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성지순례 ②문경새재도립공원과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

한류 사극 드라마의 산실

문경새재(명승)는 조선 시대 한양과 영남을 잇는 관문으로, 태종 때 만들어지고, 숙종 때 이르러 주흘관·조곡관·조령관이 완성됐다. 그만큼 문경새재는 오랜 세월 역사와 문화, 사람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이런 연유로 문경새재도립공원은 사극 드라마를 촬영하는 최고 공간이 됐고, 2000년 한국방송공사가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을 건립하면서 사극 드라마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2008년 종전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을 허물고 다시 준공해 지금 오픈세트장 배경은 조선시대다. 이곳에서 최근까지 촬영한 드라마와 영화는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킹덤〉 〈연모〉 〈옷소매 붉은 끝동〉 〈슈룹〉 등은 한류 사극 열풍을 일으키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 배경

〈옷소매 붉은 끝동〉은 지난해 서울드라마어워즈서 한류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연모〉는 한국 드라마 최초로 국제에미상을 받았다.

이 중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2019~ 2020년 시즌 1·2를 공개한 한국형 좀비 드라마 〈킹덤〉이다. 국내에서 처음 제작한 넷플릭스 드라마로, 전 세계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했다. 배우들이 쓴 갓이 인기를 끌어, 아마존을 비롯한 쇼핑몰에서 ‘갓 열풍’이 불기도 했다.

〈킹덤〉의 인기에 힘입어 문경새재와 오픈세트장을 찾는 여행자가 늘었다. 촬영지 문경새재는 드라마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생사역(좀비)이 한양으로 퍼지는 것을 막는 교두보이고, 세자 이창(주지훈 분) 일행이 한양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관문이다. 역사 속 문경새재의 역할과 같은 점이 의미심장하다.


〈킹덤〉 촬영지는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과 주흘관, 조곡관 등 문경새재도립공원 곳곳에 있다. 문경새재도립공원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주흘관은 역병이 퍼지고 생사역이 늘어나자, 영의정 조학주(류승룡 분)가 이를 막기 위해 내려오는 문경새재로 일부 표현됐다. 군사가 성곽 위에 늘어선 장면이 나오는데 이곳이 주흘관이다. 문경새재 성곽의 웅장한 모습은 고모산성의 성곽을 CG로 따서 재현했다고 한다.

주흘관을 지나면 곧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이다. 용사교를 건너 직진하면 백제궁, 왼쪽으로 양반촌과 저잣거리, 오른쪽으로 양반 가옥과 관아, 육조 거리에 이어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이 나온다. 광화문을 비롯한 경복궁 세트장은 실제 크기의 75% 정도로 규모가 큰 편이다.

광화문과 근정문을 지나면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등 경복궁 주요 전각이 고만고만한 거리에 있다.

광화문은 얼마 전 종영한 〈슈룹〉에서 중전(김혜수 분)과 계성대군(유선호 분)이 지우산을 쓰고 지나는 아름다운 장면을 촬영해 인기를 끌었다. 〈킹덤〉에서는 광화문과 궁궐 장면을 촬영한 뒤 CG를 입혀 완성했다고 한다. 〈킹덤〉 시즌1 초반 유생들을 추국하는 장면은 강녕전에서 촬영했다.

강녕전 내부는 KBS사극드라마홍보관으로, 드라마 대본과 의상을 전시한다.

넷플릭스 <킹덤>의 촬영지 문경새재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곳

관아 건물 뒤쪽에 있는 양반 가옥은 2008년 세트장을 다시 지을 때 유일하게 남은 고려 시대 건물로, 〈태조 왕건〉에 나오는 왕건의 집이다. 반대쪽 저잣거리를 지나면 고려 시대 성곽 세트가 있다. 〈킹덤〉에서 이창이 스승 안현대감(허준호 분)과 함께 생사역을 막기 위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촬영했다.


드라마에서는 상주읍성으로 나온다. 생사역들에게 쫓겨 성안으로 들어가는 긴박한 장면, 숨 가쁜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성 뒤에는 생사역들이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백성을 쫓던 작은 다리가 있다. 성루에서 내려다보는 세트장이 제법 좋다.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에서 성격이 조금 다른 공간이 백제궁이다. 조령산의 날카로운 봉우리를 배경 삼아 백제 시대 건축물로 조성했다. 특히 세트장 맨 뒤쪽에 두 건물을 잇는 백제교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오는 명소다. 사극에서 연인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 자주 등장하는데 〈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고 찾는 여행자가 많다.

〈킹덤〉 촬영지는 문경새재 2관문 조곡관으로 이어진다. 말을 타고 성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드라마 촬영지는 아니어도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많아 산책 삼아 다녀오기 적당하다. 오픈세트장에서 조곡관까지 2.7㎞로 조령원 터, 교귀정, 산불됴심비 등을 만난다.

문경새재도립공원 탐방로는 상시 개방한다(무료).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 동절기(11~2월)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1월 1일, 명절 당일 휴장), 관람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이다.

옛길박물관은 국내 유일한 길 전문 박물관이다. 괴나리봇짐과 좁쌀 책, 엽전, 짚신, 지도 등 조선 시대에 길을 떠나는 데 필요한 물건, 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박물관 2층 바닥에는 문경의 위성지도가 있어, 옛길과 현재 도로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문경단산관광모노레일은 단산(956m) 능선을 따라 설치했다. 850m에 있는 상부 승강장까지 왕복 3.6㎞를 시속 3~4㎞로 운행한다. 올라가는 데 35분, 내려오는 데 25분이 걸린다. 하지만 40°나 되는 경사를 오르는 짜릿함과 내려올 때 아찔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정상에서는 백두대간을 이루는 주흘산, 조령산, 포암산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별빛전망대, 단산과 문경돌리네습지로 가는 트레킹, 산악자전거길, 단산숲속캠핑장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문경에코랄라는 문경석탄박물관과 가은 오픈 세트장에 에코타운, 자이언트포레스트 등을 더해 문화 콘텐츠 테마파크로 업그레이드됐다.

문경에코랄라

문경석탄박물관을 둘러보고 빠져나오면 갱도를 따라 달리는 거미열차를 탈 수 있다. 타임터널을 지나면 고생대부터 석탄의 발견과 탄광 이야기, 현대 문명과 미래까지 여덟 개 테마를 만난다. 이어 은성갱도와 탄광사택촌을 둘러본다. 백두대간을 주제로 꾸민 에코타운, 아이들의 놀이 공간 자이언트포레스트도 흥미롭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문경새재도립공원(옛길박물관-주흘관-문경새재 오픈 세트장)→문경단산관광모노레일→문경에코랄라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문경새재도립공원(옛길박물관-주흘관-문경새재 오픈 세트장-조곡관)→문경단산관광모노레일
-둘째 날: 고모산성, 진남교반, 문경 토끼비리→문경에코랄라→가은아자개장터, 문경 구 가은역


관련 웹 사이트 주소
-문경문화관광 www.gbmg.go.kr/tour/main.do
-문경관광진흥공단(문경단산모노레일) www.mgtpcr.or.kr
-문경에코랄라 http://ecorala.com
-문경시청 관광진흥과 관광마케팅팀 054)550-6393
-문경새재도립공원 054)571-0709

문의 전화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 054)572-1150
-옛길박물관 054)550-8372
-문경단산관광모노레일 054)572-7273
-문경에코랄라 054)572-6854

대중교통
[버스] 서울-문경,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14회(06:30 ~20:00) 운행, 약 2시간 소요. 문경버스터미널에서 관문(문경새재)행 버스 이용, 문경새재도립공원 정류장 하차, 문경새재도립공원 입구까지 도보 약 430m. 문경새재도립공원 입구에서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 입구까지 도보 약 1.1㎞.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문경버스터미널 1666-0343 문경여객자동차(주) 054)553-2230

자가운전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 IC→남호교차로에서 문경새재 방면 좌회전, 약 4.4㎞→문경도자기박물관에서 우회전→새재교 건너 문경새재 방면 새재로 좌회전, 약 1.1㎞→문경새재도립공원→문경새재 오픈 세트장

숙박 정보
-문경새재국민여가캠핑장: 문경읍 새재1길, 054)572-3762, www.mgtpcr.or.kr(문경관광진흥공단)
-페트로 문경새재(구 라마다 문경새재): 문경읍 새재2길, 054)504-7077, www.ramadamg.com
-킹모텔: 문경읍 온천2길, 054)571-5558
-불정자연휴양림 : 문경시 불정길, 054)552-9443, www.mgtpcr.or.kr(문경관광진흥공단)
-성보촌유스호스텔: 호계면 상무로, 054)555-0001, www.sungbo.net


식당 정보
-라오미자연밥상(쇠고기버섯전골): 문경읍 새재로, 054)572-5959
-문경전통시장 상차림2호점(족살찌개): 문경읍 문희로, 054)572-5555
-하초동(약돌돼지고추장석쇠구이): 문경읍 새재로, 054)571-7977, www.hachodong.com
-옹기에한가득(약돌돼지): 호계면 상무로, 054)555-1234

주변 볼거리
문경오미자테마공원, 문경도자기박물관, 운강이강년기념관, 문경돌리네습지, 박열의사기념관, 김룡사, 대승사, 문경철로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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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