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여행 ④영암 한국트로트가요센터

지금은 트로트 전성시대!

요즘 트로트 열풍이 뜨겁다. 한때 흘러간 가요 취급을 당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전성시대라 할 만큼 사랑을 받고 있다. 예전엔 주로 중·장년층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다가, 최근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 가요’로 등극했다. 따스한 봄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떠난 발걸음, 흥겨운 가락을 따라간 곳에 한국트로트가요센터가 있다.

트로트(trot)는 미국에서 유행한 춤곡인 폭스트롯(fox trot)에서 따온 이름으로, 음악적 양식은 차이가 난다. 현재의 트로트는 일제강점기부터 굴곡진 역사와 함께 독자적인 성장을 이뤄온 우리나라 전통 가요라 할 수 있다. 전남 영암 월출산기찬랜드 안에 자리한 한국트로트가요센터는 대중음악 대표 장르인 트로트와 만나는 공간이다.

한국 트로트의 변천사

2019년에 개관했으며 최근 트로트 붐을 타고 주목받는다. 트로트 마니아에겐 꼭 한번 들러봐야 할 코스이자 ‘핫 플레이스’다. 단순한 관람에서 벗어나, 직접 선곡해 감상하고 불러보는 등 체험할 거리가 풍부하다.

1층 한국트로트역사관에 들어서면 가수 하춘화의 어릴 적 모습이 관람객을 맞는다. “노래란 것은 우리 생활에 있어서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꼭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소녀 가수의 앳된 목소리가 귓가에 쏙쏙 스며든다. 청량한 노랫소리를 뒤로하고 몇 걸음 옮기면 한국 트로트의 변천사가 펼쳐진다.

전시 공간은 아담하지만 방대한 자료가 있다.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트로트의 역사가 시대별로 전시된다. 전시 패널 뿐 아니라 터치스크린도 있어 원하는 자료를 찾기 쉽고, 당시 대표적인 노래도 즉석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나라를 빼앗긴 설움이, 1950년대에는 전쟁 후 애달픈 사연이 담긴 노래가 눈물짓게 한다.


이후 경쾌하고 빠른 리듬으로 변화를 주기 시작한 트로트는 황금기와 침체기를 겪으며 약 100년을 이어왔다. 트로트가 이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까닭은 누구나 공감하는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트로트 스타의 사진이 시대별로 걸린 명예의 전당을 지나면 과거 생활상을 재현한 추억의 골목길에 접어든다. 지금은 보기 힘든 공중전화와 쪼그리고 앉아 신나게 두드리던 오락 기계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한쪽에 음악다방을 재현한 공간도 있다. DJ에게 쪽지를 건네는 대신 테이블에 설치된 헤드폰을 착용하고 직접 선곡하면 된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음악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영암극장에서는 트로트의 변천사와 하춘화의 일대기를 상영한다. 바로 옆 영암싸-운드는 내부에 노래방 기계가 설치돼 누구나 노래 실력을 뽐낼 수 있다. 벽에 걸린 무대의상을 입고 한 곡조 뽑으면 나만의 트로트 무대가 만들어진다. 녹화 기능을 설정하면 안내 데스크에서 영상을 메일로 보내준다. 노랫말이 적힌 악보를 무료로 출력하는 코너도 있다.

영암 출신 가수 하춘화의 일대기 상영
내로라하는 트로트 스타들의 흔적도

2층은 영암 출신 가수 하춘화를 기념하는 공간이다. 반짝이는 무대의상과 신발, 수많은 음반, 각종 시상식에서 받은 트로피 등 어린 나이에 데뷔해 최근까지 60년 남짓한 노래 인생의 모든 공적이 담겨있다. 대통령에게 받은 표창과 훈장을 비롯해 팬레터도 가지런히 진열됐다. 한쪽에 지금까지 발매한 LP반과 CD, 화보, 포스터를 디지털화한 하춘화 아카이브가 있다.

하춘화의 아버지 하종오씨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딸의 재능을 알아보고 일찌감치 가수의 길을 터준 그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함께하는 지원군이었다. 하씨는 오랜 시간 모은 자료를 기증해 한국트로트가요센터 건립에 많은 도움을 줬다.

옥외로 나서면 하춘화, 남진, 김연자, 장윤정 등 내로라하는 트로트 스타의 핸드 프린팅이 있다. 좋아하는 가수의 손바닥에 자기 손을 얹고 기념사진을 남기면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영암아리랑’ ‘월출산연가’를 새긴 하춘화노래비도 눈에 띈다.


한국트로트가요센터 관람료는 어른 6000원, 청소년 4000원, 어린이 2000원이며, 50%를 영암사랑상품권으로 돌려준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월요일과 1월1일, 명절 당일은 휴관한다.

하춘화노래비 맞은편에 있는 가야금산조테마공원은 우리 민족 고유의 가락을 즐기는 곳이다. 가야금산조는 가야금을 이용한 독주곡으로, 조선 후기에 영암 출신 김창조 선생이 창시했다고 알려진다. 들릴 듯 말 듯 느린 진양조부터 시작해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등으로 넘어가며 점점 빨라진다. 연주자의 손놀림에 따라 청중은 잔잔한 호수를 건너기도 하고, 일렁이는 파도에 부딪히기도 한다.

전시 자료는 김창조 선생의 계보를 잇는 인간문화재 양승희 선생이 중국 옌볜까지 가서 얻은 악보부터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 영암군에 기증했다. 북한의 가야금, 소뿔과 순금으로 제작한 국내 유일한 화각 가야금 등 다양한 가야금도 볼 수 있다.

월출산기찬랜드 안에 영암곤충박물관도 자리한다.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곤충 표본은 물론, 살아 있는 곤충과 파충류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한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며, 곤충 표본 만들기와 금붕어 낚시 같은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해설사와 함께 박물관을 둘러보는 데 1시간 남짓 걸린다.

왕인박사유적지

영암을 나서는 길에 왕인박사유적지도 들러보자. 백제시대 학자 왕인은 일본 천황의 초청에 <논어>와 <천자문>을 가져가 한학과 문물을 전파했다. 유적지에 사당과 전시관 등 왕인 박사의 흔적이 보이는 시설물이 들어섰다. 넓은 부지에 연못과 산책로가 아름답고,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나들이 장소로 유명하다. 올해는 3월30일부터 4월2일까지 4일간 영암왕인문화축제도 열린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한국트로트가요센터→가야금산조테마공원→영암곤충박물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한국트로트가요센터→가야금산조테마공원→영암곤충박물관
-둘째 날: 구림한옥마을→왕인박사유적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영암군 문화관광 www.yeongam.go.kr/home/tour
-한국트로트가요센터 www.yeongam.go.kr/home/trot
-영암곤충박물관 http://xn--699a3bx02d1yad25aw3ac37a.com
-영암문화재단 http://yamunhwa.or.kr

문의 전화
-영암군청 문화관광과 061)470-2292
-한국트로트가요센터 061) 470-2803
-영암곤충박물관 061)471-4300, 왕인박사유적지 061)470-6643

대중교통
[버스] 서울-영암, 센트럴시티터미널서 하루 2회(09:20, 15:05) 운행, 약 4시간10분 소요. 영암여객자동차터미널서 영암터미널 정류장까지 도보 약 180m, 101번·102번 농어촌버스 이용, 기찬랜드 정류장 하차, 한국트로트가요센터까지 도보 약 330m.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영암여객자동차터미널 061)473-3355


자가운전
호남고속도로 남장성 JC에서 나주 방면 오른쪽→9.4㎞ 이동, 남광산톨게이트→1㎞ 이동, 남광산 IC에서 나주 방면 왼쪽 고속도로 출구→29㎞ 직진, 왕곡교차로에서 영암 방면 오른쪽→638m 이동, 영암 방면 좌회전→18㎞ 이동, 덕진초교사거리에서 목포 방면 우회전→3.3㎞ 이동, 회전교차로서 월출산기찬랜드 방면 직진→한국트로트가요센터

숙박 정보
-영암연희한옥펜션: 군서면 왕인로, 010-4725-3311, https://site.onda.me/122617
-월인당: 군서면 모정1길, 061)471-7675
-펜션비바체: 영암읍 천황사로, 061)473-1004, www.pensionvivace.com

식당 정보
-독천식당(갈낙탕·낙지볶음): 학산면 독천로, 061)472-4222
-한국관(한정식): 영암읍 열무정로, 061)471-0779
-월출산산장식당(황칠한방코스): 영암읍 천황사로, 061)473-4900

주변 볼거리
영암왕인문화축제: 2023년 3월30일~4월2일
왕인박사유적지·구림한옥마을 등 061)470-2347, 영암도기박물관,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 전라남도농업박물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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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