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즐기는 액티비티 ③의암호 자전거길·물레길

춘천의 바람을 즐기는 두 가지 방법

미국의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친구를 얻는 가장 좋은 길은 스스로 친구가 돼주는 것”이라고 했다. 둘이 떠나는 여행조차 부담스러운 요즘, 길 위에서 자신과 친구가 되면 어떨까. 누군가와 함께 즐기는 것이 익숙하던 액티비티도 홀로 도전해보면 자신을 더욱 믿고 사랑하는 계기가 된다. 아름다운 자연과 상쾌한 바람이 함께 달려줄 춘천 의암호 자전거길과 물레길은 나 홀로 액티비티를 시도하기에 더없이 좋은 코스다.

의암호는 1967년 의암댐이 완공되면서 만들어진 인공 호수다. 의암리 옷바위 근처 협곡을 막아서 의암호라 이름 붙였는데, 이를 계기로 산악 도시 춘천이 호반 도시로 탈바꿈했다. 의암호는 경관이 수려한 삼악산 자락과 그림처럼 떠 있는 상중도, 하중도, 붕어섬 등이 어우러져 자연호 못지않은 풍광을 자랑한다. 타원형 호수 둘레를 따라 마련된 자전거길은 약 30㎞에 이르는 코스 대부분이 완만해서 초보자도 쉽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자전거 도시

춘천은 자전거 도시로 유명하다. 북한강부터 소양강까지 조성된 낭만자전거길에서도 의암호자전거길이 가장 인기다. 쉬엄쉬엄 달려도 3시간 정도면 넉넉하게 다 둘러볼 수 있고, 소양강처녀상과 소양강스카이워크, 애니메이션박물관 등 명소를 끼고 있어 알짜배기 춘천 여행 코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내내 눈에 들어오는 의암호의 평화로운 풍경과 상쾌한 바람은 힐링 그 자체다.

호수 둘레를 따라 자전거대여소와 공기 주입기 등 편의 시설도 잘 갖췄다. 순환형 코스이기 때문에 춘천역이나 공지천, 소양강스카이워크 주변 자전거대여소를 출발점으로 삼는 게 편리하다. 이때 춘천사랑상품권도 사용이 가능하다. 일부 구간은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구분되지 않아, 사람이 지나가면 속도를 늦추는 등 주의가 필요하다.

의암호자전거길에서는 호수를 밖에서만 바라보기만 했다면, 의암호물레길에는 가까이에서 호수를 즐길 수 있다. 현암리 선착장에서 나무 카누를 타고 출발해 하중도 옆에 붙은 아담한 무인도를 돌아보는 코스로, 하얀 줄기가 이국적인 자작나무 숲과 물오리 서식지 등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짙푸른 초목이 울창한 무인도와 하중도 사이 수로는 의암호물레길의 하이라이트다.


통나무 가운데를 파서 만든 카누는 신석기시대부터 사용했을 만큼 역사가 오래된 이동 수단이다. 그 자연스러운 매력 덕분인지 오직 팔의 힘으로 물살을 가르며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나가는 재미가 특별하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속도를 맞춰야겠지만, 혼자 속도를 온전히 즐기니 바람결마저 느껴지는 것 같다. 파란 하늘과 잔잔한 호수, 부드러운 바람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초보자도 쉽게 라이딩 즐기는 곳
평화로운 풍경·상쾌한 바람 힐링

의암호물레길은 3개 코스(자작나무물숲길, 물오리둥지길, 무인도일주)로 나뉘며, 각 코스를 도는 데 50~60분 걸린다. 수로를 감상하려면 무인도일주 코스를 선택해야 하고, 물오리둥지길은 서식지 상황에 따라 접근할 수 있다. 하절기에는 오후 6시30분에 노을카누잉도 운영한다.

카누 투어에 앞서 간단한 안전 교육과 강습을 받아야 한다. 패들링 원리가 단순한 편이라 초보자도 익히기 쉽다. 혼자 패들링하다가 지치거나 방향을 잘못 잡으면 안전 요원이 보트를 이용해 끌어주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이용객이 많은 주말에는 1인 체험이 어려울 수 있으니 평일 방문을 추천한다. 요청하면 안전 요원이 탑승해 보조해주기도 한다.

의암호스카이워크는 자전거에서 내려 잠시 호젓한 풍경을 감상하기 맞춤한 장소다. 스카이워크 입구에 있는 슬리퍼를 신고 입장하면, 투명한 바닥 아래로 의암호가 훤히 보인다. 전망대에선 바람에 일렁이는 의암호와 병풍처럼 그림자를 드리운 삼악산 비경을 함께 담을 수 있다. 의암호자전거길에서도 호수 위를 지나는 수상 자전거도로 곁에 자리해, 관광객보다 라이더나 산책 중인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덕분에 한적한 여유를 만끽하기 제격이다.

땀 흘린 뒤에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당기기 마련이다. 지난 5월에 문을 연 ‘감자아일랜드’는 강원도 대표 작물인 감자와 강원도농업기술원에서 개발한 토종 효모를 사용하는 맥주 양조장이다. 소양강 복숭아를 활용한 말랑피치사워, 마음씨가 부드러운 우두동 사람들을 떠올리며 만들었다는 우두동 사람들처럼 맥주 이름만 봐도 춘천의 감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소고기 감자 볼을 매콤한 로제 소스에 올린 감자둥둥섬은 직원들이 ‘강추’하는 안주이자 시그니처 메뉴다.


춘천에서 특별한 한 끼를 맛보고 싶다면 육림고개로 가자. 뉴트로 여행지로 관심을 모으는 이곳은 과거 춘천 시민들이 저녁거리를 사러 다닌 친근한 상권이었다. 

감자아일랜드

1990년대 들어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가, 최근 이곳에 청년 창업가들이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국적인 이탈리안 레스토랑부터 복고 감성 물씬 풍기는 주점, 사랑스러운 디저트 카페까지 눈과 입이 절로 즐거워진다. 30년 전통의 메밀전집이나 추억의 떡볶이집,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기는 방앗간 등 지역 상권과 어우러진 모습이 구경하는 재미를 더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의암호자전거길→의암호스카이워크→의암호물레길→감자아일랜드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의암호자전거길→의암호스카이워크→애니메이션박물관→감자아일랜드 
둘째 날: 의암호물레길→강원도립화목원→육림고개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춘천에서낭만여행(춘천 관광 포털) tour.chuncheon.go.kr
- 의암호물레길 joymullegil.co.kr
- 감자아일랜드 gamjaisland.com

문의 전화
- 춘천시청 관광과 033)250-3089
- 의암호물레길 033)242-2006
- 감자아일랜드 070-8098-0621 

대중교통
[버스] 서울-춘천,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10회(06:50~21:00) 운행, 약 1시간30분 소요. 춘천고속버스터미널에서 도보 약 420m 이동, 춘천우체국 정류장에서 100-1번 간선버스 이용, 춘천역 정류장 하차, 의암호자전거길 춘천역 자전거대여소까지 도보 약 150m. 춘천고속버스터미널에서 도보 약 420m 이동, 춘천우체국 정류장에서 3번 지선버스 이용, 중앙시장환승센터에서 서면2-1번 마을버스 환승, 현암리 정류장 하차, 의암호물레길까지 도보 약 220m. 춘천고속버스터미널에서 의암호물레길까지 택시 이용, 약 12km.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춘천고속버스터미널 033)256-1571


[기차] 용산역-춘천역, ITX청춘 하루 18~26회(06:00~22:48) 운행, 약 1시간15분 소요. 1번 출구에서 의암호자전거길 춘천역 자전거대여소까지 도보 약 150m. 춘천역에서 도보 약 780m 이동, 춘천농협 정류장에서 서면2-1번 마을버스 이용, 현암리 정류장 하차, 의암호물레길까지 도보 약 220m. 춘천역에서 의암호물레길끼지 택시 이용, 약 12km. *문의: 레츠코레일 www.letskorail.com, 1544-7788


[수도권전철] 상봉역-춘천역, 경춘선 15~25분 간격(05:10~23:16) 운행, 약 1시간20분 소요. 
*문의: 서울교통공사 www.seoulmetro.co.kr, 1577-1234

자가운전
[의암호자전거길] 서울양양고속도로→남춘천 IC에서 남춘천 방면→남춘천IC삼거리에서 양평·춘천 방면→광판삼거리에서 춘천·김유정역 방면→온의사거리에서 소양강댐 방면→춘천역 자전거대여소 

[의암호물레길] 서울양양고속도로→남춘천 IC에서 남춘천 방면→남춘천IC삼거리에서 양평·춘천 방면→광판삼거리에서 춘천·김유정역 방면→팔미교차로에서 서울·가평 방면→의암리·의암댐 방면→화천·춘천댐 방면→의암호물레길


숙박 정보
- KT&G상상마당 춘천스테이호텔(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춘천시 스포츠타운길399번길, 033)818-4200 
- ORA춘천베어스호텔: 춘천시 스포츠타운길, 033)245-4300 
- 춘천센트럴호텔: 춘천시 중앙로68번길, 033)257-1900

식당 정보
- 수아마노(강원도감자뇨끼: 춘천시 중앙로77번길, 033)257-5532 
- 우성닭갈비 본점(닭갈비): 춘천시 후만로, 033)254-0053 
- 감자밭(춘천감자빵·강원도옥수수빵): 신북읍 신샘밭로, 1566-3756 

주변 볼거리
해피초원목장, 제이드가든, 남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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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