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먹는 철밥통' 공공기관 성과급 퍼주기 백태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성과급은 특정한 성과를 쌓았을 때 받는 ‘보상’이다. 실적이 낮으면 당연히 받지 못한다. 그러나 공공기관에서 성과급의 의미는 다르게 해석된다. 보상보다는 당연히 받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1984년 처음 시행된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잘못에 따른 책임을 성과급과 연계해 경영 효율성과 책임경영을 유도하기 위함에 있다.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주도하에 공공기관은 매년 경영평가를 받고 있다. 경영평가 등급은 탁월(S등급)부터 아주 미흡(E등급)까지 6개로 나뉜다.

빚도 성과?

성과급은 보통 공공기관이 평가에서 ‘C 등급’ 이상을 받았을 경우 지급된다. 그러나 부채가 상당하고 경영실적이 낮은 공공기관도 성과급을 직원들에게 지급해 논란이 촉발됐다. 실적과 평가점수가 낮은 데 비해 높은 성과급을 받아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성과급 전수조사 자료(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실 제공)에 따르면 산업통산부 산하 공공기기관장 성과급 지급 순위는 ▲한국수력원자력(1억1751만원) ▲한국남동발전주식회사(1억1322억원) ▲한국서부발전(1억72만원) ▲한전KPS(9934만원)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9600만원) 등의 순이다. 

대부분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자회사가 기관장의 순위가 높은 편이다. 특히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기관장의 성과급은 연봉과 비슷했다. 한전은 올해 경영평가에서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그러나 한전의 상황도 밝지만은 않다. 2019년 말 기준 128조7081억원에서 5조원 이상 증가한 132조4753억원이다. 또 한전은 자회사 대부분의 부채를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한전의 자회사인 한수원의 부채는 2019년 34조768억원에서 16억원이 증가해 지난해 36조784억원을 기록했다. 

한국중부발전도 부채비율이 재정 건정성 기준인 200%을 돌파했다. 한전KPS, 한전KDN은 부채비율이 크진 않지만 지난해 부채가 증가했다.

성과급을 과도하게 지급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공기업은 비단 한전뿐만이 아니다. 부채가 많고 경영평가 점수가 높은 편이 아님에도 공기업 성과급을 타는 게 정해진 수순처럼 보인다. 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서는 공기업의 ‘성과급 파티’가 올해도 이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국석유공사의 경우 경영평가에서 지난해 C 등급을 받은 데 이어 올해 D 등급을 받았다. 그럼에도 지난해 140억원의 자체 성과급을 직원들에게 지급했다. 올해 이미 직원들에게 42억원을 지급했고, 올해 말까지 나머지를 지급할 예정이다. 

한국석유공사(이하 석유공사)도 부채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과거 MB(이명박)정부 시절, 무리한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참여하면서 위기를 맞은 까닭이다.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약 18조600억원이다.

석유공사는 큰 금액의 이자 부담과 보유 유전의 가치 하락에 따라 지난해 자본잠식에 빠진 상태다. 감사원은 석유공사에게 “재무상태가 더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석탄공사(이하 석탄공사)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석탄공사는 현재 ‘빚 돌려 막기’ 중이다. 부채만 자산의 243%에 달해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해당 기관의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2조1058억원이다.


현재 기업어음(CP)을 발행해 운영자금을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석탄공사가 한 해 부담해야하는 이자 비용만 300억원으로 추산된다. 기업평가는 2019년 D 등급, 지난해 C 등급을 받았다. 석탄공사 역시 경영평가에 따른 성과급을 각각 2019년 8억원, 지난해 14억원이 기관장과 임직원에게 지급됐다.

‘눈먼 돈’ 챙기는 게 임자
평가 등급 낮고 부채 많아도 지급
오래된 경영평가제도도 변화 필요

한국광물자원공사(이하 광물자원공사)는 더욱 심각하다. MB정부 시절에 부실 자원외교로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2016년 반기 기준 약 1만453%의 부채비율을 기록한 뒤 자본잠식에 들어갔다. 이후 이자를 갚기 위해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고 있는 중이다. 

특히 광물자원공사는 재기를 모색하기에도 어려운 지경이다. 지난해 4958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면서 무려 1조301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부채도 지난해 말 6조7500억원까지 치솟았다. 광물자원공사도 앞선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낮은 실적과 평가에도 성과급의 액수가 큰 까닭이다. 최악의 경영사태를 맞았지만 지난해 지급한 자체 성과급 규모는 76억원이다. 

광물자원공사는 자체 성과급에 대해 “성과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상여금”이라며 “통상임금에 속하는 전환상여금”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회사 수익에 따라 지급하는 성과급과는 차별된다”고 밝혔다.

공공기관들이 낮은 평가를 받아도 성과급을 가져가는 이유는 부채비율의 점수 비중 탓이다. 해당 점수의 배점은 100점 만점 중 5점에 불과하다. 일자리 창출 부분 배점인 7점보다 작은 점수다.

또 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경영평가 성과급은 ‘평균임금’에 해당한다. 따라서 일정한 조건에 성과급은 근로의 대가인 임금 성격이 강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평균임금이란 3개월간 근로자에게 지급된 임금 총액을 날짜로 나눈 금액이다. 이는 퇴직 등으로 인해 근로관계가 단절된 뒤 퇴직금 등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결국, 정부의 공공기관 예산편성지침 등 공공기관 임금체계를 개선하지 않는 한 성과급 과다 지급 논란은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기재부는 전문가, 공공기관, 관계부처 등으로 ‘경영평가제도개선 TF(이하 TF)’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평가제도 개편 작업에 착수에 나서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기재부가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안을 검토하고 시행에 나서면 38년 만에 전면 개편이 이뤄진다. TF는 평가지표를 단순화하고 기관 유형별로 각기 다른 평가지표를 적용하는 방안을 예고했다. 평가 방식도 기관별 평가 방식에서 교차 평가 방식을 도입하는 등 객관성과 전문성을 제고할 예정이다.

사회와 경제 추이 등 변화에 맞춰 평가 지표도 개편할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의견을 듣는 단계”라며 “이와 관련해 성과급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충분히 듣고 있다”고 말했다. 

낭비 그만!

이소영 의원도 공공기관의 개선을 촉구했다. 이 의원은 “경영실적도 낮은 공공기관이 성과급을 지급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다”며 “국민의 삶과 밀접한 공공기관이 바뀌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강도 높은 조치와 패널티를 부과해 성과급 낭비를 줄여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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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