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돌아온 막말 종결자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입으로’ 정치판 들었다 놨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 초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새로운 ‘막말 스타’로 등극했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김일성주의자”라고 주장한 것이 화두가 됐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김 위원장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자신의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의 정치 성향은 극우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엄호하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도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을 정도다. 김 위원장의 과거는 지금과 매우 대조적이다. 학창 시절 그의 모습은 노동운동가들 사이에서 전설로 불리고 있다. 누구보다 전투적이었고 치열했던 노동운동가로 명성을 떨치면서 ‘운동권의 황태자’로 불렸다.

운동권
황태자

김 위원장의 과거는 가난하면서도 화려했다. 195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4남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중학교 동창으로는 삼성전자 CEO를 역임하고 제4대 지방선거에서 상대했던 진대제가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3선 개헌 반대 시위를 하다가 제적됐다가 복적됐다. 1970년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대학 내 모임인 후진국 사회연구원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노동운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같은 해 피복공장 노동자 전태일이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분신자살한 소식을 접한 것이 컸다. 그 뒤 동기들과 함께 서울 구로구 구로공단에 노동자로 위장 취업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다른 노동자들과 계몽운동을 하던 고대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을 만나 그로부터 마산수출자유지역, 영등포공장 이야기 등 언론에 보도되지 않던 비화를 접하며 노동계 현실을 깨달았다. 김 위원장의 회고에 따르면 구로공단 위장취업 당시 오전에는 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하고, 저녁에는 사람들과 만나 담론 토론으로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1년이 지난 1971년 10월15일 김 위원장은 부정·부패 척결 전국학생시위에 참여했다가 제적됐다. 1971년부터 1972년까지 고향 경북 영천에서 4H 운동과 야학 등 농민운동을 했으며, 1974년에는 공산정권 수립을 추진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된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해 제적됐다.

같은 해 김 위원장은 1청계천 피복공장 재단보조공으로 근무했다. 이후 여러 공장을 전전하면서도 고학으로 1977년에는 환경관리기사 2급, 안전관리기사 2급 등의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했다. 1978년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여파로 회사가 노조 해산정책을 추진하자 김 위원장은 노동조합 위원장직을 그만두게 되고, 회사에서도 해고를 당했다. 이후 구로동맹 파업을 주도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김 위원장은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을 받았고 서대문구치소로 이감되기도 했다.

수감 중 기소유예로 석방돼 다시 한일 도루코로 복직할 수 있었다. 1984년 방용석 등과 함께 ‘한국노동자복지회’를 조직했다. 여기서 만난 안선모 등을 출판사 등에 주선해주기도 했다. 같은 해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부위원장에 피선되고 1985년 전태일 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등을 지냈다. 이후 전태일의 모친 이소선씨와도 교류했다.

1985년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서노련)이 출범하자 그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함께 활동했으며, 서노련 지도위원 등으로 선출됐다. 1986년 서노련 지도위원으로 인천시 5·3직선제 개헌 투쟁 주도 혐의 등으로 구속돼 고문을 받고 2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아 형무소에서 복역했다가 1988년 특별사면을 받고 풀려났다.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지켜본 김 위원장은 1990년 초부터 성장에 자원을 집중하되 복지도 함께 따라가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며 ‘좌파적 노동관’을 버리고 온건론으로 노선을 선회했다.


학창 시절 공장 경험하며 노동계 발전에 앞장
90년대 공산주의 국가 몰락 후 정치노선 선회

정치적 노선을 선회한 김 위원장은 정치를 시작했다. 1990년 민중당 창당에 참여해 구로갑지구당 위원장을 지낸 뒤 민중당 노동위원장으로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전국구 3번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92년에는 노동인권회관의 소장으로 추천됐고 이듬해에는 한국노동연구원 현대자동차 노사관계진단팀장에 임명됐다.

1994년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혁명의 시대는 갔다”는 말을 남기고 민주자유당에 입당했다. 김 위원장은 민주자유당 경기도 부천소사구지구당 조직책이 됐다. 같은 해 노동부 행정규제완화위원회 위원과 노동인권회관 이사에 선출됐고 1996년 신한국당 공천으로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부천시 소사구에서 출마해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현실주의를 내세운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 뒤 민주자유당이 김영삼 체제에서 이회창 체제로 바뀌고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꾼 뒤에도 계속 활동했고, 1996년부터 1년간 신한국당 대표최고위원 특별보좌관을 수행하기도 했다.

1998년부터 1년간 야당 의원으로는 특별히 대통령 자문기구인 노사정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1998년 한나라당 원내 부총무, 한나라당 노동위원회 위원장, 김대중정권 대북 뒷거래 진상조사위원회 특별위원장을 맡으며 대정부 공격에 앞장섰다. 2000년 시민단체인 희망을 여는 정치연대의 간사로 활동했고, 2000년 6월 근로기준법을 재개정에 찬성했다.

노동부는 별도의 예산을 확보해 이들의 노동 실태 파악에 나서야 한다고 했으며 노동자들에게도 노동자 스스로 끊임없는 권리찾기 운동을 지속해야 한다며 찬성 의사를 표명했다. 2001년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 2003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거쳐 2004년 2월에는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온건에서
과격으로

국회의원 시절에는 노동 분야와 환경, 수도권 교통과 아동 분야에 관심을 갖고 많은 의정 활동을 벌였다.

1996년 녹색정치인상을, 1998년 한국유권자운동연합으로부터 국회 의정활동 환경노동위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 결식아동돕기 의정활동 공로패와 전국 보육시설협회 감사패를 받은 바 있다. 당시 “결식아동에게 밥을 줄 책임이 국가에 있는데 왜 예산을 배정하지 않아 성금에 의존토록 하느냐?”고 항의하면서 “김결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16·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3선 국회의원으로서 2000년 밝은 정치 시민연합 새천년 밝은 정치인상을 수상했고, 2005년 국정감사 최우수의원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에는 국회출입기자단으로부터 약속 잘 지키는 국회의원 1위와 일 잘하는 국회의원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6년 광역자치단체장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을 사임한 후, 2006년 4월 지방자치단체장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출마해서 당선됐다.


김 위원장은 2006년 7월1일 경기도 민선 4기 도지사에 취임했다. 2006년부터 2008년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7년 4월 수도권 규제 완화와 경기지역 개발을 주장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2009년 한국메니페스토운동본부에서 평가하는 공약 이행도 평가에서 1위를 차지(공약 이행 2년 차 목표 달성 최우수, 주민 소통·민관협력 최우수, 웹소통 최우수 평가)했다.

김 위원장의 논란은 2010년부터 시작됐다. 2010년 5월29일 6·2 지방선거를 위한 유세를 위해 대학생들과 간담회 중 다음과 같은 발언들을 했다. “국민에게 큰 불편을 끼치며 촛불집회에 나섰던 이들은 사과를 해야 한다” “광화문광장에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세워야 한다” 등 김 위원장의 발언은 과거 학창 시절 때와 매우 대조적이었다.

같은 해 11월 김문수의 대학 특강과 실·국장회의에서의 발언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걸그룹 소녀시대에 대해 젊은이들과 공감하는 차원에서 “내가 봐도 잘생겼다. 쭉쭉빵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유감을 표명할 사안이 아니라며 사과하지 않았다.

2011년 6월에는 대한민국의 고전소설 <춘향전>에 대해 “<춘향전>이 뭡니까? 변사또가 춘향이 ✕✕하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고배 마시다
윤정부 합류

한 달여 뒤에는 병문안 차원에서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요양병원을 찾은 와중에 119에 전화를 걸어 “도지삽니다”라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됐다. 대부분의 언론은 당시 김 위원장이 소방관에게 갑질을 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측에 개선할 것을 알렸고, 소방본부는 소방관들의 징계성 인사 조치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지자 김 위원장에 대한 여론이 크게 악화됐다.

이후 경기도청은 도지사의 목소리를 몰라서 해임한 것이 아니라 규정 위반으로 해임했다는 해명을 내놨지만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자 다음 날 김 위원장이 직접 소방서에 찾아가 두 소방관을 원대복귀시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 사건으로 인해 선거에서 계속 고배를 마시게 된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에 안방 챔피언인 줄 알고 출마했으나,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에게 완패를 당했다. 뒤이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에 출마했으나 2위로 낙선했다.

2019년 8월20일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주최로 국회에서 ‘보수통합’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는데, 연사로 참석한 김 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나보다 깨끗한 사람이고 돈 받을 이유도 받은 적도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을 두둔했다.

특히 전직 대통령들의 억울함을 강조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총살감”이라는 과격한 발언도 논란이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서울시가 2020년 2월 다중집회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시민들에 대해 법적 조치를 예고했는데 같은 달 22일과 23일 전 목사 사단과 함께 8·15 광복절 문재인정부 규탄 집회에 참여해 경찰 수사 대상이 됐다.

같은 해 8월17일 국회의사당역에서는 김 위원장과 동행하던 검진 대상자를 보건소로 연행하려던 경찰과 시비가 붙기도 했다. 경찰은 김 위원장과 같이 있던 성창경 기독자유통일당 대변인에게도 보건소로 같이 가서 검사받기를 요청했는데, 김 위원장이 이를 거부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김 위원장은 경찰에게 신분증을 요구했고 경찰이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영등포경찰서라고 하자 본인의 신분증을 꺼내며 “나 김문수다”라고 했다.

“도지삽니다” 소방관 갑질 논란 후 여론 악화
“문 총살감” “김일성 주의자” 잇단 발언 논란

김 위원장의 막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경사노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김일성 주의자’라고 주장했다.

국회 환노위 소속 민주당 위원들은 지난 13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문수 신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기어이 국정감사에서 사고를 쳤다”며 “국회의원 모독을 넘어서 국회증언감정법이 규정한 모욕적인 언행으로 국회의 권위를 훼손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전날 국회 환노위 국감장에서 “젊은이들에게 세월호처럼 저렇게 죽음의 굿판을 벌이고 있는 자들 물러가라” “불법파업에 손배(손해배상) 폭탄이 특효약” “민노총이 김정은 기쁨조 맞죠?” “문재인 대통령은 김일성 사상을 굉장히 존경하는 그런 분이다”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특히 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지난해 4월 김 위원장이 올린 페이스북 글을 언급하며 “‘윤건영이 종북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수령님께 충성하고 있다. 이 생각에 변함이 없나”라고 묻자 김 위원장이 “저런 측면이 있다고 저는 생각한다”고 답하면서 갈등은 증폭됐다.

이에 대해 “민주당 위원들은 민생 국감을 위해 사과할 기회를 주었지만 김 위원장은 그 상황만을 모면하기 위한 변명에 급급했다”며 “경사노위 위원장에 임명한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가 확실하게 참사라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거짓 사과와 막말의 경계를 넘나들며 국회를 모욕한 김 위원장은 경사노위 위원장 자격이 없다”며 고발 조치를 예고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태를 만든 김 위원장은 지금 당장 자진사퇴하라. 윤 대통령은 인사 참사에 책임을 지고 국민께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노위 야당 간사인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여야 간 협의와 환노위 전체회의 의결을 통해서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고발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여야를 떠나서 국회와 300명 국회의원에 대한, 국회의원을 선출해준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여야를 가릴 문제가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윤 의원도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에 대한 모멸적인 언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특히나 어제 김 위원장이 상임위 자리에서 퇴장 조치를 당했음에도 오늘 아침 라디오 방송에 나가서 똑같은 언사를 했다.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다는 것인데 이는 국회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도 ‘문 전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시나’라는 진행자 질문에 “‘문 전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말한다면 확실하게 문 전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신영복 사상이라는 것은 김일성 사상이다. (이로 인해)통일혁명당의 3명이 사형됐고, 신영복 선생은 무기징역을 받고 20년 20일을 감옥에서 살았는데, (이후)그분은 한 번도 본인이 전향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전)대통령은 평창올림픽 개막 리셉션에서 당시에 펜스 (미국)부통령과 (일본)아베 총리, 그리고 (북한)김영남, 북한의 김여정, 세계 100여개국 정상을 앞에 두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는 신영복이라고 공개적으로 전 세계에 공포했다”며 “그래서 김일성주의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 22년형, 이명박 대통령 17년형, 국정원장 4명을 다 감옥에 보낸 문재인 대통령은 아마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멈추지 않는
실언 기관차

그러나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확실한 김일성주의자’ 등 전날 ‘국감장 강퇴’ 계기가 된 발언에 대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다만 문 전 대통령을 향한 ‘총살감’ 발언을 두고 “어떤 대통령도 구속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이 22년형이고 17년형이라면, 문재인 대통령은 그거보다 훨씬 크다. 따지자면 더 많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표현에 과격한 점이 있는 건 사과했다”고 덧붙였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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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