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내 땅에 모르는 산소가?' 2021 분묘 분쟁 천태만상

조상님 앞에 두고 멱살잡이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우리나라는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분묘’를 만들어 땅에 매장했다. 이는 과거부터 이어진 관습이자 전통이다. 과거와 다르게 최근 화장이 늘긴 했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탓에 땅 주인과 분묘를 둘러싼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명절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벌초를 하며 조상에 대한 예를 갖춘다. A씨도 추석 전 벌초를 하려고 고향을 찾았다. 코로나19로 일가친척이 모두 모이는 게 어렵게 되자 일부만 모여 벌초라도 하자는 마음에 아버지를 모신 분묘에 방문한 것이다.

전통이냐 
재산이냐

아버지를 모신 선산에는 여전히 녹음이 우거졌다. 바쁜 생활로 자주 오지 못한 탓에 아버지의 묘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A씨는 자녀와 함께 묘의 풀을 베어내고, 근처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낯선 사람이 A씨에게 찾아와 말을 걸었다. A씨에게 찾아온 사람은 얼마 전 아버지 묘가 있는 토지를 구입한 새로운 소유자였다. 소유자는 A씨에게 토지 주인이 바뀌었으니 이장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오래전부터 아버지와 조상들을 모신 곳이라 이장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소유자는 이장이 불가하면 사용료를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A씨는 이전 까지 그런 경우가 없다며 소유자와 말다툼을 벌였다. 


2019년 제주도에서는 세입자와 벌초를 하려고 찾아온 가족에게 참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건 당일 B씨와 가족은 고조할머니 산소를 벌초하기 위해 세입자의 집 인근을 찾았다. 당시 고조할머니의 산소는 세입자의 집 옆에 마련됐다.

B씨의 고조할머니 묘는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리를 지켰다. B씨 가족에 따르면 세입자는 B씨 고조할머니 산소를 무연고 산소로 면사무소에 신고했다.

세입자는 B씨 가족이 1년 전 벌초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입자는 신고 뒤 나무를 잘라 고조할머니 산소가 보이지 않도록 덮어놨다.

B씨 아버지는 산소의 모습을 보고 세입자에게 따졌다. 이에 세입자 B씨 아버지와 세입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B씨 가족은 산소에 쌓인 나무를 치우겠다며 트럭을 몰고, 집 안마당까지 들어와 주차 시비로도 이어졌다. 격분한 세입자는 창고에서 ‘전기톱’을 들고 와 B씨에게 휘둘렀다. 

B씨는 전기톱을 든 세입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전기톱은 B씨의 오른쪽 다리를 향해 날아들었고, 그 결과 B씨의 오른쪽 다리의 신경과 근육이 절단돼 전치 20주의 부상을 입었다.

분묘를 둘러싼 갈등은 또 있다. C씨는 2014년 본인이 소유했던 땅에 조상 분묘를 한 관리자에게 토지 사용료를 지급하라며 소송을 했다. 당시 C씨는 경매를 통해 토지를 샀다. 하지만 해당 토지에는 관리자의 조부와 부친 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남 땅에 조상묘’ 분묘기지권 갈등 빈번
“돈 내” “못 내”…대법 “사용료 내야”

C씨는 자신이 토지의 소유권을 갖게 돼 관리인이 토지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관리자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분묘를 관리해 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앞선 사례들의 공통적인 갈등 원인은 ‘분묘기지권’에 있다. 분묘기지권이란 묘지를 보호, 관리하는 데 필요한 범위에서 타인의 토지 위에 묘를 설치하는 게 가능한 관습법상 권리다. 

우리나라는 과거 부모가 사망해도 자신이 소요한 토지가 없으면 다른 사람이 소유한 토지에 묘를 설치하곤 했다. 이 때문에 조상을 섬기는 한국인의 관습이 인정돼 생긴 권리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토지 소유자가 바뀌어도 분묘를 개장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사실상 지상권(남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에 유사한 물권인 셈이다. 몇 가지 요건만 충족된다면 타인의 토지에 분묘가 존재해도 개장할 필요가 없다. 

분묘기지권은 ▲토지 소유자의 허락을 얻어 분묘를 설치한 경우 ▲토지 소유자가 묘를 설치한 사람과 약속을 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처분한 경우 ▲분묘를 설치하고 20년간 마찰 등이 없이 점유한 경우와 같은 조건이 충족할 때 발휘된다.

다만 분묘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부에 실제로 시신이 안장돼있어야 한다. 만일 시신이 안장돼있는 경우라도 분묘라는 게 인식되지 않으면 분묘기지권 획득이 불가하다. 이에 새로운 분묘 설치, 합장 등을 할 수 없다.  

분묘의 존속 기간은 토지 소유자와 분묘 설치자 사이의 약정을 통해 정할 수 있다. 별도의 약정이 없다면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자가 분묘를 관리하는 기간 동안 해당 권리가 유지된다. 

바뀐 판례 
어떻게?

이 같은 이유로 분묘의 처분은 쉽지 않다. 토지 소유자는 분묘 개장(이장)하기 위해서는 최소 3개월 전 분묘 설치자나 권리자에게 해당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 

무연고 분묘로 분류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최소 3개월 전 2개 이상의 일간 신문(중앙 일간 신문 하나 이상 포함)에 공고를 내야 한다. 

비슷한 방법으로는 관할시·도 등의 홈페이지와 일간 신문 1개에 공고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공고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토지 소유자는 분묘 권리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개장한 뒤 유골을 10년 동안 보관해야 한다. 또 이런 사실을 관할 시청 등에 통보해야 한다.


이런 탓에 토지 소유자와 분묘 권리자 사이에 분쟁이 심화되자 법적인 장치가 마련됐다.  2001년 1월13일 이후 설치된 분묘에 대해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이 시행됐다. 장사법은 신설된 묘지에 대해 분묘기지권을 인정하지 않는 게 골자다.

장사법이 시행됐음에도 문제가 되는 점은 그 이전에 설치된 분묘다. 소유자의 토지에서 2001년 이전 설치된 남의 분묘를 뒤늦게 발견한 경우가 생겨서다. 이 때문에 토지 소유자들은 분묘 시효 완성 전 분묘의 권리자를 찾아 시효를 중단시켜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는 분묘 권리자들이 토지 소유자에게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 

대법원에서도 2017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관습법상 분묘기지권이 인정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해당 문제가 끊이지 않자 관습법인 분묘기지권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헌법재판소는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봤다. 절차적 측면에서는 관습법이 헌법소원이 가능한지 여부와 내용적 측면에서는 토지 소유자의 재산권 침해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절차적인 측면에서 헌법재판소는 법률에는 형식적 의미의 법률뿐 아니라 법률 효력을 가진 조약 등도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알아서∼ 
대책 없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적 효력을 가진 관습법도 헌법소원의 심판 대상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분묘기지권이 조상을 섬기는 관습으로 인해 판결을 통해 일관되게 유지돼 공익에 해당한다고 보고 합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해당 판결이 내려진 데는 화장을 하는 등의 장묘 문화가 변화했지만, 여전히 매장문화가 존재함에 따른 결정으로 보인다. 관습법을 통해 분묘기지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대목이다. 

당시에는 재산권보다는 관습을 따라야 한다고 보는 기류가 강했다. 분묘기지권은 분묘 관리에 따른 범위 내에서만 인정되는 등 토지 소유자의 재산권 제한은 그 범위가 적절히 한정돼있다는 게 이유다. 

이는 분묘기지권으로 인해 소유주가 재산권 침해나 제한을 받는 게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효 취득(권리가 없는 자가 일정 기간 점유하면 재산을 취득하는 행위)한 경우 때문이다.

또 해당 헌법소원에 대한 소수의견도 위헌이 아닌 ‘각하’ 의견이 나온 바 있다. 당시 한 재판관은 “관습법은 헌법이 아니기 때문에 헌법소원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소유주와 분묘의 권리자간 분쟁이 더욱 발생했다. 소유자들이 당시 결정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던 건 무단으로 분묘를 설치해 해당 토지를 이용해서라는 게 이유다. 소유자들이 재산권 행사에 중대한 침해가 우려되고, 장례문화의 변경을 고려했을 때 관습법이 재검토돼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분묘기지권 존속을 주장하는 이들의 입장은 반대된다. 분묘의 안정성과 조상의 존엄성이 재산권에 앞선다는 것. 전통적인 측면에서의 관점과 재산권이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관습·전통 때문에 불거져
법원 판결 ‘이랬다 저랬다’

결국 분묘기지권은 소유자와 권리자 중 누구의 권리를 우선시할 것인지가 주요 화두다. 이런 문제로 최근 대법원 판결은 과거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지난 4월 대법원은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경우에도 토지 소유자가 지료(땅값)를 요구하면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다.

판결에 따르면 구체적인 비용은 당사자 간 협의로 정할 수 있다. 지료는 법원의 결정에 따르며, 땅값에 따라서 증감도 가능하다. 분묘 권리자가 지료를 2년 이상 연체하게 되면 토지 소유자는 분묘기지권의 소멸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지료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권리자가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았다면 토지 소유자는 소멸청구가 불가하다. 대법원은 “분묘기지권의 특수성 등 규정의 취지를 종합했을 때 분묘기지권을 시효 취득한 경우 토지 소유자가 사용 대가를 청구하면 지급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관습법상 분묘기지권 시효 취득을 인정해온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는 분묘기지권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 토지 소유자의 권리도 일정부분 인정하는 절충안으로 풀이된다. 

토지 소유자가 지료를 청구하지 않아도 지료가 발생한다거나 무상이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해당 판결은 2001년 1월13일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최근 판결은 앞으로 분묘에 대한 법적 절차 처리가 가능해 진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문제점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번 판결 역시 논쟁이 불거질 요소들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토지 소유자와 분묘기지권을 획득한 권리자 사이에 법적인 분쟁이 많이 발생할 우려가 존재한다. 우리나라 분묘 대부분이 사유지 곳곳에 조성된 경우가 많아서다. 

객관적인
기준 필요

전문가들은 판결이 달라졌어도 지료 지급을 둔 분쟁이 잦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 전문가는 “오랜 기간 묘지를 무상으로 이용해오다가 지료를 지주에게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현실을 수용하기 힘들 수 있다”며 “지료 지급을 둘러싼 저항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정부가 지료 산정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 마련을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연고자 있어도 무연고 시신, 왜?
마지막 길도 홀로∼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있어도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무연고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장례 없이 시신만 처리되기도 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7일 발행한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 문제점과 개선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무연고 사망자는 지난해 2947건을 기록했다. 이는 2016년 1820건에 비해 증가한 수치다. 이 중 연고자가 있음에도 시신 인수를 거부나 기피하는 건수는 2091건이다.
기준하 입법조사관은 “장례 없이 시신만 처리되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사법에서는 사망자의 유언이 아닌 경우, 장례를 치룰 수 있는 연고자를 배우자 자녀 부모 직계비속 등의 순으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혈연이나 가족관계가 아니더라도 애도를 원하는 사람이 연고자가 돼 장례를 치르게 하는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가족 있어도 인수 거부 빈번
장례 치르게 하는 제도 필요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행정처리지침 ‘장사업무안내’를 제작했다. 장사업무안내에 따르면 장례주관을 희망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는 경우 장례 진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업무처리나 조례에서 따를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시신 처리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 입법조사관은 “장례를 사망자의 의지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과 권리가 장례 절차 처리에서 반영돼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차>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