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 광주 송암동에선 무슨 일이…

“또 다른 민간인 학살 있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탕, 탕, 탕’ 마을의 평화는 총소리에 부서졌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은 마을주민의 어깨가 총소리가 날 때마다 튀어 올랐다. 군인이 쏜 총에 옆에 서 있던 동료가 바닥으로 고꾸라진 순간 ‘삐-’ 긴 이명이 사위를 감쌌다. 1980년 5월24일 광주 송암동서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피의 도시’였다. 계엄군의 총에 스러져간 광주시민이 흘린 피,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군의 피 맺힌 목소리가 도시를 에워쌌다. 그로부터 43년이 흘렀지만 광주의 5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조훈 감독은 전남도청과 금남로를 넘어 송암동으로 눈을 돌렸다. 우리가 눈을 돌린 그곳에 또 다른 진실이 있었다.

그날 그곳

지난 8일 서울 용산CGV서 영화 <송암동>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오전 10시30분부터 시작된 시사회 객석은 언론 관계자를 비롯한 영화인, 출연 배우 등으로 가득 찼다. 1시간12분의 상영시간이 지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후 이 감독의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송암동>은 1980년 5월24일 광주 변두리의 송암동에서 일어난 일을 쫓는다. 송암동은 헬기가 날아다니고 계엄군의 발포에 가족을 잃은 시민의 절규로 가득한 전남도청 일대와는 달리 나름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은 동네를 자유롭게 활보했고 지나가는 사람의 안부를 물었다. 

평상에 앉아 있던 이들은 광주 시내에 사는 자식에게 줄 음식을 머리에 이고 지나가는 여성에게 우유를 건네고, 여성은 김치를 손수 찢어 맛을 보여준다. 이들은 잠시 뒤 벌어질 비극을 상상조차 못하는 모습이다. 아이들은 개울서 멱을 감고 전쟁놀이를 한다. 형이 사준 고무신을 신고 뛰노는 소년은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송암동 일대서 총소리가 들린다는 제보를 접한 시민군 ‘최진수’는 트럭을 타고 무기 회수를 위해 마을로 향한다. 도로가에 트럭을 세우고 잠시 주변부를 살피던 그 찰나 갑작스레 총격전이 벌어졌다. 총성에 놀란 시민군과 민간인은 혼비백산 한 채로 몸을 숨겼다.

총알이 빗발치는 아비규환의 현장서 이들은 숨을 죽인 채 시간이 가기만을 빌었다.

공수부대·전투교육사령부대 오인교전
무차별 총격에 마을 초토화·아이 사망

송암동 일대를 지나던 공수부대의 무차별 총격에 이 지역 목포방향 도로에 바리케이트를 구축하던 전투교육사령부대가 응사했다. 공수부대가 자신들을 향해 총을 쏜다고 착각해 교전을 벌인 것이다. 이 오인교전 과정서 공수부대원 9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다쳤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동료를 잃은 공수부대원이 민간인을 ‘폭도’로 규정하고 보복학살에 나선 것.

공수부대의 학살은 무자비했다. 어떤 확인 절차도 없이 총을 발포했다. 민가에 숨어 있던 시민군은 그 서슬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한다.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말도 잠시, 시민군 가운데 1명은 마당에 내려서자마자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귀를 찢을 듯한 총성에 곁에 있던 최진수는 이명에 휩싸인 채 넋을 잃었다. 


빗발치는 총알은 아이들의 몸도 꿰뚫었다. 이날 총격으로 최소 2명의 아이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 아이의 나이는 각각 11세, 12세였다. 소식을 들은 아이의 엄마와 형은 시신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공수부대는 송암동서 사망한 사람이 6명에 불과하다고 보고했다. 1989년 국회 광주 청문회서도 이 숫자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그려진 송암동의 상황은 다르다. 영화 말미에 이르면 마을주민 20여명을 논두렁에 세워놓고 한 공수부대원이 즉결처형 하듯 등 뒤에서 총을 쏴 한 사람씩 사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감독은 기자간담회서 “총을 쏜 군인이 현재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당시 상황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감독은 2020년 연출한 <광주비디오 : 사라진 4시간>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것과 달리 <송암동>은 극영화로 제작했다. 1989년 광주 청문회서 시민군 최진수씨가 증언하는 실제 상황이 삽입돼있지만 대부분은 배우가 연기하는 장면으로 구성됐다.

사진·영상 없어 증언으로 제작
조사위원 참여하면서 알게 돼

이 감독에 따르면 출연 배우의 대사와 행동은 90% 이상 당시 피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했다. 

이 감독은 기자간담회서 송암동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 사진이나 영상 등 어떤 자료도 남아있지 않아 극영화로 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에 합류하면서 송암동 사건에 대해 알게 됐다. 

이 감독은 “2020년 겨울 영화에 등장하는 당시 계엄군 대위의 제보를 받았다. 이듬해 초부터 송암동 피해자와 계엄군 등을 찾아다니며 만났고 지금도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광주에 살았던 그는 송암동 사건이 벌어질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고 한다.

사건의 전말은 몰랐지만 엄마가 인근에서 형들이 죽었으니 나가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 감독은 송암동 사건을 알리고 조사를 독려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사위 활동 기간이 3년인데 운영의 묘를 살리기 어렵다. 정치권서 많은 도움을 줘야 한다”며 “과거사 재단을 출범시키기로 했다가 정권이 바뀌며 무산된 것 같은데 학살의 진상을 밝힐 수 있게 도와주셨으면 한다”고 피력했다. 

무슨 일이?

영화 <송암동>은 송암동 사건 진상규명의 시발점이자 연장선상이다. 이 감독의 생각은 <송암동> 너머로 나아가고 있다. 민간인 20여명을 일렬로 세워놓고 총살하는 장면과 관련해 “이에 대한 조사활동이 다음 작품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영화 막바지에 짤막하게 언급된 공수부대와 전투교육사령부대의 오인교전에 대한 의혹도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군 성폭행 의혹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부녀자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정부 차원의 공식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그동안 성폭행 의혹 제기와 피해 당사자의 진술이 있었지만 정부 기구에 의해 전체 피해건수 등이 파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5·18 당시 계엄군의 집단 강간 등 성폭행 사건 51건에 대해 직권조사 등을 벌이고 있다.

2018년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 등이 조사한 17건, 광주시 보상 심의자료 26건, 자체 제보접수 8건 등이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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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