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잇 노리는' 최음제 변천사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10.14 00:00:00
  • 호수 13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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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줄 놓게 하는 유혹의 한 방울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여성들은 모르는 사람에게 음료수를 받아 먹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남성이 마음에 드는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 음료수나 술에 몰래 최음제를 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범죄에 악용되는 ‘최음제’에 대해 알아봤다. 

지난달 3일, 고양시 소재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나이트클럽에서 돼지발정제를 탄 술을 마실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등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나이트클럽에서 이뤄지는 남녀 간 교제 상황을 설명하면서 ‘돼지발정제’와 ‘마약’을 거론한 것이다.

보내는
‘칵테일’

지난해 7월에는 고등학교 1학년 남녀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시간에 나이트클럽에서 이뤄지는 부킹에 대해 설명했다. 또 나이트클럽에서 여성이 조심해야 할 점을 언급하면서 “클럽에서 술에다가 돼지발정제를 타는 애들이 있다”며 “얘(돼지)들이 (발정제를) 맞으면 맞은 순간부터 막 서로 하려고 붙어서 난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에게 효과가 있을까 없을까? 그거 타서 먹고 난 다음에 여자애들이 더 뭐랄까? 정신을 놓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그 사람들이 다 데리고 나가서 다시 어떻게 한 번 해보려고. 따라주는 술 아무나 함부로 막 먹으면 안 돼”라고 발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엔 돼지발정제를 성범죄에 악용하는 사례가 있었다.


개그맨 노홍철씨 역시 돼지발정제를 섞은 소위 ‘칵테일’을 만들어 여자친구에게 주려 했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논란이 일자 노씨는 “화끈한 술자리 얘기를 해달라는 친한 기자의 얘기를 듣고 농담 분위기로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남성이 여성을 흥분시켜 성적욕구를 풀기 위해 돼지발정제를 최음제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는 최음제 역사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대 초반부터 마약의 일종인 ‘엑스터시’를 최음제로 복용하는 연예인이 존재했다. 이들은 마약 복용으로 검거된 뒤 “마약이 아니라 최음제인 줄 알았다”고 변명했다. 이때부터 대중에게 최음제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면서 관심이 증폭돼 판매상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돼지발정제 옛말 GHB 등 종류 많아져
제조법? 데이트 강간 등 성범죄에 악용

노점상이나 뒷골목에서 은밀하게 판매하지 않고 행인에게 노골적으로 권하는 호객행위도 했다. 이들이 취급하는 최음제는 여러 가지였다. 술이나 음료수에 타서 마시는 액체로 된 제품부터 알약, 가루약 등 다양한 형태의 최음제가 존재한다. 원산지도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등 다양했다. 

이때만 해도 가격이 저렴했던 ‘총알약’이 인기가 많았다. 총알약은 3㎝ 길이의 플라스틱 앰플통에 액체 상태 최음제가 들어있었다. 그 모양이 마치 총알과 비슷하게 생겨서 붙여진 총알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총알약에 돼지발정제 성분이 들어 있어 여성을 성적으로 흥분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음제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페니시 플라이’는 청계천 판매상들을 통해 유통됐다. 곤충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이 최음제는 정체불명의 약물로 원료, 제조 방법은 물론 스페인과의 연관성도 알려지지 않았다. 청계천에서는 2∼3회 사용량인 10cc 한 병에 1만5000원 선에서 거래됐다.


스페니시 플라이와 쌍벽을 이루는 유명 최음제 ‘요힘빈’도 청계천에서 1회분 1만원대에 유통됐다. 요힘빈은 아프리카에 있는 ‘요힘브’라는 나무의 속껍질로 만든 가루로 원주민들에게 흥분제로 사용되는 것이 서방 세계에 알려지면서 상품화됐다.

그러나 스페니시 플라이나 요힘빈의 경우 의학적인 약효는 미미하다는 게 의료계 정설이다. 미국 FDA에서는 이미 1970년대에 두 최음제는 효과가 없다고 공표했다. 최음 효과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심리적인 ‘위약 효과’ 때문이라는 설명도 내놨다.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많은 최음제는 독일제 ‘프로코밀 크림’이다. 이 최음제는 1회분 가격이 2만5000원으로 고가였지만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구하기도 어려워 단골들만 거래할 수 있었다. 

구매자들은 대부분 유흥업계 종사자들이, 유명 나이트클럽에서는 단골들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은밀히 건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도 최음제는 불특정 다수에게 쉽게 노출됐다. 스팸 메일이나 인터넷 카페,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남성들을 유혹했다. 

업소 매니저
서비스 제공

이메일 영업과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물뽕’은 무색무취의 액체 상태로 판매되며 음료수나 술에 타서 복용하면 당시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데이트 강간 약물(Date Rape Drug)’로 알려져 있다. 

이 물뽕은 24시간 이내에 체내에서 빠져나가 사후 증거를 찾기가 힘들고 가해자를 찾더라고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가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 양승조 의원은 2010년 국회 국정감사 보건복지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은 엄격하게 단속되고 있지만 최음제 성분이 담긴 돼지발정제나 말발정제는 어느 부처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돼지발정제는 개체 수 증가나 우량종자 관리를 위해 쓰이는데 농어촌 가축병원 수의사나 동물의약품 유통업소에서 2만~50만원 선에 팔리고 있다.

그러나 최근 대표적인 최음제로 인식되면서 전국 곳곳의 성인용품 전문점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유통돼 유흥가와 청소년들 사이에서 손쉽게 매매되고 광범위하게 오용되고 있다.

양 의원은 돼지발정제가 섭취량에 따라 간질이나 내분비계 교란 등 인체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도 있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와 식약청·농림부·국립수의과학검역원 어느 곳도 소관이 아니거나 별도 관리대상이 아니라고 답해 문제가 크다고 주장했다.


당시 시중에 유통 중인 돼지발정유도제나 발정촉진제·시기조절제·성선호르몬자극제 등은 모두 전혀 다른 용도로 인허가를 받은 뒤 불법적으로 전용되고 있던 셈이라고 양 의원은 강조했다.

이후에도 포털사이트와 SNS에서 ‘물뽕’을 판매하는 게시글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기자가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5분도 채 되지 않아 답이 왔다. 효과에 대한 질문에 “운영 5년 차로 많은 단골을 갖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단골로 모시려 하지, 돈 몇 푼 벌고 문 닫으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격은 3회용 한 병이 30만원, 6회용 한 병이 55만원이었다. 기자가 물뽕 검색부터 계좌번호를 받아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총 15분 남짓이었다. 다음 판매자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으며 질문에 대해 금세 답이 왔다. 그는 일본 수입 제품으로 효과가 확실하다며 절대 들킬 일 없다고 자신했다. 이번 판매업자는 25만원으로 조금 더 저렴했다.  

SNS·포털 등
구하기 쉬워

기자가 한 시간 동안 찾은 판매자는 총 7명이었는데 그중 6명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일본산, 유럽산, 미국산이라며 저마다 효과를 확실히 보장한다고 구매를 부추겼다. 

그룹 빅뱅 승리가 운영해 유명했던 클럽 버닝썬이 흔히 물뽕이라 불리는 마약 GHB(Gamma-Hydroxy Butrate)를 이용해 성폭력 방조 의혹으로 강간약물에 대한 사회적 파문이 일었다. 버닝썬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일요시사>에 첫 제보(<단독> ‘승리 클럽 버닝썬’ 성추행 막다 수갑 찬 사연)했던 김상교씨는 SNS에 “버닝썬 고액 테이블 관계자들, 대표들이 술에 물뽕을 타서 성폭행당한 여자들 제보도 받고 방송사 촬영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외국의 유명 포르노 사이트에 해당 클럽 VIP룸 화장실을 배경으로 약물 강간을 당하는 듯한 여성의 동영상이 게재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유엔 마약위원회는 2001년 GHB를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했고, 우리나라도 같은 해 GHB를 마약류로 지정했다. 그러나 원재료를 구하기 쉽고 제조 방법도 쉬워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심지어 포털사이트에 제조 방법까지 올라와 있다. 

국내서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는 증가 추세다. <약학회지>에 실린 ‘약물 관련 성범죄 사건 유형 분석 및 검출 약물 경향’에 의하면 2006년부터 2012년까지 국과수 본원에 약물감정이 의뢰된 성범죄 관련 건은 총 555건이었으며, 연도별 분포는 ▲2006년 28건(5%) ▲2007년 10건 ▲2008년 38건 ▲2009년 75건 ▲2010년 91건 ▲2011년 133건 ▲2012년 180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지난 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관세청을 통해 제출받은 ‘신종 마약 단속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신종 마약 적발량은 9만4532g으로 전년인 2만1378g보다 4.4배 증가했다. 

관세청은 신종 마약 가운데 성범죄에 자주 사용되는 약물 6종(MDMA·LSD·GHB·케타민·러쉬·기타)을 추출해 장 의원에게 보고했다. 올 한 해를 기준으로 하면 이들 적발량과 전년 대비 증가 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물뽕’이라 불리는 GHB 적발량이 급증했다. 지난해 적발량은 469g이었지만 올해는 61배에 달하는 2만8800g이 적발됐다. 이는 96만명이 동시 투약 가능한 양이다.

흔히 ‘엑스터시’라 불리는 MDMA는 지난해 3328g에서 6060g, LSD는 487g에서 931g, 러쉬(RUSH)는 1만1454g에서 1만7947g으로 늘었다. 졸피뎀 등 기타 신종 마약 적발량도 전년도 4572g에서 3만6234g으로 크게 늘었다.

세관별로는 인천에서 전체 88%(8만3421g)에 달하는 신종 마약이 적발됐으며, 부산(6.9%·6604g)이 뒤를 이었다. 불과 5년 전인 2016년 신종 마약 적발 건수가 ‘0’건이었던 광주세관서도 올해 3097g의 신종 마약이 적발됐다. 이는 유입 경로가 ‘개발’되고 있다는 얘기다.

나이트·클럽 판매상 활개
‘비쌀수록 효능 좋다’ 광고

데이트 강간에 주로 쓰이는 약물이 매년 더 많이, 더 다양한 지역에서 적발되고 있는데도 약물 사용 성범죄 처벌 규정과 적발 역량 모두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문제는 국내에선 약물 사용 성범죄를 처벌할 별도 가중처벌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형법 299조(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한 간음은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한다)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등을 동시 적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마약류 관리법은 마약류의 자가 복용·유통·거래·소지를 규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타인에 대한 사용 규제, 데이트 강간 등 성범죄에 사용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은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선 관련 범죄 현황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표적 범죄 통계인 경찰 ‘통계 연보’나 대검찰청 ‘범죄분석’에서도약물을 이용한 성범죄 관련 통계는 찾아볼 수 없다.

국회 입법조사처 전윤정 입법조사관은 보고서에서 “데이트 강간 등 성범죄에 오남용되는 약물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실태 파악과 함께 성폭력 범죄에 연루된 현황을 조사하고 통계를 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나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15년 <약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으로 약물 사용 성범죄 증가 양상을 짐작할 수 있다. 2006~2012년 국과수 본원에 약물 감정이 의뢰된 성범죄 사건은 총 555건(2006년 28건, 2007년 10건, 2008년 38건, 2009년 75건, 2010년 91건, 2011년 133건, 2012년 180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버닝썬 사건’이 터지기 7년 전 자료에 불과했다.

장혜영 의원실에 따르면, 현재 마약 조사에 투입된 인력은 인천·부산·서울·김해공항 세관 등 총 4개 기관 61명이다. 인천세관에 전체 인력의 77%(47명)가 집중됐다. 부산·서울세관은 전담 인력이 없어 일반 직원이 투입돼 마약 조사 업무를 겸하고 있다. 게다가 관세청이 보유한 마약 탐지기 82대 중 13대(15%)는 사용연한이 이미 지났다. 

장 의원은 “버닝썬 사건 뒤 여성들의 물뽕 등 데이트 강간 약물에 대한 공포는 여전하다. 급증하는 마약 적발률, 변화하는 마약 보급 경로 등을 분석해 적절한 곳에 인적·물적 인프라를 보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거래
단속 어려워”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강간 약물의 무분별한 사용 배경에는 성의 상품화라는 사회문화적 배경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물뽕은 관리감독 제재가 쉬운 다른 약물, 프로포폴 등과 달리 장소와 경로가 특정되지 않는다. 온라인이나 우편 거래 모두를 단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 같은 특성을 이용해 일부 유흥업소에 대량 유포된 것으로 보이는데, 준강간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문화를 바꾸고 사건이 일어나는 유흥업소 현장을 단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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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