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길 산책 ④화순 무등산양떼목장

어린 양과 눈 맞추며 산책하는 곳

무등산양떼목장으로 오르는 안양산로에는 이미 초여름이 시작했다. 곧 다가올 뜨거운 여름엔 초록빛 나뭇잎이 여행객을 향해 바람 따라 흔들리며 환대의 손짓을 할 길이다. 도로 양옆으로 봄에는 철쭉이, 가을엔 단풍이 눈부실 만큼 들어찬다니 어느 계절에 이 길에 오른들 금세 황홀해질 게 분명하다.

방금 지나온 전남 화순군 중심 거리가 어느새 먼발치로 보일 때쯤 무등산양떼목장에 닿았다. 목장은 안양산이 화순 땅을 향해 벌린 너른 품의 시작점에 자리한다. 호남을 듬직하게 보호하고 선 무등산이 남쪽으로 줄기를 뻗어 이룬 산이 안양산이다. 차에서 내려 잠시 주변 경관을 눈에 담았다. 지역 이름 화순(和順)에 담긴 조화로움과 유순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억세지 않고 부드러워 보이는 지형이다. 수려한 산세와 양 떼의 모습이 어우러지니 유럽의 절경이 부럽지 않다.

조화로움

주차장에서 짧은 오르막길을 오르니 입구가 나왔다. 입장권은 잘 보관해야 한다. 건초먹이주기체험장에서 건초를 교환하는 쿠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다랗게 출력된 입장권에 주의 사항과 관람 코스까지 있어 팸플릿 역할도 한다. 무등산양떼목장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휴장), 입장료는 대인 7000원, 소인 6000원이다.

양 떼를 만나기 전, 초식동물 몇 종류가 사는 울타리와 축사를 볼 수 있다. ‘마테’와 ‘호른’이라고 불리는 미니당나귀, 무플론, 유산양, 돌산양, 토끼 등이다. 나른한 시간을 보내던 동물들이 여행객의 출현에 잠시 관심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제자리로 돌아간다. 울타리 너머로 몇 번 불러보다 녀석들의 느긋한 휴식을 방해할까 싶어 발걸음을 옮긴다.

축사를 지나면 무등산양떼목장의 본격 관람 코스다. 드넓은 초원을 따라 길 양옆으로 울타리가 있다. 언덕 저편에 유럽풍 집 한 채가 보이고, 그 뒤로 산이 둘러싼 풍경이다. 뾰족한 지붕과 부드러운 능선이 대조를 이룬다. 어릴 때 본 목장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의 실사 버전이 펼쳐진 순간이다. 유럽풍 집은 관리사로 쓰기 위해 지었는데 현재는 비워뒀다. 방문객이 목장 길을 따라 걷다 잠시 들러 주변을 조망하기 좋다.


관리사를 기점으로 길은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길 끝이 양 떼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장이다. 입장권을 꺼내 건초와 교환하면 된다는 얘기다. 무등산양떼목장에는 현재 양 150여 마리를 방목한다. 그중 태어난 지 1년 남짓한 양들이 건초먹이주기체험장에 있다.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기에 해당하는데, 이를 증명하듯 건초 바구니를 들고 서 있으면 당장 울타리라도 넘을 기세로 달려온다.

문을 열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양이 갑작스럽게 다가와도 겁낼 필요 없다. 순한 양이란 표현이 괜한 말이 아닌 듯, 양은 그저 바구니에 담긴 건초에 집중한다. 기운이 넘쳐도 공격성이라곤 전혀 없는 양 떼와 만남이랄까. 이때를 놓칠세라, 푹신한 털이 난 머리를 쓰다듬으면 맛나게 건초를 씹던 양이 먹이 주는 이를 쳐다본다. 양의 말간 눈빛과 시선 교환을 할 수 있는 순간이다. 어린아이도 겁내지 않고 양 떼에게 먹이 주는 체험을 곧잘 해낸다. 함께 온 자녀보다 신이 나서 양 떼에게 먹이 주는 놀이에 빠진 부모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축사를 지나면 나오는 본격적인 관람코스
정암 조광조 선생의 유배지도 가까이

체험을 마치고 나오며 무등산양떼목장의 풍광을 다시 눈으로 훑었다. 한가로이 풀을 뜯던 새끼 양이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쳐다보는가 싶더니, 이내 제 어미 꽁무니를 바짝 따라 달린다. 들판 가득한 풀잎이 바람결에 흔들린다. 사람의 성정마저 순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목장 길 산책을 마치고 남쪽으로 향했다. 화순의 유적지를 보기 위해서다. 우선 영벽정(전남문화재자료)에 들렀다. 바로 옆에 곡선을 그리며 지석천이 유유히 흐르고, 건너편에 선 연주산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수면에 반사되어 보이는 자리가 정자의 위치다. 

영벽정 위로도 올라갈 수 있는데, 오색단청으로 꾸민 실내와 기둥 사이로 보이는 경치를 번갈아 감상하는 재미가 느껴진다. 없던 여유도 영벽정 풍광이 만들어주기라도 한 듯, 잠시 옛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자리 잡고 앉아 호사를 누렸다. 연주산에 올라도 좋다. 때마침 열차가 지나가면 강물에 비친 영벽정과 화순의 넉넉한 들녘, 강물을 가로질러 달리는 기차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부지런한 여행객에게 주어지는 특혜다.

영벽정에서 정암 조광조 선생 유배지가 가깝다. 조광조는 중종 때 활약한 성리학자다.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내쫓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인재가 필요했다. 젊고 유능한 선비 조광조가 임금의 눈에 띄었다. 조광조는 국왕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뜻을 펴려 했지만, 반대파의 공격을 받아 이곳 능주면 남정리로 유배됐다. 


그는 귀양에서 풀려난다는 소식을 기다리며 항상 방문을 열어두고 지냈다고 한다. 조광조는 소원과 달리 유배 한 달 만에 사약을 받았다. 현재 이곳엔 조광조의 모습을 그려 모신 영정각, 애우당, 화순정암조광조선생적려유허비(전라남도기념물) 등이 있다.

고인돌유적

마지막 코스는 화순고인돌유적이다.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 3㎞에 고인돌 596기가 흩어져 있는 곳이다. 덮개돌 하나에 100~200t이 족히 넘는데, 처음 보는 순간 신비한 느낌마저 든다. 이 거대한 돌을 어떻게 옮겼을까 풀리지 않는 의문이 고인돌처럼 커진다. 

고인돌은 선사시대 무덤으로, 땅에 시신을 묻고 큰 돌을 얹은 형태다. 주로 권력자의 시신을 묻은 것으로 추정하는데, 고인돌 주변에서 무기와 토기, 장신구 등 유물이 발견되기도 한다. 화순고인돌유적은 괴바위지구, 관청바위지구, 달바위지구, 핑매바위지구, 감태바위지구, 대신리발굴지, 고인돌채석장 등으로 나뉜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영혼이 묻힌 곳에서 잠시 산책하며 화순 여행을 마무리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무등산양떼목장→화순 적벽→백아산하늘다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백아산하늘다리→무등산양떼목장→세량지
-둘째 날: 영벽정→정암조광조선생유배지→화순고인돌유적→운주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무등산양떼목장 www.mudeungsan-yangtte.co.kr
-화순군 문화관광 www.hwasun.go.kr/culture
-세계유산화순고인돌유적 www.dolmen.or.kr

문의 전화
-무등산양떼목장 061)375-6269
-화순군청 관광진흥과 061)379 -3501~7
-화순군청 문화예술과 세계유산팀 061)379-3515

대중교통
[기차] 용산역-광주송정역-화순역, KTX(무궁화호 환승) 하루 3~4회(08:19~17:43) 운행, 2시간45분~3시간5분 소요. 화순역에서 무등산양떼목장까지 택시 이용, 약 10㎞.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화순,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1회(16:05) 운행, 약 4시간15분 소요. 화순시외버스공용정류장에서 무등산양떼목장까지 택시 이용, 약 8㎞.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화순시외버스공용정류장 061)374-2254

자가운전
호남고속도로 송암톨게이트→제2순환도로, 5.3㎞→제2순환도로에서 우측 고속화도로, 333m→지원교차로에서 남문로 장흥·화순·보성 방면 우측 도로, 2.3㎞→국도22호선에서 화순·보성·방면 좌측 도로, 4.2㎞→교리교차로에서 화순군청·광덕지구·화순전남대병원 방면 우측 도로, 488m→교리교차로에서 화보로 화순군청·광덕지구 방면 우측 도로, 259m→교리 IC에서 서양로 교육청·화순군청·화순전남대병원 방면 좌측 도로, 1.5㎞→신기교차로에서 안양산로 만연폭포·수만리 방면 좌회전, 3.5㎞→안양산로에서 수만리·수만리1·2구·이서 방면 우측 도로, 3.3㎞→좌회전, 192m→우회전, 125m→우회전, 65m→안양산로 우회전, 1.5㎞→우회전, 11m→무등산양떼목장

숙박 정보
-화순양참사댁: 도곡면 달아실길, 070-7746-1230, https://han ok152.imweb.me
-화순스테이호텔: 화순읍 칠충로, 061)374-8844, https://stayhotelhwasun.modoo.at
-사평풍류마을오토캠핑장: 사평면 사호로, 061)373-4853, http://sapyung.kr/skin_mw2

식당 정보
-만연축산식육식당(생고기비빔밥): 화순읍 진각로, 061)374-7744
-벽오동(보리밥정식): 화순읍 안양산로, 061)373-9997
-남도명가(한우갈비탕): 능주면 능주농공길, 061)371-0085


주변 볼거리
만연산철쭉공원, 규봉암, 연둔리 숲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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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