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새 생명 주고 떠난 소율이

기적처럼 찾아와 천사처럼 떠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얻어 2년간 투병하다 뇌사에 빠진 다섯 살 아이 전소율양. 어린이 환자 3명에게 장기를 기증해 새 생명을 선물한 뒤 짧은 생을 마치고 하늘의 별이 됐다. 소아 장기기증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인 상황에서 보여준 소율이와 가족의 숭고한 선택이 안타까움과 감동을 주고 있다.

뇌사상태에 빠져있던 전소율(5)양이 지난달 28일 서울대병원에서 심장과 좌우 신장을 환자 3명에게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3명 살리고 
엄마 곁으로

소율이는 임신이 어려웠던 전기섭(43)씨 부부에게 결혼 3년 만에 찾아온 기적이었다. 부부는 기적처럼 찾아온 소율이를 애지중지 키웠다. 평소 놀이터를 좋아했던 소율이는 그곳에서 2~3시간을 놀 정도로 활동적이었고 특히 그네를 타면서 까르르 웃어대던 명랑한 아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소율이가 3살이던 2019년 키즈 카페에서 놀다가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해 뇌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됐다. 이후 소율이는 2년간 코를 통해 음식을 먹으며 투병생활을 이어갔다.

앞서 폐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이던 소율이 엄마에게 딸의 사고는 큰 충격이었다. 


아픈 가족 두 명을 돌보던 전씨는 하루하루 고된 삶의 연속이었다. 아내는 아이를 돌보기 힘들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딸 곁에는 누군가 24시간 있어야 했다. 

다행히 전씨가 다니던 회사 대표의 배려로 직장을 잃지 않으면서도 딸을 돌볼 수 있었다. 어린 딸이 아픈 것도 힘겨운 일인데, 아버지 전씨에게는 더 큰 시련이 있었다. 6개월 전 소율이 엄마가 암 투병 끝에 그만 세상을 뜬 것이다.

소율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최근 기능 개선을 위해 위로 직접 튜브를 연결하는 위루관 수술을 계획했다. 그러나 미처 수술을 하기도 전 심정지가 왔고, 뇌의 기능이 멈추면서 뇌사로 판정됐다.

모든 것을 내려놨을 무렵,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며 수없이 봐왔던 환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픈 아이를 안고 흐느끼는 부모의 마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전씨는 그 길로 소율이의 심장과 신장 2개의 기증을 결심했다.

심장·좌우 신장 기증…3명 살리고 하늘로
2년간 투병생활…암으로 떠난 엄마 곁으로

전씨는 “소율이가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의사 얘기를 듣고 이대로 한 줌의 재가 되는 것보다는, 심장을 기증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심장을 이식받은 아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소율이의 심장도 살아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많은 위안이 된다”고 기증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장기이식은 체중, 혈액형 등 주는 사람의 신체조건이 중요해 소아는 소아로부터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아의 기증은 흔치 않은 일이다. 지난해 전체 뇌사 장기기증자 478명 중 9세 이하는 6명에 불과했다.


19세 이하로 연령대를 넓혀도 20명이다. 9세 이하가 2016년, 2017년엔 23명, 15명이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기증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 인식 등의 영향으로 감소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수백명의 소아가 장기기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꾸준히 장기기증 사례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뇌사에 빠졌던 17세 이학준군이 5명에게 장기를 기증해 새로운 삶을 선물하고 하늘의 별이 됐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이군은 집에서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심정지가 왔다. 함께 있던 동생이 119에 신고하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병원으로 이송된 후 결국 뇌사 판정을 받았다. 가족은 어렸을 때부터 아팠던 이 군을 쉽게 떠나보내지 못했다. 이군은 4세 경 열성경련을 앓았다.

꾸준한 기증
용기내는 가족

하지만 수 차례 실시한 검사에서도 뇌파가 전혀 기록되지 않았고, 결국 이군의 부모는 가족회의를 거쳐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이군은 지난 10월 21일 분당차병원에서 심장, 폐, 간, 좌우 신장을 기증해 5명에게 새로운 생명을 전달했다. 이군의 어머니는 “학준이가 어려서부터 많이 아팠기 때문에 무엇보다 아픈 가족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며 “학준이의 일부가 환우에게 가서 다시 살아난다면 우리 가족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큰 위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보다 앞선 9월에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25년간 기자로 활동한 고 여기봉씨가 장기 및 조직 기증을 통해 3명에게 새 생명을 전달했다.

추석이 끝난 연휴 마지막 날, 뇌출혈로 극심한 두통을 호소했던 여씨는 급히 응급실에 내원했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 판정을 받았다.

가족들은 여씨가 평소 생명을 살리는 일에 관심을 보였으며, 아내와도 장기기증에 대해 종종 이야기를 나눴던 만큼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장기기증에 동의했다.   

이에 따라 여씨는 9월24일 전북대병원에서 간장과 양측 신장을 기증해 3명에게 새 생명을 전달하고 하늘의 별이 됐다. 

여씨의 아내 이희경씨는 “생명 나눔은 누군가가 타인을 위해 기증을 결심할 때부터 선순환의 고리가 시작된다고 믿는다”며 “우리 가족이 결정한 이 일이 다른 분들이 용기를 내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측은 기증을 결정한 유가족에게 감사를 표했다. 장경숙 장기기증원 홍보교육전략부장은 “소율이의 기증은 어린아이 3명의 생명을 꽃피워줬다는 데 의미가 크다”며 “소아 장기기증이 워낙 적어 기증이 많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국가 제공하는
지원 못 받아

문인성 장기기증원장은 기증을 결정한 전씨 부모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소율이 이야기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층을 구제할 제도 마련도 시급하다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런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전씨가 국가에서 지원하는 돌봄서비스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서비스는 보건복지부의 ‘장애아가족 양육지원사업’으로 만 18세 미만 중증장애아동을 둔 가정은 일정 소득기준(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을 충족하면 본인부담금 없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전씨는 지원 요건을 갖춰 지난해 7월 대상자로 선정됐음에도 돌보미 매칭을 받지 못했다. 중증장애아동 가정인 데다 보호자가 남성이라 여성 돌보미들이 꺼린 것으로 파악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대상자로 선정됐음에도 사업시행기관 돌보미가 여성들이라서 남성(보호자)과 집에서 서비스 제공을 꺼려해 돌보미를 매칭하지 못했다고 한다”며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활동지원사(돌보미) 두세 명이 양육서비스 제공을 신청했으나, 가정 상황을 들은 뒤 거부했다고 한다.

소율이의 장기기증을 알린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측도 “소율이가 6세 이하고 중증장애를 가진 아이였기 때문에 돌보미와 매칭이 힘들었다고 들었다”며 “아버지가 답답해서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하셨는데 그렇게 매칭이 안 돼서 대기하는 가족이 많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돌보미 없었다?…복지부 “보호자가 꺼려”
수혜자와 교류 불가…규제 개선 목소리도

현재로선 지원받는 가정이나 돌보미 측에서 서비스를 거부하면 지원을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 남성 돌보미 인력은 전체의 2%대에 불과하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돌보미 인력 2750명 중 남성은 76명, 서울은 304명 중 남성이 9명이다.

돌봄서비스가 시급한 가정이었던 만큼 사업시행기관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씨는 “이식받은 소율이의 심장이 잘 뛰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그는 “서신 교환은 할 수 있게 해 준다고는 했는데, 꼭 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현재 장기기증자와 수혜자의 교류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31조 비밀유지’ 조항에 따라 금지되고 있다. 장기거래를 두고 경제적 뒷거래가 형성될 것을 우려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1990년대 장기 불법거래가 횡행하던 시절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규제다.

성숙해진 시민의식에 맞게 ‘장기기증 비밀유지 조항’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해당 조항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온 김동엽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처장은 “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의 직접적 서신 교류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본부와 같은 기관의 중재 하에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서로에게 부담되지 않는 수준에서 소식만 전하자는 건데 법 개정이 안 되고 있다”고 밝혔다.

학계의 견해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타주의와 사회복지의 관계에 대해 다년간 연구해온 강철희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증자는 내 가족이 타인의 삶에 들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확인할 권리가 있다” 며 “기관 등 중간 매개자를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뒷거래 
부작용

우리보다 장기기증문화가 활성화된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장기기증 유가족과 수혜자 간의 기관을 통한 서신 교환이 법적으로 허용된다. 중간 기관 중재를 통해 장기기증 뒷거래 등 부작용을 줄이고 있는 것. 김 사무처장은 “2016년 미국 유학 중 사고로 현지에서 장기기증을 한 고 김유나양 유가족이 미국인 수혜자를 만나 서로의 안위를 확인하며 위로가 됐던 일을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일 기자<ktikt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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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