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드러나는 'PC주의' 세태

“완벽한 몸매는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서정 기자 = 최근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PC주의가 외모지상주의, 동물 학대, 지나친 선정성, 범죄 묘사 등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형성하며 현실 속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고 있다. 

이랜드가 운영하는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 스파오는 지난 6일 국내 패션 브랜드 최초로 ‘사이즈 차별 없는 마네킹’을 매장에 비치한다고 밝혔다. 스파오가 이번에 제작한 마네킹은 대한민국 25~34세 남녀를 조사해 가장 많이 나온 신체 사이즈를 데이터화한 뒤 이를 기반으로 익숙한 체형을 형상화한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

기존 패션 매장에서 사용하는 마네킹은 남성의 키가 190㎝, 여성의 키가 184㎝에 달했다. 하지만 이번에 스파오 매장에 비치되는 마네킹의 키는 남성이 172.8㎝, 여성은 160.9㎝다. 허리둘레는 기존의 마네킹보다 남성은 2.3인치, 여성은 5.9인치 더 늘렸다. 

새로 제작된 마네킹은 지난 4월 스파오가 샌드박스 네트워크, 국내 1호 내추럴 사이즈 모델 치도가 진행한 보디 포지티브(자기 몸 긍정주의) 캠페인 ‘사이즈 차별 없는 마네킹 - 에브리, 보디’의 일환으로 펀딩을 통해 제작됐다. 

펀딩에는 목표 대비 227%에 달하는 금액이 모였다. 프로젝트 오픈 4시간 만에 목표 금액을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펀딩이 마감됐다.


보디 포지티브 캠페인 관계자는 “우리는 사회에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조금씩 변화시키기 위해 그 첫 번째 대상으로 ‘마네킹’을 바꿔 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외모지상주의의 대표 이미지로 각인됐던 완벽한 몸매를 가진 마네킹은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PC주의’는 사전에서 ‘말의 표현이나 용어의 사용에서 인종·민족·언어·종교·성차별 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주장’으로 정의한다. 영어로는 Political Correctness, 흔히 ‘PC’라고 부른다. 외모지상주의 등 ‘차별’적 발언을 지양하자는 관점의 PC주의가 국내 패션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3월 또 다른 패션 업체 코오롱 FNC는 시중에서 파는 바지보다 10㎝ 짧은 기장의 바지를 선보였다. 당시 사측은 우리나라 평균 남성 체형을 반영해 만든 남성용 바지라고 소개했다. 상의류 역시 어깨 너비 등을 평균 체형에 맞춰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7년 10월 모바일 게임 ‘소녀전선’을 두고 선정성 논란이 일었다. 당시 게임 이용자들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항의하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매장 마네킹 사이즈 현실적으로 제작
개인주의 성향 MZ세대 만나 변화 가속

당초 모바일게임 ‘소녀전선’이 문제가 된 것은 이 게임의 숨겨진 일러스트가 선정적이어서다. 수집형 게임인 ‘소녀전선’의 핵심 인기 요소는 일러스트다. ‘소녀전선’에서는 게임 이용자가 특정 치트 코드를 입력하면 기존 여성 캐릭터의 일러스트보다 노출이 강조된 일러스트가 등장한다.

‘소녀전선’은 12세 이용가지만, 상당수 게임을 이용하는 이들은 ‘검열 해제’라 불리는 이 기능을 이용하며 플레이를 해왔다. 


그러자 일부 여성 게임 이용자를 필두로 불만을 제기했다. 

이는 곧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결국 게임물관리위원회는 2개월가량 모니터링과 심사에 들어갔고 직권재분류로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 판정을 내렸다. 검열 해제를 통해 서비스 되는 일러스트가 청소년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직권재분류로 모바일게임에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내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후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으로 직권재분류 된 모바일게임 ‘소녀전선’은 문제가 된 일러스트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1년 전 벌어진 카카오게임즈 사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카오게임즈는 모바일게임 ‘가디언 테일즈’ 내에 원작에서 ‘You whore(성매매 여성)’로 표기되고 있는 문장을 ‘걸레년’ ‘이 광대 같은 게’로 두 번에 걸쳐 수정했다.

이 과정에서 성별 갈등 논란이 피어났고 ‘광대’라는 용어가 급진적 페미니스트 집단 사이에서 남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으며 결국 ‘광대’라는 단어는 ‘이 나쁜 년이’로 최종 수정됐다. 

카카오게임즈는 이 과정에서 해당 실무진을 전원 교체했고 게임 이용자들에게 사과하는 등 논란 잠재우기에 나섰지만 이 사태 이후 ‘가디언 테일즈’ 게임은 일부 포털사이트에서 ‘광대겜’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됐다.

이외에도 최근 게임업계에서 성별 갈등으로 일어난 문제는 수도 없이 많았다. 업계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목소리를 간과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특히 최근 게임업계에서 ‘페미게임’ 혹은 ‘반페미게임’ 이라는 수식어를 게임에 붙힐 정도로 성별 갈등이 심해졌다. 표현의 자유보다 성별 갈등이 더 중요해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편견 지운다
현실 그대로

최근 기성세대 속 소수를 대변하는 목소리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MZ세대와 만나며 이 같은 변화가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 7일 성전환 수술 후 신체장애를 이유로 고 변희수 전 하사에게 내린 전역처분이 부적절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전지법 행정2부(오영표 부장판사)는 변 전 하사 측이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제기한 전역처분 취소 행정소송에서 원고인 변 전 하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변 전 하사의 상태를 군인사법상 심신장애 사유에 해당한다고 본 군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날 재판부는 “처분사유 자체가 심신장애로 인한 전역이다. 적어도 성전환 수술 후 변 전 하사의 상태를 남성이 아닌 여성을 기준으로 한다면 처분 사유인 심신장애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성전환 수술을 통한 성별의 전환·정정이 허용되며, 수술 후 변 전 하사를 여성으로 평가해 성별 정정을 신청했고, 피고인 군이 이를 알고 있었던 점 등을 들어 변 전 하사의 성별을 여성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변 전 하사는 휴가 중 해외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귀국해 계속 복무하길 희망했지만 육군은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내리고 지난해 1월 22일 강제 전역을 조치했다. 변 전 하사는 전역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한 뒤 지난 3월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선고 후 변 하사의 복직과 명예 회복을 위해 모인 공동대책위원회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배제를 군에서 배격하기 위해 국방부는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며 환호했다. 

산업에 확산

재판을 지켜본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시대를 역행하는 성차별을 법원이 바로잡은 날이라 생각한다”면서 “국회도 법원 판결에 발맞춰 이번 정기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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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