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나다> 박준규·진송아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법

“서로 마주보면 사랑이 깊어져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국내 사회문제의 화두 중 하나가 이혼이다. 수많은 지인의 축복 속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커플이 언제 사랑을 나눴냐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갈라서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사례가 너무 많아 손가락질조차 하지 않는다. 수십년 함께 사는 동안 말하지 못할 사연이 좀 많을까. 이런저런 이유로 갈라서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서로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잉꼬부부로 알려진 박준규·진송아 부부가 대표적이다. 결혼 30주년을 넘긴 부부는 여전히 상대를 존중·존경하며, 사랑을 키워가고 있다.

흔히 ‘시대가 많이 변해서’라는 말을 한다. 시대가 변했다는 말은 기술의 발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의식이나 문화의 발전으로 인한 일상의 변화를 일컫는 게 더 정확할 테다. 시대가 변한 만큼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기존의 모든 역할이 바뀌고 있다. 

시대 변해도…
잠재울 매력

특히 세상의 중심이 남자였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잊혔다. 남녀를 불문하고 사회에 진출하며, 남녀의 우열을 가리던 시대는 사라졌다. 이제는 평등한 사회로도 볼 수 있다. 남성 중심사회는 옛 시대의 산물이 됐다.

가정의 가장이 남자라는 말도 이제는 어색하다. 가정 내에서 남녀의 역할이 뚜렷하지 않다. 남자도 여자도 누구나 성역 없이 역할을 한다.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을 성별에 따라 굳이 나누지 않는다. 시간이 남는 사람이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 게 당연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할 일이 있고, 남자가 할 일이 있다’며 주방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 남자가 있다면, 엄청난 경제력을 갖고 있거나, 모두를 잠재울 만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연애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부장적인 시대의 산물 그 자체로서, 남자와 여자를 명백하게 구분하고 사는 유명인이 있다. 배우 박준규다. 

여전히 그는 “남자는 밖에서 돈 벌어오고, 여자는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목놓아 외친다. 삼시세끼 아내가 차린 밥을 먹는 것도 모자라, 끼니마다 국은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으며,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도 크다.

“1년에 겨우 두 번 전 부치는 게 그렇게 어렵냐” “예쁜 여자 욕하는 여자는 다 못생겼어” 등 논란이 될법한 워딩을 방송에서 강력하게 던지고야 만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며 화들짝 놀라는 그의 친구도 적지 않다. 

박준규는 가정에서도 독재다. 그의 말이 곧 법이다. 그가 하자는 대로 가족이 움직인다. 

이런 말만 들으면 굉장히 문제 있는 집안으로 보이지만, 실제 그는 그 누구보다 사랑받는 남편이자 아빠다. 가족 모두가 그를 사랑하고, 그와 함께 있길 원한다.

요즘 시대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박준규·진송아 부부를 지난 18일 서울 성수동 소재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이른바 부부 토크쇼의 터줏대감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서로를 아끼는 모습을 보여준 두 사람은 여전히 손을 잡고 애틋하게 상대를 챙겼다.

30년 넘게 사랑을 이어올 수 있는 이유로 존중과 존경을 꼽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결혼 30주년이 됐다. 방송에서 봐도 그렇고, 지금 봐도 서로에게 애틋하다. 잉꼬부부의 느낌이 강하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을 30년째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뭔가?

▲진송아(이하 진) : 그건 저부터 말할게요. 어떤 부부도 저희처럼 살면 30년 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봐요. 제일 중요한 건 첫째 존경심이 있어야 해요. 내 남편이자 내 여자가 정말 멋지고 배우고 상대로 여겨야 해요. 그러려면 스스로 항상 노력해야겠죠. 그게 매력일 수도 있고 능력일 수도 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해요. 

제 남편은 늘 가족 중심이에요. 며칠 전에도 집에서 술파티를 했어요. 아들 둘이 있는데 첫째는 30세고 둘째는 24세에요. 다 큰 애들이 부모랑 술 먹는 걸 누가 좋아하겠어요. 근데 우리 애들은 부모랑 파티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부모라서 좋은 게 아니라 그 시간 자체가 즐거운 거예요. 

구심점이 되는 건 남편이에요. 남편이 그런 분위기가 되도록 주도하거든요. 애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아낌없이 사랑한다고 표현해왔어요. 저에게도 그랬죠. 그렇게 해주는 남편과 있어서 행복한 순간이 정말 많았어요. 저는 감사할 따름이죠.

심플하게 존중과 존경이 있어야 해요. 모계사회라고 하지만, 가정이 화목해지려면 아버지가 역할을 잘해야 해요. 아내는 서포트하는 거고요. 남편이 아버지 역할을 정말 잘해요.

“사랑스러운 독재자 박준규”
“현명하고 매력적인 진송아”

▲박준규(이하 박) : 제 와이프는 정말 멋진 여자예요. 똑똑한 사람이고요. 아이들을 키울 때도 굉장히 현명했어요. 제가 원하는 걸 언제나 해주려고 노력해요. 또 생각 자체가 특별해요. 

제가 ‘명절이 1년에 두 번인데 전 부치는 게 그렇게 힘드냐’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아내 덕분이거든요. 

아내는 명절이 되면 이렇게 말해요. ‘내가 이번에 새로운 레시피를 배워왔는데, 기가 막힌 전을 보여줄게’라고요. 사실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 않잖아요. 귀찮은 일일 수 있는데. 전을 하나 하더라도 맛있고 멋있게 하려고 해요. 이런 모습을 보여주니까, 제가 방송에서 강한 말도 할 수 있는 거예요. ‘내 와이프를 봐라’라는 식으로요.

내 와이프는 제 주변 사람들이 다 좋아해요. 가끔 부부 동반으로 모이면, 남자가 참 괜찮았는데 와이프 만나고 보니, 남자까지 후져 보일 때가 있어요. 저 보면 뭐 그렇게 잘난 거 없다고 볼 수도 있는데, 와이프를 만나고 나면 ‘박준규 뭐가 있는데?’라고 생각을 하더라고요. 어디를 같이 가도 항상 제게 이득을 주는 사람이에요. 가끔 저 대신 술자리에 형수를 보내라고도 해요. 그만큼 분위기 메이커죠. 

존중하고
존경하며

- 많이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박준규는 매우 가부장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방송에서 하는 말은 연기인 건가?


▲진 : 아니에요. 이 사람 진짜 가부장적이에요. 집에서 독재자예요. 이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해요. 미국에서 살다 와서 자유분방할 거 같지만, 안 그래요. 

▲박 : 그 독재가 정말 못된 독재는 아닌 거죠. 애들한테 공부하라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공부하기 싫다고 하면 ‘하지 마’라고 했어요. 수학 못하면 어때요. 계산기가 다 해주는데. 제가 촬영이 많을 땐 일주일에 하루 들어오고 그랬어요. 다른 날은 다 밖에서 자고요. 그러다 드라마가 끝났어요. 그러면 종방 회식하고 곧바로 여행을 가자고 해요. 그럴 때 애들 시험 기간이랑 겹칠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제 뜻대로 여행을 가는 거예요. 학교에 말하고요. 

그때 아내가 ‘애들 시험이라 안 돼요’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그냥 가는 거예요. 그렇게 해도 큰아들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갔고, 둘째는 명지대 연극영화과 갔어요. 그럼 된 거 아니에요?

-부부가 방송에 많이 나온다. 부부가 같이 방송을 하면 피곤하다는 뉘앙스를 풍긴 연예인이 적지 않다.

▲박 : 우리가 나가는 게 일명 ‘부부 토크쇼’인데, 방송 나왔다가 이혼한 사람 많이 봤어요. 부부 사이에도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잖아요. 저희는 정확히 알고 하죠. 사실 방송이 대결구도로 재밌게 만들어야 하는 게 있어서, 공격하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크게 기분 나쁘지 않게 하려고 하죠. 그걸 모르고 그냥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하니까 크게 싸우는 거예요. 

▲진 : 저는 남편 아니면 방송에 나갈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저를 갑자기 나오라 하지는 않거든요. 방송하게 되면 예쁘게 화장도 하고, 남편과 즐겁게 지내고 오는 거잖아요. 가기 전부터 설레요. 언제나 행복했어요. 피크닉 가는 느낌이라 정말 좋아요.


-그럼에도 방송 전에 다투거나, 혹은 방송 후에 싸운 적은 없나?

▲진 : 왜 없겠어요. 사실 우리가 일방적으로 혼내지. 서로 싸우지는 않는데, 한 번은 새벽까지 크게 싸운 적이 있었어요. 근데 다음 날 아침 9시부터 촬영이었어요. 이건 프로의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일은 일이고 사는 사죠. 촬영은 모든 사람과의 약속이잖아요. 그걸 해결 못하고 굳은 얼굴로 있으면 아마추어죠. 아무도 모르게 웃으면서 촬영했죠.

부부 토크쇼를 하다 보면 별 걸 다 봐요. 따로따로 촬영장에 오고요. 다른 사람들하고는 다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둘이서는 말을 안해요. 인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보는데, 프로답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죠. 분장실에서 대기하는 시간조차도 활동 안에 있는 부분이잖아요.

고맙고
미안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말을 참 예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서로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 

▲진 : 저보다는 남편이 그렇게 말을 잘해요. 이 사람이 독재를 하긴 하지만 예쁜 점이 있는 게 커피나 물을 한 잔 달라고 해도 ‘고마워’ ‘미안한데’라는 말을 하면서 부탁해요. ‘나 물!’ 이렇게 해도 주거든요. 근데 ‘물 좀 주세용’이라고 해요. 그러면 저도 주고 싶죠. 아이들한테도 말을 잘하고요. 

덕분에 저도 예쁘게 말하는 법을 배웠어요. 애들이 배우를 하는데, 그러면 아무래도 쉬는 날이 많잖아요. 그럼 애들도 늦게 일어나는 날도 있고요. 그럼 저는 ‘어이 꿀벌’이라고 해요. ‘꿀빤다’고요. 잔소리는 안 해요. 농담 한 마디 하고 말죠. 사람 대할 때는 똑같은 표현이라도 예쁘게 하려고 해요. 남편한테 배운 거죠.

-박준규는 어렸을 때부터 타인에게 예쁘게 말을 한 건가. 언제부터였나. 

▲박: 잘 모르겠어요. 사춘기 때 미국 생활한 게 좀 컸던 거 같기도 하고. 미국에 가면 어떤 매너가 있어요. 뒷사람이 짐이 많고 그러면, 앞사람이 문을 잡아주고 있다거나 하는 매너요. 예전 한국은 그런 에티켓이 좀 부족하기도 했죠.

그런 배려를 좀 배워 온 것 같아요. 아내뿐 아니라 코디네이터나 촬영 스태프에게도 최대한 배려하려고는 해요. 대접받으려고 하는 연예인들도 있는데, 난 그게 그렇게 꼴 보기 싫더라고요. 

▲진: 인간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에요. 연극할 때도 굉장히 자유롭게 연기하는데, 멋있었어요. 자신감도 있었고요. 그리고 늘 주위에 사람이 많았어요. 재밌어서요. 처음부터 확 사랑에 빠졌다기보다는, 보다 보니 그에게 스며들었다는 게 맞아요.

“가정이 화목한 이유는 아빠가 잘해서죠”
“아내 같은 사람 없습니다…다 부러워해”

- 원래는 진송아도 연기를 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꿈을 내려놨다. 그때 아쉽거나 서운했던 건 없나. 

▲진 : 사랑에 빠지면 그 정도야 뭐 포기하고 말죠. 

▲박 : 근데 나는 아내한테 연기하지 말라고 한 적은 없어요. 우리 아버지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한 거지. 난 아내가 연기하는 거 좋아. 다만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 가서 하루 10시간이고 기다리다 한 컷 찍고 오는 그런 게 싫어서 막는 거지. 연극한다고 하면 난 괜찮아요.

학교 동기들이 그래도 김희애, 박중훈 이런 사람들인데 아내가 가서 자존심 상하게 기다리다 오는 게 싫은 거죠.

▲진 : 그럼 에브리데이 밖에서 연습하다 와도 괜찮아요?

▲박 : 여보 나 완전히 변했어. 왜 그래. 용의 대가리로 못살 바에는 뱀의 머리가 되자는 게 저의 주의예요. 연극계에서 머리 역할을 할 수 있으면, 난 좋지. 

-어쩌면 드라마틱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 배우의 아들에서, 오랜 무명배우 시절을 거쳐 ‘쌍칼’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후에는 ‘랩규’ 등 예능판을 휘젓는다. 이제는 배우의 꿈을 가진 두 아들의 아버지다.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본 아내 역시 드라마의 주연이다. 

▲박 : 사실 저나 애들이나 ‘금수저’로 태어났죠. 그걸 미안해하진 않아요. 잘 베풀고 살자는 마인드만 있죠. 뭐 어떡해요. 그렇게 태어났는걸. 우리 애들도 마찬가지예요. 애들이 드라마에 나오면 제가 꽂아준 줄 아는데, 요즘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PD가 알아보고 연락해서, 오디션 보고 마음에 드니까 캐스팅하는 거예요. 제가 아무리 네트워크가 있다고 해도, 애들이 못하면 캐스팅 안 돼요. 우리 애들은 제 덕을 본 게 거의 없어요. 근데 가끔 캐스팅됐을 때 아버지 덕 봤다고 하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진 : 문화라는 게 인간의 감정과 마음이 성숙해지고 여유로워져야 발전이 있는 것 같아요. 저의 시아버지와 애 아빠 세대가 있었으니까 <오징어 게임>과 같은 세계적인 신드롬도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애들은 윗세대보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연기하겠죠.

저는 애들한테 ‘네가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환경이 주어지더라도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늘 행복하게 임해야 영광을 얻는다’고 해요. 그 부분을 강조해요.

늘 행복하게
늘 화목하게

▲박 : 아내가 학구파예요. 이게 참 고마워요. 저는 이런 말 못해요. ‘그냥 해’라고만 하지. 애들이 아직은 무명인데, 지금 한 계단씩 밟고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빛이 오겠죠. 아내는 저한테도 참 좋게 말해줘요. 좋은 운이 세 번 오는데, 저는 ‘쌍칼’로 한 번 왔다고요. 아직 두 번 있다고요. 저도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 선배처럼 되지 말라는 법 없다고요.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진송아가 전하는 ‘연예계 비사’

박준규씨의 부인 진송아씨의 ‘3대에 걸친 연예계 비사’가 연재됩니다.

시아버지(고 박노식)와 남편에 이어 두 아들까지, 3대째 연예인 집안을 꾸려오면서 그동안 꺼내놓지 못했던 진솔한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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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사 ‘북풍 공작’ 못 건드리는 내막

정보사 ‘북풍 공작’ 못 건드리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헌정사상 처음 개입된 정보사 전·현직 간부들까지 구속 기소됐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만 남은 상황이다. 검찰은 불법 계엄의 명분으로 꼽히는 ‘북풍 공작’ 의혹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계엄에 처음 개입됐다. ‘북풍 공작’ 의혹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베일에 싸여야만 하는 업무와 안가 위치까지 언급되고 있다. 검찰은 노상원·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구속 기소했으나 북풍 공작 의혹에 대해선 규명하지 못했다. 수사할 단서가 부족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내용 전무 수사 못해 비상계엄에 관여한 군·경 수뇌부는 모두 재판에 넘겨졌다. 남은 건 윤석열 대통령뿐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12·3 계엄 사태 관련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 적힌 ‘북방한계선(NLL)서 북의 공격 유도’ 등 북풍 공작 의혹은 포함되지 않았다. 앞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고검장)는 지난달 27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기소를 시작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전 계엄사령관), 문 전 사령관,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노 전 사령관 등 군·경 지휘부 9명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이들이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통해 폭동을 일으켰다고 규정하고, 내란중요임무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군·경 수뇌부 공소장서 윤 대통령을 내란 공범이자 우두머리로 규정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법원의 체포영장 발부에도 조사에 응하지 않았던 바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 적힌 ‘북방한계선서 북의 공격을 유도’ ‘오물 풍선’ 등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거세다. 이 내용은 윤석열정부가 북한과의 군사 충돌을 의도적으로 유도해 비상계엄의 계기로 삼으려 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다. 이 내용이 김 전 장관을 필두로 한 지휘부서 구체적으로 논의됐다면 외환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을 근거로 그가 사실상 김 전 장관에 이은 ‘계엄 2인자’라고 봤다. 그러나 검찰은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며 들여다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수사기관서 파악한 근거와 증거만으로는 수첩에 적힌 내용이 군 수뇌부 논의 내용을 적은 것인지 노 전 사령관 혼자만의 생각이나 상상을 적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조사 과정서 관련 내용을 노 전 사령관에게 여러 번 물었으나 진술거부권 행사로 인해 진척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련 물적 증거 부족…노, 진술거부권까지 행사 계엄 당시 상황만 수두룩 “추가 수사 필요하다” 그러나 검찰은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이 윤 대통령의 내란죄 혐의 입증을 위한 ‘스모킹건(결정적 직접 증거)’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민간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노 전 사령관은 당시 김 전 장관에게 인사를 건의하고, 계엄 준비 과정서도 문 전 사령관 등에게 적극적으로 지시하는 등의 정황이 조사 과정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노 전 사령관을 재판에 넘기긴 했으나 수첩과 관련해서는 언제든지 수사가 가능한 부분”이라며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한 게 아니라 아직 규명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이 규명하지 못한다면 야권서 재발의한 ‘내란 특별검사법’도 또 하나의 규명 카드가 될 수 있다. 북풍 공작이 있었다는 의혹의 전모를 밝혀내자는 게 특검법 취지지만, 외환죄 적용이 가능할지는 불분명하다. 외환죄 역시 내란죄처럼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이 적용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이 발의한 ‘윤석열정부의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보면 ▲해외 분쟁지역 파병 ▲대북 확성기 가동 ▲대북전단 살포 대폭 확대 ▲무인기 평양 침투 ▲북한의 오물 풍선 원점 타격 ▲북방한계선서의 북한의 공격 유도 등을 통해 ‘전쟁 또는 무력 충돌을 유도하거나 야기하려고 한 혐의’가 수사 범위로 명시됐다. 야권에선 외환죄 중 이번 사안에 적용 가능한 혐의로 형법 제92조(외환유치죄) 또는 제99조(일반이적죄)를 꼽고 있다. 외국과 통모해 전투 행위를 개시하거나 항적한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게 외환유치죄다. 일반이적죄는 우리나라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한다. 이를 준비하거나 음모하는 단계에 그쳐도 처벌 대상이다. 왜 빠졌나 문제는 외환죄 적용 여부를 둘러싼 쟁점이 다양한 데다 실제로 처벌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북한 공격을 유도하려 했다면 ‘군사상 이익을 해하는 행위’를 모의한 것으로 보고 일반이적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북한을 외국 또는 적국으로 볼 수 있느냐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조 청장과 김 전 청장의 검찰 공소장을 보면 지난달 3일 오후 11시59분 윤승영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조정관은 조 청장에게 “국군방첩사령부서 한동훈 체포조 5명을 지원해 달라고 한다”는 내용 등을 보고했다. 윤 기획관은 이현일 수사기획계장에게 “경찰청장에게 보고가 됐으니 방첩사에 (체포조)명단을 보내주라”고 지시했고,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에게도 전화해 조치 내용을 보고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앞서 오후 11시32분 이 계장은 구인회 방첩사 수사조정과장으로부터 2차례 “방첩사 5명, 경찰 5명, 군사경찰 5명이 한 팀으로 체포조를 편성해야 한다. 경찰관을 국회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계장이 “도대체 누구를 체포하는 겁니까”라고 묻자 구 과장은 “이재명, 한동훈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전창훈 수사기획담당관은 이 계장의 보고를 받고 서울경찰청 수사과장에게 전화해 “군과 합동수사본부를 차려야 하는데 국수본 자체적으로 인원이 안 되니 서울청 차원서 수사관 100명, 차량 20대를 지원해줄 수 있느냐”고 요청했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체포 대상이 된 인원들을 납치한 후 사살하려 한 이른바 ‘백령도 작전’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 수첩에는 비상계엄과 관련해 ‘국회 봉쇄’라는 표현과 민주당 이성윤 의원 등 일부 대상자의 실명을 나열하고 정치인 등을 ‘수거 대상’이라고 적었다. 민주당 한 국방위원은 “계엄 계획 단계서 백령도를 지키는 해병대 6여단이나 서해 NLL을 맡은 평택 해군 2함대와의 협조 요청 문건 등이 발견되면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며 “수사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백령도 작전 의혹 보니… 군은 NLL 일대서 재개된 포사격 훈련이 대남 도발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정치권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최근 정례 브리핑서 “서해상의 대규모 훈련은 9·19 합의 효력정지 이후 계획된 정례적 훈련을 실시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정상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올해는 서해 NLL이 가장 안정적으로 관리됐던 해”라고 강조했다. 김명수 합참의장도 지난 14일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북풍이나 외환유치라는 말을 하는데 군은 그렇게 준비하거나 계획한 게 절대 없다는 것을 제 직을 걸고 말한다”면서 “외환이라는 용어를 쓴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군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양 무인기 의혹과 관련해 김 의장은 “확인해줄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비밀을 유지한 상태서 상대방에게 심리적 압박으로 선택을 제한해 혼란을 주고, 그래서 이익을 얻는 전략”이라며 “누군가가 제가 카드를 뭘 들고 있는지 상대에게 알려주거나 수사해서 정확하게 보겠다고 하면 이 게임서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수처도 북풍 공작과 관련한 수사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당 부승찬 의원에 따르면 공수처는 최근 드론작전사령부(이하 드론사) 사정을 잘 아는 군 관계자로부터 ‘드론사 예하 101드론대대와 드론교육연구센터가 지난달 중순부터 활용 가능한 문서세단기를 모두 동원해 자료를 삭제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제보에는 드론교육연구센터가 최근 모든 컴퓨터를 포맷했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드론사는 국군의 드론(무인기) 작전을 전담하는 국방부 직할부대다. 101드론대대는 김포와 백령도 지역의 드론 작전을 총괄한다. 드론교육연구센터는 드론 전문 인력 양성과 드론 전술 개발 등을 위해 드론사 산하에 설치한 교육기관이다. 검, 관련자 기소 후 보완 수사 중…특검 필요성도 군, 평양 무인기·드론사 은폐 의혹 확인 안 해줘 공수처는 드론사의 대규모 자료 파기 의혹 제보가 최근 불거진 평양 무인기 의혹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10월11일 북한 외무성은 남한서 보낸 무인기가 같은 달 3일과 9일, 10일 밤 평양에 침투해 대북전단을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북한은 무인기가 백령도서 출발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주장했다. 백령도 지역을 관할하는 드론 부대는 101드론대대다. 공수처가 파악한 내용과 101드론대대의 대규모 문서 파기가 사실이라면 평양 무인기 사건과 연관됐을 것이라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지금까지 합동참모본부와 드론사는 관련 사실 일체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당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김 전 국방부 장관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기 위해 북한에 무인기를 침투시킨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최근에는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에 윤 대통령이 직접 관여했다는 군 내부 증언을 공개하기도 했다. 드론사 등의 문서 폐기 정황은 공수처가 수사 중인 윤 대통령의 외환 혐의 관련 증거 은폐 의혹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공수처가 가장 우선적으로 조사하는 건 비상계엄 실행 과정서 윤 대통령의 역할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경고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계엄에 가담한 군·경 수뇌부 다수는 윤 대통령이 주요 정치인 체포 등을 직접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공수처도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곽 전 사령관은 계엄 당시 윤 대통령이 “국회 내에 의결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으니 빨리 국회 안으로 들어가서 의사당 안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국회서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이후엔 이 전 사령관에게 “해제됐다고 하더라도 내가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김 전 장관이 여 전 방첩사령관에게 민주당 이재명 대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등 주요 인사 10여명에 대한 체포·구금을 지시했고 실제로 체포조가 운영된 사실도 수사를 통해 확인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