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대마 스캔들’ 배우 유아인

명연기 눈빛이 달랐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배우 유아인이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에 휩싸였다. 설상가상으로 경찰 조사 중 대마초 흡연 의혹이 더해졌다. 곧 나올 것으로 보이는 약물 검사 결과에 영화계를 넘어 유통업계의 이목까지 집중되고 있다. 유아인은 평소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그런 만큼, 마약 스캔들이 사실로 드러나면 사회 각계에 미치는 파장이 상당할 전망이다.

유아인(본명 엄홍식)의 마약 스캔들이 처음 터져 나온 건 지난 8일이다. 이날 TV조선은 “국내 정상급 남자 영화배우가 프로포폴 상습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고 단독 보도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지난 6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해당 배우를 소환 조사했다. 이는 항정신성의약품 유통 현황을 감시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수사 의뢰에 따른 것이다.

엎친 데 
덮쳤다

보도 직후 유아인의 소속사인 UAA는 입장문을 내고 해당 배우가 유아인임을 밝혔다. 의혹이 널리 퍼지기 전에 사실상 ‘자진 납세’한 모양새다. UAA는 입장문에서 “유아인이 최근 프로포폴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모든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으며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소명할 예정이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어진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유아인은 여러 병원을 돌면서 프로포폴을 상습적으로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프로포폴은 정맥에 투여하는 전신마취제의 일종이다. 하얀색 액체 형태여서 이른바 ‘우유주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른 마취제들과 달리 마취 회복이 빠르고 부작용이 적어 의료계에서 많이 활용된다. 

하지만 “프로포폴 투약 후 깨면 개운하고 잘 잤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사용 후기가 퍼지면서 오남용 위험성이 제기됐다. 특히 수면 시간이 불규칙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연예인의 직업 특성상, 이들의 상습 투약 혐의가 꾸준히 도마에 오르고 있다.


경찰은 지난 8일부터 이틀간 유아인이 드나든 서울 소재 병·의원 여러 곳을 압수수색해 의료기록을 살폈다. 아울러 지난 10일에는 유아인이 프로포폴 이외에 다른 마약을 추가 투약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찰은 유아인이 지난 5일 미국 LA에서 입국한 직후, 인천공항에서 신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속행했다. 사전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이 동원됐다. 당시 경찰은 유아인의 체모, 소변 등을 확보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약물 관련 감정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이때 건네받은 소변에서 일반 대마 양성 반응을 발견했다. 다만 당초 경찰이 수사 중이었던 프로포폴에 대해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포폴은 투약 후 며칠 이내로 체내에서 배출되므로, 소변 검사로 확인이 어렵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각종 마약류 투약 여부를 비교적 확실히 알 수 있는 모발 감정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경찰은 대마 흡입 혐의점이 발견된 만큼, 이날을 기점으로 수사 범위를 마약류 전반으로 확대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
소변 검사서 대마초 흡연 의혹 더해져

다만 유아인의 소속사 관계자는 같은 날 “아직 경찰이나 국과수로부터 대마 양성 관련 내용을 확인받은 바 없다”며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확인되는 대로 대응에 나설 계획”이라고 전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일련의 수사 과정으로 미뤄볼 때, 경찰이 이미 유아인의 추가 혐의 발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의 ‘사전작업’은 치밀했다. 귀국 현장서 잠복하다 즉각 영장을 집행했다. 이는 유아인이 해외 도피·증거인멸 등을 저지를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실제로 경찰은 유아인에게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경찰은 국과수 감정 결과가 나오는 대로 유아인을 재차 소환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지난 1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아인의 신병 처리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나온 혐의 정도로는 신병 처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피의자 1차 조사는 했고, 감정 결과가 나오면 추가로 조사하겠다”며 “이를 종합해 대상자에게 출석을 요구하고 조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경찰 측 설명에 따르면 국과수의 구체적인 감정 결과는 이달 말쯤 나올 예정이다. 

예정된 경찰 조사에서 마약 관련 혐의가 더욱 뚜렷해진다면 사회 각계에 큰 파장이 일 수 있다. 우선 유아인의 경찰 조사 소식이 전해진 이후로 가장 비상이 걸린 곳은 방송·영화계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유아인의 출연작이 상당한 탓이다. 

유아인은 2003년 농심 ‘쫄쫄면’ 광고로 데뷔한 뒤 20여년간 배우로 활동해왔다. 2010년대 초반 주목받는 충무로 유망주로 거듭난 뒤, 2010년대 중반에는 명실상부한 정상급 배우로 발돋움했다.

유아인은 2004년 성장 드라마 <반올림>에 출연하며 인기를 모았다. 이어 2006년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출연으로 스크린 데뷔도 마쳤다. 이후 그는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인지도를 쌓다가 2010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과 이듬해 개봉한 영화 <완득이>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미공개
출연작은?

데뷔 이래로 미소년 이미지가 강했던 유아인이 거친 이미지의 배역을 맡아 ‘연기 변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2014년 <밀회>, 2015년 <베테랑> <사도> <육룡이 나르샤> 등에서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목받았다. 이때부터 유아인은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각광받는 주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출연작들의 연이은 흥행과 각종 개인 수상은 덤이었다.

2010년대 후반에는 드라마, 오락 영화뿐만 아니라 <버닝> <소리도 없이> 등 예술성 짙은 영화에도 출연했다. 유아인은 <버닝>으로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당시 <버닝>을 본 해외 평단은 그의 연기력을 극찬하기도 했다.

<더 가디언>의 저명한 평론가 피터 브래드쇼는 “유아인은 (자신이 맡은)종수 역을 굉장한 연기로 선보인다”고 언급했다.


2020년대 들어서는 넷플릭스와 인연이 깊었다. 유아인은 <#살아있다> <지옥> <서울대작전> 등에 출연하면서 2020년 이후 매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에 얼굴을 비추고 있다.

이렇다 보니 넷플릭스는 이번 사태의 업계 최대 피해자로 꼽힌다. 넷플릭스는 유아인의 차기작들을 공개 라인업에 대거 넣어뒀었다. 최소한 사건의 진상이 파악될 때까지는 유아인이 출연한 작품 공개가 어렵다. 대부분 유아인이 주연급 배역으로 출연해 피해가 더욱 클 것으로 관측된다. 

영화계에 따르면 유아인은 올해 넷플릭스에서 영화 <승부>와 시리즈 <종말의 바보> 공개를 앞두고 있다. <승부>와 <종말의 바보>는 이미 촬영이 끝난 후 공개 시점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사실상 경찰의 수사 결과가 작품의 공개 시점을 결정하게 된 셈이다. 

기존 작품의 후속편 촬영 여부 역시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대표적으로 유아인이 시즌1에 출연해 흥행한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2 제작이 암초를 만났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중 촬영이 시작될 계획이었지만, 이 역시 수사 결과에 따라 계획이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로 
드러나면…

결국 넷플릭스는 라인업이 당초 계획보다 다소 부실해지면서, 당분간 구독자 동원력 약화를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 <하이파이브> 역시 개봉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강형철 감독의 복귀작인 이 영화는 유아인을 비롯해 안재홍, 라미란, 김희원, 이재인 등이 초능력자로 출연한다. 올해 극장 개봉을 목표로 현재 후반 작업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촬영은 2021년 11월부로 끝냈다.

파장은 유통업계로도 향했다. 유아인을 메인 광고모델로 내세운 브랜드가 여럿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아인과 단순한 모델-광고주 관계를 넘어 협업구조를 구축한 일부 브랜드는 사업 계획마저 수정해야 할 위기에 내몰렸다. 

브랜드들은 계약해지에 대해선 아직 신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노출되고 있던 광고들은 모두 내려둔 상황이다. 일례로 유아인을 메인 모델로 내세웠던 제약회사는 재빨리 흔적을 없앴다. 업계 특성상 약물 오남용이나 마약 문제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중국 상거래 플랫폼 및 브랜드 또한 황급히 ‘유아인 지우기’에 나섰다. 중국 정부가 마약 관련 범죄에 유독 엄격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유아인을 광고모델로 기용해 온 중국 의류업체는 관련 홍보물과 이미지 등을 당분간 사용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해당 브랜드는 유아인이 출연한 광고를 각종 상거래 플랫폼에서 모두 내렸다.

일각에선 업계가 한발 빠른 ‘손절’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이미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게 그 이유다. 실제 계약해지가 이뤄지면 이후 위약금 분쟁이 본격화될 공산이 크다. 

마약 수사로 확대 불가피?
촉각 세우는 영화·광고계

통상 광고 계약서에는 모델이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행위를 저지를 경우 광고료의 2~3배에 해당하는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간다. 이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명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계속해서 연예인 마약 논란이 불거지는 점을 고려하면, 유아인의 계약서에도 마약 관련 기준이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유아인 본인이 침묵을 이어가면서,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평소 사회 주요 이슈들에 관해 활발히 의견을 밝혀온 유아인이 자신의 의혹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다는 지적이다.

지난 11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유아인 갤러리’는 유아인의 해명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성명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글에서 “그간 각종 소신발언을 통해 사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많은 대중의 지지를 받았음에도 왜 본인의 의혹에 대해서는 이다지도 침묵하는가”라며 “자신의 직업과 삶에 대한 남다른 소신과 철학을 보여줬던 ‘인간 엄홍식’은 어디로 자취를 감췄느냐”라고 꼬집었다.

이어 “유아인은 본인의 병역 의혹이 불거졌던 2017년 소속사를 통해 ‘일부 특권층과 유명인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발생한 병역기피 사례를 지켜본 대한민국 국민들의 환멸을 저 역시 잘 알고 있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더 많은 권리와 더 나은 대우를 요구하면서도 국민으로서 가지는 의무를 저버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힌 바 있다”고 되짚었다.

그러면서 “유아인은 지금 스스로의 말을 지키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제기되고 있는 의혹에 대해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즉시 공식 입장을 통해 이를 소상히 해명하고 논란을 종식시켜주기 바란다. 그것이 본인이 주장했던 ‘유명인으로서의 의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침묵하는
소신 배우

이들은 ‘무죄추정의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점 역시 강조했다. 유아인 갤러리는 “유아인이 대중의 관심을 받고 사는 유명인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수사 과정이 일거수일투족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것이 타당한 일인가. 경찰은 ‘피의사실공표죄’라는 기본적인 형법도 지키지 않는 것인가”라며 “이미 ‘무죄추정의원칙’은 사라져버린 지 오래며 유아인을 향한 수사기관과 언론, 그리고 대중의 융단폭격은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유아인 ‘약’ 발언 뭐길래…

배우 유아인의 마약 투약 의혹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그의 과거 발언 중 ‘약’과 관련된 내용들이 하나씩 재조명되고 있다.

우선 유아인이 2015년 영화 <베테랑> 기자간담회에서 “광기 어린 연기의 비결은 약인 것 같다”며 농담한 것이 최근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이는 현장에서 유아인이 “긴장하며 봐서 그런지 해롱해롱한 기분”이라고 말하자, 동료 배우 황정민이 “약 하셨냐”고 농담한 것을 맞받는 발언이었다.

유아인은 <베테랑>에서 악역 재벌3세 ‘조태오’를 연기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극 중 조태오 역시 마약 투약 혐의를 받았다.

또 유아인이 2017년 한서희와 설전을 벌이던 중 사용한 이모티콘에도 다시 눈길이 쏠리고 있다.

당시 그는 한서희와 페미니즘 관련 논쟁을 하면서 자신의 SNS에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말라고, 그냥 이거 드시라고 떡밥. 내일 또 삭제해드린다고, 그 분노 마음껏 태우시라고 다시 전해드리는 선물”이라는 글을 올렸다.

글 말미에는 ‘알약’ 이모티콘이 붙었다.

YG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인 한씨는 빅뱅 멤버 탑과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바 있다.

누리꾼들은 유아인이 한서희의 전과를 비꼬기 위해 마약이 연상되는 해당 이모티콘을 사용한 것으로 해석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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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