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울리는' 근생빌라 잔혹사 

눈 뜨고 코 베이는 ‘불량 주택’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근생빌라는 사무실이나 상가 등의 근린생활시설을 주택으로 불법 개조한 건축물을 말한다. 애초에 주택으로 지어진 게 아니라 각종 생활 여건이 부족한 ‘불량 주택’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따른 관련 규제가 날로 강화되고 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 수는 계속 늘어나는 실정이다. 가진 자 배 불리고, 덜 가진 자 울리는 근생빌라에 얽힌 기막힌 사연들을 톺아봤다. 

이른바 ‘가진 자’들 입장에서 근생빌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부동산 매물이다. 일반주택과 외관상·등기상으로는 구분이 어려우면서도 각종 규제는 적어 개발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건축주들은 주택 대신 근린생활시설(이하 근생)로 허가받아 층수·주차장 등의 제한을 비껴간다. 다가구주택은 3층 이하, 다세대주택·연립주택은 4층 이하로 층수 제한이 걸려있는 것에 반해 근생은 딱히 제한이 없다.

몰래 건축
폭탄 돌리기

주차장 면적도 줄일 수 있다. 서울시 부설주차장 설치 기준에 따르면 다가구주택 및 공동주택은 면적 기준에 따라 가구당 0.5대 이상의 주차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근생은 시설 면적 134㎡당 1대의 주차공간만 설치하면 된다. 면적에 따라 필요 주차공간을 2~3배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근생 기준에 맞춰 지은 건물에 몰래 취사시설만 달아주면 쉽게 근생빌라를 만들 수 있다. 주택으로 등록돼있지 않아도 신청만 하면 가정용 가스와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일반주택을 근생으로 자진 변경하는 일도 빈번하다.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강화에 주택 보유 부담이 커진 것이 주된 원인이다.

정부는 2020년 ‘7·10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다주택자의 주택 취득세와 양도세 부담을 키우는 내용이 핵심이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까지 강화되면서 시장에서는 다주택 매입을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결국 ‘잔금 전 근생 용도변경’이라는 꼼수가 등장했다. 매도인은 1가구 1주택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면 주택으로 매각해야 하고, 매수인은 근생으로 취득해야 취득세 중과를 모면할 수 있어서다.

주로 매수자가 용도변경 약정 특약을 걸고 계약하는 수법이 활용된다. 매수인으로서는 대출 규제와 종부세 부담 등도 줄일 수 있다.

근생빌라는 종부세와 주택 대출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이 용도변경 주요 대상이다. 이들은 주로 단일 소유 형태여서 용도변경 허가를 위한 개조 절차가 비교적 간단하다. 다세대주택도 용도변경이 가능하지만 모든 소유주의 동의가 전제 조건이라 과정이 복잡해진다.

실제로 2020년에 단독주택 용도변경이 급증한 부분이 눈에 띈다. 국토교통부 건축행정시스템 ‘세움터’ 기록에 따르면 2020년 단독주택 용도변경 건수는 1만272건이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6000~7000건(5년 평균 6754건)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근생 용도변경도 7186건을 기록하며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서울시 근생·다가구주택 용도변경 인허가 증가세도 가파르다. 세움터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 25개 자치구 중 금천구·도봉구를 제외한 23개 구에서 용도변경 사례가 증가했다.

특히 마포구(133.2%)·강동구(115.4%)·동작구(109%)·성동구(105%)·관악구(100.5%) 등은 용도변경 건수가 2배 이상 늘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이전 대비 증가분 대다수가 다주택 보유 회피에 활용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건축법은 근생의 용도를 소매점·헬스장·병원·카페 등 상가와 생활편의시설로 한정해놨다. 근생빌라가 온전한 ‘주택’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이유다. 용도변경 역시 어렵다. 근생보다 주택 건축 조건이 더 까다롭기 때문이다. 구조상 문제로 소방법 등 기타 규제에 발목잡힐 가능성도 크다. 

알고도 짓고 사고…규제 회피 꼼수
모르고 샀다간 이행강제금 ‘날벼락’

결국 근생빌라는 일종의 주택이 아니라, 용도가 허위 신고된 불법 개조 건축물일 뿐이다. 존재 자체가 불법이다 보니 지자체에 적발되면 ‘이행강제금’ 등의 불이익이 뒤따른다. 지자체는 불법 개조된 건축물을 원상복구할 때까지 최대 1000만원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연 2회 부과한다.

근생빌라의 경우 도시가스·보일러·싱크대 등을 모두 철거해야 원상복구가 인정된다. 

하지만 그 실효성은 미지수다. 적발률과 원상복구 비율이 턱없이 낮은 탓이다. 아직도 소유주들 사이에서는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서울시는 지난해 근생빌라 877곳을 적발해 이행강제금 62억7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날로 치솟는 근생빌라 증가세에 비하면 부족한 수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는 지난 2년간 근생빌라 800여곳을 적발했다. 각 시·군은 건물주에게 시정명령(원상복구)을 내렸지만, 이를 이행한 곳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83곳뿐인 것으로 파악됐다.

“잡아 놓은 토끼도 제대로 못 몬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지자체들은 근생빌라 단속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한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단속 인력이나 시간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며 “현재 적발 사례 중 상당수는 주차시설 부족·화재 안전점검 등의 다른 민원을 처리하다 얼떨결에 이뤄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단속도 한계가 명확하다”며 “단속철이 끝나면 철거한 취사시설들을 다시 설치하는 경우가 빈번한데, 그런 경우를 일일이 잡아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불법은 네가
피해는 내가

근생빌라는 계속 늘어나는 반면, 단속은 지지부진하게 이뤄지다 보니 부작용은 애먼 사람들을 향한다. 해당 건물이 근생빌라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선의의 매입자·세입자들이 근생빌라에 가해지는 각종 규제와 피해를 떠안고 있다.

피해자들은 근생빌라라는 생소한 개념과 소유자들의 의도적 속임수가 피해를 키웠다고 입을 모은다.

인천에 사는 정모씨(35·여)가 신혼집을 매입한 것은 지난 7년 전. 정씨는 거주 5년째가 돼서야 이 집이 근생빌라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씨는 “2년 전 구청에서 날아온 공문을 통해 이 집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며 “집을 구할 때부터 공문을 받을 때까지 공인중개사·분양사무소 등 그 누구도 이 집이 근생빌라라고 말해주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정씨의 집이 위치한 건물은 총 8층이다. 정씨 부부는 7층 집을 눈여겨봤지만, 결국 4층에 입주했다. 분양사무소의 집요하고도 끈질긴 설득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건물의 1층부터 4층까지는 근생, 5층부터 8층까지는 다세대주택 용도로 허가가 떨어졌다.

정씨는 “분양사무소가 4층 입주를 줄기차게 권유했다”며 “자기들이 각종 부대비용과 세금들을 부담해주겠다고 나섰다”고 말했다.

당시 분양사무소가 실제로 세금을 대신 내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근생빌라는 양도세·취득세 중과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씨는 분양사무소가 원래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을 대신 내주겠다고 속이면서 근생빌라 매입을 유도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정씨가 입주한 지 5년이 지나서야 불법 개조를 인지한 구청은 건축주와 분양사무소 대신 정씨에게 이행강제금 납부를 명령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선의의 피해자임을 입증하자, 이행강제금 납부는 잠정 중단됐다. 그래도 정씨는 여전히 가슴을 졸이는 중이다. 언제 납부 명령이 다시 떨어질지 몰라서다.

정씨는 발이 묶였다. 이사를 계획하고 집을 내놓으려 했지만 받아주는 부동산이 없다. 정씨가 매입할 때와는 다르게 등기부등본에 불법 개조된 상태라는 의미의 ‘빨간 줄’이 그어진 게 문제였다. 정씨는 졸지에 집을 팔려다 상가를 팔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도와준다며…
함흥차사

근생 용도로 재수선해 ‘불법’ 딱지를 떼는 것 역시 고스란히 정씨 몫이 됐다. 

이외에도 근생빌라 거주자들은 갖은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취약한 안전장치와 부족한 생활시설은 기본, 1금융권에서는 주택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세입자들은 전세금보증보험에 들 수 없어서 보증금을 위협받는다. 하다 못해 월세 세액 공제마저도 신청할 수 없다. 근생빌라는 법적으로 주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씨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이런 일을 겪기 전에는 근생빌라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등본을 확인했을 때도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며 “우리는 속은 죄밖에 없는데,(근생빌라) 지은 사람·속인 사람 제쳐놓고 왜 우리에게 책임지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억울해했다.

정씨 말대로 등기부등본만 보고는 근생빌라와 일반주택을 구별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건축부대장에 기재된 용도나 세금 납부내역 등을 꼼꼼히 확인해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알고도 당한 사람’은 많이 없다는 것.

피해자는 대부분 정씨처럼 이행강제금 납부 공문을 받는 순간 근생빌라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다.

근생빌라 피해가 속출하면서 한때 정치권에서도 구제 필요성이 논의됐다. 국회에서 구제 방안을 마련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해가 두 번이나 바뀐 지금, 아직 달라진 것은 없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는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 8건 올라왔다. 그중 근생빌라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과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2건이다.

두 법안 모두 근생빌라 등 불법 건축물을 떠안은 선의의 피해자들을 구제하고자 1년간 한시적으로 용도변경을 허용해주는 내용이 골자다.

여야 의견도 맞아떨어졌다. 피해자들은 법안 처리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 기대했다. 의외의 복병은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였다. 국토부가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법안 처리는 답보 상태에 빠졌다.

등기 봐도 구분 못해
적발되면 ‘빨간줄’

현재 두 법안은 소관위원회에 접수만 된 상태다. 국토교통위원장실에 법안 처리 계획에 대해 문의해봤더니 “정해진 것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토부는 피해자들의 반대 의견 철회 요구에 난색을 보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안 제·개정은 입법부의 고유 권한이므로, 이쪽에서 구체적 시행 일정이나 가부 여부 등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해당 법안에 우려를 표명한 것은 형평성·주거 안전 등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전했다.

그는 “다른 불법 개조 유형들은 그대로 금지하면서 근생빌라만 양성화한다면 형평성 문제가 대두될 것”이라며 “다른 불법 개조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도 많다. 간단히 여길 문제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이 관계자는 “근생빌라는 애초에 주거 목적으로 지은 건축물이 아니라서 주거 여건이 비교적 열악하고, 화재에 취약한 경향을 보인다”며 “섣불리 양성화했다가 불량 주택들이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것을 국가가 방관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구제가 미진하다’는 비판에는 “현재 관계 법률·법령에 근거해 구제안을 마련 중”이라며 “선의의 피해자와 악용자를 구분해 이행강제금을 가중·감경하는 조처를 내린 상태”라고 답했다.

이 같은 국토부 해명에 피해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오히려 근생빌라 피해자가 차별받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토부는 선의의 피해자들을 구제할 목적으로 지난해 7월부로 생활형 숙박시설의 주택 용도변경을 허용했다. 반면 근생빌라에 양성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피해자들은 국토부가 근생빌라에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고 비판한다.

지자체도, 정부도 지켜주지 못한 집. 피해자들은 그곳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네이버 카페 ‘다세대 근생빌라 피해자 모임’에서는 4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모여들었다. 이들은 민원 제기·탄원서 제출 등 단체행동을 지속하고 있다. 우연히 카페지기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우리는 그저 어렵게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온전히 살고 싶을 뿐”이라며 “가진 것 많은 사람들이 근생빌라로 이런저런 일을 벌이고 다닌다는 사실은 들었다. 잘못된 일이다. 마땅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외로운 싸움
포기 못한다

이어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대부분이 평생을 열심히 노력해 집 한 채 겨우 마련한 서민들”이라며 “불법 제품을 유통시키면 제조자가 처벌받는다. 우리가 아니라 불법 건축자들을 처벌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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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