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㊶통일 희망, 혼돈 속으로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3.07.17 09:09:39
  • 호수 14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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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탈북자들은 그런 짓은 하지 않고 흥이 오르는 대로 자연스레 노래 부르고 춤을 췄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 함께 어울려 어깨춤을 추었다. 주변에서 맴돌다가 청춘인지라 젊은 아가씨 쪽으로 슬슬 다가갔다. 

자석의 남극(S)과 북극(N)이 서로 끌리듯. 예로부터 남남북녀라고 하지 않았던가.

남쪽 청년이 북쪽 아가씨에 관심이 있다면 아마 북쪽 아가씨도 남쪽 청년에게 관심이 있지 않겠는가.

휴먼 드라마?

문득 난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인생에서 북한 여자와 춤추는 기회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피에로 씨가 아니었더라면…. 어쨌든 역사적인 한 순간이라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회를 어찌 놓칠 수 있으랴. 볼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아가씨에게 난 물었다. 

“혹시 통일에 대해 어찌 생각하세요?”

“글쎄요, 말만으론 안 돼요!”

“물론 그렇죠. 실행해야겠죠.”

“실행? 호호, 투쟁해야만 해요!”

“좀 진정하세요. 말만 잘해도 통일은 성큼 가까워질 수도 있어요. 현재 남과 북은 물론이고 남한 사람들끼리도 ‘통일’에 대해 서로 중구난방 헷갈리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통일이 무엇이냐! 과연 누가 알고 있을까요?”

“호호, 그렇담 한번 잘 설명해 보세요.”


“실은 나도 잘 몰라요. 그보단 우선… 남남북녀끼리 실행 투쟁적으로 통일을 이루어 보면 어떨까요?”

“엥? 보기엔 안 그런데 아주 엉큼스럽구만요.”

아가씨는 그러면서 춤추던 나긋나긋한 손길로 내 어깨를 살짝 밀쳤다. 그러고는 반달 같은 눈으로 흘겨보며 제자리로 갔다. 모두 착석한 후 다시 건배를 외치고 목을 추기는데 윤 여사가 살그머니 다가와 옆에 앉았다. 

“어떠세요, 의외로 재미가 있죠? 새로운 인연도 만나고…. 이제 안면도 트고 했으니 앞으로 자주 놀러 오세요.”

“네, 기회가 되면….”

“기회란 만들어야죠. 마침 저희에겐 큰 할일이 있어요. 좀 도와주세요.”

“어떤 일인가요?”

“물론 통일 과업이죠.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멋진 글귀를 써 주시면 돼요.”

“제가 뭘 알아야죠.”

“아이디어는 우리에게 충분히 있어요. 그걸 잘 표현해 주시는 게 작가의 임무가 아닐까요.”

“글쎄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보는데요. 요즘 남의 아이디어를 번드레하게 치장해 주는 걸로 작가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진짜 작가란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느라 고심참담할 걸요. 그리고 저는 가능하면 어떤 파당의 편에 서서 글을 쓰진 않으려고 해요.” 

선감도 수용소, 형제복지원, 몽키하우스…
남북 모두 중구난방 헷갈리고 있는 실정


“꾀까다로우시네. 그렇담 탈북민들의 체험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나요?”

“그야 물론이죠.”

“그럼 됐어요. 우리 탈북자들이 북한과 중국에서 겪은 피눈물 나는 인생담과 파란만장한 체험담이 있어요. 그걸 진실하고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로 만들어 주세요.”

“글쎄요.”

“작가도 먹고 살아야 되잖아요. 원고료는 섭섭잖게 챙겨 드리겠어요.” 

난 솔직히 마음이 동했다. 물론 원고료도 중요했으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난 원래 순수문학을 지향했지만 능력 부족 탓인지 왠지 별 흥미를 못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인연으로 특이한 삶을 겪은 한 인간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기구한 체험을 원재료로 삼아 선감도 아동 강제수용소, 형제복지원, 몽키하우스 등에 관한 소설을 썼다. 

순수와 통속이 뒤바뀌어 혼돈스런 시대에 난 두 파를 다 거부하고 오직 진실을 파헤치려 애쓰며 작업했다. 문단 파벌의 눈치도 독자 대중의 기호도 멀리한 채 묵묵히 걸어가는 마이웨이는 상쾌하고 재미있었다.

고통 또한 의미 깊은 즐거움이 되는 길…. 마지막으로 소록도 나환자 수용소를 탐찰하고 싶었으나 이미 많은 작품이 나와 있는 터라 선뜻 내키지 않았다.

탈북자 얘기 역시 흥미롭긴 하되 여러모로 알려진 상태여서 머뭇거려졌다. 

그런데 일단 원고 청탁을 받게 되니 머릿속의 물이 서서히 데워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한다. 사기꾼의 협잡질에 가장 넘어가기 쉬운 순간인 것이다.

‘누가 속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속는 셈’이라는 속담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하지만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졌다. 

우선 체험기 초고를 한번 읽어 본 후 가부간에 결정을 내리면 되잖겠는가. 만일 엉뚱한 강요를 한다면 이쪽에서도 문장으로 아이러니컬한 풍자적 장난을 쳐 주리라. 혹시 누가 알겠는가.

잘 쓰면 시대의 촉각을 건드려서 대박이 날지. 그렇진 않더라도 통일 문제 접근에 조금쯤 기여할 바가 있잖겠는가 싶었다. 

흥미로운 얘기

내가 대꾸를 하지 않자 윤 여사는 거부한다고 생각했는지 한번 더 채근해왔다. 

“만약 북한 괴뢰도당의 지령을 받는 작가나 예술가라면 이런 경우에 훨씬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으로 참여했을 거야요. 우리 자유대한의 인기 작가님께서 민족의 대의 앞에서 그자들에게 져서야 되겠어요? 부디 숭고한 정신으로 일떠서 주세요!”

“알았어요.”

난 속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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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최근 행적이 확인됐다. 지난해 탈옥에 성공한 이후 1년여 만이다. 박씨와 함께 탈옥에 성공했던 인물은 총 3명이다. 이들은 올해 초까지 말레이시아로 여러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박씨는 최근 필리핀 카비테 부근 한 시골 마을로 주거지를 옮겼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초부터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탈옥 가능성을 제기했다. 외교·수사당국은 현지 담당자가 철저하게 관리 중이라며 ‘소극 행정’으로 대처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꼴이다. 1년이 지난 현재, 박씨는 필리핀 서부 지역 한 시골 마을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못 잡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는 필리핀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에서 탈옥한 이후 올해 초까지 총 세 차례 이상 말레이시아 사바주로 밀항을 시도했다. 이들이 밀항을 시도한 곳은 필리핀 남서부 잠비앙가와 민다나오 다바오 시티다. 잠비앙가의 경우 여행경보 4단계인 흑색 경보(여행금지) 발령 지역이다.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없이 흑색 경보 지역을 방문·체류하는 경우, 여권법 제26조 등 관련 규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잠비앙가는 우리나라 국민이 여행할 수 없는 곳인 셈이다. 박씨와 송모씨 등 ‘탈옥 멤버’들은 다바오 시티에서 두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잠비앙가로 이동했다. 잠비앙가에서 술루 제도를 통해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술루 제도로 이동하던 박씨 일당들은 필리핀 반군에 억류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박씨가 밀항을 시도한 잠비앙가를 비롯해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는 이슬람 반군들이 주둔해 있다. 지난해 10월 말에도 무력 충돌이 발생해 최소 14명이 사망했다. 당시 민다나오 마긴다나오델수르주의 파갈룽간시에서 필리핀 최대 반군단체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의 두 지휘관과 수하 병력이 총기와 흉기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1970년대부터 분리주의 무장투쟁을 벌여온 MILF는 2014년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를 통해 정부가 민다나오섬에 설치한 이슬람 임시 자치정부인 ‘방사모로 과도당국(BTA)’과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지역(BARMM)’ 구성에 참여했다. 잠비앙가·민다나오서 ‘뒷돈 도주’ 시도 이슬람 반군에 억류 후 풀려나 마닐라로 MILF는 2019년 9월부터 평화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무기 반납을 시작했지만, 무장 해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여전히 총기를 보유한 MILF 병력은 수천 명 이상이다. 박씨는 반군들에게 마약 및 보이스피싱으로 벌어들인 돈 수천만원을 뇌물로 전달한 이후 풀려났다. 지난 5월 초 박씨는 송씨와 헤어진 후 필리핀 루손섬 카비테주 카비테 시티로 이동했다. 지난달 말에는 카비테 시티 외곽 한 시골 마을에 자신의 현지 부인인 A씨까지 불러 정착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그간 마닐라 타기그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에 거주했다. 현지인들은 보니파시오를 BGC 또는 글로벌 시티로 부른다.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불릴 만큼 고층 빌딩, 고급 주거지, 쇼핑 거리 등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파시오의 경우 냉장고와 에어컨 정도만 구비돼있는 콘도 한 유닛의 월세가 필리핀 돈으로 13만~15만페소(약 304만~351만원)에 달한다. 필리핀은 주차장도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주차장을 포함하면 월세도 10만원에서 15만원 정도 더 늘어나게 된다. 같은 도시에 위치한 원룸 형식의 콘도 월세도 5만5000페소(약 128만원)에 달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경찰도 관련 첩보를 파악해 현지 수사당국과 공조 중이다. 아직 정확한 집 주소나 확실한 거주지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이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 넘게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 왔다. 수억 비트코인에 차명 주택 부동산 소유 현지 부인이 조력해 “지속적 현금 조달” 특히,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 그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게 “박씨가 마닐라에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하고 있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했다. 국내 정보기관은 박씨 일당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2023년 12월과 지난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필리핀 교정당국에 박씨의 탈옥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박씨가 탈옥한 것을 두고 필리핀 교정당국은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외교부와 경찰, 법무부 국제형사과 등이 일부 파견을 가 현지에서 한국 범죄자들을 관리하는데, 공문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범죄자와 면담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저 공문만 보내는 것으로는 범죄자들의 탈옥을 막을 수 없다. 당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 잡나 박씨는 A씨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교도소의 취약점을 파악해 탈옥을 계획했다. 사전에 철저히 ‘탈옥 계획’을 구상하고 보안이 허술한 교도소에 잡혔단 뜻이다. 말레이시아로의 밀항 준비도 A씨가 현금 조달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A씨는 박씨가 교도소에서부터 환전한 수억원 이상의 비트코인을 관리해 왔다. 박씨와 같은 교도소에 있었던 한 제보자는 “환전한 비트코인 외에도 A씨가 박씨의 차명 소유 자택 부동산 등 수십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