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강타한 '윤석열 X파일' 입체분석

사방이 적… X맨은 내부에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관련된 의혹이 담긴 ‘X파일’로 정치권이 연일 뜨겁다. 다만 실체와 출처가 불분명한 ‘지라시’ 수준의 문건들로 인해 혼선만 가중되는 분위기다. X파일은 어디서 만들어졌나. 그리고 왜 지금에서야 터진 걸까.

야권의 정치 평론가 장성철씨가 쏘아올린 ‘윤석열 X파일’ 논란이 연일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장씨는 X파일을 본 후 “방어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며 윤 전 총장을 향한 지지 철회의 뜻을 밝혔다. 아군으로부터 나온 폭로라는 점에서 윤 전 총장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A4 10장
4가지 버전

윤석열 X파일은 이미 정계에서 소문이 파다했다. 이를 최초로 언급한 이는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의 신지호 전 의원. 그는 지난달 24일 한 칼럼에서 윤 전 총장과 관련된 X파일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며, 생산지를 ‘여권’으로 지목했다.

신 전 의원은 야당 의원실에서 해당 자료를 갖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는 “마침 야권에서도 윤석열 때리기의 수요가 발생했다”며 “대선후보 경선에서 윤석열을 제쳐야 하는 사람들 또한 윤석열을 무너뜨릴 비책을 찾아 헤매고 있다”고 추측했다.

이후 여권에서도 X파일 대열에 합류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윤 전 총장과 관련된 파일을 수집하고 있다며 혹독한 검증을 예고했다.


이후 장씨의 ‘내부 수류탄’은 X파일 논란에 불을 지폈다. 장씨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그가 본 X파일은 올해 4월 말과 6월 초에 작성된 두 가지다. 각각 A4 10장 분량이다. 4월 말에 작성된 문건은 윤 전 총장에 대한 기본 정보를 담았다.

반면 6월에 작성된 문건에는 윤 전 총장과 관련된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돼있다. 부인 김씨, 장모 최씨 등과 관련된 의혹이 인물별로 분류됐다. 동시 윤 전 총장을 공격할 수 있는 부분, 사실관계를 좀 더 확인해야 할 점 등의 정무적 판단까지 담겨 있었다고 한다.

장씨는 해당 X파일 문건의 전달한 이를 “여야 안 가리고 정보 쪽에 상당히 능통한 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장씨는 X파일을 작성한 당사자를 여권과 정부기관으로 지목했다. 장씨에게 X파일을 전달한 이가 4월에 작성된 문건의 출처를 정부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아군 진영서 터진 폭탄…공작 배후 세력은?
실체 없어 오리무중…반윤석열 연대의 작품?

반면 6월 문건은 정무적 판단이 들어간 만큼 장씨는 여권 쪽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사실상 윤 전 총장을 공격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자료라는 것.

의아한 부분은 장씨가 제기한 X파일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점이다. 윤 전 총장과 관련된 문건들이 돌고 있지만, 모두 장씨가 언급한 문건이 아니다. 현재 정치권에 돌고 있는 문건은 4가지로, 전자파일 형태로 유포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윤석열 X파일(목차)’이란 제목의 PDF 파일이다. 분량은 6쪽. 파일 목차를 보면 윤 전 총장과 그의 아내 김씨, 장모 최씨와 관련된 비리 의혹이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친여 유튜브 매체 ‘열린공감 TV’가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열린공감 TV는 방송을 통해 “해당 파일은 취재 내용을 정리한 방송용 대본”이라며 “지난해부터 윤 전 총장 관련 방송을 많이 했고, 이미 방송을 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실제 내용이 담긴 분량은 200~300쪽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그 밖에 부인 김씨의 사진과 프로필, SNS 활동 내용 등이 담긴 ‘윤석열 마누라’ 등의 제목으로 된 80개 정도의 문서 압축 파일(97.89MB)과 장모 최씨와 관련된 의혹이 담긴 ‘윤석열 누가 죄인인가’란 제목의 문서 파일(238.82MB)도 함께 돌고 있다.

명중탄?
불발탄?

또 윤 전 총장의 ‘공(公)’과 ‘실(失)’ ‘핵심 리스크’ 등 세 가지 목차로 나뉜 2쪽짜리 문건도 돌고 있다. 이 문건은 윤 전 총장의 과거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당시 야당 의원실이 청문회 대비용으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현재 돌고 있는 문건들을 두고 출처가 불분명한 ‘지라시’ 수준으로 평가했다. 대선 국면 때마다 대선주자들을 겨냥한 자료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기관에서 만든 형태라고 하기에도 조악한 수준으로 보인다.

즉 현재 정가에서 돌고 있는 X파일은 정부에서 조직적으로 자행한 ‘불법 사찰의 결과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야당 일각에서는 윤 전 총장의 장모인 최씨와 동업자였던 정씨 주장이 담긴 ‘파생본’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씨는 원래 최씨와 동업자 관계였지만, 둘은 금전 관계로 인해 틀어졌다. 이후 최씨가 정씨를 고소했고, 이 일로 기소된 정씨는 강요죄 등의 혐의로 2년가량 옥살이를 했다.

정씨는 출소 후 최씨의 위증 등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왔다. 윤 전 총장이 과거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를 앞둔 시점에 정씨가 소관 상임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야 의원실을 광범위하게 접촉했다는 후문이다.

실체 없는 X파일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난데없는 ‘배후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민의힘 정미경 최고위원은 장씨의 말을 의심하며 “입수하지 않고 한 것처럼 거짓말하면서 나쁜 게 있는 것처럼 표현한 것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식적으로 10페이지짜리 문건 2개에 윤 전 총장과 관련된 의혹을 뒷받침할 증거가 있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장씨가 여러 언론과의 접촉으로 X파일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배경 역시 미심쩍다. 장씨가 야권 인사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보수 진영 내 ‘반 윤석열’ 세력이 ‘작업’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 배경이다.

배후설
폭로전


일각에서는 논란을 제기한 장씨 배후에 김무성 전 국민의힘 의원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장씨는 김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다. 지난 4월 재보궐선거에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산하 비전전략실 소속으로 일한 바 있다.

김 전 의원은 “전혀 무관하다”며 펄쩍 뛰었고, 장씨 역시 “김 전 의원과 교류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밖에도 황교안 전 대표가 배후에 있다는 설도 나온다. 황 전 대표는 후보 경선에서 윤 전 총장과 겨뤄야 한다. 과거에도 두 사람은 특수통과 공안통 검사 출신으로 경쟁 관계에 있었다.

또 윤 전 총장은 황 전 대표의 법무부 장관 시절에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이후 윤 전 총장이 검찰의 수장에 오른 이후 특수부 출신들이 주요 보직을 장악하면서, 황 전 대표의 공안부 라인은 몰락을 겪어야 했다.

과거 흐름을 비춰봤을 때 황 전 대표의 명분은 충분해 보인다. 공안부 출신인 황 전 대표가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다만 황 전 대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공안통과 특수통은 서로 돕는 관계”라고 반박했다.

X파일 실체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자 정치권은 서로 책임을 떠밀고 있다. 특히 여당은 이간계 전략을 펼치는 양상이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X파일의 근원지를 야당으로 지적하며 “홍준표 의원이 윤 전 총장이 지난여름에 무엇을 했는지 가장 잘 알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홍 의원은 “X파일을 본 일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면서도 “검찰총장은 법의 상징인데 그런 분이 정치판에 등판하기도 전에 20가지에 달하는 의혹이 있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윤 전 총장을 저격했다.

‘누가 만들었나’ 여야 공방에 이간계 의심도
강경 대응하는 ‘윤’…제2의 김대업 사건?

과거부터 홍 의원은 야권 내 ‘윤석열 저격수’ 역할을 해왔다. 윤 전 총장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지난 2016년 국정 농단 수사 등에 관여한 것을 들어 “우리를 그렇게 모질게, 못살게 굴던 사람을 우파 대선 후보 운운하는 것도 아무런 배알도 없는 막장 코미디”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사실상 야권 내부를 ‘갈라치기’ 하려는 여권의 속셈이 통한 것.

야권의 속내는 더욱 복잡하다. 유력 대권주자인 윤 전 총장의 이른 홍역으로 혼선이 가중되면서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윤 전 총장이 입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X파일 논란과 관련해서도 대응할 계획이 없다는 뜻을 밝혔다.

또 야당은 ‘정치 공작’이라며 여당의 공격에 대응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송 대표가 제작·유통 원조”라고 주장했고, 성일종 의원은 “누가 만들었는지 출처가 중요하다”며 여권을 겨냥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원팀의 정신으로 송영길 대표의 X파일 이간계에 맞서 함께 싸우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윤 전 총장은 태세를 전환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22일 이상록 대변인을 통해 “출처불명 괴문서로 정치 공작하지 말고 진실이라면 내용·근거·출처를 공개하기 바란다”며 “그래서 진실을 가리고 허위사실 유포와 불법사찰에 대해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X파일로 위기에 몰리자 ‘불법사찰’ 등의 강한 어조로 국면전환을 노린 것이다. ‘전언 정치’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침묵은 국민들의 피로감을 가중시킬 수 있다. 또 윤 전 총장 측은 이와 관련된 법률대응팀 구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X파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윤 전 총장의 내상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의혹만 남는 X파일은 공작정치의 전형적인 수법으로 불린다. 실제로 역대 대선 시즌에는 X파일, 허위 증언 등 온갖 네거티브가 정국을 휩쓸었다.

복잡한 야권
정공법 돌파?

일각에서는 과거 ‘김대업 사건’과 비슷한 모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02년 16대 대선 당시 병무 관련 의정 부사관을 지냈던 김대업씨가 “1997년 15대 대선 직후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의 병역 비리를 은폐하기 위한 대책 회의가 열린 뒤 병적 기록이 파기됐다”고 주장한 사건이다. 이는 증거 조작으로 결론났지만, 당시 이 후보는 지지율이 급락했고 결국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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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