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큰 그림 접은 최재형의 새 도전과 남은 과제

“당연한 것이 당연한 나라 꿈꿨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정치 도전이 ‘일단 멈춤’ 상태로 접어들었다. 문재인정부의 고위 관료에서 야당 대선 예비후보라는 드라마틱한 변신에도 국민의 선택은 그를 비껴갔다. ‘준비되지 않은 후보’라는 꼬리표를 끝내 떼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요시사>가 최 전 원장의 3개월을 되돌아봤다. 

지난 8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 2차 예비경선(컷오프)에서 윤석열,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등 4명의 후보가 통과했다. 최재형, 황교안, 하태경, 안상수 후보는 탈락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원희룡 전 제주지사,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4위 자리를 놓고 경쟁했지만 컷오프 문턱을 넘지 못했다.

4위 노렸지만
문턱서 고배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선거 때 두드러진다. 특히 대선 때는 후보의 자질과 비전에 대한 검증이 국민의 주요 관심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17대 대선에서는 ‘경제’가, 바로 지난 대선에서는 ‘도덕성’이 대선판을 관통한 키워드였다.

변화무쌍한 국민의 선택 기준은 그동안 정치와는 인연이 없던 인물을 대선주자로 만들었다. 최 전 원장의 대선 출마도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정부의 실정을 심판하고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국민의 열망이 최 전 원장을 정치권으로 불러들였다. 

최 전 원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평생 걷지 않은 길, 왜 두렵지 않았겠나. 그러나 정권교체에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평생 역사의 죄인이 될 것 같았다”고 대선 출마 배경에 대해 말했다. 문재인정부의 초대 감사원장을 지낸 그로서는 정치 입문이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7월15일 최 전 원장은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6월26일 감사원장직 사퇴 후 17일 만이었다. 이날 그는 “온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명제인 정권교체를 이루는 중심은 역시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돼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입당 배경을 밝혔다. 

윤석열 대항마로 주목
초반 지지율 못 지켜

그러면서 “정권교체 이후에 우리 국민의 삶이 이전보다는 더 나아지는 게 중요하다”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 청년들이 이제는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 나라를 만드는 데 앞으로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문재인정부는 나라의 근본인 법치를 붕괴시켰고, 헌법정신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들었다. 이념에 치우친 실험적인 경제정책을 거듭해 벼락거지란 말이 나올 정도로 부동산 정책에 실패했다”며 “비합리적인 방역대책으로 수많은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서민들의 삶을 힘들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너져 가는 대한민국을 일으켜야 할 책무가 제게 있다고 생각하고 정치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법관, 감사원장 등 평생 공직자로 살아온 최 전 원장이 ‘정치’라는 가보지 않은 길을 걷기로 한 순간이었다.

최 전 원장은 ‘변화와 공존’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이제 공존을 바탕으로 번영으로 나가야 한다”며 “오늘의 대한민국은 경제와 이념적 측면에서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세대 간, 계층 간의 갈등도 많이 심화되면서 국민 통합이 필수 불가결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정부 관료서
야당 대선후보


그러면서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공존’과 ‘번영’은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가 됐다.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기반을 닦고 함께 선진화의 길, 번영의 길로 나가야 한다”며 “갈등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전 원장은 1956년 경남 진해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1986년 사법고시(23회)에 합격한 후 같은 해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로 법조 생활을 시작했다. 대전지방법원장, 서울가정법원장,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최 전 원장의 공직 생활은 문재인정부 초대 감사원장으로 지명되면서 큰 변곡점을 맞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 감사원장 후보자로 최 전 원장(당시 사법연수원장)을 지명했다.

당시 청와대는 “최 후보자는 판사 임용 후 30여년간 민‧형사, 헌법 등 다양한 영역에서 법관으로서의 소신에 따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 보호,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 온 법조인”이라고 발탁 배경을 밝혔다. 

이어 “감사원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하면서 헌법상 부여된 회계 감사와 직무 감찰을 엄정히 수행해 감사 운영의 독립성·투명성·공정성을 강화하고 공공 부문 내의 불합리한 부분을 걷어내 깨끗하고 바른 공직사회와 신뢰받는 정부를 실현해나갈 적임자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걸출한 정치인 사이서
유의미한 선전 펼쳤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9년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결정’ 타당성 감사와 감사위원 제청 등을 두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다. 당시 그는 김오수 검찰총장(당시 법무부 차관)을 감사위원으로 제청하라는 청와대 요구를 연이어 거부하면서 문재인정부와 대척점에 섰다. 

이 과정에서 두 아들을 입양한 가족사와 고등학교 때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친구(강명훈 변호사)를 매일 업어 등하교시킨 일화 등의 미담이 알려지면서 ‘미담제조기’라는 별명이 생겼다. 최 전 원장은 부인 이소연씨와의 사이에서 두 딸을 낳은 뒤 2000년과 2006년 각각 작은 아들과 큰아들을 입양했다. 

최 전 원장은 정치 입문 초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항마’로 불렸다.

그는 “윤석열 후보는 작년부터 문재인정부의 탄압에 외롭게 맞서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개인적 문제를 넘어 조국으로 상징되는 위선과 ‘내로남불’을 밝혀낸 수사를 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다만 적폐 청산 수사를 주도하면서 많은 분에게 상처를 입힌 것도 사실이다. 무리한 검찰권 행사로 여권의 검찰 개혁 드라이브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최 전 원장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컸다. 실제 최 전 원장의 지지율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그는 “정신없이 달려온 3개월이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씩 정치 현장에 적응해가고 있다. 후회스런 일들도 있고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정치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문재인정부 고위 공직자
야당 대선후보로 탈바꿈


경선 기간 동안 최 전 원장이 보여준 정치 행보는 독특한 구석이 있다.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강조하고, 불필요한 논란에 말 얹기를 자제했다. 한 번이라도 더 국민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대선 예비후보로선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경선 도중 후보의 전초기지나 다름없는 캠프를 해체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달 14일 최 전 원장은 “오늘부터 최재형 캠프를 해체한다”며 “대선 레이스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선 레이스에서 성공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으로,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주변에 있던 기성 정치인들에게 많이 의존하게 됐다”며 “그런 과정에서 저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기대는 점점 식어갔고,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그 모든 원인은 후보인 저 자신에게 있고, 다른 사람을 탓해서 될 일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제 큰 결단을 해야 할 시기가 됐다. 이대로 사라져버리느냐, 아니면 또 한 번 새로운 출발을 하느냐는 기로에 섰다”며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방법으로 정치의 길을 가려고 한다. 이 시간부터 최재형 캠프를 해체한다. 홀로 서겠다”고 강조했다.

도덕성 우위
스킨십 약점

최 전 원장의 깜짝 행보는 기성 정치와 차별화를 두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여기에 깨끗하고 진솔하면서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후보라는 점을 부각해 다른 후보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다른 후보들에 대한 의혹이 대대적으로 불거지고 ‘도덕성’이 화두로 떠오르자 그 부분을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실제 ‘미담제조기’ ‘선비’ 등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최 전 원장의 행보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됐다.

그는 “나는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을 후보다. 또 깨끗하고 진솔하며 과거에 대한 빚이 없는 유일한 후보라고 생각한다”며 “도덕성만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도덕성이 없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 전 원장의 승부수가 지지율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최 전 원장의 지지율은 정치 입문 초기 정점을 찍고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리다 2차 컷오프를 앞두고서는 정체기를 보였다. 윤 전 총장,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에 이어 4위 자리를 두고 다른 후보들과 피 말리는 싸움을 한 것도 정치 입문 초기였다면 예상하지 못할 모습이었다.

‘도덕성’이라는 국민이 정치인에 요구하는 만고불변의 덕목을 충족시키는 대신 스킨십 부분에서 약점을 보인 것이다. 실제 선거운동 과정에서 친근감 부족, 전투력 부족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그리고 그 약점이 이번 2차 컷오프에서 최 전 원장의 발목을 잡았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친근감·전투력 부족 지적
“다시 진가 드러날 것” 자신

최 전 원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국민과의 대면 접촉이 어려운 점이 아쉽다. 저는 국민과 만나서 환담하는 자체가 즐겁고, 그분들의 애환을 들으면서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어떻게 그려 드려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제가 마음은 정말 따뜻한 사람이다. 국민 목소리를 너무 경청만 하다 보니 친근감 부족 얘기가 나온 듯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전투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전투력은 평소에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정말 싸워야 할 때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정말 싸워야 할 때 싸웠다. 전투는 성과가 있어야 한다.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정부와 싸워서 성과를 낸 후보 이 중에 누가 있는가”라고 강조했다.

최 전 원장은 강성노조의 횡포에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택배 대리점주의 비극, 자신이 살던 원룸까지 처분하면서 직원들을 살리려 했지만 절망한 마포 맥주집 사장 등을 보면서 대한민국을 살려야겠다는 신념이 더욱 강해졌다고 했다.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의 모습에서 변화에 대한 갈망을 읽은 것이다. 

최 전 원장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꿈꿨다. 불공정과 불의가 득세하는 세상, 집단 우울증에 빠져 있는 사회를 정직하고 공정하게, 배려하고 이해하도록,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려 했다. 그는 “당연한 것이 다시 당연하게 되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며 “그게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이라고 전한 바 있다.

3개월 경력
앞으로는?

최 전 원장의 대망은 2차 컷오프에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번 대선 경선으로 최 전 원장은 많은 것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경선에서 유력 후보들 못지않은 선전을 보여줬고, 2차 컷오프 결과가 나올 때까지 4위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유의미한 수준의 인지도와 지지세를 확인했다. 최 전 원장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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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