해 승객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영구 실종된 대형 참사다.

특히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탑승해 학생 250명, 교사 11명이 사망했다. 일반인 사망자는 43명으로, 학생 75명, 교사 3명, 일반인 94명의 총 172명이 구조됐다.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던 만큼 당시 사회적 충격이 엄청났다. 단원고가 있는 경기도 안산시와 사고 해역이 있는 전라남도 진도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희생자의 영정을 안고 도보 행진을 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박근혜정부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만들었지만, 유가족들은 이 시행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족협의회와 대책위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자고 특별법을 만들었으나 정부의 시행령으로는 진상조사가 불가능하다. 정부는 이를 철회하고 특별조사위원회가 제출한 시행령을 공포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정부를 향해 “유가족과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아는 정부가 배‧보상 액수가 얼마니 하며 돈으로만 대답하고 있다. 죽음 앞에 돈 흔드는 모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결국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이 과정 중 정부, 유가족, 시민단체가 끊임없이 언성을 높였지만, 과정이 어떻든 간에, 결국 조사기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유가족이 요청해야만 조사기구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반대로 유가족이 요청하지 않으면 조사기구가 만들어지지 않고 사고는 유야무야 끝날 확률이 높다.

반복되는 
후천적 인재

물론 모든 분야가 이런 것은 아니다. 항공·철도·도로 분야의 대형 교통사고를 중심으로 조사하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있다. 이곳은 항공·철도 사고 등의 원인 규명과 예방을 위한 사고 조사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국토교통부 소속기관이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대표적으로 ▲2013년 대구역 3중 충돌사고 ▲2014년 7월 태백선 누리로 충돌사고의 사고 원인 분석과 예방에 힘썼다.


한국철도공사는 ‘2022 철도안전관리 수준 평가’서 낮은 등급을 받았다. 지난 5월에는 경북 영천시 중앙선 북영천역 근처를 지나던 화물열차 1량이 궤도를 이탈하는 사고가 났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포항과 태화강 등지서 동대구역을 오가는 대구선 무궁화호 열차 10여편이 운행이 중단돼 승객들은 열차 이용에 불편을 겪었다.

이때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사고 원인 규명을 했다.

반복되고 있는 후천적 인재 참사를 막기 위해서 시민단체는 입을 모아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먼저 생명안전기본법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피해를 최소화하고 수습 과정서 인권을 보호하는 것 ▲사고의 원인과 문제점 조사 ▲유사 문제의 재발 방지 ▲안전영향평가제도 ▲시민참여 ▲추모와 공동체 회복 등을 위한 목적이 있다.

이 법은 세월호 사건을 기점으로 2015년 논의되기 시작했고, 2020년 11월 국회서 발의됐다. 생명안전기본법에는 사고가 발생한 후 독립 조사기구 설치 등에 관한 규정이 들어 있다. 지금도 사고가 발생하면 경찰이 수사하고 재판을 진행해도 구조적인 원인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용균재단 등 46개 재난·참사 피해자 단체와 종교·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지난 5월31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 동행’ 발족 기자회견을 열었다.


159명 사망 196명 부상
“개인의 불운이 아니다”

이날 발족식에는 대구 지하철 참사·스텔라데이지호 참사·세월호 참사·가습기살균제 참사·이태원 참사·삼풍백화점 생존자, 한익스프레스 참사 가족, 고 이한빛 PD 어머니, 경동건설 산재가족, 고교실습생 산재 가족, 청년건설이용 노동자 김태규씨 가족, 쿠팡 코로나 피해 가족, 어린이 교통안전 피해 가족 등 참사 피해 가족을 비롯해, 김훈 작가, 어린이, 장애인, 시민, 종교인 등이 참석해 발언했다.

이들은 “현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비롯한 안전관련법령들은 안전과 재난관리를 위한 행정체계와 기능을 주로 규정하고 있다. 안전 문제를 국가의 관리 대상으로 삼았을 뿐 국민과 피해자의 생명과 인권문제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후진적인 대형 재난과 일터에서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 이후 끊임없는 재난과 산재, 억울한 희생을 막고자 생명안전기본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2020년 11월13일 국회에 발의된 이후 2년6개월째 법안은 심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재난·참사 피해 가족들과 시민사회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발족식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김훈 작가는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해 생명안전을 정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국민이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법 청원도 진행 중이다. 지난달 29일부터 시작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에 관한 입법 청원이 진행 중이다. 청원 기간은 오는 28일까지다. 청원자는 김순길 4·16연대 사무처장이다.

김 사무처장은 “시민의 관점서 안전 시스템을 제대로 마련하려면 생명과 안전이 이윤보다 중요하다는 가치가 형성돼야 한다. 피해자 권리와 함께 독립 조사기구 설치와 안전에 대한 국가와 기업 책무 등을 규정한 기본법 제정으로 생명 존중 안전 사회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관련 업계 전문가는 “참사의 원인을 알아야 재발 방지 대책도 가능하다. 참사의 원인을 안다는 것은 누가 어떤 법률적 잘못을 저질렀는지 파악하는 것만이 아니다. 수사는 누가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원인 알아야 
방지 대책도

이 관계자는 “당자사들이 구조적 원인을 밝힐 순 없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많은 이들이 구조요청을 보냈지만, 경찰과 소방관이 바로 출동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는, 왜 그들이 구조요청을 위험신호로 인식하지 못했는가가 더 중요하다”며 “그래서 구조적 원인을 밝히는 독립적인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하고, 생명안전기본법에 독립적 진상조사기구를 담고 있다. 참사를 개인의 불운이나 어쩔 수 없는 재난으로 간주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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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