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⑥무지개 하숙집 노녀의 사연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2.11.01 09:02:18
  • 호수 13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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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흐흐, 헌데 그런 잘난 척하는 연놈들일수록 팝송과 샹송은 왠지 꽤 신성시하며 한 구절 반 곡조만 틀려도 부끄러워하잖아. 

자기 고조할아버지에게 바치는 성곡(聖曲)이라도 되는 듯이 말야.

흥, 그게 한국 대중가요와 같은 미국과 프랑스의 대중적 노래란 사실을 모르진 않을 텐데….

못난이 꽃

물론 곡 자체는 정말 좋은 게 많지.


다만 문젠, 우리 한국뿐 아니라 몽골 미얀마 베트남 아프리카 각지에도 제각기 아름다운 감정을 실은 노래가 많건만 우린 그저 미국 위주의 숨소리만 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흠, 괴롭군.

나도 고민을 많이 하는 문제인데…

만일 팝송과 샹송 마니아들이 그 평범하고 유치찬란한 가사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도 숭배한다면 박수나마 쳐 주겠지만…

대부분 좃도 씹도 모른 채 그 속에 무슨 대단히 신비스러운 의미가 깃든 줄 알고 몽상에 빠진단 말야.

흥, 알고 보면 같잖은 개소리의 반복에 불과한 것을….

우리 대중가요보다 수준이 더 높은 것도 아닌데 왜 천박한 싸가지들이 개폼은 다 잡고 지랄이냐구, 씨발…


당신네들, 혹시 이걸 알어?

내가 가황님을 존경하지만 할 말은 하구 산다구.

모창이란 그냥 잘 따라 부른다고 장땡이 아니야.

모방하되 내 개성을 섞어서 색다른 거울로 만들어, 오리지널 조용필 마저도 앗! 하고 엉겁결에 반성의 비명을 지르게 해야 한다구.

그래야 거울로서 서로 비추며 공존할 수 있는 거지….

흠, 여기서 비화를 하나 소개해볼까?

인생의 미스터리가 담긴 전설적인 일화…

진정 위대한 인물들은 탁월성과 더불어 평범한 보통성도 지닌 것 같아. 사실 조 가황 자체가 얼마나 평범한가!

마치 키 작은 시골 청년처럼 생기지 않았던가?

용필이라는 이름 또한 얼마나 범상하고 촌스러웠던가?

그리고 또 데뷔 출세곡인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처음 얼마나 유치찬란했던가?

아니, 이건 지어낸 헛소리가 아니라 조 가황님 스스로 토로하신 얘기란 말씀이야.


외모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열등감 콤플렉스에 시달렸지.

아무리 노력해도 꼬마 용필이라는 비웃음밖에 돌아오지 않았으니깐….

일개 모창꾼인 나하곤 달리 대학 문턱에도 못 가봤으니 구슬픔이 오죽했으랴!

흠, ‘돌아와요 부산항에’도 애초엔 가황님 취향에 맞지 않아 술 마시며 허무감에 젖은 채 연습했다잖아.

하지만 모든 달걀 속엔 노른자가 있어.

그분은 악조건을 극복하려는 피 끓는 노력으로 마침내 껍데기를 평범한 노랠 국민 애창곡으로 승화시킨 거지.


하하, 이젠 어떤가?

작달막한 체구 속엔 거인이 들어 숨쉬고, 평범한 얼굴은 만인의 희비애락을 품었으며…

촌뜨기 같은 이름조차도 한번 입속으로 불러 보는 순간 영혼을 그윽히 울리지 않느냔 말씀야.

흠, 내 말인즉슨…

주어진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이나 결점까지도 창의적으로 잘 활용하면 누구든 자신의 못난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얘기지. 으하하하핫….” 

일장연설을 뇌까리다가 탁자에 코를 박곤 쿨쿨 잠들어 버린다.

그는 어떤 꿈을 꿀까?

그의 소망은 과연 뭘까?

본인 자신도 잘 모를 텐데 누가 어찌 알랴. 

피에로 씨는 모창 가수와 좀 친한 편이었다.

당대 인기 코미디언인 ‘절뚝밤피’를 누구처럼 잘 모방해 자신도 연예계로 진출하리라는 야망을 은근슬쩍 내비치곤 하는 피에로 씨의 얘기에 의하면, 조필필의 진짜 속셈과 꿈은 유명가수를 빙자한 여자 사냥이라는 것이었다.

숫처녀를 딱 열 명만 따먹는 것.

그게 사실인지 허풍인진 모르지만, 필필은 때때로 눈길 끄는 아가씰 보면 작업을 걸어 보려 슬쩍슬쩍 시도하곤 했다.

하지만… 실적은 전무했다.

간혹 피에로 씨가 짓궂게 놀려대면, 필필은 진실한 사랑이란 영혼과 정감의 교류라고 강변했다.

처녀란 처녀막의 유무가 아니라 순수 정신의 상징이라고 덧붙였다.

피에로 씨가 킬킬 비웃어도 필필은 별 상관하지 않았다.

정신과 영혼이 서로 교류하게 되면 육체적 합궁은 곧 따라온다는 얘기였다.

창녀집, 즉 돈을 주고 육신을 매매하는 곳에 절대 출입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란다. 

둘 다 몽상적이고 망상적이었기에 현실에서는 어떤 여인에게도 왕자나 야수가 되지 못했다.

나중에 그들은 한 여자를 놓고 숙명적인 라이벌이 된다만…. 

모창 가수의 헛된 망상…뻔한 작업
강제 수용된 채 온갖 망측스러운 고초

하숙집은 많았다. 그런데 여자와 남자를 함께 받는 곳은 거의 없었다.

무지개 식당만 해도 남녀 하숙생의 비율은 8:2 정도였다.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곤 해도 특별히 고급이거나 여성 전용이 아닌 일반 하숙에서 여성은 홍일점 혹은 양념쯤으로 여겨졌다.

설령 당찬 여자가 용기내어 남녀 평등을 부르짖어 본들 어찌 고정관념을 쉬 타파하겠는가.

하숙엔 나름대로 흘러 내려온 생리가 있는 걸.

의식주가 함께 섞인 생활이랄까.

그래도 시간이 지나 적응하게 되면 큰 불편이나 마찰은 그닥 없었다.

언젠가 한번 조필필을 따라 피에로 씨가 청파동 쪽의 어느 여성 전용 하숙에 들어가 혹시 묵는 게 가능한지 물어 보았는데 단박 거부당했단다.

피에로 씨가 짐짓 계속 애걸하자, 하숙집 마담 왈 숙식비를 세 배 낸다면 특별히 전망 좋은 독방을 내줄 수 있다기에 씁쓸히 발길을 돌렸다며 킬킬 웃었다. 

무지개 하숙집엔 여자 하숙생이 세 명 있었다.

식권파가 아닌, 숙식비를 완납한 진짜 하숙생….

그 외에 특별히 하숙비를 내지 않고 상주하는 여자는 여주인의 딸과 여동생이었다. 

무남독녀 외딸은 서른을 갓 넘긴 미혼 여성이었는데, 엄마를 닮지 않아 수줍음이 많은 편이었다.

혹시 엄마의 강단성이 싫어 스스로 부드러움을 택했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분위기를 약간이나마 중화시키는 역할은 했다.

일종의 상반(相反) 미학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자신의 엄마뿐만 아니라 여타 하숙인에 대해서도 그런 묘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얼굴은 평범해도 목소리를 한번 들으면 황홀해진 나머지 인간(부모)의 작품이라기보다 천상의 예술이라고 예찬하는 자도 있었다.

옥구슬 구르는 듯하다느니 뭐니 과장스러운 옛말도 있지만, 그 목청엔 정신과 마음을 문득 순화시키고 영혼마저 울리는 고혹적인 매력이 살짝 깃든 듯싶었다.

반면 그녀의 이모, 즉 여주인의 언니는 크게 말하든 작게 얘기하든 늘 쇳소리가 섞여들었다.

그 노녀는 60세가 넘었는데도 마치 처녀인 양 굴길 좋아했다.

길게 기른 머리칼을 갈색이나 검정 혹 때로는 보라색으로 염색하곤 화장까지 진하게 한 모양새였다.

분가루가 흩날릴 만큼 허연 얼굴에 빨간 루주를 바른 채 젊은 하숙생들에게 아양을 떨었다.

처음엔 타고난 색기가 지나쳐 그런가 싶어 퍽 불쾌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조카 아가씨의 말에 따르면, 이모(노녀)는 오래 전 꽃다운 스무 살 무렵(1980년 초) 봉재공장 잔업을 겨우 마치고 돌아오다가 통행금지령 위반으로 경찰에게 붙잡혀 지옥 같은 형제복지원엘 끌려 갔단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라 불리는 그곳에 강제 수용된 채 성폭행 등 온갖 망측스러운 고초를 당한 끝에 정신이 약간 이상해졌다는 얘기였다. 

잃어버린 청춘

그래서 그런지, 늦게나마 억울히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고 싶은 희망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며 조카 아가씨는 고갤 살래살래 흔들었다.

노녀는 청년들에겐 맛난 음식을 듬뿍 가져다 주었지만, 늙수그레한 로맨스 그레이 영감들이 작업 걸려는 기색을 살짝이나마 보이면 짐짓 질색을 했다. 실상 객관적으로 보면 더 어울리는데도…. 

하지만 본인이 싫다는데 누가 어쩌겠는가.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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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