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는 '사극 열풍' 속으로…

전파 타면 장타 ‘방송사 구세주’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사극이 방송사의 구세주로 떠오르고 있다. 멜로나 학원물, 장르물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지만, 끊임없이 실패하다 못해 OTT 플랫폼에 주도권을 내줬다. 그런 가운데 방송사들은 사극으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 익숙한 소재를 트렌드에 맞게 변형을 준 점이 사극 열풍의 요인으로 점쳐진다. 

올 하반기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의 키워드는 단연 사극이다. 전반적인 드라마 시청률이 저조했던 상반기와 달리, 방송사마다 내놓는 사극들이 잇달아 히트하며 드라마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올드 플랫폼
방송사 활기

최근 시청자의 주도권은 OTT로 완전히 넘어간 모양새였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을 시작으로 <마이 네임>과 <지옥>이 전 세계적인 히트를 쳤으며, 신진 OTT 플랫폼인 쿠팡플레이의 <어느날>과 웨이브(wavve)의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티빙 오리지널 <술꾼도시여자들> 등 신선하고 트렌디한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 사이 방송사는 올드 플랫폼으로 전락했다. 2040의 젊은 층 대다수는 OTT 플랫폼으로 자유롭게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 ‘시청률 무용론’이 나오고 있으며, 올드 플랫폼 중심으로 만들어진 시청률 집계는 점점 의미가 퇴색됐다.

위기의 지상파가 고조에 이르렀을 때 이를 타개한 건 사극이다. MBC 드라마국의 위상을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MBC <옷소매 붉은 끝동>은 지난 3일 방송분 시청률이 10.2%(닐슨코리아 제공)를 기록했다.


MBC가 드라마로 10%를 넘긴 작품은 <나쁜형사>로 2018년 12월4일 방영분이 10.6%를 기록했는데, <옷소매 붉은 끝동>을 통해 무려 3년만에 마의 10%를 넘긴 것. 

<옷소매 붉은 끝동>은 궁녀 성덕임(이세영 분)과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제왕 이산(이준호 분)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를 다룬다.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된 강미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옷소매> <연모> <이방원> 넘긴 ‘마의 10%’
방송사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사극의 계보’

이산과 의빈 성씨의 이야기는 MBC <이산>을 비롯해 다큐멘터리나 역사 방송에서도 다뤄진 소재지만, 성덕임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멜로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서사가 인기의 요인으로 꼽힌다. 현대적으로 보면 일과 사랑에 있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여성의 모습에 다수의 시청자들이 열광하고 있다. 

KBS2의 <연모> 역시 침체기를 겪는 KBS를 살리는 드라마다. 남장여자 콘셉트를 가져온 <연모>는 쌍둥이 여아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버려진 아이가 세손인 오라비의 죽음을 대신하면서 남장 세자가 된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진짜 성별을 숨긴 채 만들어지는 로맨스가 애틋함과 더불어 언제 정체가 탄로 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긴장감을 만든다. 

이세영과 박은빈 등 젊은 여배우들이 원톱 주연에 가까운 롤을 훌륭히 수행하면서 인기는 점점 치솟고 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송혜교와 맞붙은 상황에서 일궈낸 결과여서 더 유의미하다.


두 드라마는 조연들의 호연까지 시너지를 내면서 올 연말 최고의 관심작으로 대두되는 중이다. MBC와 KBS2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최신작이라는 점에서 연말 연기대상에서 싹쓸이 수상 전망도 나오고 있다. 

돌아온
전성기

한 방송 관계자는 “<옷소매 붉은 끝동>이나 <연모>는 기대 이상으로 높은 성적을 거둔 고마운 작품이라 분명한 보상이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며 “박은빈의 경우에는 대상도 받을만하다”고 내다봤다.

사극이 지상파의 해답이라는 말이 솔솔 나오고 있을 무렵 KBS1에서는 오랫동안 묵혀두고 있었던 정통 사극을 부활시켰다. 이미 수많은 드라마에서 활용된 태종 이방원의 삶을 그린 <태종 이방원>이다. 

<태종 이방원>은 첫 회 시청률 8.7%로 순조로운 출발을 한 뒤 단 2회 만에 9.4%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10%는 손쉽게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시청률이 시청자들의 반응을 모두 대변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KBS 대하드라마에 대한 갈증이 깊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태종 이방원>까지 뜨거운 반응을 보이면서 사극이 지상파를 살릴 마지막 보루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권력을 잡기 위해 혈육을 죽이는 등 형제의 난을 거쳐 왕위에 오를 뿐 아니라, 아버지 이성계와 끊임없이 갈등을 이어나간다.

신하들을 막강한 카리스마로 제압하는 대목, 세자를 위해 아내의 동생들을 참수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린 이방원의 이야기는 요즘 같은 대선 정국에서는 시선을 확 잡아끈다. 

후반부에는 이방원의 아내 민씨(박진희 분)와 계모 강씨(예지원 분)의 막후 활약도 드러날 전망이라 <태종 이방원>이 가진 기대감은 매우 높다. 강씨는 타고난 정치 감각과 결단력으로 조선의 초대 왕비가 되는 인물이고, 민씨는 이방원을 왕으로 만드는 여장부다.

스토리 변주
다양한 기록

다른 채널에서도 사극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배우로 전향한 소녀시대 유리가 주연을 맡은 MBN <보쌈 - 운명을 훔치다>는 MBN 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인 9.75%를 기록하며, 방송사의 역사를 다시 썼다. 

판타지 사극 SBS <홍천기>는 마지막 회가 10%를 넘기며 종영했을 뿐 아니라 판타지 사극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tvN <어사와 조이>는 비록 시청률은 낮지만, 마니아 층을 확보하며 드라마 팬들에게는 호평을 받고 있다. 

사극 장르만 보면 타석에 설 때마다 최소 안타에서 장타를 꾸준히 치고 있던 셈이다. 2021년만 봤을 때 실패한 사극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 가운데 지상파는 또 하나의 사극을 내놓는다. <연모> 차기작 역시 사극이다. 배우 유승호와 이혜리의 신작 <꽃 피면 달 생각하고>다. 금주령이 내려진 조선 시대, 밀주꾼을 단속하는 원칙주의 감찰과 술을 빚어 인생을 바꿔보려는 밀주꾼 여인의 추격 로맨스다.

다른 작품에서 제대로 다뤄본 적이 없는 금주령이라는 참신한 소재로 시청자의 기대를 받고 있다. 궁중 사극이 아닌 서민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도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후에도 KBS2는 판타지 사극 <붉은 단심>을 방영할 예정이며, tvN도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한 <청춘이여 월담하라>를 제작한다.

OTT에 넘어간 주도권 다시 되찾나
너무 같은 소재…게으른 기획 오점

이처럼 렌즈를 어디에 갔다 대느냐에 따라 충분히 새로운 소재를 발굴할 수 있다는 점이 사극의 강점으로 꼽힌다. 사극이 지상파 부활이 화두가 된 이유는 익숙한 스토리에서 변주하기 좋은 소재가 다양해서다. 드라마틱한 삶을 산 인물도 많을 뿐 아니라 실록과 야사 등 해당 사건에 대한 기록도 많아 영상화했을 때 보여주기 좋은 이야기가 많다. 

아울러 PPL이 없어 최근 시청자들이 불을 켜고 찾고 있는 PPL 논란에서도 자유롭다. 동북공정을 내세운 중국식 역사관이나 뉴라이트의 친일 사관에만 해당하지 않으면 역사 왜곡 논란도 피해간다. 특히 조선의 경우에는 해당 논란과는 거리가 있고, 대부분 소재를 어떻게 해석할지 분분해 논란을 벗어나기에도 용이하다.


그럼에도 우려는 여전히 존재한다. 대부분 작품이 기시감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충분히 색다른 소재를 잡을 수 있음에도, 기획 단계부터 너무 게으른 선택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태종 이방원>의 이방원에 대한 소재는 KBS1 <용의 눈물>이나 KB1 <정도전>, SBS <육룡이 나르샤>와 겹치며, <옷소매 붉은 끝동>은 <이산>과 일맥상통한다. <연모>는 KBS2 <성균관 스캔들>이나 <구르미 그린 달빛>이 떠오른다. 유사한 소재와 설정을 다시 재현한 듯한 느낌을 주는 것.

현재적인 관점에서 변형을 주고 있지만, 익숙한 것을 또 보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특히 정통 사극인 <태종 이방원>은 오래전에 방영된 <용의 눈물>과 장르적 특성이나, 인물의 구도 등이 너무 일치해 베끼어 썼다고 해도 무방하다. 

경험
노하우

한 방송 관계자는 “사극이 인기가 있는 점에는 익숙한 스토리가 한몫할 것이다. 이미 성공사례가 있는 소재를 갖고 오는 것은 좋으나 현대적인 재구성은 꼭 필요하다. 사극이 인기 있다고 해서 게으른 행태를 보이면 마지막 보루마저 사라질 것”이라며 “OTT가 장르물은 더 뛰어날지라도, 사극의 전통만큼은 지상파가 더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다. 방송가에서는 사극으로서 과거의 명성을 재현할 수 있을 것에 고무적인 반응이 나온다”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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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 쿠팡 개인정보 유출 막전막후

‘역대 최악’ 쿠팡 개인정보 유출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회상을 반영하는 표현으로 ‘○○ 공화국’을 쓰곤 한다. OECD 국가 중 극단적 선택률 1위를 놓치지 않는 우리나라를 ‘자O 공화국’이라고 하거나 연예인에게 지나치게 높은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연예인 공화국’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최근 또 하나의 공화국이 세워졌다. 바로 ‘쿠팡 공화국’이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제시한 쿠팡의 비전이자 슬로건이다. 국민의 일상에 깊숙하게 파고들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실제 쿠팡은 전 국민의 생활을 차례로 잠식했다. ‘로켓배송’을 무기로 이커머스 시장을 장악했고 ‘쿠팡이츠’로 배달업계를 흔들었다. ‘쿠팡플레이’로 OTT 업계에도 진출했다. 생태계 잠식 대체재 없다 쿠팡의 위력은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서 더욱 뚜렷하게 증명됐다. 지난달 29~30일 쿠팡 이용자에게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다.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유출된 정보는 이름,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 주문 정보 등이다. 쿠팡은 결제 정보와 로그인 관련 정보는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이용자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한 시기가 주말이어서 혼란은 배가 됐다. 특히 배송 과정에서의 편의를 위해 적은 공동현관 비밀번호, 최근 주문 내역 등이 유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유출된 정보를 조합하면 가족 구성을 알 수 있는 상황이라 교묘하게 제작된 스팸 문자 등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고객의 수는 무려 3370만명에 달했다. 올해 기준 우리나라 인구(5168만명)의 65%에 이르는 숫자다. 여기에 개인정보 유출이 지난 6월24일, 무려 5개월여 전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비자의 분노가 폭발했다. 또 해킹 등으로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겪은 다른 업체와 달리 쿠팡 사건은 내부 직원의 소행으로 알려지면서 충격이 가중됐다. 중국 국적의 직원이 해외에서 개인정보를 빼돌렸다는 것이다. 앞서 쿠팡은 지난달 20일 개인정보 유출 피해 고객 계정이 4500개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열흘 새 3370만명이라고 다시 공지하면서 신뢰를 잃었다. 쿠팡의 프로덕트 커머스 부분 활성고객(구매 이력이 있는 고객)은 2470만명인데 피해 고객은 이보다 900만명 많다. 최근 3개월 간 구매 이력이 없는 고객까지 포함한 수치다. 사실상 전체 고객의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소셜커머스 시작 로켓배송 도입 날개 달아 이번 쿠팡 사태의 규모는 지난 2011년 해킹으로 약 350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싸이월드·네이트 사례와 맞먹는다. 올해 4월 발생한 SK텔레콤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약 2324만명)를 상회한다.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피해 규모가 더 커진 선례를 보면 쿠팡 역시 피해 범위와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의로든 타의로든 쿠팡을 놓지 못하는 이용자가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 사태 이후 보고서를 통해 “쿠팡은 한국 시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지위를 갖고 있다”며 “한국 소비자는 데이터 유출 이슈에 상대적으로 민감도가 낮아 고객 이탈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쿠팡이 독점하고 있기에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충격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에 걱정을 표하면서도 막상 탈퇴하긴 어렵다는 글이 보인다. 당장 내일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데 쿠팡이 아니면 재료를 조달할 방법이 없다는 글도 있다. 김범석 의장이 지향하던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가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에 문제가 생겼을 때 현실화한 셈이다. 쿠팡은 어떻게 한국을 지배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쿠팡이 ‘틈새시장’을 기가 막히게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 틈새를 만든 건 쿠팡이 아니라 정부였다는 것이다. 정부가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대형마트를 규제하자 소비자는 전통시장을 찾는 대신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2010년 소셜커머스로 출발한 쿠팡은 현재 대적할 상대가 없는 ‘유통 공룡’으로 성장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시행됐다. 정보 털려도 쓸 수밖에… 유통법에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만 영업 가능 ▲대형마트 월 2회 의무 휴업일 지정 ▲의무휴업일과 영업 제한 시간에는 온라인 주문 배송 서비스 금지 ▲전통상업보존구역 반경 1km 내 출점 불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발 묶인 사이 이커머스 시장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쿠팡이 2014년 도입한 로켓배송은 그 틈새를 절묘하게 파고든 ‘신의 한 수’였다. 쿠팡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투자금을 등에 업고 심야, 새벽 배송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쿠팡이 공격적으로 물류센터를 늘릴 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지금은 그 물류 센터가 지역 배송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에서 택배기사의 건강권을 위해 심야 새벽 배송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비자는 물론 택배기사 사이에서도 민주노총의 주장에 반발이 나왔다. 소비자는 오후에 주문해도 아침이면 집 앞에 물품이 도착하는 데서 오는 편리함, 택배기사는 경제적 이익, 노동권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실제 민주노총의 주장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쿠팡의 배송 시스템이 국민 생활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예다. 소비 트렌드가 완전히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쿠팡의 영향력은 더욱 거대해졌다. 저녁 식사 재료를 사기 위해 퇴근 후 마트나 슈퍼로 뛰어가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도 과거 회상 장면에나 나온다.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을 통해 물건을 주문하며 불과 몇 시간 만에 집 앞에 배송된 택배 상자를 안고 들어가는 게 일상이 됐다. 가족끼리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쇼핑을 하는 일은 생활을 위한 게 아니라 이른바 ‘여가’가 됐다. 규제 업고 틈새 노려 방점을 찍은 건 코로나19였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커머스 시장은 배달업계와 함께 끝 모르고 성장했다. 이 시기 대형마트는 의무 휴업일이나 심야 시간에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일부 풀어달라고 호소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규제에서 자유롭던 쿠팡은 또다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다. 그 결과 쿠팡은 2023년 창사 이후 첫 흑자를 냈다. 당시 쿠팡은 6조2000억원을 투자해 전국 30개 지역에 100여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지었다. 영업손실은 2021년 1조7097억원에 달했지만 2022년 1447억원으로 줄었고 2023년에는 결국 흑자로 돌아섰다. 2023년 기준 쿠팡의 매출은 32조원에 이른다. 당시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023년 4분기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영업이익은 6174억원이다. 매출, 영업이익 모두 전통 유통기업을 제친 1위다. 쿠팡은 흑자 전환의 비결로 고객의 충성도를 꼽았다. 이들이 쿠팡에서 씀씀이를 늘리면서 쿠팡 전체 이익이 늘었다는 것이다. 특히 2018년 쿠팡이 도입한 ‘쿠팡 와우’ 멤버십의 증가가 영업이익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쿠팡 와우는 월 4990원(현재 7890원)을 내면 쿠팡에서 구매하는 대부분 물건을 무료로 배송받을 수 있다. 또 쿠팡플레이라는, 쿠팡이 론칭한 OTT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당시 쿠팡은 쿠팡 와우 멤버십, 즉 유료 가입자가 2021년 900만명에서 2023년 1400만명까지 늘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쿠팡 매출은 41조원까지 뛰어올랐다. 전체 대형마트 판매액(37조1779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영업이익은 602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억은 전년 대비 소폭 증가했는데 매출이 3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쿠팡 와우 멤버십에 가입한 고객은 지난해 말 기준 1500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소비트렌드 변화·코로나19로 쐐기 2023년 흑자 전환해 전체 매출 1위 눈여겨볼 대목은 쿠팡 와우의 가격이 지난해 3000원가량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고객이 이탈하기는커녕 되려 대거 늘었다는 점이다. ‘쿠팡 생태계’가 이미 공고해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충성 고객층이 이전보다 두꺼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독료 인상분보다 쿠팡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성장 배경은 다르지만 쿠팡을 카카오와 비교하기도 한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이라는 국민 메신저를 배경으로 각종 사업에 진출했다.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중 9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진 카카오톡은 카카오가 골목상권에 침투하는 데 훌륭한 ‘씨앗’ 역할을 담당했다. 쿠팡 와우 가입자를 위한 ‘로켓배송’이 심야·새벽 배송 시장을 잠식하는 데 혁혁한 역할을 한 것과 비슷하다. 대체재가 많지 않은 것도 닮았다. 카카오는 최근 카카오톡 업데이트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카카오가 카카오톡을 SNS처럼 바꾸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용자들이 카카오톡 앱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방도를 찾다가 고안한 방법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용자의 반발이 거셌다. 카카오톡 앱 평점은 1점대로 떨어졌고 조롱이 줄이었다. 결국 카카오는 가장 많은 비판이 나왔던 ‘친구탭’을 원래대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이후에도 카카오톡 변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계속 나왔지만 결론적으로 이용자 이탈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카카오톡을 대체할 만한 메신저 앱이 마땅치 않았던 게 문제였다. ‘네이트온’이 노를 저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카카오톡 업데이트를 주도한 홍민택 최고제품책임자(CPO)도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에 ‘트래픽, 다운로드는 줄지 않았다’고 쓰기도 했다. 당시 홍 CPO의 해명에 비판이 쏟아졌지만 글 내용만 봐서는 카카오톡 자체에 타격은 크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과징금에 주저 앉나 그러면서도 카카오의 현 상황을 봤을 때 쿠팡도 당국 조사가 진행되다 보면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단 이재명 대통령이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과징금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언급한 점이 눈에 띈다. 벌써부터 역대 최대 과징금(1347억원)을 받은 SK텔레콤의 사례를 넘어 1조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