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울리는' 근생빌라 잔혹사 

눈 뜨고 코 베이는 ‘불량 주택’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근생빌라는 사무실이나 상가 등의 근린생활시설을 주택으로 불법 개조한 건축물을 말한다. 애초에 주택으로 지어진 게 아니라 각종 생활 여건이 부족한 ‘불량 주택’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따른 관련 규제가 날로 강화되고 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 수는 계속 늘어나는 실정이다. 가진 자 배 불리고, 덜 가진 자 울리는 근생빌라에 얽힌 기막힌 사연들을 톺아봤다. 

이른바 ‘가진 자’들 입장에서 근생빌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부동산 매물이다. 일반주택과 외관상·등기상으로는 구분이 어려우면서도 각종 규제는 적어 개발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건축주들은 주택 대신 근린생활시설(이하 근생)로 허가받아 층수·주차장 등의 제한을 비껴간다. 다가구주택은 3층 이하, 다세대주택·연립주택은 4층 이하로 층수 제한이 걸려있는 것에 반해 근생은 딱히 제한이 없다.

몰래 건축
폭탄 돌리기

주차장 면적도 줄일 수 있다. 서울시 부설주차장 설치 기준에 따르면 다가구주택 및 공동주택은 면적 기준에 따라 가구당 0.5대 이상의 주차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근생은 시설 면적 134㎡당 1대의 주차공간만 설치하면 된다. 면적에 따라 필요 주차공간을 2~3배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근생 기준에 맞춰 지은 건물에 몰래 취사시설만 달아주면 쉽게 근생빌라를 만들 수 있다. 주택으로 등록돼있지 않아도 신청만 하면 가정용 가스와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일반주택을 근생으로 자진 변경하는 일도 빈번하다.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강화에 주택 보유 부담이 커진 것이 주된 원인이다.


정부는 2020년 ‘7·10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다주택자의 주택 취득세와 양도세 부담을 키우는 내용이 핵심이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까지 강화되면서 시장에서는 다주택 매입을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결국 ‘잔금 전 근생 용도변경’이라는 꼼수가 등장했다. 매도인은 1가구 1주택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면 주택으로 매각해야 하고, 매수인은 근생으로 취득해야 취득세 중과를 모면할 수 있어서다.

주로 매수자가 용도변경 약정 특약을 걸고 계약하는 수법이 활용된다. 매수인으로서는 대출 규제와 종부세 부담 등도 줄일 수 있다.

근생빌라는 종부세와 주택 대출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이 용도변경 주요 대상이다. 이들은 주로 단일 소유 형태여서 용도변경 허가를 위한 개조 절차가 비교적 간단하다. 다세대주택도 용도변경이 가능하지만 모든 소유주의 동의가 전제 조건이라 과정이 복잡해진다.

실제로 2020년에 단독주택 용도변경이 급증한 부분이 눈에 띈다. 국토교통부 건축행정시스템 ‘세움터’ 기록에 따르면 2020년 단독주택 용도변경 건수는 1만272건이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6000~7000건(5년 평균 6754건)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근생 용도변경도 7186건을 기록하며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서울시 근생·다가구주택 용도변경 인허가 증가세도 가파르다. 세움터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 25개 자치구 중 금천구·도봉구를 제외한 23개 구에서 용도변경 사례가 증가했다.

특히 마포구(133.2%)·강동구(115.4%)·동작구(109%)·성동구(105%)·관악구(100.5%) 등은 용도변경 건수가 2배 이상 늘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이전 대비 증가분 대다수가 다주택 보유 회피에 활용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건축법은 근생의 용도를 소매점·헬스장·병원·카페 등 상가와 생활편의시설로 한정해놨다. 근생빌라가 온전한 ‘주택’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이유다. 용도변경 역시 어렵다. 근생보다 주택 건축 조건이 더 까다롭기 때문이다. 구조상 문제로 소방법 등 기타 규제에 발목잡힐 가능성도 크다. 

알고도 짓고 사고…규제 회피 꼼수
모르고 샀다간 이행강제금 ‘날벼락’

결국 근생빌라는 일종의 주택이 아니라, 용도가 허위 신고된 불법 개조 건축물일 뿐이다. 존재 자체가 불법이다 보니 지자체에 적발되면 ‘이행강제금’ 등의 불이익이 뒤따른다. 지자체는 불법 개조된 건축물을 원상복구할 때까지 최대 1000만원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연 2회 부과한다.

근생빌라의 경우 도시가스·보일러·싱크대 등을 모두 철거해야 원상복구가 인정된다. 

하지만 그 실효성은 미지수다. 적발률과 원상복구 비율이 턱없이 낮은 탓이다. 아직도 소유주들 사이에서는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서울시는 지난해 근생빌라 877곳을 적발해 이행강제금 62억7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날로 치솟는 근생빌라 증가세에 비하면 부족한 수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는 지난 2년간 근생빌라 800여곳을 적발했다. 각 시·군은 건물주에게 시정명령(원상복구)을 내렸지만, 이를 이행한 곳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83곳뿐인 것으로 파악됐다.

“잡아 놓은 토끼도 제대로 못 몬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지자체들은 근생빌라 단속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한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단속 인력이나 시간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며 “현재 적발 사례 중 상당수는 주차시설 부족·화재 안전점검 등의 다른 민원을 처리하다 얼떨결에 이뤄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단속도 한계가 명확하다”며 “단속철이 끝나면 철거한 취사시설들을 다시 설치하는 경우가 빈번한데, 그런 경우를 일일이 잡아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불법은 네가
피해는 내가

근생빌라는 계속 늘어나는 반면, 단속은 지지부진하게 이뤄지다 보니 부작용은 애먼 사람들을 향한다. 해당 건물이 근생빌라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선의의 매입자·세입자들이 근생빌라에 가해지는 각종 규제와 피해를 떠안고 있다.


피해자들은 근생빌라라는 생소한 개념과 소유자들의 의도적 속임수가 피해를 키웠다고 입을 모은다.

인천에 사는 정모씨(35·여)가 신혼집을 매입한 것은 지난 7년 전. 정씨는 거주 5년째가 돼서야 이 집이 근생빌라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씨는 “2년 전 구청에서 날아온 공문을 통해 이 집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며 “집을 구할 때부터 공문을 받을 때까지 공인중개사·분양사무소 등 그 누구도 이 집이 근생빌라라고 말해주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정씨의 집이 위치한 건물은 총 8층이다. 정씨 부부는 7층 집을 눈여겨봤지만, 결국 4층에 입주했다. 분양사무소의 집요하고도 끈질긴 설득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건물의 1층부터 4층까지는 근생, 5층부터 8층까지는 다세대주택 용도로 허가가 떨어졌다.

정씨는 “분양사무소가 4층 입주를 줄기차게 권유했다”며 “자기들이 각종 부대비용과 세금들을 부담해주겠다고 나섰다”고 말했다.

당시 분양사무소가 실제로 세금을 대신 내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근생빌라는 양도세·취득세 중과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씨는 분양사무소가 원래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을 대신 내주겠다고 속이면서 근생빌라 매입을 유도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정씨가 입주한 지 5년이 지나서야 불법 개조를 인지한 구청은 건축주와 분양사무소 대신 정씨에게 이행강제금 납부를 명령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선의의 피해자임을 입증하자, 이행강제금 납부는 잠정 중단됐다. 그래도 정씨는 여전히 가슴을 졸이는 중이다. 언제 납부 명령이 다시 떨어질지 몰라서다.


정씨는 발이 묶였다. 이사를 계획하고 집을 내놓으려 했지만 받아주는 부동산이 없다. 정씨가 매입할 때와는 다르게 등기부등본에 불법 개조된 상태라는 의미의 ‘빨간 줄’이 그어진 게 문제였다. 정씨는 졸지에 집을 팔려다 상가를 팔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도와준다며…
함흥차사

근생 용도로 재수선해 ‘불법’ 딱지를 떼는 것 역시 고스란히 정씨 몫이 됐다. 

이외에도 근생빌라 거주자들은 갖은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취약한 안전장치와 부족한 생활시설은 기본, 1금융권에서는 주택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세입자들은 전세금보증보험에 들 수 없어서 보증금을 위협받는다. 하다 못해 월세 세액 공제마저도 신청할 수 없다. 근생빌라는 법적으로 주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씨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이런 일을 겪기 전에는 근생빌라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등본을 확인했을 때도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며 “우리는 속은 죄밖에 없는데,(근생빌라) 지은 사람·속인 사람 제쳐놓고 왜 우리에게 책임지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억울해했다.

정씨 말대로 등기부등본만 보고는 근생빌라와 일반주택을 구별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건축부대장에 기재된 용도나 세금 납부내역 등을 꼼꼼히 확인해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알고도 당한 사람’은 많이 없다는 것.

피해자는 대부분 정씨처럼 이행강제금 납부 공문을 받는 순간 근생빌라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다.

근생빌라 피해가 속출하면서 한때 정치권에서도 구제 필요성이 논의됐다. 국회에서 구제 방안을 마련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해가 두 번이나 바뀐 지금, 아직 달라진 것은 없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는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 8건 올라왔다. 그중 근생빌라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과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2건이다.

두 법안 모두 근생빌라 등 불법 건축물을 떠안은 선의의 피해자들을 구제하고자 1년간 한시적으로 용도변경을 허용해주는 내용이 골자다.

여야 의견도 맞아떨어졌다. 피해자들은 법안 처리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 기대했다. 의외의 복병은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였다. 국토부가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법안 처리는 답보 상태에 빠졌다.

등기 봐도 구분 못해
적발되면 ‘빨간줄’

현재 두 법안은 소관위원회에 접수만 된 상태다. 국토교통위원장실에 법안 처리 계획에 대해 문의해봤더니 “정해진 것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토부는 피해자들의 반대 의견 철회 요구에 난색을 보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안 제·개정은 입법부의 고유 권한이므로, 이쪽에서 구체적 시행 일정이나 가부 여부 등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해당 법안에 우려를 표명한 것은 형평성·주거 안전 등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전했다.

그는 “다른 불법 개조 유형들은 그대로 금지하면서 근생빌라만 양성화한다면 형평성 문제가 대두될 것”이라며 “다른 불법 개조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도 많다. 간단히 여길 문제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이 관계자는 “근생빌라는 애초에 주거 목적으로 지은 건축물이 아니라서 주거 여건이 비교적 열악하고, 화재에 취약한 경향을 보인다”며 “섣불리 양성화했다가 불량 주택들이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것을 국가가 방관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구제가 미진하다’는 비판에는 “현재 관계 법률·법령에 근거해 구제안을 마련 중”이라며 “선의의 피해자와 악용자를 구분해 이행강제금을 가중·감경하는 조처를 내린 상태”라고 답했다.

이 같은 국토부 해명에 피해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오히려 근생빌라 피해자가 차별받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토부는 선의의 피해자들을 구제할 목적으로 지난해 7월부로 생활형 숙박시설의 주택 용도변경을 허용했다. 반면 근생빌라에 양성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피해자들은 국토부가 근생빌라에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고 비판한다.

지자체도, 정부도 지켜주지 못한 집. 피해자들은 그곳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네이버 카페 ‘다세대 근생빌라 피해자 모임’에서는 4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모여들었다. 이들은 민원 제기·탄원서 제출 등 단체행동을 지속하고 있다. 우연히 카페지기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우리는 그저 어렵게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온전히 살고 싶을 뿐”이라며 “가진 것 많은 사람들이 근생빌라로 이런저런 일을 벌이고 다닌다는 사실은 들었다. 잘못된 일이다. 마땅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외로운 싸움
포기 못한다

이어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대부분이 평생을 열심히 노력해 집 한 채 겨우 마련한 서민들”이라며 “불법 제품을 유통시키면 제조자가 처벌받는다. 우리가 아니라 불법 건축자들을 처벌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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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