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①무지개 하숙집 ‘붉은 괴인’ 괴담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2.09.26 14:43:28
  • 호수 13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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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요즘 서울역은 예전보다 더 누추하고 황량해진 모습이다. 아마 각자 눈에 낀 렌즈에 따라 다르리라만 일부러 그리 만들어 놓았나 싶을 만큼 초라하고 삭막한 느낌이다. 대체 왜 그럴까? 

유리와 플라스틱으로 다급히 건조한 듯한 롯데아울렛 신역사는 고도 서울에 아주 어울리지 않거니와, 바로 옆의 구역사는 옛 영욕이 탈색된 채 역사 박물관으로 변모됐는데도 왠지 시대와 함께 숨쉬지 못하고 노망에 걸려 버린 꼴이다.

특이한 인간

일제 강점기 총독부에 의해 생겨난 사실은 기억하는지 몰라도, 수많은 선열이 목숨 걸고 독립 투쟁했던 과거는 그 거대한 대리석 무덤 속에 묻어 버린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아직 그 안에 들어가 보지 않았기에 실상은 모른다. 속이 진실하다면 겉이 어떤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하지만 왠지 여전히 그 속에 들어가 보기가 싫다.


차라리 다 허물어 버리고 한옥 스타일로 지으면 어떨지 공상만 할 뿐, 이건 무슨 민족주의적인 관점이기보다 우리 삶에 도움되는 존재론적 예술론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그저 서울역 광장에 우뚝 선 최첨단 한식 건축물을 한번쯤 상상해 보라고 권할 뿐이다.

서울역 따위보다 더 특이한 인간이 있다. 서울역 주변엔 동자동, 후암동, 갈월동, 남영동 등등이 늘어섰다. 그 이상스러운 사람은 역에서 가까운 동네에 자주 나타났지만 때때론 남대문시장과 명동에도 출몰하곤 했다.  

그자는 하숙생들 사이에 ‘붉은 괴인’이라 불렸다. 늘 붉은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옷뿐만이 아니었다. 깊이 눌러쓴 모자, 선글라스, 입마개, 가죽장갑, 가방(또는 배낭), 양말, 반질반질 윤기 흐르는 구두 등 모두가 붉은 색이었다. 마치 붉은 색깔에 미치고 환장한 광인 같았다. 그나마 모자 옆으로 살짝 삐져나온 은발과 핑크빛 손수건이 대비적으로 약간 로맨틱한 기색을 풍기긴 했다. 

그 붉은 신사는 가방 속인지 주머니 속인지 늘 워크맨을 지닌 채 경쾌한 대중가요를 흘려내며 재빨리 걸어다녔다. 희한할 정도가 아니라 기괴스러운 기분이 들 정도였다. 대체 왜 저러는지 궁금하지만 섣불리 물어볼 수도 없는 괴상스러운 존재.

어찌 보면 빨갱이, 혹은 빨갱이를 물리치려는 용사 같기도 했고, 달리 보면 일편단심으로 소위 적극적 사고방식을 수행하는 자기계발(성공학)의 사도 같기도 했다.

새로운 하숙집으로 옮겨온 지도 한 달쯤 지났다. 그날 피 장군 일가와 작별을 한 우리는 찬 바람에 떠밀리듯이 후암동 시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쪽방들이 밀집한 구역을 지날 때였다. 

“하숙을 하기보다는 저런 데다 방을 하나 얻어설랑 호젓하게 사는 게 어떨까?”


피에로 사내가 중얼거렸다. 낡고 지저분한 건물 한 귀퉁이의 양지쪽에 웅크려 앉아 손을 달달 떨며 꽁초를 피우고 있는 늙수그레한 사내를 흘끔 곁눈질하면서. 찢어진 삼디다스 슬리퍼를 대충 꿴 더러운 그의 발 옆에는 빈 소주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초췌한 인상이 노르스름하고도 창백해서 현실의 인간 같지가 않고 무슨 빈자의 유령 같았다. 

나는 대답 없이 내처 걸어 아스팔트 길을 건넜다. 피에로 사내도 꼭 그럴 마음으로 내뱉은 말은 아니었던지 그냥 절뚝절뚝 따라왔다. 가파른 시멘트 계단 앞에서 내가 말했었다. 

“이쯤에서 결정을 하시죠. 저는 아랫동네는 시끄러워서 싫어 저 위쪽으로 올라가 보렵니다만….” 

서울역 주변 출몰하는 노신사 정체는?
혹시 빨갱이? 빨갱이 잡는 용사 같기도

“흠, 고답적으로 고상하게 살아 보시겠다? 그건 뭐 젊은 형씨의 자유지. 그래, 꼭 여기서 작별을 해야겠다는 건가?”

유감스럽다는 말투로 그가 대꾸했다. 

“아니, 꼭 그러겠다는 게 아니라… 남산 기슭에 있는 도서관도 좀 활용해야겠고… 아무래도 고지대는 선생께 좀 불편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러지 마슈. 나도 아직 마흔이 안 된 청춘이오. 아이 캔 두! 마음만 먹으면 내가 형씨보다 더 신속히 등정할 수 있소. 괜히 기분 나쁘게스리 그래.” 

마흔 전 청춘이라는 건 입에 발린 허풍이겠지만 기백만은 가상하여 나는 그와 동반 등정을 하기로 했다. 할딱거리며 정상에 오르고 보니 그곳은 바로 해방촌으로 더 잘 알려진 동네였다. 같은 후암동이라도 지나쳐 온 골목길 가에는 웅장하고 고급스러운 저택이 많이 늘어섰는데 위쪽으론 고만고만한 서민 주택이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고답적인 정상이라고는 해도 일단 올라서고 보니 물론 평지였다. 그리고 그곳엔 큰 대입 전문 학원이 하나 자리 잡은 탓인지 젊은 남녀들의 왕래가 많았다. 

게임방, 옷가게, 구두방, 식당, 오프집 등도 줄느런했다. 우리는 어느 식당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던 중 그곳이 하숙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낡은 회색 건물의 1층이 식당이었고 지하는 노래방 그리고 2층과 3층에 하숙생들이 깃들어 사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옥상에도 방이 하나 있었고 그곳엔 어떤 괴상한 노인이 점집을 차려 놓고 거주했다. 


우리는 즉각 그곳, 즉 무지개 식당에 둥지를 틀기로 결정하여 여주인으로부터 방을 배정받았다. 일단 식당 하숙의 주인장부터 소개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 50대 초반의 억척 여장부인 그는 맺고 끊는 게 칼 같았지만 속정은 많았다.

집안이 너무 가난했기에 의무 교육인 중학 과정도 마치지 못한 채 사회 속으로 내던져졌다고 한다. 그 후 봉제 공장 직공과 식당 종업원 등등을 거쳐 손가락을 하나 잃곤 붕어빵을 구워 팔다가 조그마한 천막 분식집을 차렸다. 그 희망집에선 떡볶이, 순대, 김밥, 라면, 만두 따윌 팔았는데 맛있고 값이 싸 손님이 몰렸다.

얼마 뒤부터는 칼국수, 냉면, 가정식 백반까지 메뉴에 추가했다. 그로부터 10여년 동안 같은 맛, 같은 가격으로 초심 잊지 않고 장사를 이어 나간 끝에 무지개 식당을 차리게 된 것이었다. 

여주인은 독신이 아니었고 남자가 있었다. 떠돌이처럼 문득 왔다가 훌쩍 떠나곤 했다.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풍모였다. 그런데도 꽤 미남이었다. 여주인은 지청구를 하면서도, 요즘은 그나마 예전에 비해 자주 낯짝을 내민다면 웃곤 했다.

혹 하숙인 중에 누가 그 방랑객을 폄하하거나 비웃기라도 하면 설마 쫓아내진 않을지언정 은근히 눈총을 쏘곤 반찬을 덜 주든지 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많지 않았다. 

입에 발린 허풍


무지개 식당에서는 식권을 발매했다. 무지개 빛깔이 얼핏 들어간 그 조그만 종이쪽 한 장이면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여주인의 희망처럼 먹은 사람들이 과연 무지갯빛 꿈과 목표를 품은 채 줄곧 달려갔는지는 모른다. 이용자들은 각자 눈앞의 이익에 따라 선택하는 경향이 짙었다. 이를테면 현금파, 식권파, 완불파로 나눠진다. 인간도 그렇지만 사물도 각각 장단점이 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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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