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보다 더 비싼' 황금 번호판 뒷거래 실상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11.23 13:16:20
  • 호수 13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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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 넘버 ‘1111 2000만원’ 부르는 게 값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1111, 2222 등 희귀한 차량번호들은 이목을 끌기 마련이다. 이른바 ‘포커 번호’라고 불리는 이 희귀 차량번호들은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상당히 고액에 거래되고 있다. 비싼 가격에도 ‘눈에 잘 띄는’ 희귀 번호를 구하려는 사람이 늘면서 가격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숫자가 주는 의미는 상당하다. 1990년대 삐삐가 전 국민의 필수품이었을 때 숫자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예를 들면 8282는 빨리빨리, 486은 사랑해, 1004는 천사란 뜻이다. 이처럼 숫자에 의미가 부여되면서  삐삐용어란 말도 생겼다.

‘좋은 번호’
특별한 배열

삐삐 시대가 지났어도 숫자가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막강하다. 이삿짐센터 전화번호는 2424, 부동산 중개업체들은 4989가 유리해 해당업계에선 국룰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음식점 배달 전문업체는 8282, 콜택시는 8255 번호를 선호한다. 

우리 일상에선 전화번호에서부터 자동차 번호판, 아파트 동·호수, 집 번지, 생년월일, 은행 계좌번호, 비밀번호 등이 언제부턴가 자신을 간접적으로 표시하는 수단이 돼버렸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눈에 띄는 차량번호는 국회의원 등 공무원들이 주로 사용했다. 의원들은 외우기 쉽고 ‘눈에 잘 띄는’ 3000번이나 5656, 5060 등의 번호를 확보하려고 애썼다. 구구단형 8756번이나 9545번도 좋은 번호로 꼽힌다.


의원들은 차량번호뿐 아니라 전화번호도 특별한 것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눈에 띄는 번호는 권위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외우기 쉬운 번호가 권위로 격상하는 것은, 이 같은 번호에 대한 수요가 많고 공급이 적기 때문에 특별한 능력을 행사해 이를 취득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국회의원 비서관은 특별한 숫자에 집착하는 현상에 대해 “수험생이 시험을 치르듯 의원들은 4년마다 있는 선거에 이겨야만 하기에 의원들은 자기가 쓰는 차량과 전화의 번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2010년대로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황금 번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기가 사그라들었다. 자동차가 많아지고 번호판 부정 배정 잡음에 따라 신청한 순서대로 받게 됐다. 황금 번호 차량은 부정번호의 상징이 돼버린 탓에 일반 시민은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났으며 배정받더라도 피하는 사람이 늘었다. 

‘눈에 띄는’ 번호 목돈 주고 배정
고객이 원하는 대로…짭짤한 딜러

사생활 노출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탓이다. 남의 눈에 쉽게 띈다는 점을 오히려 꺼림칙하게 생각하기도 쉬웠다. 또 눈에 띄는 차를 타고 다닐 경우 사람들은 인식이 ‘돈만 많고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 ‘부정적인 사람’ 등으로 인식해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서울 자동차 관리사업소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제작하고 있다는 한 관계자는 “자동차 번호가 권위의 상징이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좋은 번호를 갖고 있다고 누가 우러러봐 주지도 않는다. 좋은 번호를 가지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시대착오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자동차 황금 번호를 다시 찾고 있다. 개인사업자가 늘어나면서 잠재적 고객에게 각인시키는 용도로 눈에 띄는 차량 번호를 다시 찾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중고차 카페에서 황금 번호를 구한다는 글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유튜브나 블로그 등에서도 황금 번호를 받기 위한 방법이 공유됐다. 일반적인 차량번호 배정 방식은 완전 무작위 방식으로 이뤄지며 번호 공란 현황과 발급 상황 등 변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주로 하루를 기점으로 바뀌지만, 때에 따라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뀔 수 있다.

순서가 바뀌어도 차주가 원하는 번호를 찾는 방법은 있다.

자동차 등록 업무를 지원하는 구청 교통행정과나 차량등록사업소에 일일이 유선으로 문의하면 된다. 다만 서울의 각 구청 교통행정과로 전화 연결 시 상당수가 다산콜센터와 연동돼있어 통화 연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대기해야만 한다.

유선 문의를 통해 해당 구청 혹은 자동차등록사업소에서 분출하는 차량 앞 두 자리 번호와 글자, 그리고 뒤 네 자리 번호의 첫 번째 숫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차량 용도와 번호판 형식 등에 따라 다른 번호를 운용하기 때문에 유선 문의에 앞서 그 기준을 명확하게 정해줘야 한다. 

이삿짐·배달점
전번 의미 부여

확정된 앞번호와 달리 뒷번호는 당일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배정받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대략적인 번호 범위를 알려주는 경우도 있고 이미 확정된 번호를 알려주기도 한다. 단, 후자의 경우 황금 번호와는 상관없는 일관성 없는 번호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등록일에 차주가 가장 마음에 드는 앞번호를 선택했다면, 그다음부터는 운에 맡겨야 한다. 

예를 들어, 차주는 ‘55오 5555’라는 희귀한 번호를 갖고 싶어 한다. 뒷번호가 5로 시작한다는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그렇다 한들 이미 5555 번호를 사용 중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앞뒤 번호가 모두 맞아떨어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해당 번호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데 있어 변수는 시간이다. 신차 출고와 동시에 등록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10일에 불과하다. 이후 10일 경과 시 5만원, 그 이후 1일에 1만원씩,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에 맞춰 모니터링이 필요하기에 자동차 번호 선택 시 적당히 타협하게 된다. 주어진 10개의 보기 중 ‘취향’에 맞는 번호를 고르게 되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그나마 직접 등록할 때 이를 저울질할 시간이 제법 주어지는 편이다.

보통 등록 대행을 맡겼을 경우 이 선택의 시간은 30초 내로 한정된다. 


차량 등록 시 제시된 10개 번호를 확인한 이후, 그와 완전히 다른 무작위 배정이 가능한지는 배정 현황에 따라 약간 달라질 수 있다. 그 사이에 해당 번호가 빠진다면 새로운 번호로 보기가 추가되지만, 확인 직후 재배정 시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각종 서류 작성 및 제출, 비용 납부를 마친 뒤 원하는 번호판을 받을 수 있다.

발품을 팔지 않고 좋은 번호를 받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고액의 돈을 들여 황금 번호를 취득하는 것이다. 각종 중고차 카페나 거래 매매 사이트에 “황금 번호를 구한다”는 게시글을 올리는 것도 방법이다. 회원 수가 많거나 게시글이 많이 올라오는 등 규모가 큰 카페일수록 좋다. 

게시글을 올리지 않아도 구매 대행업체 직원이나 브로커가 ‘포커 번호(연속된 숫자를 의미)’를 구해줄 수 있다는 글이 올라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후 브로커가 연락을 준다고 한 뒤 한참 동안을 기다려야 한다. 

연락이 바로 오는 경우는 드물다. 브로커는 황금 번호 희망자에게 일 주일에서 한 달 정도의 날짜가 지난 뒤 연락을 취한다. 원하는 번호대를 확인한 후 수수료 명목으로 금전을 요구한다. 원하는 번호 등급에 따라 액수도 천차만별이다.

유튜브·블로그 
발급 방법 공유

1등급으로 불리는 포커 번호를 구해주는 데 수수료는 1000만원대까지 올라간다. 자동차 번호는 대표적으로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나누어져 있다. 


등급 별로 ▲1등급 앞뒤 포커(111가1111) ▲2등급 오름차순(123가4567) ▲3등급 앞 오름차순과 뒤 포커(123가7777) ▲4등급 포커(147가1111) ▲5등급 특정 차량 (페라리 0488, 0911 포르셰) ▲ 6등급 1000번대(1000, 2000) ▲7등급 오름차순 내림차순(1234, 4321) ▲8등급 AABB패턴(1122, 2211) ▲9등급 개인적인 선호 번호로 나뉜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번호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다. 혹은 자신의 핸드폰 뒷자리를 차량번호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3년여간 네 자리 숫자가 동일하거나 0이 3개 포함된 황금 번호 대부분이 수입차나 국산 고급차에 집중됐다. 이 기간 황금 번호가 발급된 현대자동차 i30와 엑센트는 각각 55대, 134대에 불과하지만 벤츠 E클래스는 857대, BMW 5시리즈의 경우 499대나 황금 번호를 배정받았다.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좋은 번호를 얻는 건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대행업체를 거쳐 돈을 주고 번호판을 매매한다는 것에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선 차량등록사업소 출신 퇴직 공무원 등이 대행업체를 차리기도 한다는 점을 들어 유착관계를 의심하기도 한다.

중고차 카페·거래사이트 만남의 장
1~9등급 따라 수수료 가격 천차만별

황금 번호를 원하는 A씨는 서울의 한 구청을 방문했지만, 공무원이 아닌 번호판 발급 대행사 직원의 설명만 들어야 했다. 대행사 도움 없이 스스로 황금 번호를 얻고 싶었던 그는 다음날에도 구청을 찾았지만 원하는 번호를 뽑는 데 실패했다.

돌아가려던 순간 A씨는 다른 부서엔 들르지도 않은 채 번호판 발급 장소로 직행해 3000번을 달고 유유히 사라지는 사람의 모습을 목격했다.

A씨에 따르면 보험개발원 전산원에서 뽑아본 0이 3개씩 들어간 번호들은 다 외제차였다. 이 같은 경험은 온라인에서 비일비재하게 찾아볼 수 있다. 공식적으로 차량 번호판은 구청이 1000개 단위로 번호를 배정받아 10분의 1씩 잘라서 발급하고 있다. 

10개씩 무작위로 추첨한 것 중 차주가 고르기 때문에 비리는 있을 수 없다는 게 구청 공무원의 입장이다. 

그러나 1000단위로 딱 떨어지거나 한 가지 숫자가 연속되는 골드 번호를 취득하는 데 있어 대행사들이 분주해진다.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황금 번호가 나올 때까지 10개 단위의 추첨을 여러 번씩 반복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7777번이나 7788번 같은 ‘프리미엄 번호’를 얻으려면 대행사에 1000만원 이상씩 내야 한다는 것은 업계 정설로 통한다. 또 다른 구청은 민원인은 물론 대행사에도 좋은 번호를 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심지어 이미 발급됐어야 할 번호도 유보로 잡고 있다가 나중에 내주는 경우도 확인되곤 한다.

A씨는 중고차 사이트에서 이미 발급됐어야 할 차량번호를 입력했는데 미등록 번호로 나와 해당 번호를 달라고 문의했더니 “이미 나간 번호라는 답만 돌아왔다”고 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공무원과 공모해 좋은 차량 번호를 얻는 건 이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순서를 바꾸거나 미리 빼돌려 좋은 번호를 선점하는 건 명백한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원하는 번호를 콕 집어 얻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남은 좋은 번호 중에 기다리고 기다려서 구하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자동차 번호도 마찬가지다. 법적으로 범죄는 아니지만 문제가 있는 행위”라고 덧붙였했다.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김 교수는 “황금 번호를 원하는 사람이 있고 돈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법으로 규제하는 것보다는 성숙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돌리고 돌려
미리 빼돌려

앞서 브로커가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좋은 번호를 구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윤리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 과거 명품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명품을 구매하는 행태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바 있다.
 

<9d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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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