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의 재발견 ④경주 불국사와 석굴암

다시 쓰는 수학여행기

경주의 다른 이름은 ‘대한민국 수학여행 1번지’다. 경주라는 두 글자에 수학여행을 떠올리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수학(修學)은 ‘학문을 닦는다’라는 뜻이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추억만 쌓고 왔다. 그래서 경주로 다시 떠나본다. 당시 못 채운 ‘수학’의 꿈을 품고.

수학여행 대표 코스 불국사(사적)부터 시작이다. 매표소에서 일주문과 천왕문을 거쳐 불국사로 오르는 길, 오래전 기억이 가물가물 되살아난다. 대웅전(보물)으로 가는 길목의 돌계단 앞에 이르자 기억은 선명해진다. 우뚝한 범영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계단이 있다. 그때는 챙겨 보지 못한 안내문이 눈에 띈다. 동쪽 자하문 앞 계단이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 앞 계단이 연화교와 칠보교(국보)다. 수학여행 때 단체 사진을 찍던 청운교와 백운교는 지금도 불국사 인증 사진 명소다.

인증 사진 명소

청운교와 백운교, 연화교와 칠보교는 신라 재상 김대성이 불국사를 짓기 시작한 751년(경덕왕 10년)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한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다리 아래 속세와 위쪽 부처 세계를 이어준다는 의미가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전체 34계단, 연화교와 칠보교는 18계단이다. 규모는 다르지만, 계단 형태로 만든 다리라는 점과 다리 아래가 무지개 모양인 점 등은 비슷하다. 전자는 웅장함이, 후자는 섬세함이 돋보인다.

양쪽 돌계단 다리 모두 보존을 위해 출입이 금지된 상태라 옆길을 통해 대웅전으로 가야 한다. 대웅전 뜰에 들어서자마자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역사에 관심 없는 이라도 두 탑을 보는 순간, 탄성을 내지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탑 모두 국보다. 석가탑의 문화재 명칭은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이지만, 우리에겐 원래 이름 석가여래상주설법탑을 줄여서 부르는 석가탑이 익숙하다.

뜰 동쪽과 서쪽에 마주 선 두 탑 역시 751년(경덕왕 10년)에 건립한 것으로 추측한다. 높이는 다보탑 10.29m, 석가탑 10.75m로 비슷하나 생김새는 확연히 다르다. 동쪽의 다보탑은 특수한 탑 형태를, 서쪽의 석가탑은 일반적인 형태를 취한다. 수학여행 때 두 탑 앞에서 어느 게 다보탑이고 석가탑인지 헷갈린다는 학생이 종종 있었다. 선생님은 10원짜리 동전을 꺼내 보이며 “10원짜리 동전에 나오는 탑이 다보탑이다”라고 하셨다. 요즘 아이들은 10원짜리 동전을 볼 일이 별로 없겠지만, 1970~1990년대 학생들에게 다보탑은 10원짜리 동전에 나오는 친숙한 탑이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강탈과 도굴의 아픔을 겪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다보탑을 해체·보수하면서 사리와 사리장치를 비롯한 유물이 모두 사라졌다. 기단 돌계단 위에 있던 돌사자도 넷 중 하나만 남았다. 1960년대 도굴로 손상된 석가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여러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때 발굴된 유물은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라는 이름으로 국보에 지정됐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알려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포함한다.

우리나라 대표 문화 관광 도시
초중고 수학여행 단골코스

사리장엄구는 현재 불국사 천왕문 인근에 세운 불국사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수학여행 때 박물관에 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자책할 필요 없다. 불국사박물관은 2018년에 개관했으니 이전 수학여행객은 기억 못 하는 게 당연하다. 다시 찾은 불국사에서 국보로 지정된 여러 유물도 살펴볼 수 있어 더욱 알차다.

불국사에서 나와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린다. 불국사와 세트 코스인 석굴암 석굴(국보)은 751년(경덕왕 10년)에 만들기 시작해 774년(혜공왕 10년)에 완성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효성이 지극한 김대성이 현세와 전생의 부모를 위해 각각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했다고 한다.

토함산 중턱에 화강암으로 석굴을 만들고 본존불을 모셨다. 내부는 직사각형 전실과 원형 주실, 두 곳을 연결하는 통로로 구성된다. 온화한 본존불을 중심으로 전실과 주실 벽면에 여러 불상을 정교하게 새겼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유리 너머로 본존불과 부조를 감상할 수밖에 없다. 석굴암 내부는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공동 등재됐다. 입장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주말·공휴일 오전 8시부터 / 연중무휴), 관람료는 각각 어른 6000원, 청소년 4000원, 어린이 3000원이다(만 70세 이상·부모 동반 7세 이하 무료). 불국사박물관 관람료 별도.

국립경주박물관도 빼놓으면 안 된다. 신라의 천년 역사와 문화유산을 한눈에 살펴보는 곳으로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특별전시관, 월지관, 어린이박물관, 옥외 전시장 등을 갖췄다. 신라역사관에는 금관총, 황남대총, 천마총에서 나온 국보·보물급 유물이 상당수 전시된다. 교과서에서 봄 직한 신라 시대 금관 같은 문화재가 눈앞에 있으니 신기하다. 옥외 전시장에도 성덕대왕신종(국보),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등 귀한 유물이 많으니 놓치지 말자.

신라 시대 고분군 대릉원(사적)은 역사 학습장이자 산책 코스로 훌륭하다. 평지에 봉긋봉긋 솟아오른 고분이 고도(古都) 경주의 위상을 보여준다. 고분 사이 산책로를 걷는 발걸음에 기품이 실린다. 내부 관람이 가능한 천마총, 거대한 쌍분인 황남대총, 신라 13대 왕 미추이사금의 무덤인 미추왕릉(사적)이 주요 볼거리다. 황남대총과 목련이 어우러지는 포인트는 전국구 포토 존으로 사랑받는다.


첨성대 야경

첨성대(국보)도 수학여행 단체 사진 단골 코스다. 선덕여왕 때 만든 것으로 추정하는 관측대로, 높이 약 9m다. 부채꼴 돌을 27단으로 차곡차곡 쌓아 원통 부분을 올리고, 정상부에는 돌을 정(井) 자형으로 놓았다. 첨성대는 별을 보던 장소인 만큼 밤에 더 신비롭다. 달빛과 조명이 은은한 첨성대 야경으로 경주 여행을 마무리하자.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불국사→석굴암→국립경주박물관→대릉원→첨성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불국사→석굴암→경주월드→동궁과 월지→첨성대
둘째 날: 국립경주박물관→월정교→황리단길→대릉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불국사 www.bulguksa.or.kr
-석굴암 http://seokguram.org
-국립경주박물관 https://gyeongju.museum.go.kr
-경주문화관광 www.gyeongju.go.kr/tour/index.do

문의 전화
-불국사 054)746-9913
-불국사관광안내소 054)746-4747
-석굴암 054)746-9933
-국립경주박물관 054)740-7500
-대릉원 054)750-8650

대중교통
[버스] 서울-경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2~12회(06:50~  22:00) 운행, 약 3시간30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7~8회(07:00~17:20) 운행, 약 4시간 소요. 고속버스·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10번·11번 시내버스 이용, 불국사 정류장 하차, 불국사(불이문 매표소)까지 도보 약 7분. 불국사나 불국사매표소 정류장에서 12번 시내버스 이용, 석굴암주차장 정류장 하차, 석굴암(매표소)까지 도보 약 3분.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경주시교통정보센터 054)779-6849, http://its.gyeongju.go.kr [기차] 서울역-신경주역, KTX 하루 17~20회(05:15~21:30) 운행, 2시간~2시간50분 소요. 신경주역 정류장에서 700번 시내버스 이용, 불국사 정류장 하차, 불국사(불이문 매표소)까지 도보 약 7분. 불국사나 불국사매표소 정류장에서 12번 시내버스 이용, 석굴암주차장 정류장 하차, 석굴암(매표소)까지 도보 약 3분.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경주시교통정보센터 054)779-6849, http://its.gyeongju.go.kr

자가운전
불국사·석굴암 / 경부고속도로→경주 IC에서 경주·경주국립공원 방면→배반네거리에서 울산·불국사 방면 우회전→산업로 8.1㎞ 이동→불국사 방면 좌회전→불국로→불국사→불국로 방면 좌회전 후 직진→석굴로·석굴암 방면 좌회전→석굴암

숙박 정보
-불국사한옥팜스테이: 경주시 진티길, 010-5489-1742, http://불국사한옥.com
-신라부티크호텔프리미엄: 경주시 강변로, 054)745-3500, http://sillaboutique.co.kr
-황남관한옥호텔: 경주시 포석로, 054)620-5000, http://hwangnamguan.co.kr

식당 정보
-불국사밀면(밀면+석쇠불고기): 경주시 불국장터길, 054)773-6161
-함양집 보불로점(한우물회): 경주시 보불로, 054)746-9990
-시즈닝(파스타): 경주시 첨성로99번길, 054)774-7477, www.instagram.com/__seasoning

주변 볼거리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경주 계림, 경주동궁원, 경주엑스포대공원, 보문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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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