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가는’ SM벡셀 직원 탄압 의혹

“내보내려 안달” vs “기업 흠집내기”
2년 동안 질질 끈 진실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국내 건전지 시장 점유율 2위 기업인 SM벡셀. 2020년 한 직원이 퇴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부당 징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정신질환까지 앓은 직원. 이 직원은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했다”고 주장한다. 회사 측은 모든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해명이 석연치 않다. 2년을 끌어온 양측의 진실공방은 이제 그 종착역만을 남겨뒀다.

직원 A씨가 SM벡셀에 입사한 때는 2019년 8월. 그는 정규직 입사 약 7개월 만에 처음으로 사직을 강요받았다. 명확한 이유도 없이, 집요한 사직 요구는 8번이나 반복됐다. A씨는 “2020년 3월16일, B 영업본부장(이하 B 본부장)이 나를 부르더니 ‘퇴사해달라’고 요구했다”며 “사직 요구가 반복될 때마다 그 이유를 물었지만,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뜬금없이
사직 강요

이어 “인사총무팀에게 사직 요구의 이유를 물었더니 ‘전혀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B 본부장은 내가 인사팀에게 문의한 사실을 알고 그것까지 질책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는 2020년 3월26일 이뤄진 A씨와 B 본부장의 면담 녹취를 입수했다. A씨는 B 본부장에게 사직 이유를 계속 물었다. 하지만 B 본부장은 30분간 이어진 대화에서 “회사가 준비가 안 됐다”거나 “너 정말 모르냐”는 등 두루뭉술한 답변만 반복했다.

근로기준법 제23조와 제27조에 따르면 사용자(회사)는 근로자를 해고할 때 정당한 이유를 제시해야 하고, 그 이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제시해야 한다. 


법적 요건도 갖추지 못한 일방적인 요구. A씨가 이에 응해줄 이유는 없었다. A씨 증언에 따르면 그는 보름 동안 사직 요구를 네 번 받았고, 이를 모두 거절했다.

결국 B 본부장이 칼을 빼들었다. B 본부장은 A씨가 네 번째 사직 요구를 거절한 직후, 다른 직원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A씨에게 “야, 어디가!”라고 소리치거나 “내가 참 대단한 직원 하나 뽑았네” 등의 비꼬는 말을 일삼았다.

얼마 뒤에는 A씨에게 ▲일일업무 작성 ▲법인카드 반납 ▲외근 통제 ▲모든 업무의 최초 계획과 지연 사유 보고 ▲기존 업무 배제 후 본인의 업무역량 보고 등 각종 지시를 내렸다.

A씨는 이를 두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비정상적이고 부당한 지시였다”며 “사직 요구를 거절한 뒤 이런 지시가 쏟아진 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인가”라고 꼬집었다.

A씨에 대한 압박은 계속됐다. 어느 날에는 A씨 자리가 B 본부장 바로 앞으로 옮겨졌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는 B 본부장이 전 직원을 소집한 자리에서 A씨를 일으켜 세운 뒤 “A씨 입사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과정을 조사하겠다”며 “입사 과정에서의 허위사실·상품 출시 및 인증과 관련된 문제 등을 조사할 것”이라고 했다. 

A씨는 “구체적인 사실 확인도 없이 공식석상에서 사람을 죄인 취급했다. 내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고 털어놨다.

퇴사 요구 거부하자 부당 징계 주장
사측 “사실과 달라…법적 대응 고려”


이윽고 휴대폰 요금, 자동차 보험료 등 영업사원 수당 지급도 끊겼다. 회사는 근로계약서를 다시 작성하면서 비급여액을 몰래 삭감하려다 A씨에게 사전 적발되기도 했다.

갖은 괴롭힘이 이어지는 동안, A씨는 큰 정신적 고통으로 병원을 드나들게 됐다. 약을 먹지 않고서는 잠들 수조차 없었다.

이후로도 ‘A씨 죽이기’는 계속 이어졌다. 2020년 6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A씨는 적극적인 진술과 소명서 제출로 대응했지만, 결국 중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B 본부장을 비롯해 그를 괴롭혔던 여러 사람들이 인사위원·참고인 등으로 속속 참여한 가운데, A씨에게는 ‘무급 정직 3개월’이라는 처벌이 내려졌다.

A씨는 재심을 요구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10월경 복직한 A씨는 곧바로 인사발령됐다. 하루 1~2건의 고객 불만 접수를 처리하고, 일이 없을 때는 모니터만 보고 있는 한직에 배치됐다. 정직 전의 업무와 연관성도 없었다. A씨가 항의하자 “업무가 없으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없지 않느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A씨는 “B 본부장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을뿐더러, 내 성과가 적힌 업무평가 결재를 반려했다”며 “복직 이후로도 몸과 마음 모두 힘든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그의 몸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급기야 호흡곤란 증세와 함께 실신했고,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다. A씨는 사흘간 입원해 집중 약물치료를 받았다.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이어가기가 힘든 상황에서 그는 재택근무를 요청했다.

갑자기
정직 처분

A씨의 이 같은 요청이 받아들여질 리 만무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당지시·부당조치·차별대우를 받았는가. 개인적인 스트레스로 재택근무를 요청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A씨는 피해 사실 중 일부를 열거한 답신을 보냈지만 묵살당했다.

재택근무를 요청한 바로 다음 날 ‘코로나 유행’을 이유로 전 직원의 절반 이상이 재택근무를 지시받았지만, 여기서도 A씨는 재택근무 대상에 들지 못했다.

사내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한 그는 벡셀을 인수한 SM그룹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지난해 그룹 건의함·이메일 등을 통해 그룹 측에 피해 사실을 꾸준히 알렸다. 한때 조사가 잠시 이뤄지긴 했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내사종결됐다.

A씨는 “그룹 감사실 또한 벡셀의 비위행위를 감출 뿐, 도움을 주지 않았다”며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다는 생각에 힘들고 허탈했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A씨는 지난해 9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적응장애’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회사는 A씨의 병원 진료·유급휴가·병가 등을 반려했다. 오히려 A씨에게 결근을 지시했고, 그가 병원 진료를 위해 결근하자 주휴수당을 차감했다.

진료를 위한 무급휴가·결근은 계속 이어졌고, 그만큼 급여가 깎였다. 심할 때는 한 달에 70만원씩 공제되기도 했다. 반대로 A씨가 감당해야 할 병원비는 계속 불어났다. 그가 스스로 지불한 병원비는 이미 500만원을 넘어섰다. 지원금이라고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제공한 80만원뿐이었다. 

지노위·복지공단이 피해자 손들자
“당연히 근로자 편들 것” 재심 포기

회사에서 생긴 병을 치료하겠다는데, 회사에서는 돈을 지원해주긴커녕 오히려 줄 돈도 깎은 셈이다.

이 와중에도 B 본부장은 사직을 종용했다. 견디다 못한 A씨는 지난 1월부터 6개월간 무급 병가를 쓰고,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A씨는 “어떻게 되든지 오는 7월이면 회사에 복귀해야 한다”며 “회사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대충 예상이 되는데, 그걸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좀 힘들 것 같긴 하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A씨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SM그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A씨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수용하려 했지만, 과도한 요구 조건을 내걸어 수용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A씨에게 이를 통보하자 그때부터 산업재해 신청·재택근무 요청·공론화 위협 등을 이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 쪽(SM벡셀) 임원들이 제기한 근무태만·업무 불이행 등 여러 문제점 중 하나만 갖고도 얼마든지 해고 사유가 되는 것 아니냐”며 “따돌림을 당한 것, 공개적으로 면박을 준 것 등은 개인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A씨의 ‘징계결의서’에 따르면 SM벡셀 측이 주장하는 A씨의 잘못은 ▲상사 업무지시 불이행 ▲업무상 과실로 회사 손실 야기 ▲개인사업 영위 ▲허위 보고 ▲동료 간 공포감 조성 등 총 5가지다. 

하지만 회사 측의 이 같은 주장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여럿 존재한다. 일단 대부분의 주장에 ‘증거’가 부족하다. A씨는 피해사실 입증을 위해 각종 녹취와 문건·회사 이메일 등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사측은 A씨의 근무태도를 지적하는 일부 직원들의 진술서 이외에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자료가 마땅치 않다.

직장 내 
괴롭힘?

이와 관련해 SM그룹 관계자는 “우리가 증명을 잘 못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직원들을 질책하면서 매번 녹음을 하겠냐”고 반문했다.

사측 주장 중 일부가 명확하게 틀린 점도 확인됐다. 사건의 기본적인 선후 관계를 무시한 결과다. 앞서 사측은 “A씨의 요구를 거절하자 A씨가 산업재해(산재)를 신청하고 재택근무를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우선 B 본부장이 A씨를 불러 “6개월치 급여를 줄 테니 사건을 정리하라”고 제안하고, 다시 A씨가 역제안을 하다 협상이 결렬된 날은 2020년12월22일로 확인된다. 당일 관련 내용을 주고받은 메일이 남아있다. 사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산재 신청과 재택근무 요구는 이날 이후에 이뤄졌어야 한다.

하지만 A씨는 이로부터 5개월 전인 2020년 7월 말에 이미 산재 신청을 마쳤다. 재택근무 요청도 이보다 앞선 2020년12월10일에 있었던 일이다.

‘요구’에 대한 이견도 있었다. A씨는 “회사에서 ‘몇 개월치 급여를 줄 테니 나가달라’는 식으로 계속 말하길래 홧김에 조건을 올려쳤다”며 “나갈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런데 이를 가지고 돈을 이유로 ‘회사를 협박했다’고 주장한다. 말도 안 된다”고 항변했다.

결정적으로 지방노동위원회, 근로복지공단 등에서도 A씨의 주장을 상당 부분 인정했다. 이들은 사측의 주장도 검토했지만, 대부분 근거가 부족해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2020년 10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는 A씨에게 내려진 정직 3개월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지노위는 사측에 “징계처분을 취소하고, A씨에게 3개월 치 임금을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적응장애’ 업무상 질병 인정
회사는 진료·휴가·병가 반려

판정서에 따르면, 당시 사측이 제시했던 세부 징계 사유는 8가지였다. 지노위는 이 중 한 가지만을 정당한 징계사유로 보고, 나머지 7가지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마저도 일일업무보고·주간업무보고 지시 불이행은 인정되지 않았고, 월간업무보고 지시 불이행만 인정된 것이다.

지난해 9월 근로복지공단 산하 서울업무상질병위원회(이하 ‘위원회’)는 판정서에서 A씨 주장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위원회는 “퇴직 종용 과정에서 각종 부당행위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반박하는)회사 측 주장은 사실로 판단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복직 후 인사발령을 두고는 “사측은 징벌적 배치 전환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신청인 1인이 근무하는 부서로 업무 배제에 가까운 전환으로 생각된다”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상기된 내용으로 미뤄볼 때 회사와의 갈등 과정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신청인에게 ‘고도’의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부연했다.

사측에 이 같은 판정 결과에 대해 문의했다. SM그룹 관계자는 “지노위에서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기업 편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 편을 들어주는 게 맞는 것”이라고 답했다. 사측은 판정에 대한 별도의 재심 요청을 하지 않았다.

각종 판정이 있었던 후로도 회사의 ‘탄압’은 계속돼왔다. A씨는 최후의 수단으로 각종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다. 지난 2년간 부당 징계를 넘어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다퉈온 양측의 대립을 결판낼 마지막 ‘한 방’이다.

A씨는 “이미 벌어진 부당노동행위를 부정하며 근로자에게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등 사용자 의도가 아주 불순하다”며 “판정이 아닌 판결이 나와도 이렇게 발뺌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측의 다툼
마지막 승부 

한편 SM그룹 관계자는 “회사에 ‘소송하겠다’고 통보했으면 그대로 하면 될 일이다. 계속 언론에 허위사실을 퍼트리는 A씨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며 “아직 ‘팩트’도 없고, 쌍방의 의견이 다른 상황에서 보도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유감이다. 결국 ‘대기업 흠집내기’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날을 세웠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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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