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⑱뻔뻔스러운 주인 행세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3.01.30 08:58:39
  • 호수 14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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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흥, 차라리 드러내놓고 하지 그래. 곪은 상처와 치부를 알고 나면 신체를 살리기 위해 도려내버릴 수도 있을 텐데….”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있잖아. 차츰차츰 나아지겠지.”

“흙탕물이 가라앉아 봤자 미꾸라지 몇 마리만 작당해 장난치면 곧 뿌옇게 변질될 텐데 뭘. 미국 같은 가물치는 꼬리만 살짝 쳐도 우리네 젖줄인 강물이 검붉어지고….” 

삐라를 날려라

“과장이 쫌 심하군.”


“고기 비유였지 별 과장은 아니지. 솔직히 미국이 우리나라를 위해 미군을 주둔시킬 필요가 어디 있겠어? 중국을 견제하고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술수인 걸. 만약 우리 국민이 진실을 깨달아 합심한다면 미국에 수천억 달러의 세금을 퍼줄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수천억원의 전세금을 받고 월세까지 받아야 해. 뻔뻔스러운 놈들이 남의 집 안방을 차지해 앉아선 주인인 양 기고만장하는 꼴이라니!” 

“흐흐, 너무 흥분하지 말라구. 그래봤자 양파 껍질 벗기기 흑백 논쟁일 뿐이니 말야. 그럼 혼자 양파 잘 까보슈. 난 바빠서 이만….” 

“혼자서라도 깔 건 까야지. 다이아몬드는 아니더라도 상큼한 액즙은 나오겠지 뭘.” 

사내는 씁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하숙생들 사이에선 늘 그렇듯, 거창한 문제도 어느 결에 사소하게 축소돼 사라져 버리곤 했다.

하숙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계였다.

아니, 하숙이라는 축소된 사회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어느 날, 옥탑방의 약장수 같은 점쟁이 노인네가 피에로씨와 함께 신흥 종교를 창시하려 획책하고 있었다.


물론 비밀스런 미션이었는데, 피에로씨의 가벼운 입이 문제였다. 하긴 그도 극비사업의 출발인 만큼 무척 입주둥일 조심했으나, 나한테만은 털어놓고 말았다.

아마 어두운 삶의 터널을 지나 어쨌든 새로운 꿈(몽상이겠지만)을 꾸게 된 나름의 큰 포부와 기쁨으로 인해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들 또한 그러지 않는가?

특히 그는 어려운 시절 내게 때때로 도움을 받았는데, 그걸 자기 나름대로 오해한 나머지 나를 너무 순진무구한 인간으로 판단해 버리지 않았는가 싶다.

하기야 난 뭐 그들의 ‘사업’을 방해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냥 보이는 대로 사실을 마음속 카메라 렌즈에 담을 뿐…. 

야밤 중에 피에로씨가 캔맥주 3개를 검은 비닐 봉지에 담아 들어왔다. 의외로 전작은 없는 성싶었다.

하지만 한 캔을 따서 목마른 짐승처럼 꿀꺽꿀꺽 들이켜고 나선 갑자기 열기 어린 불그스레한 눈으로 말했다. 

“인생은 참으로 다양하더구먼. 전혀 상상치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세계….”

“어떤?”

“내가 전에 강조했던 성공법은 솔직히 말해 차원이 낮아. 현실 초월적인 모토는 물론 영원하겠지만,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은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아. 그래서는 제아무리 애를 써도 성공하기가 힘들겠지. 내가 직접 눈물겹도록 체험한 바이지만….” 

“그래서요?” 

하숙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한계?
‘정치 종교’ 뉴비전 필로소피 정체는?

그는 작은 눈을 깜박거리더니 주머니 속에서 종잇조각을 꺼냈다. 


“자, 이걸 한번 보시라구. 새 시대를 열어 갈 강령이니까.” 

“훗….” 

“웃지만 말고 이 메모를 토대로 삼아서 뭔가 좀 그럴듯한 헌장을 써 달라구.” 

“….” 

“왜 그리 눈썹을 찡그려? 우리 이 사업이 잘만 되면 아우님도 무명작가를 벗어나 유명짜하게 성공할 텐데….” 

나는 종이쪽지를 펴서 천천히 훑어보았다. 


신초월통일협회 강령(초안) 
우리는 무슨 신흥종교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의 생활 방침을 내놓아 보려고 한다. 
기존 철학이나 사상에 기대지 않은 뉴비전 필로소피이며 참다운 정치 종교이다. 
우리는 모든 신을 초월한다! 
22세기 미래의 우리 현실에 맞지 않고 오히려 방해되는 기존 교회와 성당 그리고 불교 사원 따윈 모두 사갈시한다. 
그 속에 모셔 놓은 각종 가짜 신들도…. 
우리는 현실(지상)에서 필요한 신신(新神)을 모셔 옹립하고 특히 신국 통일을 위해 목숨조차 기꺼이 내놓는다. 
여대통령께서 통일대박론을 내놓은 만큼 우리도 물심양면 힘껏 도우리라! 

그 외에도 이런저런 소강령이 있었으나 나는 종이쪽지를 슬쩍 던져 밀었다.

“그만하면 괜찮구먼. 뭘 더 고쳐 달라고 하슈?”

“그래도 이 우여곡절 많은 세상에서 써 먹으려면 기름을 좀 쳐야지. 매끄럽게 하면 서로 좋지 뭘. 하핫….” 

“정말 실망스럽네요. 그동안 별 깊게 사귀진 않았다더라도, 서로 어느 만큼 가치관을 알 만은 할 텐데….” 

“뭘 그리 심각하게 말하시누. 내가 쩐두 좀 챙겨줄 테니께. 물론 나중에 잘 되면….”  

나는 맥주를 한 모금 쭉 마셨다. 생각 같아서는 쫓아 버리고 싶었으나 미소 지으며 물어보았다.

“어떤 식으로 고치란 말이쥬?”

“일단 골자만 적어논 거니까 좀 살을 붙이고 윤기를 내 제갈공명의 출사표 같은 명문을 만들어보란 얘기지 뭘.” 

“개떡 같은 출사표… 그것 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이익을 본 사람도 있겠지 뭐.” 

“어쨌든 거창스러운 출사표 따위로 사람의 참 마음 참 정신을 속이고 마취시키고 우롱해 신흥 사이비 교주 궁전을 짓는 데 가담할 생각은 없소이다.”

“신흥이라고 죄다 사이비라면 퍽 섭섭하지. 그리구 사실 우린 거창한 궁전을 지을 계획조차 없어. 그냥 여기 옥탑이면 되지 뭘.” 

“하하, 처음엔 그러다가 나중에 혀가 서서히 변질돼 개소리를 지껄이잖아요. 잘 알면서….” 

“너무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 마시게나. 좋은 씨앗은 뿌리면 고운 싹이 나잖아.” 

출사표

“흠, 몽상 속에서 잘 한번 해보세요. 그건 그렇고… 가끔씩 다니러 오는 그 영감님… 빨간 귀신 같은 그 영감님은 대체 누구예요?” 

“글쎄 뭐, 나두 잘 몰라.”

“뭘 그래요? 소문 들어 보면 이따금 함께 모여 비밀스레 속닥거린다던데….” 

“누가?”

“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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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