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몰이' 검찰 세 장의 카드

‘2022 대선’ 칼잡이가 요리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돌고 돌아 검찰의 시간이다. 여야 유력 후보를 둘러싼 의혹이 검찰 손에 떨어졌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검찰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그 중심에 김오수 검찰총장이 있다. 검찰총장 취임 이후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 그에게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검찰은 역대 대선 정국에서 늘 주인공이었다. 대선 구도가 어떻게 짜였든 마지막에는 결국 후보에 대한 의혹 수사로 귀결됐기 때문. 검찰 수사 결과는 누군가에겐 ‘면죄부’가 되기도 했고, 누군가에겐 ‘쐐기’가 되기도 했다. 이번 대선도 마찬가지다. 대선후보들에 대한 의혹 수사를 맡고 있는 검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마지막엔
의혹 수사

여야는 대선 최종 후보 선출을 위한 막바지 작업에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진통 끝에 최종 후보로 결정됐다. 경선 2위를 기록한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무효표 문제를 들어 불복 의사를 밝히는 듯했으나 사흘 만에 수용하겠다는 뜻을 보이면서 봉합 단계에 이르렀다.

국민의힘은 지난 8일, 2차 컷오프에서 윤석열·홍준표·유승민·원희룡 후보를 확정했다. 후보들은 내달 5일, 최종 경선을 앞두고 토론회를 진행 중이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레이스는 윤석열‧홍준표 2강, 유승민 1중, 원희룡 1약의 구도로 짜여있다. 최종 경선은 당원과 국민 여론을 50%씩 조사한다. 현재 당원의 지지를 받고 있는 윤 후보가 타 후보에 비해 유리한 국면이다.

공교로운 점은 여야 가장 유력 후보로 꼽히는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검찰의 굴레에 휩싸여 있다는 점이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윤 후보 부인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등 후보와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사건이 검찰에 넘어가 있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은 성남시가 대장동 인근을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논란이 불거진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업체들이 ‘성남의뜰’ ‘화천대유’ ‘천화동인’ 등이다. 각각 대장동 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의 자회사다. 당시 성남시장이 이 후보였다. 

대장동 개발사업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210번지 일원에 5903세대의 공동주택 등을 신축하기 위한 92만㎡(약 28만평)의 택지를 개발하는 사업과 이에 연계해 구 시가지에 위치한 수정구 신흥동의 구 제1공단 5만6000㎡(약 1만7000평) 부지를 공원화하는 사업이 결합된 1조5000억원 규모의 민관공동 도시개발사업이다.

민관공동개발 방식으로 진행된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성남시는 5503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환수했다. 문제는 민간사업자들이 챙긴 4040억원의 개발이익이다.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한 민간사업자들은 출자금의 수천배에 달하는 배당이익을 챙겼다. 4000억원이 넘는 개발 수익이 민간으로 흘러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관련 업체들에 대한 특혜 의혹이 나왔다.

이, 수천억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윤, 고발 사주에 부인 주가 조작 의혹

화천대유는 성남의뜰에 1%의 지분을 갖고 있다. 성남의뜰이 지난 3년 동안 전체 주주에게 배당한 금액은 5903억원. 이 중 68%인 4040억원이 화천대유로 흘러 들어갔다. 화천대유와 천하동인 1~7호의 개인투자자 7명이 대장동 개발사업에 투자한 돈은 3억5000만원으로, 8개사의 지분을 모두 합하면 7%다.

이들이 전체 배당금의 70%에 가까운 돈을 받은 셈이다. 여기에 화천대유와 천하동인 관련자들의 면면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대장동 개발사업 사건은 게이트로 번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 법조계 인사들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언급되는 중이다.

검찰은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다. 여기에 지난 12일 해당 사건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첫 공식입장이 나왔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장동 사건에 대해 검찰과 경찰은 적극 협력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달라”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문 대통령의 발언 이후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에 경찰과 핫라인을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대검찰청은 지난 12일 “김 총장이 김창룡 경찰청장과 연락해 검경간 보다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신속하고 철저하게 실체를 규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현재도 검경  간 유기적인 협조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는 이미 속도가 붙었다.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검에 김태훈 4차장 검사를 팀장으로 하는 전담수사팀을 꾸린 것을 시작으로 화천대유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유력 주자
연루 의혹

이 과정에서 유 전 본부장의 신병 확보가 이뤄졌다. 검찰의 칼끝은 이제 ‘그분’으로 통칭되는 윗선으로 향하고 있다.

이 후보는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으로 타격을 입고 있다. 야당에서는 해당 의혹을 ‘이재명 게이트’로 명명하고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 후보(28%)가 이낙연 후보(62%)에 크게 밀린 원인으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꼽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힘 윤 후보는 연일 이 후보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지난 14일에도 “이낙연 후보의 승복 선언으로 이(재명) 지사가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됐다”며 “이 지사는 대장동의 몸통, 김만배가 말하는 ‘그분’이라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후보가 됐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현재 드러나고 있는 여러 정황은 이 지사가 대장동 의혹의 공동정범임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 후보의 상황도 그리 녹록치는 않다.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와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2일 윤 후보가 검찰총장 재직 기간인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측근 검사를 통해 범여권 인사 등에 대한 고발을 야당에 사주했다는 의혹이 한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는 지난달 30일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 등이 고소한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결과, 국민의힘 김웅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이로 지목되고 있는 손준성(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의 관여 사실과 정황을 확인해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했다고 밝혔다. 

죽였다
살렸다

당초 검찰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지시로 대검찰청 감찰부가 해당 의혹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검찰은 검사 9명 규모로 수사팀을 꾸려 대검 진상조사 자료를 확보해 분석하고 제보자 조성은씨 등도 조사해왔다. 이 과정에서 손 검사의 관여 사실을 확인하고 공수처에 넘긴 것.

검사 비위는 공수처 수사 대상이기 때문이다. 


윤 후보 입장에서 고발 사주 의혹보다 더 큰 문제는 부인 김건희씨가 연루돼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이다. 검찰은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2010, 2011년 주가 조작꾼과 공모해 회사 주가를 조작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여왔다.

김건희씨는 이 과정에서 돈을 대주는 이른바 ‘전주’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2013년 도이치모터스 자회사인 도이치파이낸셜의 전환사채를 시세보다 싼 가격에 매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이세창 영장전담 판사는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위반 혐의를 받는 김모씨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검찰은 주가 조작 혐의로 김씨 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중 이모씨가 지난 6일 구속됐고, 이번에 김씨도 구속됐다. 나머지 한 명은 연락두절 상태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김건희씨에 대한 소환조사가 임박했다고 보고 있다. 김건희씨에 대한 조사가 혐의 입증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윤 후보 입장에서는 악재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여권에서는 김건희씨 소환조사를 시작으로 윤 후보에 대한 총공세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은 여야 상관없이 모든 사안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진행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대선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수사기관의 행보는 대선 정국을 뒤흔들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닌다. 실제 역대 대선 정국에서 검찰이 미친 영향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수사에 속도 붙어
대선 영향 미칠까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07년 대선이다. 당시 대선 전초전 격이었던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가 이 전 대통령의 ‘도곡동 땅과 자동차 시트 납품업체 다스 실소유주 의혹’을 제기했다.

이 전 대통령이 땅과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주장이다. 여기에 다스가 190억원을 투자한 투자자문회사 BBK의 주가조작 사건에 공모했다는 주장이 더해졌다. 

검찰은 2007년 7월 해당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고, 8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검찰은 다스 실소유주 의혹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면서 도곡동 땅에 대해서는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후 대선을 2주 앞두고 “도곡동 땅과 다스, BBK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라고 볼 증거가 없다”고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전 대통령는 2007년 대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역대 최대 표차로 압도하고 당선됐다. 당선 이후 진행된 특검에서도 이 전 대통령의 도곡동 땅, 다스, BBK 관련 의혹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과 특검이 이 전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꼬리표가 끊임없이 따라 다녔다.

그로부터 12년 뒤인 지난해 10월 뇌물수수와 횡령 혐의로 구속된 이 전 대통령은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이 확정됐다. 법원은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1991년부터 2007년까지 회삿돈 252억원가량을 횡령했다고 적시했다. 검찰과 특검의 판단이 12년 만에 뒤집힌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검찰의 수사 진행 과정에 따라 대선판이 요동칠 수 있다는 뜻이다.

총장님
역할론

일각에서는 결국 수사 주체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면서 김오수 총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6월 취임 이후 4개월 동안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이지 못한 김 총장이 여야 후보를 둘러싼 사건 수사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대선 정국이 뒤흔들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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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