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쉬운 위장전입의 세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2.08 09:43:04
  • 호수 13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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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5만원이면 주소 바꾼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이사를 위해 과거에는 직접 발품을 팔아 집을 알아봤지만, 최근에는 먼저 희망 지역을 인터넷에 검색한다. 회원 수가 제일 많은 한 부동산 전문 네이버 카페에는 집주인과 직접 거래하기 위해 올린 사람들의 글이 넘쳐난다. 이 중에는 하루에 꼭 2~3개 이상 올라오는 글이 있다. 바로 ‘비거주 전입신고 가능한 집 구합니다’다.  

비거주 전입신고는 말 그대로 실제 거주지를 옮기지 않고 주민등록법상 주소만 바꾸는 것이다. 비거주 전입신고가 가능한 집을 구한다는 글은 카페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온다. 몇몇 게시글은 왜 이런 방을 구하는지도 자세히 기재해놨다. 

대놓고 거래
흔한 게시글

보통 이런 글에는 ‘청약 목적 혹은 청약 목적 아님’ ‘신용불량으로 추심 방문 또는 실거주하고 있는지 확인 올 수 있다. 찾아오면 살고 있는데 자주 안 온다고 말소 막아줄 곳을 찾는다’ ‘우편물을 모아 달라’ ‘공기업, 공무원 준비 때문에 필요하다’ ‘해외 체류 중’ 등의 자세한 설명이 적혀있다.

A씨는 지난달 25일 오후 11시30분쯤 부동산 카페에 ‘비거주 전입신고 가능한 집 구합니다’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리고 1시간 안에 ‘비거주 전입신고 가능한 집이 있다’는 쪽지를 받고 채팅을 하게 됐다.

이들은 간단하게 거주 기간을 물어보면서 “을지로 월 5만원” “기간에 따라 다르다” “동대문 원룸텔이다. 비거주 기준 월 4만원” “서울 중랑구 보증금 150만원에 월세 25만원이다. 보증금 및 월세 조정할 수 있다” “동작구에 비거주 전입신고 가능한 집이 있다. 6개월에 30만원이고 1년에 50만원” 등의 비거주 전입신고 조건을 제시했다.


쪽지와 채팅으로 연락온 사람들에게 A씨는 “부동산이냐”고 물었고, 이들은 대부분 고시원이나 원룸텔 주인이라고 답했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이처럼 인터넷에서 쉽게 비거주 전입신고 정보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주민등록법을 위반한 위장전입에 해당한다. 위장전입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있다. 주택청약을 목적으로 위장전입했을 경우는 주택법 위반까지 해당한다.

위장전입 등 부정 청약이 적발되면 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는 지위를 무효로 하거나 이미 체결된 공급계약을 취소한다.

위장전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안전부는 2020년 3월10일 신규 전입신고 발생 시 주소지의 세대주와 주택 소유자‧임대인에게 전입 사실과 세대주 변경 사실을 휴대전화 문자로 알려주는 전입 사실 통보제도를 도입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6월24일 해당 지역 거주자의 청약 자격을 얻기 위해 실제 거주하지 않고 주소지만 옮겨 청약하는 방식의 부정 청약 57건에 대해 경찰청에 수사 의뢰, 주택법 위반 때 형사 처벌과 함께 계약 취소 및 향후 10년간 주택청약 자격 제한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부동산 카페에 ‘비거주 집 구합니다’
공무원 시험부터 추심명령 회피용까지

이런 법적인 규제로 인해 주택청약을 목적으로 한 위장전입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은 지난해 8~10월 3개월 동안 부동산 투기 행위에 대한 수사를 통해 위장전입 등의 주택법 또는 부동산중개업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 60명을 적발했다.


B씨는 당시 성남 위례자이 더 시티 청약 당첨률을 높이기 위해 일반공급(618대1)보다 경쟁률이 낮은 신혼부부 특별공급분(105대1)에 청약했고, 실거주지를 속인 허위 서류를 제출했다. B씨는 배우자·자녀와 같이 충남 당진시에 살고 있었으나, 성남시에 있는 모친 주택에 위장 전입해 신혼부부 특별 우선 공급분(30%)을 분양받았다.

경기도는 B씨가 당첨 확률을 높이려고 위장전입을 했으며 당첨 뒤 약 7억원의 이익을 챙긴 것으로 봤다.

지난해 11월 울산에서도 주택청약을 위한 위장전입 사건이 있었다. 울산시에 따르면 시 특별사법경찰은 울산시 남구와 동구지역 아파트에 대한 불법 청약 의심 사례를 적발해 수사에 착수했다. 사업 시행사는 수사에 착수한 28건 중 3건에 해당하는 청약당첨자에게 계약 취소를 통보했다.

주택청약을 위한 위장전입은 휴대전화 위치 정보 추적이나 신용카드 사용 기록 등 다양한 기법으로 범죄 사실을 밝힌다. 위장전입 사실을 속이기 위해 일주일에 며칠씩 위장전입한 집에 머물거나 카드를 사용해도 법원이 사실을 인정해주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인터넷에서는 청약 당첨 후 위장전입으로 취소됐다는 사례가 많다.

위장전입에 관해 부동산 관계자는 “3기 신도시와 하남 교산 신도시 때문에 하남에 미리 거주하려는 분위기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위장전입 검사가 까다로워서 쉽지 않다”며 “그래도 아파트로 워낙 큰돈을 벌 수 있어서 아직도 위장전입을 시도하는 분위기는 있다. 돈을 주면 전입신고할 수 있게 받아주는 부동산도 있다고 들었다”고설명했다.

청약하려고…
신도시 집중

공무원 시험이나 공기업 수험생들이 응시 기회를 늘리기 위해 위장전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지방직 공무원은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해당 지역에 거주해야 한다. 정확하게 공무원 수험생은 시험 당해년도 1월1일 이전부터 최종 시험일(면접시험일)까지는 해당 시·도에 주소지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시험 당해년도 1월1일 전까지 해당 시도에 주소지를 두고 있었던 기간을 합산해 총 3년 이상이 돼야 한다. 지방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가직 9급 공채시험 경쟁률은 35대1이었으나, 지방직 공무원은 광주시 14대1, 울산시 15대1, 전라남도 11대1로 확연히 낮은 경쟁률을 보이기 때문에, 공무원·공기업 수험생들은 합격률이 높은 지역으로 위장전입을 하는 것이다.

특히 지방 출신들은 서울에 응시할 수 있지만, 서울 출신들은 지방에 응시할 수 없어서 기회를 넓히는 차원에 주소를 미리 옮겨놔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무원 시험 강사도 있었다.

공무원 수험생들에게 희망처럼 여겨졌던 위장전입의 끝은 결국 임용 취소다. 서울시 도봉구의 기능직 공무원 임용시험에 응시했던 C씨는 15점의 가산점을 받기 위해 주민등록지를 도봉구로 옮겼다.


그가 공무원 기능직 시험에 임했던 해의 경쟁률은 40대1로, 가산점으로 받은 15점이 합격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됐다. C씨의 기쁨은 잠시였다. 도봉구청은 C씨가 위장전입했다가 합격 뒤 주민등록을 다시 전 주소지로 옮긴 사실을 알고 임용을 취소했다. 

계약 취소
임용 취소

C씨는 임용 취소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고, 서울행정법원은 “구청이 처분 전 사전통지 등을 거치지 않았다”며 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구청이 항소하면서 대법원까지 간 끝에 판결이 확정됐다. 구청은 이후 사전통지 등의 절차를 거쳐 같은 사유로 정씨의 임용을 취소했다.

대법원은 정씨가 가산점 제도에 편승해 위장전입을 했고 다른 응시자들은 불합격했기 때문에 임용 취소 자체가 위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시는 공무원 시험 위장전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와 다른 시·도의 공무원 시험을 같은 날 치르게 했다. 

위장전입의 문제가 조금씩 해결되는 것 같지만, 신용불량자와 양육비 채무자 등 범죄자들의 위장전입 문제는 해결이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인터넷을 검색하면 ‘신용불량자들을 위한 비거주 셰어하우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셰어하우스는 대부분 ‘계약 기간에는 비상주로 이용 가능’ ‘우편물이 오면 수거·보관’ ‘실사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전국 13개 시·도에 지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 현재 사이트에는 전 지점이 마감됐다고 나온다. 이처럼 신용불량자들은 재산 압류를 회피하고, 채권 추심원, 사채업자 등을 상대할 방패로 위장전입을 시도한다.


한 비거주 셰어하우스 관계자는 “신용불량자가 되면 최고장과 독촉장, 압류 등 각종 우편물이 끊임없이 집으로 날아들고, 채권자들이 매일 집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가족의 삶이 피폐해진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소지를 친구 집이나 친척 집으로 옮기는데 이것도 민폐가 되기 때문에 결국 주민등록이 말소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고시원·원룸텔 돈 받고 명의 장사
신용불량자 대상으로 셰어하우스도

양육비 채무자의 위장전입은 심각한 상황이다. 2014년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이후 모두 1만9213건의 양육비 채권이 확정됐고 이 가운데 6997건인 907억원가량이 이행됐다. 그런데도 양육비 이행률은 36.4%에 머물고 있다. 

양육비해결총연합회가 양육자 4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양육비 미지급자의 실거주지와 관련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2.5%인 305명이 ‘실거주지 불분명’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거주지 불분명 유형으로는 위장전입이 37.3%로 가장 많았고, 나머지는 거주지 모름이거나 해외 도피 등이었다.

실거주지가 분명한 양육비 미지급자는 27.6%에 불과했다. 

현재 양육비법은 1년 이내에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 출국 금지‧명단 공개‧형사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처벌은 채무자가 감치 처벌을 받은 이후에 시행된다. 감치란 고의로 양육비 채무를 불이행할 경우 가하는 제재로 경찰서 유치장, 교도소나 구치소에 머물게 하는 제도다.

하지만 양육비 채무자가 주소지를 허위로 신고하거나 주소에 없는 경우, 감치를 집행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결국, 양육비 이행률이 낮은 이유는 양육비 채무자들이 쉽게 위장전입을 해 양육비 지급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육비 채무자의 위장전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아는가 몰라
엄연히 불법

이 대표는 “감치명령을 현재 방식인 서면 고지가 아니라 공시 송달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공시 송달이란 위장전입 등의 문제로 상대방의 거주지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 일부러 받지 않는 경우 등 송달이 불가능할 때 소송 관계 서류를 법원 게시판에 일정 기간 공고해서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감치명령이 공시 송달로 바뀐다면 범죄자들의 위장전입도 소용없게 된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구룡마을 가면 위장전입?

위장전입이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구룡마을 전입신고를 거부한 것은 위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종환)는 A씨가 강남구 개포1동장을 상대로 낸 주민등록 전입신고 수리거부 처분취소 청구의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앞서 A씨는 2019년 8월 서울 강남국 구룡마을에 전입신고를 했다.

하지만 개포1동장은 “구룡마을은 도시개발 구역지정 및 개발계획 수립, 지형도면 고시 지역으로 전입신고 수리가 제한된다”며 이를 거부했다.

A씨 측은 “1994년부터 구룡마을에 거주했다.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전입신고를 했는데, 그 수리를 거부하는 것은 위법하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사실관계 및 증거 등에 비춰보면 원고는 전입신고지에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전입신고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원고가 다른 장소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A씨가 전입 신고한 집엔 가스레인지와 냉장고, 세탁기 등 그의 옷과 이불 여러 가재도구가 있었다. 동장이 평일 밤낮으로 여러 차례 방문했을 때도 A씨는 그 집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에 따르면 A씨는 전입신고 전후 수개월에 걸쳐 구룡마을 근처에서 주로 장을 봤다. 휴대전화 통화 발신 지역도 대부분 개포동이거나 가까운 서초구 양재동이었다.

재판부는 “원고는 이 사건 전입 신고지를 생활근거지로 상당한 기간 거주해온 것으로 보인다. 피고는 원고가 보상 등을 목적으로 위장 전입하려 했다고 단정해 전입신고 수리를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가 실제로 거주하지도 않고 위장전입만 하려는 것임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구룡마을은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빈민 지역이다.

주위에는 호화로운 고급 아파트나 빌라가 있다. 하지만 구룡마을은 서울에서도 가장 부촌인 강남구에서 유일하게 개발 대상으로 지정된 지역이다.

구룡마을은 2014년 12월 서울시와 강남구의 합의로 개발사업을 재개하기로 결정됐다.

기존에 서울시에서는 비용을 절감하자는 태도를 보였고, 강남구에서는 전면 수용을 해 현금 보상 후 진행하자는 뜻을 내비췄다.

이후 강남구의 의견대로 전면 수용으로 재개발을 결정했다. 구룡마을은 2020년 2600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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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곳에 떨어진 ‘이혜훈 폭탄’

엉뚱한 곳에 떨어진 ‘이혜훈 폭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정부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에 지명된 이혜훈 후보자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뻥뻥 터지고 있다. 지명 직후 국민의힘을 두 쪽으로 가르더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까지 혼란에 빠트렸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청와대의 고심이 깊다. 인사청문회까지 몇 개의 고비가 남았을까? 지난달 28일 이재명 대통령이 이혜훈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내정했다고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이 전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미래통합당에서 내리 3선을 지낸 중진 보수 정치인이다. 오랜 기간 보수에 몸담은 인사를 초대 경제 부처 수장으로 지명한 만큼 ‘경제·민생 통합’이란 이재명정부의 기조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속전속결 손절 치기 이날 이 수석은 이같이 밝히며 “이 후보자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KDI 연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정책과 실무에 능통하다”고 밝혔다. 이어 “경제민주화 철학에 기반해 최저임금법, 이자제한법 개정안 등을 대표 발의하고 불공정 거래의 근절과 민생 활성화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며 “곧 출범하는 기획예산처가 국가 중장기 전략을 세심하게 수립하도록 해 미래 성장 동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국민의힘은 휴일임에도 즉각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자당 소속인 이 후보자를 제명 조치했다. 국민의힘은 보도자료를 내고 “오늘 오후 (서면)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해 당헌·당규에 따라 이혜훈 전 의원에 대한 제명과 당직자로서 행한 모든 당무 행위 일체를 취소하는 안건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전 의원은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이재명정부의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함으로써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을 앞두고 국민과 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 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국무위원 내정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선출직 공직자 평가를 실시하는 등 당무 행위를 병행함으로써 당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당무 운영을 고의적으로 방해했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국무위원직을 정치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이재명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을 강력히 규탄하며, 대국민 사과와 함께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앞에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이 유독 거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이 후보자가 자당 출신인 점은 물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윤 어게인’과 결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는 등 강성 행보를 보였다. 배신자 VS 외연 확장 보수 가르더니… 자진 사퇴 VS 일단 중립 진보도 두 쪽 후보자 지명 이틀 만에 국민의힘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기회주의자’의 이탈을 막아야 한다며 ‘이혜훈 배신자 프레임’을 띄우는 한편, 지금이야말로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고 외연 확장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며 분열하는 양상을 띤 것이다.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이 후보자에 대해 “당의 지원을 받는 일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단물을 빼먹은 분”이라며 “그런데 이렇게 이정부의 앞잡이가 되어서 기획예산처 장관이라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자신의 영혼을 팔고, 자리를 구걸하고 있다. 그것을 탕평이라고 볼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글삭튀 이혜훈, 소신도 없이 이재명에게 러브레터를?’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보수 전사인 척하더니 자리를 넙죽 받았다. 이혜훈은 이재명의 기본소득, 보편 복지, 수요 억제 부동산 정책을 가장 세게 까왔다”고 말했다. 이는 내정 직후 이 후보자가 입장문을 통해 “경제와 민생 문제 해결은 본래 정파나 이념을 떠나 누구든지 협력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저의 오랜 소신”이라는 대목을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범보수인 개혁신당은 이 후보자의 ‘배신자론’이 과하다며 오히려 보수 때리기에 나섰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이 전 의원은 20년간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결국 강을 건넜다. 우리는 그 의미를 직시해야 한다”며 “거국 내각은 보통 정권 말기의 레임덕 국면에서 등장하는 유화책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정권 초기부터 이런 파격적인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감의 발로”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은 이 전 의원을 배신자로 몰아세울 때가 아니라, 보수 진영이 국민께 매력적인 비전과 담론을 제시하여 희망을 드려야 할 때”라며 “누군가 등을 돌렸다면, 왜 떠났는지 그 이유를 살펴야지 떠난 사람을 저주해서 무엇을 얻겠나?”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보수 담론이 저급해진 원인은 상대를 감옥에 보내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검찰주의적 사고방식에 있다”며 “정책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니, 결국 상대를 감옥으로 보내는 데만 몰두했고,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자 이제 남은 것은 저주뿐”이라고 날을 세웠다. 파도 파도 끝이 없네 여러 의미로 ‘파격 인사’인 만큼 이 후보자의 지명을 놓고 무수한 뒷말이 나왔다. 한 여권 관계자는 “세간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 후보자는 ‘경제 총알받이’ ‘국민의힘 분열’ 등 청와대가 전략적으로 지명했다는 설이 있었다”며 “겨우 그런 걸 위해 이재명 대통령이 이런 리스크를 떠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후보자라는 시한폭탄이 여당 쪽으로 넘어왔다는 점이다. 강선우·김병기 의원의 ‘보좌관 갑질 논란’으로 사나운 민심의 파도를 건너던 도중 이 후보자를 둘러싼 ‘초대형’ 갑질 의혹이 터지면서 전직 관계자들의 폭로전이 시작됐다. 2017년 당시 바른정당 의원이던 이 후보자가 자신의 이름이 언급된 언론 기사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턴 직원에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등 질책하는 내용의 통화 녹취가 공개됐다. 이후 이 후보자가 보좌직원에게 자신에 대한 비판 댓글을 지우게 하거나 직접 반박 댓글을 달게 하고, 상호 감시를 지시하거나 구의원들에게 집회에서 삭발을 강요했다는 등의 증언이 잇달아 나왔다. 하루 간격으로 ‘비행기 좌석 업그레이드’ ‘수박 배달’ 등 자잘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결국 이 후보자의 갑질 논란은 어느 새 고발전이 됐다. 지난 2일 국민의힘 소속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이 후보자를 협박·직권남용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면서 “권력 우위에 있는 국회의원이 약자인 인턴 직원에게 모욕적 언사를 반복하고, 공적 직무와 무관한 개인 주거 공간의 프린터 수리를 지시했다면 이는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이자 직권 남용”이라며 “이 대통령은 즉시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8일에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추가 고발장을 제출했다. 땅 투기 의혹도 제기됐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후보자의 배우자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공식 개항 전인 2000년 1월 초 인천 중구 중산동의 잡종지 약 200평(6612㎡)을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후 이 후보자의 과거에 제출한 재산 신고 내역에 따르면 이 땅은 2006년 한국토지공사와 인천도시개발공사에 39억2100만원에 수용됐다. 6년 사이 약 세 배의 시세 차익을 번 것이다. 그래도 품어야 주 의원은 “서울 사는 이혜훈 부부가 인천 잡종지 2000평을 매입할 이유가 없다”며 김씨가 땅 투기를 통해 재산을 취득했다고 주장했다. 여야의 날 선 공방이 이어지는 사이 이 후보자의 청문회 날짜가 오는 19일로 확정됐다. 국민의힘은 19~20일 이틀간 청문회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여야 간사 간의 조율 끝에 충분한 질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이같이 정해졌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우선 청문회를 통해 이 후보자의 입장을 청취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 후보자는 제명까지 당하면서 이정부와 함께하길 택했다. 지금 자진 사퇴하면 정치 인생은 끝”이라며 “만일 지명 철회를 하더라도 청문회를 통해 입장을 밝힐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 생명 다 걸고 온 사람한테 해명할 시간도 주지 않고 쫓아내는 건 정부 입장에서도 (모양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자 역시 정면돌파를 택했다.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취재진들과 만나 “청문회에서 다 소상히 설명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했던 민주당인 만큼 이 후보자에 대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후보자 지명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이 42%로, 긍정 평가보다 높게 나타나면서 당에서도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모양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5~7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이날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지명한 것에 대해 ‘잘못한 결정’이라는 부정적 평가는 42%로 집계됐다. ‘잘한 결정’이라는 긍정적 평가는 35%, 모름·무응답은 23%로 드러났다. 해당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응답률은 18.2%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결국 민주당 내에서도 자진 사퇴 목소리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민주당 장철민 의원은 이 후보자에 대해 “도저히 방어할 수 없다”며 자진 사퇴를 공개적으로 권했다. 이 지명 부정 평가 42% 그래도 버티는 이유 뭐? 장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우리가 여당이기 때문에 소명 기회를 부여하고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방어도 해 줘야 하지만 지금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특히 “조승래 사무총장이 ‘언급 자제령’을 내렸다. 이 후보자가 위태롭고 고립돼있다는 걸 정말로 증명하는 말 같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는 것도 적절치 않으니 본인이 결단을 하는 게 맞다”며 “이미 만신창이지만 청문회를 버텨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검증을 통해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부 인사는) 불완전한 상태로 국민께 추천을 드리는 단계가 있고, (지금은) 그런 보도가 되면 언론이 검증을 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고 나서 청문회 과정에서 국민과 함께 제도적으로 그것들을 바탕으로 다시 최종 점검하는 것이 검증 절차”라며 “국민과 함께 검증하는 청문회 과정까지는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청문회를 통한 검증 이후 최종 판단 기준은 ‘국민의 눈높이’라며 “적어도 국민적 정서에 맞는가가 굉장히 중요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대표는 “제가 이 후보자라면 잘못한 말·행동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철저히 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고, 기획예산처 장관으로서 갖출 비전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맞추겠다고 어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문회 통과 전망에 대해서는 “청문회 당일 지켜봐야 한다. (이렇게) 어필하면 청문회를 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이 대통령 결정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가) 다 마음에 들어할 수는 없지만, 대통령 결정이 잘 된 결정이 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후보자 입장에서는 (국민의힘이) 즉각 제명하고 비난하다 보니 국민의힘 쪽으로는 갈 수도 없다. 이쪽(민주당)에서 더 잘해야 한다. 파이팅하시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거센 비판 속에서도 청와대가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것이란 기류도 읽힌다. 믿는 구석 통할까?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발 갑질 논란에도 의원들이 끝까지 버틴 이유는 폭언·갑질 등으로 형사 처벌을 받은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며 “의원직 사퇴까지 이어지지 않는 이상 버티고 보는 것이다. 강 전 의원은 ‘1억 자금’ 논란이 불거지면서 탈당했지만 이 후보자의 경우 법적으로 걸릴 게 없다고 자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도덕성 차원에서는 큰 타격을 입겠지만 끝에 가서는 결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라며 “안 그래도 민감한 소재인 갑질 의혹과 맞물리면서 논란이 곱절이 됐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왼쪽으로 넘어온 이혜훈 누구? 이혜훈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은 1964년생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레스터대 경제학과 교수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거치는 등 경제 분야서 활동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후보자로 서울 서초 갑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으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와 정보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으로도 활약했다. 지난해 22대 총선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서울 중구·성동구을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후보자에게 패배해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지난해 7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는 김문수 전 대선후보자의 국민의힘 당 대표 추대를 촉구하는 209인의 전직 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