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유비' 유상철의 끝나지 않은 축구 이야기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6.14 15:47:04
  • 호수 13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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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사에 큰 족적 남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2002년 한일월드컵 영웅이었던 유상철 인천유나이티드 명예감독. 그는 쉰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선수 시절 그라운드에서 묵묵하게 투혼을 보여줬던 유 감독은 췌장암 병마와 싸우다 “건강하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이제 하늘나라에서 하고 싶은 축구 원 없이 해라.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마음 편하게 지내길 바란다.”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이 먼저 하늘나라로 간 유상철 전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에게 보낸 편지 마지막 문구다. 

국내외
추모 물결

유 감독이 지난 7일, 향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19년 11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1년7개월간을 투병했다.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침묵의 살인자’라고도 불린다. 한참 진행된 이후에야 복통과 함께 황달이나 소화불량, 식욕부진, 피로감 등 증상이 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히딩크, 손흥민, 이동국 등 축구계는 물론 정치권, 연예계에서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던 그였기에 많은 사람이 슬퍼했다.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진 빈소에도 온종일 선후배 축구인과 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날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함께 쓴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황선홍 전 대전 시티즌 감독,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 김남일 성남FC 감독, 이천수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 안정환, 이민성 대전시티즌 감독, 현영민 JTBC 해설위원 등이 빈소를 찾았다.

해외 축구계도 유 감독을 애도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난 7일 오후 월드컵 공식 계정에 유 감독의 선수 시절 국가대표 경기 출전 사진과 함께 “한 번 월드컵 영웅은 언제나 월드컵 영웅”이라며 추모 메시지를 올렸다.

유 감독이 현역 시절 활약했던 일본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도 트위터를 통해 “지난해 홈 개막전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안타깝다”며 슬픔을 함께했다. 

2019년 가을. 축구계 내에서 ‘유상철 감독이 많이 아프다’는 소문이 돌았다. 10월경 유 감독은 가까운 기자들에게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달했다. 이후 유 감독은 ”괜찮아진다“는 말을 하며 기자들을 오히려 안심시켰다. “건강하다”는 기사를 내달라고 유 감독은 기자들에게 당부했다. 

유 감독의 몸 상태가 팬들에게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2019년 10월19일 성남FC전이었다. 황달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그는 성남전서 너무도 수척한 얼굴로 나타났다.

결국 성남전이 끝나고 나서 인천 구단에서 유 감독이 췌장암 4기라고 발표했다. 그의 병세가 알려지고 나서 바로 만난 상대는 수원 삼성. 당시 수원의 사령탑은 유 감독의 1971년생 동갑내기 이임생 감독이었다. 두 사람은 연령대별 대표팀부터 국가 대표팀까지 함께 한 절친한 친구였다.

2019년부터 췌장암 말기 투병
항암치료 하며 복귀 의지 보여

성남전이 끝나고 병원에 입원했던 유 감독은 수원전 사전 기자회견에서 “꼭 돌아오겠다고 선수들에게 약속했다. 다행히 약속을 지켰다”고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의연한 친우를 본 이임생 감독은 “사실 상철이에게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냥 안아주기만 했다. 그래도 경기에서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 이임생 감독은 유 감독이 힘든 상태로 벤치를 지키는 만큼 수원 선수들에게 골을 넣어도 세리머니를 자제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실제로 타가트가 선제골을 기록한 이후 세리머니를 하며 들뜬 모습을 보이려 하자 도움을 기록한 전세진이 다가가 이임생 감독의 당부를 전하기도 했다.

0대 1로 끌려가던 인천은 후반 추가 시간에 명준재의 극적인 골로 무승부를 거뒀다. 이날 거둔 승점 덕에 인천은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리그 잔류를 확정할 수 있었다. 승부가 끝나자 이 감독과 유 감독의 감정이 표출됐다. 평소 생김새와 달리 잔정이 많다는 소리를 듣는 이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유 감독을 언급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던 유 감독도 친구의 마음에는 애틋한 감정을 표했다. 그는 “(이 감독과는)오랜 친구다. 덩치는 큰데 마음이 너무 여리고 눈물도 많은 친구”라며 “임생이가 내 걱정을 하는 것 같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유 감독은 시즌이 끝난 후 1월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직을 사임하고 명예감독으로 남으며 투병에 전념해왔다. 회복에 강한 의지를 보였던 그는 힘겨운 항암치료를 견디면서도 건강이 많이 호전된 모습을 보였다.

방송과 유튜브 등에 출연해 축구인, 팬들과의 소통을 이어가기도 했다. 지난 시즌 인천이 또다시 강등 위기에 놓이자 감독직 복귀에 의지를 보이는 등 인천과 축구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 감독의 투병 소식이 알려진 이후 많은 이들이 보여준 반응은 ‘인간 유상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축구 팬들과 축구계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유 감독이 J리그 시절에 활약했던 요코하마 팬들까지 ‘할 수 있다. 상철이형’이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일관계가 경색돼 민감할 때, 그것도 팀을 떠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선수의 투병 소식에 일본 팬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매너는 축구에는 국경도 편견도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며 깊은 감동을 남겼다.

A매치 124경기
멀티플레이어

국가대표 경기를 뜻하는 A 매치를 100경기 이상을 뛰면 대단한 선수라고 인정받는다. 무려 124경기를 출장했던 유 감독은 한국 국가대표 역대 출전수에 차범근(136), 홍명보, 이운재(133)에 이어 5위에 랭크됐다. 124경기 금자탑을 쌓은 투혼의 멀티플레이어 유상철은 데뷔 때부터 화려했다. 

유 감독은 서울 은평구 응암초등학교에서 처음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경신중학교와 경신고등학교를 거쳐 건국대학교를 졸업해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1994년 현대 호랑이에 입단했다. 유 감독은 어느 포지션에서나 활약할 수 있는 선수였다.

대학교 1학년때까지만 해도 공격수로 뛰었으나 1993버펄로유니버시아드대회 이후 수비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일찍부터 프로구단의 스카우트 표적이 돼왔다.

키 183cm의 탄탄한 체구에서 나오는 뛰어난 체력 덕분에 그는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위치에서 뛸 수 있는 선수로 유명했다. 스트라이커,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등 소화가 불가능한 포지션이 없는 선수였다.

K리그에서는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부문에서 모두 베스트 11에 선정된 2명의 선수 중 한 명이 유 감독이다. 그를 사람들이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멀티플레이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비수로 있으면서도 순식간에 상대 그라운드 깊숙하게 침투하는 것이 장기인 유 감독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때 일본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었다. 1996년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 대회 때 비쇼베츠 감독의 선택을 받아 올림픽팀 멤버로도 활약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1위로 월드컵에 진출한 한국은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멕시코에 1대 3으로 역전패당한 한국은 2차전에서 네덜란드에 0대 5로 대패했다. 이 경기 이후 차범근 감독이 대회 도중 경질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벨기에전 전반 7분 만에 뤼크 닐리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밀리기 시작했다. 감독도 없이 치르는 경기에서 4년을 기다린 월드컵이 허무하게 끝나가는 상황이었다. 또다시 4년을 기약해야 했다.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둔 적 없는 한국으로서는 한 골이 간절했다. 후반 25분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는 골이 터졌다.

왼쪽 측면에서 얻은 프리킥 기회에서 하석주가 올려준 공을 유 감독이 슬라이딩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벨기에 골문을 열었다. 유 감독은 득점 후 포효했다. 한국은 이후 추가 득점을 거두지 못하며 월드컵 첫승 기회를 4년 뒤로 미뤄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했다.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상대가 멕시코전. 첫 번째 경기였던 프랑스전에서 0대 5 대패를 당한 뒤 최악의 분위기에서 상대하기에 멕시코는 버거운 팀이었다. 이날 선발로 나선 유 감독은 전반 경기 중 상대 선수와 경합하다가 얼굴에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유 감독은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한국은 후반 11분 황선홍의 선제골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지만 후반 36분 멕시코에 동점골을 내주면서 흔들렸다. 후반 44분 투혼의 결승골이 터졌다.

박지성의 코너킥을 유 감독이 완벽한 스파이크 헤더로 연결한 것이다. 

더 놀라운 건 당시 유 감독은 전반전부터 이미 코뼈가 골절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후에 거스 히딩크 감독은 “유상철은 가장 말을 듣지 않는 선수였다”며 “나를 벤치로 몰아내지 말라며 내 말을 끝까지 어기고선 후반전에 중요한 골을 넣었다”고 언급했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건 2002년 폴란드 전 추가골이다. 황선홍이 선취골을 넣은 뒤 1대 0으로 앞서갔지만 불안한 한국팀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후반 8분, 유 감독은 강한 중거리 슈팅으로 폴란드 골키퍼 두덱의 방어를 피해 골네트를 갈랐다.

월드컵 첫 승
쐐기골 주인공

한국의 월드컵 첫 승에 가까워진 쐐기골이었고 결국 한국은 1승을 먼저 챙겼다. 

당시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휘젓던 유 감독의 세리머니는 아직도 국민들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사상 첫 월드컵 승리를 이끌었고 숙원이었던 16강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유 감독은 황선홍, 홍명보, 이운재, 안정환, 김남일, 설기현, 송종국, 이영표, 박지성 등과 함께 4강 신화를 쓰며 한국 축구사에 족적을 남겼다. 당시 히딩크는 유 감독을 김남일과 함께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했지만 상황에 따라서 공격수나 수비수로 활용했다. 

특히 큰 활약을 펼쳤던 것은 16강 이탈리아전. 당시 한국은 0대 1로 이탈리아에 뒤지고 있던 상황. 히딩크 감독은 후반전에 수비수 3명을 빼고 황선홍, 이천수, 차두리 3명의 공격수 투입했다. 공격수 5명을 필드에 두는 전술을 쓸 수 있었던 데는 유 감독과 박지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 감독은 선발 때는 미드필더로 뛰다가 선수교체가 이뤄지면 백3의 좌측 스토퍼로, 홍명보가 빠지면 다시 중앙 수비수로 들어가 안정적인 수비수를 보였다.

결국 이날 유 감독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은 이탈리아에 2대1 역전승을 거둔다. 2004년엔 아테네올림픽에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8강 진출을 돕기도 했다. 2005년까지 대표팀을 뛴 그는 성인 국가대표로만 총 124경기에 출전하는 기록을 세웠다.

유 감독은 은퇴 후 3년 뒤인 2009년 춘천기계공고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11년에는 대전 시티즌(현 대전 하나시티즌)을 맡으면서 프로 감독으로 데뷔한다.

유 감독은 최용수 FC서울 전 감독에게 화가 났던 일화를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털어놨다. 유 감독은 팀 사정상 즉시 전력감이 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다.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최 전 감독에게 FC서울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를 추천받았다.

최 전 감독은 팀에서 출전을 잘하지 못하는 A 선수를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시켰는데 알고 보니 해당 선수는 디스크 부상이 있었던 것. 유 감독은 최 전 감독에게 부상선수라고 하자 최 전 감독은 자신도 몰랐다고 했다.

한일 월드컵 4강 ‘2002 스타’
“함께한 영광 기억하겠습니다”

훗날 유 감독은 “감독이 모르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억울해했다. 2014년부터는 울산대학교 감독으로 경험을 쌓은 뒤 2018년 전남 드래곤즈로 프로 무대에 복귀했으나 8개월 만에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듬해인 2019년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직을 맡는다. 

유 감독은 인천 감독 선임 직전 “실패한 감독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게 두렵다”면서 인천에서 재기를 노렸다. 시즌 중반부터 팀을 맡았기에 초반엔 다소 부침이 있었지만 세 경기 만에 제주 원정에서 2-1 승리를 거두면서 인천 감독으로서 첫 승리를 거뒀다. 

여름 이적 시장 동안 당시 인천의 전력강화실장이었던 이천수 실장과 함께 김호남, 장윤호, 마하지, 케힌데 등 여러 선수를 보강하면서 K리그1 생존을 위해 애썼다.

시즌은 어느 덧 종반으로 향했고 파이널 라운드가 시작됐다. 유상철호의 인천은 성남 원정에서 무고사가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넣으며 1대 0으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이날 경기가 끝나자 선수들을 비롯해 이천수 실장까지 오열하는 모습이 중계화면을 통해 팬들에게 전달됐다.

귀중한 승점 3점을 챙긴 팀의 모습치곤 묘한 분위기가 인천을 감쌌다. 이날 결승골을 넣었던 무고사도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김호남도 “나중에 알게 되지 않을까”라며 자리를 피했다.

이후 유 감독은 병원에 입원하면서 잠시 훈련장을 떠났지만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다시 인천 훈련장을 찾았다. 췌장암 4기 판정 소식이 구단 공식 SNS를 통해 전해졌지만 유 감독은 자신의 말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듯 여전히 인천 벤치를 지켰다. 

유 감독은 2019시즌 최종전 경남FC와의 경기에서 0대 0으로 비기면서 K리그1 생존을 확정했다. 유 감독은 팬들과의 약속을 지킨 사람이 됐다. 생존이 확정된 뒤 인천 팬들은 “남은 약속 하나도 꼭 지켜줘”라는 피켓을 들었다.

인천유나이티드는 유 감독이 건강상 이유로 감독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신임 감독 선임을 서두르지 않았다. 함께했던 코치진에 대한 신뢰를 보내며, 지난 1차 태국 전지훈련도 기존 코치진으로 치러냈다. 

기존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와 함께 소통하고 화합할 수 있는 지도자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잡고 접근한 끝에 임완섭 신임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낙점했다.

이 과정에서 유 감독의 추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유나이티드 수뇌부는 새로운 감독을 찾으며 유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임 감독은 임 감독은 88학번이고 유 전 감독은 90학번으로 특별한 인연이 있다.

인천 팬들과 
약속 지켰다

과거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도 같이 선발됐을 정도로 잘 아는 사이며 서로 안부를 묻는 친한 선후배 사이였다. 또 임 감독을 코치로 데뷔시킨 사람이 바로 유 전 감독이다. 임 감독은 “유상철 감독이 건강하게 돌아오면 언제든 자리를 내어줄 마음이 돼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감독은 지난해 6월, 7연패를 책임지며 지휘봉을 내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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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