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그 후 1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9.18 14:01:40
  • 호수 14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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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참사는 예고하지 않고 급습하지만, 예견해 방지할 수 있다.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일어난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년이 됐다. 하지만 아직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 기구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핼러윈데이가 한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이태원 참사 1주기도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다. 이태원 참사는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용산구의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와 해밀톤호텔 서편 좁은 골목 등지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며 발생한 압사사고다.

끔찍했던
압사사고

이 사고로 159명이 사망했고 196명이 부상을 입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차는 도로 상황이 원활하지 못해 최초 신고 이후 40분 이상이 지나 도착했고, 경찰의 도로 통제 후에야 구급차 진입이 원활해졌다. 이날 사고는 과밀한 핼러윈 축제 인원, 경찰‧행정당국의 안전관리와 통제 부족, 국민의 안전불감증으로 발생한 사고지만, 사고 징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우선 이태원 뒷골목은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엔 항상 사람이 많았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구간에서는 정체가 길어진 적도 있다. 게다가 이전부터 클럽들이 즐비해 택시가 잡히지 않고 차가 막히는 구간으로 유명했다. 또 사고 당일에는 오후부터 차량이 통제되지 않았고, 인파가 몰려들어 수많은 사람이 위험을 감지했다.

사고 발생 직전까지 경찰이 공개한 112 신고만 11건이었다. 신고 내용은 모두 압사사고에 대한 우려였는데, 경찰은 사건을 종결시켰다. 심지어 관할 경찰서인 용산경찰서 이태원파출소가 사고 지점 바로 건너편에 있었는데도 대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월6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서 열린 ‘이태원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날 문 교수는 “시스템, 법에 다중 인파 밀집을 재난 유형으로 넣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잘 짜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며 “안전관리위원회, 재난안전대책본부, 긴급구조통제단이 한국 재난관리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3축”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태원 참사가 예방 불가능한 사고가 아니었으며, 이 문제를 미리 해결했다면 비극적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즉, 피해자가 운이 나빠서 사고를 당한 게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 발생한 참사라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되는 시점에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아직 독립적 조사기구도 만들어지지 않아 유가족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의결했다. 특별법은 ▲독립적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구성 ▲특별검사 수사가 필요한 경우 특검 임명을 위한 국회 의결을 요청할 수 있는 규정 명시 ▲피해 배·보상 등의 내용을 담았다.

또 특조위는 국회의장 추천 1명, 여야 추천 각각 4명, 유가족 단체 추천 2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독립적 조사 기구 없이 흐지부지
유가족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아


반면 여당은 특조위 구성 비율 등을 문제삼으며, 이태원 참사의 성격을 단순 사고라고 주장했다. 특조위를 통한 진상조사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특조위 11명 구성을 4대7(여당 대 야당)로 할 수 있게 했다.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느냐”고 물었고, 같은 당 권성동 의원은 “이태원 참사는 좁은 골목길에 인파가 몰려 난 사고로, 그 원인이 간단하다. 우리 국민은 사고에 대한 의혹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특조위가 꾸려지지 않으면,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게 된 원인 규명을 명확하게 할 수 없다. 이 경우,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국내 대형 참사로는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침몰 사고가 있다. 지난 2014년 4월16일 인천서 제주로 오가는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서 침몰해 승객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영구 실종된 대형 참사다.

특히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탑승해 학생 250명, 교사 11명이 사망했다. 일반인 사망자는 43명으로, 학생 75명, 교사 3명, 일반인 94명의 총 172명이 구조됐다.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던 만큼 당시 사회적 충격이 엄청났다. 단원고가 있는 경기도 안산시와 사고 해역이 있는 전라남도 진도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희생자의 영정을 안고 도보 행진을 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박근혜정부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만들었지만, 유가족들은 이 시행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족협의회와 대책위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자고 특별법을 만들었으나 정부의 시행령으로는 진상조사가 불가능하다. 정부는 이를 철회하고 특별조사위원회가 제출한 시행령을 공포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정부를 향해 “유가족과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아는 정부가 배‧보상 액수가 얼마니 하며 돈으로만 대답하고 있다. 죽음 앞에 돈 흔드는 모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결국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이 과정 중 정부, 유가족, 시민단체가 끊임없이 언성을 높였지만, 과정이 어떻든 간에, 결국 조사기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유가족이 요청해야만 조사기구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반대로 유가족이 요청하지 않으면 조사기구가 만들어지지 않고 사고는 유야무야 끝날 확률이 높다.

반복되는 
후천적 인재

물론 모든 분야가 이런 것은 아니다. 항공·철도·도로 분야의 대형 교통사고를 중심으로 조사하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있다. 이곳은 항공·철도 사고 등의 원인 규명과 예방을 위한 사고 조사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국토교통부 소속기관이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대표적으로 ▲2013년 대구역 3중 충돌사고 ▲2014년 7월 태백선 누리로 충돌사고의 사고 원인 분석과 예방에 힘썼다.


한국철도공사는 ‘2022 철도안전관리 수준 평가’서 낮은 등급을 받았다. 지난 5월에는 경북 영천시 중앙선 북영천역 근처를 지나던 화물열차 1량이 궤도를 이탈하는 사고가 났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포항과 태화강 등지서 동대구역을 오가는 대구선 무궁화호 열차 10여편이 운행이 중단돼 승객들은 열차 이용에 불편을 겪었다.

이때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사고 원인 규명을 했다.

반복되고 있는 후천적 인재 참사를 막기 위해서 시민단체는 입을 모아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먼저 생명안전기본법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피해를 최소화하고 수습 과정서 인권을 보호하는 것 ▲사고의 원인과 문제점 조사 ▲유사 문제의 재발 방지 ▲안전영향평가제도 ▲시민참여 ▲추모와 공동체 회복 등을 위한 목적이 있다.

이 법은 세월호 사건을 기점으로 2015년 논의되기 시작했고, 2020년 11월 국회서 발의됐다. 생명안전기본법에는 사고가 발생한 후 독립 조사기구 설치 등에 관한 규정이 들어 있다. 지금도 사고가 발생하면 경찰이 수사하고 재판을 진행해도 구조적인 원인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용균재단 등 46개 재난·참사 피해자 단체와 종교·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지난 5월31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 동행’ 발족 기자회견을 열었다.


159명 사망 196명 부상
“개인의 불운이 아니다”

이날 발족식에는 대구 지하철 참사·스텔라데이지호 참사·세월호 참사·가습기살균제 참사·이태원 참사·삼풍백화점 생존자, 한익스프레스 참사 가족, 고 이한빛 PD 어머니, 경동건설 산재가족, 고교실습생 산재 가족, 청년건설이용 노동자 김태규씨 가족, 쿠팡 코로나 피해 가족, 어린이 교통안전 피해 가족 등 참사 피해 가족을 비롯해, 김훈 작가, 어린이, 장애인, 시민, 종교인 등이 참석해 발언했다.

이들은 “현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비롯한 안전관련법령들은 안전과 재난관리를 위한 행정체계와 기능을 주로 규정하고 있다. 안전 문제를 국가의 관리 대상으로 삼았을 뿐 국민과 피해자의 생명과 인권문제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후진적인 대형 재난과 일터에서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 이후 끊임없는 재난과 산재, 억울한 희생을 막고자 생명안전기본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2020년 11월13일 국회에 발의된 이후 2년6개월째 법안은 심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재난·참사 피해 가족들과 시민사회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발족식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김훈 작가는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해 생명안전을 정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국민이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법 청원도 진행 중이다. 지난달 29일부터 시작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에 관한 입법 청원이 진행 중이다. 청원 기간은 오는 28일까지다. 청원자는 김순길 4·16연대 사무처장이다.

김 사무처장은 “시민의 관점서 안전 시스템을 제대로 마련하려면 생명과 안전이 이윤보다 중요하다는 가치가 형성돼야 한다. 피해자 권리와 함께 독립 조사기구 설치와 안전에 대한 국가와 기업 책무 등을 규정한 기본법 제정으로 생명 존중 안전 사회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관련 업계 전문가는 “참사의 원인을 알아야 재발 방지 대책도 가능하다. 참사의 원인을 안다는 것은 누가 어떤 법률적 잘못을 저질렀는지 파악하는 것만이 아니다. 수사는 누가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원인 알아야 
방지 대책도

이 관계자는 “당자사들이 구조적 원인을 밝힐 순 없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많은 이들이 구조요청을 보냈지만, 경찰과 소방관이 바로 출동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는, 왜 그들이 구조요청을 위험신호로 인식하지 못했는가가 더 중요하다”며 “그래서 구조적 원인을 밝히는 독립적인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하고, 생명안전기본법에 독립적 진상조사기구를 담고 있다. 참사를 개인의 불운이나 어쩔 수 없는 재난으로 간주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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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