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백수오’ 참기름 명인의 두 얼굴

봉이 김선달에 홀라당 속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이번 국정감사에서 공공기관 홈쇼핑 ‘공영홈쇼핑’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자료를 꼼꼼히 살피지 않아 24억원 어치 ‘참기름 사기극’을 막지 못한 게 들통났다. 설립 취지와 반대로 중소기업 사이 양극화를 부채질한 데다 영업 이익까지 시원찮았다. 공공기관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일을 그 누가 반대하랴. 하지만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무능은 ‘죄’다.

공영홈쇼핑은 단순한 홈쇼핑 기업이 아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기타 공공기관으로서 중소기업과 농·어업인 판로 개척을 돕기 위해 설립됐다. 지분은 모기업 중소기업유통센터(이하 센터)가 50%, 농협이 45%, 수협이 5%를 나눠 가졌다.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중기부 산하
공공기업

공영홈쇼핑은 설립 목적에 따라 모든 홈쇼핑 판매상품을 국내 농·축·수산물과 중소기업 제품만으로 편성한다. 공영홈쇼핑은 2015년 개국한 이래로 5년간 줄곧 적자를 기록했다. 개국 첫해 영업손실은 200억원에 달했다. 이후 적자 액수를 줄여오면서 2019년 영업손실액은 49억원에 그쳤다.

적자 경영이 지속된 주요 원인으로는 산업과 채널 특성이 지목됐다. 홈쇼핑 자체가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하다는 점,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설립 취지에 따라 업계 최저 수준의 수수료율을 책정한 점 등이 흑자 전환에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듬해인 2020년, 공영홈쇼핑은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코로나 유행 초반 터진 ‘마스크 대란’ 직후 공적 마스크 판매처로 지정되면서다. 매출과 신규 가입 고객이 모두 큰 폭으로 뛰었다. 한 달도 채우지 못한 공적 마스크 판매 기간 사이 공영홈쇼핑에 유입된 고객 수는 150만명에 달했다.


이에 발맞춰 공영홈쇼핑은 적극적인 프로모션과 이벤트를 통해 소비자 유입을 촉진했다. 트렌드를 읽은 상품 구성을 통한 매출 신장 노력도 눈에 띄었다. 당해 공영홈쇼핑은 뜻밖의 호재와 각종 노력에 힘입어 200억원대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공영홈쇼핑의 선전은 ‘반짝 특수’로 막을 내렸다. 단 한 번의 성공으로는 그 앞뒤에 놓인 각종 논란과 의혹을 덮을 수 없었다. 공영홈쇼핑이 얽힌 여러 논란 중에서도 최근 가장 화제가 되는 건 단연 ‘가짜 참기름 사건’이다.

가짜 참기름 사건은 충청북도 충주에 위치한 한 참기름 제조업체 A사가 원산지를 속인 ‘가짜 국산’ 참기름을 팔다 덜미를 잡힌 사건이다. A사는 2020년 센터로부터 우수협력사로 선정됐고, A사 경영을 사실상 주도한 B씨는 지난해 5월 청주의 한 민간 사단법인에서 ‘한국무형문화유산 명인’에 등재된 터라 더욱 파장이 컸다.

A사는 주로 공영홈쇼핑을 통해 물건을 팔아치웠다. 모회사 센터가 참기름을 납품받으면 이를 자회사 공영홈쇼핑이 판매하는 형태였다.

지난 1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소속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은 공영홈쇼핑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공개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공영홈쇼핑은 가짜 참기름 판매 방송을 1년6개월간 총 27번 진행했고, 이를 통해 A사는 3만6000여명에게서 24억3000만원을 챙겼다.

이들의 사기 행각은 지난해 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게 발각됐다. 이후 열린 1심 재판에서 A사 대표 B씨는 징역 3년형을, 이사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을 맡은 청주지방법원 제11형사부는 “피해 해소가 상당 부분 이뤄지지 않았고, 2013년에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벌금을 받은 바 있다”며 양형 이유를 부연했다. 피고인들이 1심 결과에 불복하면서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짜 참기름’ 부실 검증에 24억원 피해
환불은 지지부진 “국감 앞두고 급히…”

<일요시사>가 입수한 1심 판결문에는 이들 일당의 원산지 조작 수법이 자세히 명시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B씨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중국·인도산 참깨 36톤에 국내산 참깨 일부를 섞어 참기름을 가공했다. 하지만 원산지 표시란에는 ‘국산 100%’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센터와 소비자를 동시에 속였던 이들은 문서 위조까지 감행했다. B씨는 국산 참깨를 입고·사용한 적이 없음에도 원료 수불 대장에는 관련 코드를 명시했다. 수사 포위망이 좁혀지자 여러 은행의 입출금 거래내역을 위조해 수사당국에 제출하기도 했다. 

겉보기에는 공영홈쇼핑 역시 A사와 B씨에 속은 피해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차츰 드러난 실상은 달랐다. 공영홈쇼핑이 제품을 부실 검증했고, 이로 인해 피해를 사전 방지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공영홈쇼핑 품질보증(QA) 기준서에는 원산지 증명서가 필요 서류로 기재돼있다. 이는 관련 평가항목 중 가장 큰 배점이 부여된 요소로, 서류 내 필수 기재 내용을 모두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조사 결과 공영홈쇼핑은 A사가 제출한 서류 중 일부에 필수 기재 사항이 누락된 점을 알지 못했다. 방송 판매 직전, 담당 직원은 현장 실사를 진행하고도 관련 항목에 만점을 부여했다. 제조사에 이어 공영홈쇼핑으로 비난의 화살이 향하는 배경이다.

아울러 공영홈쇼핑은 지지부진한 소비자 보상으로 빈축을 샀다. 공영홈쇼핑은 사건 적발 직후 환불 요청 고객에 한해 즉각 환불을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구매자의 대부분은 아직 환불받지 못했다. 공영홈쇼핑 측이 재판 결과를 보고 보상 범위를 정하기로 입장을 선회했기 때문이다.

한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공영홈쇼핑 측은 지난달 ‘조건 없이 전액 환불’이라는 방침을 확정하고 관련 절차를 개시했다. 공영홈쇼핑은 지난달 말 자체 홈페이지에 환불 사실을 공지했고, 최근에 들어서야 구매자에게 메일·문자메시지 고지를 끝낸 것으로 파악됐다. 

부실 검증
피해 확산

뒤늦은 공지로 환불 절차 마무리는 계속해서 늦어지고 있다. 공영홈쇼핑은 지난 11일까지 판매 고객 중 7505명에게 5억4400만원을 환불했다. 전체 피해 규모에 비하면 약 20%에 불과하다. 

한 의원은 공영홈쇼핑이 환불 과정을 질질 끈 것에 의도성이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사건이 터지고 난 뒤 환불을 빨리 진행했어야 하는데, 재판 결과를 보겠다며 (환불을)미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런데 재판 결과 B씨가 구속됐는데도 늑장을 부리다 지난달 절차를 밟았다. 국감을 앞두고 급하게 진행된 것 아니냐”며 “(환불)접수 기간도 이달 말까지로 굉장히 짧다. 피해자 전체가 환불받지 못하게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영홈쇼핑의 가짜 참기름 사건은 2015년 터진 ‘백수오 파동’과 여러모로 유사하다. 당시 백수오는 여성 갱년기 증상 완화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다. 일약 ‘백수오 붐’이 일자, 건강기능식품 업계는 앞다퉈 관련 제품을 만들었다. 이는 홈쇼핑을 중심으로 널리 판매됐다.

그런데 시중에 판매된 백수오 관련 제품들이 알고 보니 백수오가 아닌 이엽우피소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사회적 파장이 크게 일었다. 

백수오와 이엽우피소는 같은 속에 속하는 친척관계지만, 엄연히 다른 종이다. 더군다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 달랐다. 백수오는 당시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어도 항산화물질을 함유한 점, 동의보감에 약재로 등록된 점 등을 근거로 건강기능식품으로 생산됐다.

하지만 대한한의사협회 설명에 의하면 이엽우피소는 자체 독성으로 구토·경련 등을 유발할 수 있어 섭취에 적합하지 않다.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검사 결과, 백수오 원료 공급 70~80%를 과점 중인 업체에서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 이어진 백수오 제품 전수조사 과정에서도 이엽우피소를 함유한 제품이 무더기로 밝혀졌다. 결국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제품 환불 요구가 빗발쳤다.

그런데 오프라인 업체들이 대체로 ‘즉각 환불’ 방침을 세운 것에 반해, 홈쇼핑을 비롯한 온라인 업체들은 망설이다 뒤늦게 환불 계획을 발표했다. 그 사이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환불 지연
일부러?

조성호 공영홈쇼핑 대표는 업계에서 두 사건을 모두 겪었다. 조 대표는 백수오 파동 당시 한 민간 홈쇼핑 기업의 전무로 재직하고 있었다.

한 의원은 조 대표의 이 같은 이력을 들어 ‘환불 고의 지연 의혹’을 뒷받침했다. 한 의원은 <일요시사>에 “당시 조 대표가 전무로 있었던 민간 기업은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환불 절차를 마무리지었다”며 “그때에 비해 (대처가)너무 늦다. 고의성이 있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국감장에서도 같은 주장을 편 바 있다. 그는 지난 13일 산자위 국감장에서 “공영홈쇼핑 사장은 2015년 가짜 백수오 파동 당시 타 홈쇼핑 전무로서 즉각 환불 조치를 해준 바 있다”며 “이번 가짜 국산 참기름 판매에 대한 환불 조치가 지연된 데 따른 감사가 불가피하다”고 발언했다.

한 의원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조 대표는 이와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남기지 않았다. 

앞서 공영홈쇼핑 측은 가짜 참기름 사건에 대해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점검을 강화했다.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고 원재료·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품질보증 가이드를 더욱 관리·강화하겠다”고 전했다.

이번 국감에선 이외에도 공영홈쇼핑 운영 전반에 관한 질타가 줄을 이었다. 더불어민주당 홍정민 의원은 공영홈쇼핑이 제출한 방송 편성 현황 자료를 분석했다. 공영홈쇼핑에는 개국 직후부터 지난 8월까지 3880개 업체가 입점했다. 누적 방송 횟수는 6만2823회다.

입점 업체 중 36.8%는 방송 기회를 단 1번밖에 얻지 못했다. 반면 특정 업체는 무려 1000회 이상 편성되는 등 양극화가 두드러졌다.

이를테면 식품의 경우 295개 업체가 1번 방송할 동안 특정 업체는 무려 1203번 나왔다. 패션·언더웨어는 61개 업체가 1회 편성될 때, 한 업체는 무려 1122회 방송됐다. 다른 제품군 역시 비슷한 사정이다. 특혜를 줬다는 의심이 이어졌다.

“중소기업 도와라” 세워놨더니… 
방송 편성 양극화, 특혜 의심까지

공영홈쇼핑은 매출 규모가 큰 업체에 방송을 몰아줬다. 식품 방송 횟수 상위업체 매출을 살펴보면 10개 중 8개가 매출 100억원을 넘겼다. 이들은 평균 466번씩 방송을 탔다. 패션·언더웨어도 편성 상위업체 10개 중 7개가 매출 100억원이 넘었다. 방송 횟수는 평균 356회에 달했다.

홍 의원은 “공적 판로 지원 기능을 하는 공영홈쇼핑에서조차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공영홈쇼핑이 입점 업체에 공정한 방송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지, 또 중소기업의 판로개척을 위해 공익을 실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공적 유통채널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조 대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실제 흑자 전환 이후 무료·지역 방송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며 “상품은 유망하지만 판로 운영이 어려운 업체에게는 상생 펀드를 지원하거나 자체 공익 예산을 가지고 원스톱 통합 지원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영홈쇼핑이 설립 목적을 잘 지키지 못한 가운데, 실적마저 챙기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영홈쇼핑이 홈쇼핑 황금시간대에 정책방송은 방송하지 않은 점 역시 도마에 올랐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예산은 2380억원을 투입했는데 중소기업들 매출은 2046억원 밖에 안 된다. 10% 정도 수익이 나도 200억원에 불과한데 민간 기업이라면 존재할 수 있겠느냐”고 조 대표를 질타했다.

이에 조 대표는 “수수료를 낮춰 중소기업 판로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업이익은 적정하게 유지하면서 수수료는 중소기업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홈쇼핑 업계에서 공영홈쇼핑의 입지는 내리막을 걷고 있다. 공영홈쇼핑은 지난해 매출액 2046억원을 기록했다. 홈쇼핑 산업 내 시장점유율을 따져봤을 때 단 3%에 불과한 수치다. 시청률은 2020년 0.055%, 지난해 0.03%, 올해(지난 8월 기준) 0.025%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혈세 들여…
내리막길

가장 적은 매출에도 홈쇼핑 관련 민원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점 역시 문제다. 공영홈쇼핑 안팎에서 경영 쇄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공공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공공기관’ 공영홈쇼핑의 존재 가치를 두고, 회의적인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꺼질 줄 모르는 공영홈쇼핑 낙하산 논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인 공영홈쇼핑의 낙하산 논란이 국정감사 단골 안건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매년 비슷한 질타가 이어지지만, 낙하산성 인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사퇴한 최창희 전 공영홈쇼핑 대표이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당시 후보)의 대선 캠프 홍보 고문을 역임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만든 장본인이다.

감사 자리에는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을 수행했던 김진석 전 보좌관에 이어 유창오 감사가 임명됐다.

유 감사는 문 전 대통령 캠프에서 방송연설팀장을 맡은 바 있다.

이외에도 공영홈쇼핑은 황교익 칼럼니스트를 섭외하고 출연료 1400만원을 지급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평소 친야 성향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황씨는 반(反)중소기업 발언으로 수차례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올해 국감에서는 조성호 대표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연결고리 규명에 이목이 쏠렸다.

일부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조 전 장관과 인척 관계냐고 추궁하자” 조 대표는 “창녕 조씨가 소수 성에 단일 본이지만, (조 전 장관과는) 일면식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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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