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7000만원 ‘대리모’ 직접 구해보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7.03 11:24:57
  • 호수 1434호
  • 댓글 0개

“안 걸리면 불법 아닙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대리모 구합니다.” 대리모는 자신을 닮은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선택지다. 사정없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국내서 대리모는 엄연한 불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부담도 크다.

대리모는 문자 그대로 아이를 대신 낳아주는 여성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불임 부부라 하더라도 대리모를 통해서 아이를 낳는 것은 합법이 아닌 불법이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23조(배아의 생성에 관한 준수사항)에는 ‘누구든지 금전, 재산상의 이익 또는 그 밖의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배아나 난자 또는 정자를 제공해서 이용하거나 이를 유인해 알선하면 안 된다’고 명시돼있다. 

불임 부부 
유혹 손길

이에 따라 ▲체세포복제배아 등을 자궁에 착상시키거나 착상된 상태를 유지 또는 출산하도록 유인하거나 알선한 사람 ▲임신 외의 목적으로 배아를 생성한 사람 ▲희소·난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 목적 외의 용도로 체세포핵이식행위 또는 단성생식행위를 한 사람 등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대리모를 통해 출산한 자녀가 친생자로 등록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2018년 5월18일 서울가정법원 가사1부(재판장 이은애 수석부장판사)는 A씨(남성)가 서울 종로구청장을 상대로 낸 가족관계등록사무의 처분에 대한 불복신청 사건서 A씨의 항고를 기각하고 1심 판단을 유지했다.

2006년 8월 결혼한 A씨 부부는 자연적인 임신과 유지가 어렵자 국내 한 대학병원을 통해 대리모 출산 방식으로 아이를 갖기로 했다. 이후 2016년 7월, 해당 병원서 A씨 부부의 정자와 난자로 생성된 수정란을 착상한 대리모 B씨는 이듬해 3월 미국의 한 병원서 딸을 출산했다.


유전자 검사 결과 A씨 부부의 딸이 맞지만 당시 미국 병원이 발행한 출생증명서에는 대리모 B씨가 엄마로 기재됐다.

B씨로부터 딸을 인계받은 A씨는 같은 해 7월 종로구청에 딸의 출생신고를 하면서 출생신고서의 ‘모’란에 아내 C씨의 이름을 기재했다. 그러나 출생신고서에 기재된 모의 이름과 미국 병원이 발행한 출생증명서에 기재된 모의 이름이 일치하지 않은 것을 발견한 종로구청은 출생신고를 수리하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A씨는 소송을 냈다. A씨는 “가족관계등록법이 정한 바에 따라 출생신고서에 출생증명서를 첨부했다. 생명윤리법이 금지하는 영리 목적의 대리모 계약도 아니고, 또 부부의 수정란을 착상하는 방법에 의한 대리모는 법률상 금지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으로 이동
출산까지 모든 절차 현지서 진행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인공수정 등 과학기술 발전에 맞춰 법률상 부모를 ‘출산’이라는 자연적 사실이 아니라 유전적인 공통성 또는 수정체의 제공자와 출산모의 의사를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모자 관계는 단순히 법률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정 ▲약 40주의 임신 기간 ▲출산의 고통과 수유 등 오랜 시간을 거쳐 형성된 부분이 포함돼 있어 적서적인 유대관계 역시 ‘모성’으로서 법률상 보호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우리 민법상 부모를 결정하는 기준은 ‘모의 출산’이라는 ‘자연적 사실’이다. 수정체의 제공자를 부모로 보는 경우 여성이 출산에만 봉사하게 되거나 형성된 모성을 억제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자와 난자를 제공한 사람은 민법상 ‘입양’, 특히 친양자입양을 통해 출생자의 친생부모와 같은 지위를 가질 수 있다. 우리 민법상 부모를 결정하는 기준은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서 대리모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리모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부부의 정자와 난자가 건강해 수정은 되지만 자궁에 수정란 착상과 이후 과정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 ▲남편의 정자는 건강하나 아내의 난자가 수정되지 않는 경우 ▲지병 등으로 임식 혹은 출산이 산모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가 될 경우 ▲비혼 혹은 미혼이나 아이를 원하는 경우 ▲게이 또는 트랜스젠더 부부가 아이를 갖고 싶은 경우다.


이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외국 대리모를 찾는다. 실제로 인터넷 창에 ‘대리모’만 검색하면 대리모를 연결해주는 업체들이 수두룩하다.

최후의 수단
외국서 구해

이들 업체는 “신장이나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경우, 암 환자, 심각한 임신 중독증, 신경정신과 질환으로 투약 중인 환자, 각종 자가면역질환, 희소 질환자는 임신이 불가능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원인 불명의 난임’”이라며 “고령으로 인한 시험관 실패도 여기에 속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혼인 연령이 높아져 보통 여성은 30대 후반서 40대 초반에 결혼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후 1~2년간 자연임신을 시도하다가 난임병원서 시험관 임신을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시험관서도 실패하면 연락을 주는 사람이 많다. 자연임신이 가능했다면 업체에 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대리모 출산을 원하는 부부는 단 한명도 없다”며 “대리모도 결국 난임치료의 한 가지 방법일 뿐이며 직업도 있다. 이들은 자궁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자궁을 제공하고 금전적 대가를 받는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대리모가 필요한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해당 사이트에는 금액과 절차도 나와 있다. 총 7회 차로 진행되며 1회 차는 한국서 동의서를 작성한다. 이때 500만원을 지불해야 하고, 2회 차는 현지에 방문해 대리모를 계약하고 정자와 난자를 채취한다. 이때 1000만원을 지불한다.

3회 차에는 대리모와 계약 후 3일 이내 500만원을 내야 하고, 4회 차에는 임신이 확정된 것을 확인한 뒤 500만원을 내야 한다. 임신 12주 차 경과 시 5차로 500만원을, 임신 24주 차가 지나면 500만원을 더 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출산 때는 현지로 재방문해야 하며 4000만원을 또 지불해야 한다. 총 드는 금액은 대략 7500만원으로 환율에 따라 금액이 달라진다.

넘치는
사기꾼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니다. 추가 금액은 ▲PGS 배아당 50만원 ▲동결보존 배아가 남아있을 경우 배아 이식 추가 시도 140만원 ▲동결보존 배아가 남아 있지 않아 이식을 못한 상태서 배아 생성 추가 시 700만원 ▲첫 방문 때 배아가 생성되지 않아 이식을 못한 상태서 배아 생성 추가 시도 시 560만원 ▲다태 임신·출산 시 500만원 ▲의학적 사유의 제왕절개 400만원 ▲자궁 외 임신 130만원 ▲임신·출산 과정 중 발생한 임신 합병증으로 수술이 필요하거나 대리모 장기의 영구적 소실 또는 기능 장애가 예상되는 경우 250만원 등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시도조차 하지 못할 금액이다. <일요시사>는 해당 업체와 상담을 시도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업체는 상담 전 결혼과 질병을 확인했다. ‘혼인 상태인 사람만 대리모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다’고 쓰여 있지만, 별 다른 서류 확인 절차는 없었다. 즉, 미혼이거나 불임 판정을 받지 않아도 대리모를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업체는 “상담, 계약, 배란을 위한 출국, 배아 생성 후 대리모 계약을 위한 출국, 임신‧출산 예정일을 맞춘 출국으로 과정이 진행된다. 만약 배아가 생성되지 않았거나 이식했는데 착상이 안 되면 이전 단계를 반복한다”며 “이 모든 과정이 한 번에 성공해 빨리 진행될 경우 1년이 걸린다. 대리모는 카자흐스탄서 만난다. 원래는 우크라이나서 했는데 너무 많이 알려져 문제가 됐다. 국가는 계속 옮기고 숨기는데, 인터넷 후기나 정보가 없는 건 우리가 통제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개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리모는 불법이 아니지만, 국가가 좋아하진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합법도 아니고 불법도 아니다. 관련 규정이 없다. 만약 불법이었으면 이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리모 지원자는 많은데 좋은 조건을 가진 대리모는 드물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좋은 조건을 가진 대리모 후보자를 선택해서 권한다”고 부연했다.

“최상 조건 여성들 준비”
1년 걸려 최소 7500만원


업체에 따르면 대리모 후보자는 나이, 체형, 인종, 출산 경험, 과거 프로그램 참여 경험 등으로 체형은 BMI 정상, 나이는 20대 중반서 후반을 가장 선호하며 가급적 러시아계 사람으로 한다. 비용이 맞지 않아 한국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모든 과정이 끝나고 대리모가 출산해도 ‘대리모 기록’은 남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업체 관계자는 “현지 병원 발행 출생기록을 갖고 현지 관공서에 출생신고 시 현지 출생증명서가 나온다. 이 증명서를 한국에 보내 구청이나 주민센터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며 “출생신고가 완료되면 아이 여권이 발급되고 그 여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들어올 수 있다. 그렇다면 외국서 출산한 자녀로 등록되는 것이다. 입양이나 대리모 사실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리모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선 부부가 카자흐스탄에 직접 가야 하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면서 진행하는 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업체는 대리모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전 대면 상담부터 받아보라고 권했으며 그 외 다른 정보는 받을 수 없었다.

불법 외에도 문제는 존재했다. 법적인 보호장치가 전혀 없어 사기를 당해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난자 매매와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아주겠다고 속여 1억7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30대 브로커가 항소심서 실형을 선고받은 적도 있다.

D씨는 2014년 10월부터 2016년 9월까지 난자를 매매하고 대리모를 알선해 아이를 낳아주겠다고 속여 피해자 6명으로부터 1억74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그는 “아파트에 대리모들이 살고 있다. 동남아 계열 대리모 4000만원, 한국인 대리모 600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피해자를 속여 난자 공여 값이나 계약금을 챙겼다. 


D씨는 또 2016년 7월 한 여성에게 미국인 불임 부부에게 난자를 제공해 대리모 역할을 해 아이를 낳아주면 50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한 뒤 계약금 300만원을 주고 난자를 불법 채취했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난자를 매매하거나 대리모를 소개해주겠다고 광고하기도 했다. D씨는 자신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다는 소망을 이용해 사기를 친 것이다.

모호한 규정
싹 손질해야

한 대리모 관련 연구 전문가는 “한국은 대리모에 관한 법정 규정이 애매하다. ‘하면 안 된다’ ‘된다’ ‘뭔가 문제가 있으면 처벌한다’ 이런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 정자나 난자 생식세포 공여에 대해서는 있지만, 대리모에 대해서는 없는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도 되는 건 아니다. 매혈이나 장기매매를 금지하고 있는 것처럼 아무리 환자의 목적이 급해도 다른 사람의 몸을 거래하는 대리모 시술은 불법이다. 그러나 가족 간이라든지, 소위 말하는 이타적 목적과 불임 부부를 돕기 위한 시술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alsw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