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백수오’ 참기름 명인의 두 얼굴

봉이 김선달에 홀라당 속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이번 국정감사에서 공공기관 홈쇼핑 ‘공영홈쇼핑’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자료를 꼼꼼히 살피지 않아 24억원 어치 ‘참기름 사기극’을 막지 못한 게 들통났다. 설립 취지와 반대로 중소기업 사이 양극화를 부채질한 데다 영업 이익까지 시원찮았다. 공공기관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일을 그 누가 반대하랴. 하지만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무능은 ‘죄’다.

공영홈쇼핑은 단순한 홈쇼핑 기업이 아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기타 공공기관으로서 중소기업과 농·어업인 판로 개척을 돕기 위해 설립됐다. 지분은 모기업 중소기업유통센터(이하 센터)가 50%, 농협이 45%, 수협이 5%를 나눠 가졌다.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중기부 산하
공공기업

공영홈쇼핑은 설립 목적에 따라 모든 홈쇼핑 판매상품을 국내 농·축·수산물과 중소기업 제품만으로 편성한다. 공영홈쇼핑은 2015년 개국한 이래로 5년간 줄곧 적자를 기록했다. 개국 첫해 영업손실은 200억원에 달했다. 이후 적자 액수를 줄여오면서 2019년 영업손실액은 49억원에 그쳤다.

적자 경영이 지속된 주요 원인으로는 산업과 채널 특성이 지목됐다. 홈쇼핑 자체가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하다는 점,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설립 취지에 따라 업계 최저 수준의 수수료율을 책정한 점 등이 흑자 전환에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듬해인 2020년, 공영홈쇼핑은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코로나 유행 초반 터진 ‘마스크 대란’ 직후 공적 마스크 판매처로 지정되면서다. 매출과 신규 가입 고객이 모두 큰 폭으로 뛰었다. 한 달도 채우지 못한 공적 마스크 판매 기간 사이 공영홈쇼핑에 유입된 고객 수는 150만명에 달했다.

이에 발맞춰 공영홈쇼핑은 적극적인 프로모션과 이벤트를 통해 소비자 유입을 촉진했다. 트렌드를 읽은 상품 구성을 통한 매출 신장 노력도 눈에 띄었다. 당해 공영홈쇼핑은 뜻밖의 호재와 각종 노력에 힘입어 200억원대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공영홈쇼핑의 선전은 ‘반짝 특수’로 막을 내렸다. 단 한 번의 성공으로는 그 앞뒤에 놓인 각종 논란과 의혹을 덮을 수 없었다. 공영홈쇼핑이 얽힌 여러 논란 중에서도 최근 가장 화제가 되는 건 단연 ‘가짜 참기름 사건’이다.

가짜 참기름 사건은 충청북도 충주에 위치한 한 참기름 제조업체 A사가 원산지를 속인 ‘가짜 국산’ 참기름을 팔다 덜미를 잡힌 사건이다. A사는 2020년 센터로부터 우수협력사로 선정됐고, A사 경영을 사실상 주도한 B씨는 지난해 5월 청주의 한 민간 사단법인에서 ‘한국무형문화유산 명인’에 등재된 터라 더욱 파장이 컸다.

A사는 주로 공영홈쇼핑을 통해 물건을 팔아치웠다. 모회사 센터가 참기름을 납품받으면 이를 자회사 공영홈쇼핑이 판매하는 형태였다.

지난 1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소속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은 공영홈쇼핑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공개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공영홈쇼핑은 가짜 참기름 판매 방송을 1년6개월간 총 27번 진행했고, 이를 통해 A사는 3만6000여명에게서 24억3000만원을 챙겼다.

이들의 사기 행각은 지난해 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게 발각됐다. 이후 열린 1심 재판에서 A사 대표 B씨는 징역 3년형을, 이사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을 맡은 청주지방법원 제11형사부는 “피해 해소가 상당 부분 이뤄지지 않았고, 2013년에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벌금을 받은 바 있다”며 양형 이유를 부연했다. 피고인들이 1심 결과에 불복하면서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짜 참기름’ 부실 검증에 24억원 피해
환불은 지지부진 “국감 앞두고 급히…”

<일요시사>가 입수한 1심 판결문에는 이들 일당의 원산지 조작 수법이 자세히 명시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B씨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중국·인도산 참깨 36톤에 국내산 참깨 일부를 섞어 참기름을 가공했다. 하지만 원산지 표시란에는 ‘국산 100%’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센터와 소비자를 동시에 속였던 이들은 문서 위조까지 감행했다. B씨는 국산 참깨를 입고·사용한 적이 없음에도 원료 수불 대장에는 관련 코드를 명시했다. 수사 포위망이 좁혀지자 여러 은행의 입출금 거래내역을 위조해 수사당국에 제출하기도 했다. 

겉보기에는 공영홈쇼핑 역시 A사와 B씨에 속은 피해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차츰 드러난 실상은 달랐다. 공영홈쇼핑이 제품을 부실 검증했고, 이로 인해 피해를 사전 방지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공영홈쇼핑 품질보증(QA) 기준서에는 원산지 증명서가 필요 서류로 기재돼있다. 이는 관련 평가항목 중 가장 큰 배점이 부여된 요소로, 서류 내 필수 기재 내용을 모두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조사 결과 공영홈쇼핑은 A사가 제출한 서류 중 일부에 필수 기재 사항이 누락된 점을 알지 못했다. 방송 판매 직전, 담당 직원은 현장 실사를 진행하고도 관련 항목에 만점을 부여했다. 제조사에 이어 공영홈쇼핑으로 비난의 화살이 향하는 배경이다.

아울러 공영홈쇼핑은 지지부진한 소비자 보상으로 빈축을 샀다. 공영홈쇼핑은 사건 적발 직후 환불 요청 고객에 한해 즉각 환불을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구매자의 대부분은 아직 환불받지 못했다. 공영홈쇼핑 측이 재판 결과를 보고 보상 범위를 정하기로 입장을 선회했기 때문이다.

한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공영홈쇼핑 측은 지난달 ‘조건 없이 전액 환불’이라는 방침을 확정하고 관련 절차를 개시했다. 공영홈쇼핑은 지난달 말 자체 홈페이지에 환불 사실을 공지했고, 최근에 들어서야 구매자에게 메일·문자메시지 고지를 끝낸 것으로 파악됐다. 

부실 검증
피해 확산

뒤늦은 공지로 환불 절차 마무리는 계속해서 늦어지고 있다. 공영홈쇼핑은 지난 11일까지 판매 고객 중 7505명에게 5억4400만원을 환불했다. 전체 피해 규모에 비하면 약 20%에 불과하다. 

한 의원은 공영홈쇼핑이 환불 과정을 질질 끈 것에 의도성이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사건이 터지고 난 뒤 환불을 빨리 진행했어야 하는데, 재판 결과를 보겠다며 (환불을)미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런데 재판 결과 B씨가 구속됐는데도 늑장을 부리다 지난달 절차를 밟았다. 국감을 앞두고 급하게 진행된 것 아니냐”며 “(환불)접수 기간도 이달 말까지로 굉장히 짧다. 피해자 전체가 환불받지 못하게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영홈쇼핑의 가짜 참기름 사건은 2015년 터진 ‘백수오 파동’과 여러모로 유사하다. 당시 백수오는 여성 갱년기 증상 완화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다. 일약 ‘백수오 붐’이 일자, 건강기능식품 업계는 앞다퉈 관련 제품을 만들었다. 이는 홈쇼핑을 중심으로 널리 판매됐다.

그런데 시중에 판매된 백수오 관련 제품들이 알고 보니 백수오가 아닌 이엽우피소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사회적 파장이 크게 일었다. 

백수오와 이엽우피소는 같은 속에 속하는 친척관계지만, 엄연히 다른 종이다. 더군다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 달랐다. 백수오는 당시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어도 항산화물질을 함유한 점, 동의보감에 약재로 등록된 점 등을 근거로 건강기능식품으로 생산됐다.

하지만 대한한의사협회 설명에 의하면 이엽우피소는 자체 독성으로 구토·경련 등을 유발할 수 있어 섭취에 적합하지 않다.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검사 결과, 백수오 원료 공급 70~80%를 과점 중인 업체에서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 이어진 백수오 제품 전수조사 과정에서도 이엽우피소를 함유한 제품이 무더기로 밝혀졌다. 결국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제품 환불 요구가 빗발쳤다.

그런데 오프라인 업체들이 대체로 ‘즉각 환불’ 방침을 세운 것에 반해, 홈쇼핑을 비롯한 온라인 업체들은 망설이다 뒤늦게 환불 계획을 발표했다. 그 사이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환불 지연
일부러?

조성호 공영홈쇼핑 대표는 업계에서 두 사건을 모두 겪었다. 조 대표는 백수오 파동 당시 한 민간 홈쇼핑 기업의 전무로 재직하고 있었다.

한 의원은 조 대표의 이 같은 이력을 들어 ‘환불 고의 지연 의혹’을 뒷받침했다. 한 의원은 <일요시사>에 “당시 조 대표가 전무로 있었던 민간 기업은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환불 절차를 마무리지었다”며 “그때에 비해 (대처가)너무 늦다. 고의성이 있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국감장에서도 같은 주장을 편 바 있다. 그는 지난 13일 산자위 국감장에서 “공영홈쇼핑 사장은 2015년 가짜 백수오 파동 당시 타 홈쇼핑 전무로서 즉각 환불 조치를 해준 바 있다”며 “이번 가짜 국산 참기름 판매에 대한 환불 조치가 지연된 데 따른 감사가 불가피하다”고 발언했다.

한 의원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조 대표는 이와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남기지 않았다. 

앞서 공영홈쇼핑 측은 가짜 참기름 사건에 대해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점검을 강화했다.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고 원재료·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품질보증 가이드를 더욱 관리·강화하겠다”고 전했다.

이번 국감에선 이외에도 공영홈쇼핑 운영 전반에 관한 질타가 줄을 이었다. 더불어민주당 홍정민 의원은 공영홈쇼핑이 제출한 방송 편성 현황 자료를 분석했다. 공영홈쇼핑에는 개국 직후부터 지난 8월까지 3880개 업체가 입점했다. 누적 방송 횟수는 6만2823회다.

입점 업체 중 36.8%는 방송 기회를 단 1번밖에 얻지 못했다. 반면 특정 업체는 무려 1000회 이상 편성되는 등 양극화가 두드러졌다.

이를테면 식품의 경우 295개 업체가 1번 방송할 동안 특정 업체는 무려 1203번 나왔다. 패션·언더웨어는 61개 업체가 1회 편성될 때, 한 업체는 무려 1122회 방송됐다. 다른 제품군 역시 비슷한 사정이다. 특혜를 줬다는 의심이 이어졌다.

“중소기업 도와라” 세워놨더니… 
방송 편성 양극화, 특혜 의심까지

공영홈쇼핑은 매출 규모가 큰 업체에 방송을 몰아줬다. 식품 방송 횟수 상위업체 매출을 살펴보면 10개 중 8개가 매출 100억원을 넘겼다. 이들은 평균 466번씩 방송을 탔다. 패션·언더웨어도 편성 상위업체 10개 중 7개가 매출 100억원이 넘었다. 방송 횟수는 평균 356회에 달했다.

홍 의원은 “공적 판로 지원 기능을 하는 공영홈쇼핑에서조차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공영홈쇼핑이 입점 업체에 공정한 방송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지, 또 중소기업의 판로개척을 위해 공익을 실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공적 유통채널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조 대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실제 흑자 전환 이후 무료·지역 방송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며 “상품은 유망하지만 판로 운영이 어려운 업체에게는 상생 펀드를 지원하거나 자체 공익 예산을 가지고 원스톱 통합 지원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영홈쇼핑이 설립 목적을 잘 지키지 못한 가운데, 실적마저 챙기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영홈쇼핑이 홈쇼핑 황금시간대에 정책방송은 방송하지 않은 점 역시 도마에 올랐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예산은 2380억원을 투입했는데 중소기업들 매출은 2046억원 밖에 안 된다. 10% 정도 수익이 나도 200억원에 불과한데 민간 기업이라면 존재할 수 있겠느냐”고 조 대표를 질타했다.

이에 조 대표는 “수수료를 낮춰 중소기업 판로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업이익은 적정하게 유지하면서 수수료는 중소기업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홈쇼핑 업계에서 공영홈쇼핑의 입지는 내리막을 걷고 있다. 공영홈쇼핑은 지난해 매출액 2046억원을 기록했다. 홈쇼핑 산업 내 시장점유율을 따져봤을 때 단 3%에 불과한 수치다. 시청률은 2020년 0.055%, 지난해 0.03%, 올해(지난 8월 기준) 0.025%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혈세 들여…
내리막길

가장 적은 매출에도 홈쇼핑 관련 민원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점 역시 문제다. 공영홈쇼핑 안팎에서 경영 쇄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공공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공공기관’ 공영홈쇼핑의 존재 가치를 두고, 회의적인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꺼질 줄 모르는 공영홈쇼핑 낙하산 논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인 공영홈쇼핑의 낙하산 논란이 국정감사 단골 안건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매년 비슷한 질타가 이어지지만, 낙하산성 인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사퇴한 최창희 전 공영홈쇼핑 대표이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당시 후보)의 대선 캠프 홍보 고문을 역임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만든 장본인이다.

감사 자리에는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을 수행했던 김진석 전 보좌관에 이어 유창오 감사가 임명됐다.

유 감사는 문 전 대통령 캠프에서 방송연설팀장을 맡은 바 있다.

이외에도 공영홈쇼핑은 황교익 칼럼니스트를 섭외하고 출연료 1400만원을 지급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평소 친야 성향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황씨는 반(反)중소기업 발언으로 수차례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올해 국감에서는 조성호 대표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연결고리 규명에 이목이 쏠렸다.

일부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조 전 장관과 인척 관계냐고 추궁하자” 조 대표는 “창녕 조씨가 소수 성에 단일 본이지만, (조 전 장관과는) 일면식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운>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확정된 사건이 다시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BBQ 내부망 불법 접속’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ID·비밀번호 메모장’을 둘러싼 위증 여부를 다투는 후속 재판이다. 박현종 전 bhc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사건임에도 검찰은 관련 증인들을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했다. 핵심은 과연 BBQ 직원의 ID와 비밀번호가 적힌 그 메모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창성 전 bhc 정보전략팀장의 손을 어떻게 거쳐 전달됐는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둘러싼 법정 진술의 신빙성이다. 검찰은 최근 공판에서 “피고인(박현종 등)에게 유리한 허위 증언이 반복됐다”는 판단 아래 유 전 팀장 등 관련자 3명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메모장 전달자 통상 위증 여부는 재판부 판단 이후 별도 절차로 넘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검찰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단순한 진술 번복이나 기억 착오 수준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허위 진술이 있었다고 본 셈이다. 이번 공판의 중심에는 ‘메모장 전달자’로 지목된 유 전 bhc 정보전략팀장이 있다. 그는 과거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로 채택된 BBQ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를 박현종 전 bhc 회장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이 메모장은 박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축이었다. 이 메모장의 출처와 작성 경위가 흔들리면, 사건 전체의 구조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건넨 메모장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메모장에 기재된 임직원 계정 정보 뒤에는 ‘퇴사자 임시’라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이는 BBQ 내부망에서만 확인 가능한 정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에서 추정이나 기억만으로 재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성명불상자가 BBQ 내부망에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해 계정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유 정보팀장을 거쳐 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재판부 역시 “기억과 추리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검찰 주장에 일정 부분 무게를 싣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재판부는 “특정한 심증을 가진 것은 아니”라며 추가 심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인 측은 거칠게 반격했다. 변호인은 검찰 주장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bhc와 BBQ가 극도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상황에서, bhc 소속 직원이 BBQ 내부 직원과 접촉해 계정 정보를 빼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검찰이 실제 내부망 침입을 입증하지 못한 채 추측만을 쌓고 있다고 공격했다. 6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 리스크 추가 ‘BBQ 직원 ID·비밀번호 유출’ 둘러싼 공방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기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와 증인 진술 전반에 대해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데이터베이스(DB)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사실상 1·2심은 물론 대법원 판단의 기초 자체를 뒤흔드는 주장이다. 확정 판결 이후 재판에서 “증거 자체가 위조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법조계에서도 보기 드문 강수로 평가된다. 유 전 팀장은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근무하다가 bhc 매각과 함께 bhc 정보전략팀장으로 이직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박 전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적은 쪽지를 전달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인물은 BBQ 재무임원과 재무 실무진이다. 2021년 11월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관련 7차 공판에 유 전 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 전 팀장은 박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건넨 이유에 대해 “박현종 회장이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 소송 때문에 BBQ 직원들의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했다”며 “해당 직원들의 개인정보가 업무 수첩에 적혀있어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위법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와 비밀번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과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해 묻는 검찰 질문에 유 전 팀장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은 모르겠고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 전 팀장은 BBQ와 bhc의 ICC 중재 소송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소송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 취득 경위와 관련해서는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BBQ 재무임원이 그룹 전산망의 데이터가 다르다고 확인 문의가 왔다”며 “당시 물류 전산망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 임원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해 받은 뒤 이를 업무 수첩에 적은 이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이 개인정보를 받았다고 지목한 BBQ 재무임원은 앞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도 전달한 적 없다”며 “업무 처리도 유씨가 아닌 다른 직원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검찰은 유 전 팀장이 그룹 전산망에 접근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내부 정보 취득 시점이… 유 전 팀장은 재무임원의 개인정보를 취득한 시점에 대해서도 그간 검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011년~2012년 즈음에서 2013년 1월로 시점을 바꿨다. 검찰은 증인에게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물류 전산망이 바뀐 시점으로 맞추기 위함이냐고 묻자 유 전 팀장은 “단순 착오”라고 답했다.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으로 일할 당시 BBQ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검찰 질문에 “자신이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의 증언에 BBQ가 퇴사자에게 부여하는 임시 비밀번호를 줄 때 증인이 말한 방식을 쓴 것은 증인 퇴사 이후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BBQ 전·현직 직원들의 정확한 개인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bhc가 BBQ의 데이터베이스(DB)를 모조리 빼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허락하에 BBQ DB를 모두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 진술 이외에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2013년 6월 말 bhc 매각 이후 bhc는 자체 전산망 구축을 위해 BBQ와 bhc 전산망 분리 작업이 필요했다. 그해 7월2일 외부 업체는 해당 작업이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과 부하 직원 한 명, 그리고 한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던 외부업체는 2013년 7월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불과 12시간 만에 BBQ로부터 분리된 bhc 전산망을 구축했다. 이와 관련해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이 100명 남짓에 불과해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옮겨 가능했다”며 “BBQ DB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BQ DB 관련 박 회장과 유씨의 진술이 배치되는 데 대해 유 전 팀장에게 묻자 “자신은 박 회장에게 BBQ DB를 가져왔다고 말한 적 없다”며 “박 회장이 검찰에서 왜 그리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유 전 팀장은 노트북 하드 교체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해킹의 목적 첫 증언에서는 bhc 매각 시기인 2013년 이후 노트북 감가상각 5년을 계산해 2018년에 바꿨다고 했지만 이후 2017년으로 고쳤다. 기존 사건이 ‘불법 접속이 있었느냐’는 사실관계 다툼이었다면, 이번 후속 재판은 ‘그 사실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거짓말이 있었느냐’는 문제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BBQ 직원 계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할 수 없었고, 불법적 경로일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무죄였지만,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명확히 유죄로 못 박았다. 그러나 사건은 집행유예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위증을 별도의 범죄로 끌어올린 이상, 수사는 ‘위증교사’를 밝히는 단계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관련자들의 위증을 인정할 경우, 그 진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도했는지가 핵심 수사 대상이 된다. 화살이 결국 박 전 회장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증교사는 기존 사건과는 별개의 범죄로, 추가 기소로 이어질 경우, 사법 리스크도 한층 더 커진다. 문제는 입증이다. 위증교사는 단순한 정황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지시나 교감, 사전 조율 정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이미 “유리한 허위 증언 반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고발까지 단행한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가능성 제기를 넘어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BBQ 출신 정보전략팀장 진술 번복 검, 증인들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 이 사건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bhc와 BBQ 사이의 오랜 분쟁이다. 박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BBQ 글로벌 대표로 영입됐다. 이어 2013년 BBQ 자회사 bhc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팔린 뒤 bhc 대표로 옮겨가며 양사 갈등의 중심에 섰다.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등과 함께 bhc를 사들여 오너 경영자가 된 동시에 각종 소송과 형사적 리스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 역시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라, 기업 간 치열한 법적 분쟁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검찰에 의하면 박 전 회장은 2015년 7월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bhc 본사에서 BBQ 직원 2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무단 도용해 BBQ 전산망에 접속한 뒤 bhc와 BBQ가 연루된 국제 중재 소송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다. 이로 인해 박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은 유 정보팀장으로부터 BBQ 직원 이메일 아이디, 비밀번호, 전산망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3차 공판 때 검찰과 변호인은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2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먼저 의견 개진 기회를 얻은 변호인은 “BBQ가 여러 차례 박현종 회장을 영업비밀 침해 등의 이유로 고소했지만 계속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그런데 검찰이 정보통신망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박현종 회장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를 입증한 것도 아니”며 “왜곡 가능성이 큰 간접 증거만 제시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현종 회장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에 참석해 BBQ 전산망에 접속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검찰은 “bhc가 2013년부터 BBQ 전산망에 무단 접속한 횟수가 236회에 달하지만 행위자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하지 못했다”며 “박현종 회장은 무단 접속이 명백해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지시했나 사면초가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범행 동기에 대해 “2015년 BBQ 직원들이 박현종 회장이 bhc 매각을 총괄했다”는 진술서를 국제 중재 법원에 냈다. 국제 중재 소송에서 질 경우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었던 박 전 회장은 “해당 진술서를 검토하고 반박해야만 했다”고 했다. 이어 “박현종 회장 휴대전화에서 BBQ 직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 사진이 나왔다. BBQ 전산망 접속 데이터 분석 결과, 박현종 회장이 BBQ 사내 메일을 포워딩(전달)한 개인 메일을 2년 만에 열람한 기록도 있다”며 혐의를 입증할 물적 증거가 많다고 했다. 검찰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 참석자 2명은 박현종 회장을 회의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며 박 전 회장의 알리바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