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울리는' 근생빌라 잔혹사 

눈 뜨고 코 베이는 ‘불량 주택’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근생빌라는 사무실이나 상가 등의 근린생활시설을 주택으로 불법 개조한 건축물을 말한다. 애초에 주택으로 지어진 게 아니라 각종 생활 여건이 부족한 ‘불량 주택’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따른 관련 규제가 날로 강화되고 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 수는 계속 늘어나는 실정이다. 가진 자 배 불리고, 덜 가진 자 울리는 근생빌라에 얽힌 기막힌 사연들을 톺아봤다. 

이른바 ‘가진 자’들 입장에서 근생빌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부동산 매물이다. 일반주택과 외관상·등기상으로는 구분이 어려우면서도 각종 규제는 적어 개발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건축주들은 주택 대신 근린생활시설(이하 근생)로 허가받아 층수·주차장 등의 제한을 비껴간다. 다가구주택은 3층 이하, 다세대주택·연립주택은 4층 이하로 층수 제한이 걸려있는 것에 반해 근생은 딱히 제한이 없다.

몰래 건축
폭탄 돌리기

주차장 면적도 줄일 수 있다. 서울시 부설주차장 설치 기준에 따르면 다가구주택 및 공동주택은 면적 기준에 따라 가구당 0.5대 이상의 주차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근생은 시설 면적 134㎡당 1대의 주차공간만 설치하면 된다. 면적에 따라 필요 주차공간을 2~3배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근생 기준에 맞춰 지은 건물에 몰래 취사시설만 달아주면 쉽게 근생빌라를 만들 수 있다. 주택으로 등록돼있지 않아도 신청만 하면 가정용 가스와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일반주택을 근생으로 자진 변경하는 일도 빈번하다.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강화에 주택 보유 부담이 커진 것이 주된 원인이다.


정부는 2020년 ‘7·10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다주택자의 주택 취득세와 양도세 부담을 키우는 내용이 핵심이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까지 강화되면서 시장에서는 다주택 매입을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결국 ‘잔금 전 근생 용도변경’이라는 꼼수가 등장했다. 매도인은 1가구 1주택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면 주택으로 매각해야 하고, 매수인은 근생으로 취득해야 취득세 중과를 모면할 수 있어서다.

주로 매수자가 용도변경 약정 특약을 걸고 계약하는 수법이 활용된다. 매수인으로서는 대출 규제와 종부세 부담 등도 줄일 수 있다.

근생빌라는 종부세와 주택 대출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이 용도변경 주요 대상이다. 이들은 주로 단일 소유 형태여서 용도변경 허가를 위한 개조 절차가 비교적 간단하다. 다세대주택도 용도변경이 가능하지만 모든 소유주의 동의가 전제 조건이라 과정이 복잡해진다.

실제로 2020년에 단독주택 용도변경이 급증한 부분이 눈에 띈다. 국토교통부 건축행정시스템 ‘세움터’ 기록에 따르면 2020년 단독주택 용도변경 건수는 1만272건이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6000~7000건(5년 평균 6754건)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근생 용도변경도 7186건을 기록하며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서울시 근생·다가구주택 용도변경 인허가 증가세도 가파르다. 세움터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 25개 자치구 중 금천구·도봉구를 제외한 23개 구에서 용도변경 사례가 증가했다.

특히 마포구(133.2%)·강동구(115.4%)·동작구(109%)·성동구(105%)·관악구(100.5%) 등은 용도변경 건수가 2배 이상 늘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이전 대비 증가분 대다수가 다주택 보유 회피에 활용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건축법은 근생의 용도를 소매점·헬스장·병원·카페 등 상가와 생활편의시설로 한정해놨다. 근생빌라가 온전한 ‘주택’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이유다. 용도변경 역시 어렵다. 근생보다 주택 건축 조건이 더 까다롭기 때문이다. 구조상 문제로 소방법 등 기타 규제에 발목잡힐 가능성도 크다. 

알고도 짓고 사고…규제 회피 꼼수
모르고 샀다간 이행강제금 ‘날벼락’

결국 근생빌라는 일종의 주택이 아니라, 용도가 허위 신고된 불법 개조 건축물일 뿐이다. 존재 자체가 불법이다 보니 지자체에 적발되면 ‘이행강제금’ 등의 불이익이 뒤따른다. 지자체는 불법 개조된 건축물을 원상복구할 때까지 최대 1000만원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연 2회 부과한다.

근생빌라의 경우 도시가스·보일러·싱크대 등을 모두 철거해야 원상복구가 인정된다. 

하지만 그 실효성은 미지수다. 적발률과 원상복구 비율이 턱없이 낮은 탓이다. 아직도 소유주들 사이에서는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서울시는 지난해 근생빌라 877곳을 적발해 이행강제금 62억7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날로 치솟는 근생빌라 증가세에 비하면 부족한 수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는 지난 2년간 근생빌라 800여곳을 적발했다. 각 시·군은 건물주에게 시정명령(원상복구)을 내렸지만, 이를 이행한 곳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83곳뿐인 것으로 파악됐다.

“잡아 놓은 토끼도 제대로 못 몬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지자체들은 근생빌라 단속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한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단속 인력이나 시간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며 “현재 적발 사례 중 상당수는 주차시설 부족·화재 안전점검 등의 다른 민원을 처리하다 얼떨결에 이뤄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단속도 한계가 명확하다”며 “단속철이 끝나면 철거한 취사시설들을 다시 설치하는 경우가 빈번한데, 그런 경우를 일일이 잡아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불법은 네가
피해는 내가

근생빌라는 계속 늘어나는 반면, 단속은 지지부진하게 이뤄지다 보니 부작용은 애먼 사람들을 향한다. 해당 건물이 근생빌라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선의의 매입자·세입자들이 근생빌라에 가해지는 각종 규제와 피해를 떠안고 있다.


피해자들은 근생빌라라는 생소한 개념과 소유자들의 의도적 속임수가 피해를 키웠다고 입을 모은다.

인천에 사는 정모씨(35·여)가 신혼집을 매입한 것은 지난 7년 전. 정씨는 거주 5년째가 돼서야 이 집이 근생빌라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씨는 “2년 전 구청에서 날아온 공문을 통해 이 집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며 “집을 구할 때부터 공문을 받을 때까지 공인중개사·분양사무소 등 그 누구도 이 집이 근생빌라라고 말해주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정씨의 집이 위치한 건물은 총 8층이다. 정씨 부부는 7층 집을 눈여겨봤지만, 결국 4층에 입주했다. 분양사무소의 집요하고도 끈질긴 설득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건물의 1층부터 4층까지는 근생, 5층부터 8층까지는 다세대주택 용도로 허가가 떨어졌다.

정씨는 “분양사무소가 4층 입주를 줄기차게 권유했다”며 “자기들이 각종 부대비용과 세금들을 부담해주겠다고 나섰다”고 말했다.

당시 분양사무소가 실제로 세금을 대신 내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근생빌라는 양도세·취득세 중과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씨는 분양사무소가 원래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을 대신 내주겠다고 속이면서 근생빌라 매입을 유도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정씨가 입주한 지 5년이 지나서야 불법 개조를 인지한 구청은 건축주와 분양사무소 대신 정씨에게 이행강제금 납부를 명령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선의의 피해자임을 입증하자, 이행강제금 납부는 잠정 중단됐다. 그래도 정씨는 여전히 가슴을 졸이는 중이다. 언제 납부 명령이 다시 떨어질지 몰라서다.


정씨는 발이 묶였다. 이사를 계획하고 집을 내놓으려 했지만 받아주는 부동산이 없다. 정씨가 매입할 때와는 다르게 등기부등본에 불법 개조된 상태라는 의미의 ‘빨간 줄’이 그어진 게 문제였다. 정씨는 졸지에 집을 팔려다 상가를 팔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도와준다며…
함흥차사

근생 용도로 재수선해 ‘불법’ 딱지를 떼는 것 역시 고스란히 정씨 몫이 됐다. 

이외에도 근생빌라 거주자들은 갖은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취약한 안전장치와 부족한 생활시설은 기본, 1금융권에서는 주택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세입자들은 전세금보증보험에 들 수 없어서 보증금을 위협받는다. 하다 못해 월세 세액 공제마저도 신청할 수 없다. 근생빌라는 법적으로 주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씨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이런 일을 겪기 전에는 근생빌라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등본을 확인했을 때도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며 “우리는 속은 죄밖에 없는데,(근생빌라) 지은 사람·속인 사람 제쳐놓고 왜 우리에게 책임지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억울해했다.

정씨 말대로 등기부등본만 보고는 근생빌라와 일반주택을 구별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건축부대장에 기재된 용도나 세금 납부내역 등을 꼼꼼히 확인해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알고도 당한 사람’은 많이 없다는 것.

피해자는 대부분 정씨처럼 이행강제금 납부 공문을 받는 순간 근생빌라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다.

근생빌라 피해가 속출하면서 한때 정치권에서도 구제 필요성이 논의됐다. 국회에서 구제 방안을 마련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해가 두 번이나 바뀐 지금, 아직 달라진 것은 없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는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 8건 올라왔다. 그중 근생빌라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과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2건이다.

두 법안 모두 근생빌라 등 불법 건축물을 떠안은 선의의 피해자들을 구제하고자 1년간 한시적으로 용도변경을 허용해주는 내용이 골자다.

여야 의견도 맞아떨어졌다. 피해자들은 법안 처리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 기대했다. 의외의 복병은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였다. 국토부가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법안 처리는 답보 상태에 빠졌다.

등기 봐도 구분 못해
적발되면 ‘빨간줄’

현재 두 법안은 소관위원회에 접수만 된 상태다. 국토교통위원장실에 법안 처리 계획에 대해 문의해봤더니 “정해진 것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토부는 피해자들의 반대 의견 철회 요구에 난색을 보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안 제·개정은 입법부의 고유 권한이므로, 이쪽에서 구체적 시행 일정이나 가부 여부 등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해당 법안에 우려를 표명한 것은 형평성·주거 안전 등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전했다.

그는 “다른 불법 개조 유형들은 그대로 금지하면서 근생빌라만 양성화한다면 형평성 문제가 대두될 것”이라며 “다른 불법 개조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도 많다. 간단히 여길 문제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이 관계자는 “근생빌라는 애초에 주거 목적으로 지은 건축물이 아니라서 주거 여건이 비교적 열악하고, 화재에 취약한 경향을 보인다”며 “섣불리 양성화했다가 불량 주택들이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것을 국가가 방관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구제가 미진하다’는 비판에는 “현재 관계 법률·법령에 근거해 구제안을 마련 중”이라며 “선의의 피해자와 악용자를 구분해 이행강제금을 가중·감경하는 조처를 내린 상태”라고 답했다.

이 같은 국토부 해명에 피해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오히려 근생빌라 피해자가 차별받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토부는 선의의 피해자들을 구제할 목적으로 지난해 7월부로 생활형 숙박시설의 주택 용도변경을 허용했다. 반면 근생빌라에 양성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피해자들은 국토부가 근생빌라에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고 비판한다.

지자체도, 정부도 지켜주지 못한 집. 피해자들은 그곳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네이버 카페 ‘다세대 근생빌라 피해자 모임’에서는 4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모여들었다. 이들은 민원 제기·탄원서 제출 등 단체행동을 지속하고 있다. 우연히 카페지기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우리는 그저 어렵게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온전히 살고 싶을 뿐”이라며 “가진 것 많은 사람들이 근생빌라로 이런저런 일을 벌이고 다닌다는 사실은 들었다. 잘못된 일이다. 마땅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외로운 싸움
포기 못한다

이어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대부분이 평생을 열심히 노력해 집 한 채 겨우 마련한 서민들”이라며 “불법 제품을 유통시키면 제조자가 처벌받는다. 우리가 아니라 불법 건축자들을 처벌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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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