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정민이 아빠' 손현 애끊는 부정

사고? 사건? 이대로 묻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한강변에서 술을 마시다 실종된 고 손정민군(이하 손군)이 주검으로 발견된 지 한달이 지났다. 사건은 명확히 밝혀진 사항 없이 오리무중인 상태다. 손군의 아버지 손현씨(이하 손씨)는 지난 26일 입장문을 발표하며 경찰수사에 미흡함이 있다고 비판했다. 

한강 실종 대학생 손정민 아버지 손현씨

손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의혹들에 대한 글을 올리고,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의혹에 대해 공론화 시키며 아들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블랙아웃
친구 A씨

손씨는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으로 직장을 다니며 16년 동안 블로그 활동을 통해 일상을 공유해왔다. 여행을 좋아해 가족과 함께 한 여행 사진을 게시하며 손군과 함께한 추억을 쌓았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아들이 실종됐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린 이후부터 더 이상 아들과 함께한 사진을 올릴 수 없게 됐다. 현재 손씨의 블로그에는 사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글들로 가득하다.

손씨는 언론과 접촉해 인터뷰하며 직접 경찰수사의 미흡함에 대해 지적하고, 블로그를 통해 경찰이 발표한 내용들에 대해 의혹들을 제기하고 있다. 사건 발생일은 지난달 2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군과 A씨는 오후 10시30분경 한강 공원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영상 속 손군과 A씨는 술을 마신 뒤 춤추는 영상까지 찍으며 자리를 즐겼다. 

친구 A씨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오전 2~3시 사이에 술이 오르자 손군이 일어나 혼자 뛰어다니고 넘어져 손군을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이후 친구 A씨는 자신의 핸드폰을 이용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손군을 깨운 뒤 집으로 오라는 대화를 했다. 

A씨는 오전 4시30분경 택시를 타고 귀가했고, CCTV에 친구 혼자 한강공원을 나오는 장면이 포착됐다. 같은 날 오전 5시20분경에는 옷을 갈아입고, 가족과 한강 공원에서 손군을 찾기 위해 한강공원에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손군을 찾지 못하자 A씨 부모는 손군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후 손군의 부모가 손군의 핸드폰에 전화를 3차례 시도했으나 받지 않았고, 다시 전화를 걸자 친구 A씨가 전화를 받았다.

손군의 부모는 오전 7시경 서로의 휴대폰이 바뀐 점을 인지해 A씨 번호로 전화를 계속 걸었으나 받지 않았고, 경찰 조사 결과 A씨의 핸드폰은 7시에 휴대폰 전원이 꺼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손씨는 곧바로 실종신고를 했으나 손군은 돌아오지 않았다. 실종 5일 뒤 민간구조사의 도움으로 손군은 지난달 30일 잠수교 인근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손군의 시신 발견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는 부검을 진행했고, 부검 결과 사인은 익사로 판명났다.

한강 사건 발생 한달 지나
경찰 발표에 “미흡” 반발


현재 경찰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단순 익사 사건인지 익사 사고인지 경찰은 명확하게 결론 짓지 못하고 있다. 언론과 네티즌은 친구 A씨에 대해 연일 의혹을 제기했고, 침묵을 지키고 있던 친구 A씨는 변호인을 통해 지난 17일이 돼서야 입장을 밝혔다. 

현재 변호인은 A씨가 기억하고 있는 사실이 없고, 둘은 해외여행을 갔을 만큼 친한 사이였다며 관련 의혹들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건 당시 상황에 대해 A씨가 만취해 어떤 술을 어느 정도로 마셨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며, 기억하는 것은 자신이 옆으로 누워 있던 느낌, 나무를 손으로 잡았던 느낌, 고인을 깨우려고 했던 점 등 일부 단편적인 것들 밖에 없다고 했다. 

구체적 경위를 숨겨왔다는 지적에는 A씨와 가족은 진실을 숨긴 게 아니라며 의혹들을 부인했다. A씨가 만취로 인한 블랙아웃으로 제대로 기억하는 게 별로 없고 실제로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 객관적 증거가 최대한 확보되기를 기다리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한강 실종 대학생 손정민씨 친구 휴대폰을 수색 중인 경찰 병력

신발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는 신발이 낡았고 밑창이 닳아 떨어져 있었으며, 토사물까지 묻어 있어 A씨 어머니가 실종 다음 날인 지난 26일 집 정리 후 다른 가족과 함께 모아뒀던 쓰레기들과 같이 버렸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A씨 어머니가 사안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상황이었고, 신발 등을 보관하라는 말도 듣지 못해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는 게 A씨 변호인의 설명이다.

변호인은 경찰 수사 결과를 보고 A씨에 대해 판단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입장 발표 후에도 여전히 미궁에 빠진 상황이다. 

직접 발로… 
고군분투

경찰은 사고와 사건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로 지난 27일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국과수의 손군 부검 결과를 토대로 타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내놨다. 

손군의 몸과 옷가지 등에서 타인의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고, 친구 A씨가 착용한 옷과 가방에서도 혈흔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범죄 혐의점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현재 경찰은 사인이 익사로 추정된다는 국과수 소견이 나온 만큼 익사에 이르게 된 경위에 대해 손군의 사망 전 행적을 확인하고 있다.

경찰은 손군과 A씨의 행적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서도 브리핑을 통해 소명했다. A씨도 한강에 입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택시기사의 진술을 근거로 내세웠다.


경찰에 따르면 A씨가 집으로 귀가할 때 탑승했던 택시기사는 운행 뒤 세차할 때 차량 뒷좌석이 젖지 않았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낚시 중이던 5명이 이날 오전 4시40분경 한강으로 들어간 남성을 포착했다는 진술도 공개했다. 다만 이들이 본 남성과 손군이 일치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입수자의 신원 확인을 위해 지난달 24~25일 서울에서 실종신고가 접수된 사안을 조사한 결과 입수자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과수 감정 결과에 따르면 손군의 양말에 묻은 흙과 강가에서 10m 거리에서 채취한 토양의 원소 조성비는 표준편차 범위 내에서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 A씨와 가족에 대한 수사가 지연됐다는 지적에 대해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A씨와 가족들은 경찰이 요구한 부분에 대해 핸드폰, 노트북 등을 포렌식하고 주거지 주변 CCTV 분석, 집안 수색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수사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렇게 
미궁에?


실종 접수 이후 손군을 찾기 위해 많은 인력을 투입했고, 분석한 CCTV만 126대였다. 

목격자 진술조사 또한 16명을 확보해 현장조사, 법최면, 디지털포렌식 등을 진행했다. A씨와 그의 가족 역시 총 10차례 조사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군 사망과 관련한 의혹들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목격자 진술에 치중한 점이 있고, 경찰이 실종에 무게를 둬 티셔츠 등을 직접적인 증거를 수사하지 않아 의혹이 짙어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손씨 역시 수사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건 초기에 손군이 술을 마시면 잠이 드는 성향을 알아 손씨는 사고로 보고 수사를 부탁했지만 함께 있던 A씨에 대한 조사가 늦었다는 점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A씨에 대해 실종 당일 아침 A의 혈중알코올 농도를 확인하지 않았고, A씨 몸의 상처 등에 대해 조사된 바가 없고,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관련자인 A씨와 가족보다 지나가는 증인 확보에 주력하는 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손씨는 경찰의 중간 발표 이후에도 블로그에 새로운 글을 올리며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입장을 전했다. 

경찰이 발표한 과거 손군이 물에서 놀았다는 사진에 대해 손씨는 손군이 스스로 물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과거 물놀이를 했다고 해서 당시 13도의 차가운 한강물에 들어간다는 건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정상인도 걷기 힘든 곳을 상처 없이 깊은 곳까지 들어가기 힘들다며 스스로 걸어갔을 가능성은 낮다고도 주장했다. 양말과 관련해서도 강 상류와 하류의 토사성분이 다르다고 하면 논리가 성립되지만 좁은 곳에서 10m 떨어진 곳이 같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의혹·진실 쫓는 아버지 
도대체 진실이 뭐길래…

물속에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는지가 궁금한데 동문서답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A씨가 티셔츠를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도 경찰은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손씨는 사건 당시 A씨가 함께 물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닌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요구하고 나섰다. A씨가 물속에 들어간 것을 확인해줄 신발을 버렸는데 택시기사가 세차를 했다는 점에만 치중했다며 너무 간단한 설명이라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A씨가 입었던 옷들 중 일부만 임의제출됐고, 그마저도 세탁돼 토양검출이 전혀 불가하다는 점도 의문이라고 했다. 또 낚시꾼이 목격했다면 물에 들어간 사람을 왜 구조하지 않았고, 몇 분간 목격했는지, 정말 소리가 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손씨는 A씨가 신발과 티셔츠는 사건이 지난 뒤 이틀 만에 버렸는데 경찰이 의혹을 가지고 수사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A씨가 사전에 의혹이 될만한 증거는 이미 버렸고 충분히 경찰조사에 대비할 시간도 있었다며, 정작 중요한 부분들을 술을 마시고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게 경찰수사에 협조적인 태도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이어 A씨가 어떤 죄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라며 유일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인 그가 솔직하게 얘기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사건의 의혹을 해결하려면 A씨와 A씨 가족이 답할 문제라는 게 손씨의 설명이다. 

손군의 사망 원인은 아직까지 특정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정황이 아닌 수사에 열중한 점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사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경찰이 증거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A씨가 행동을 완전히 못하는 상태였는지 아니면 단순 블랙아웃인지 아직 판단되지 않았기 때문에 손씨가 말한 대로 A씨가 슬리퍼를 신고 펜스를 넘어가는 과정이 어떤 상황이었는지에 대해 특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교수는 술을 마시고 블랙아웃을 경험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기대행동이 있는데 A씨가 하는 행동은 일반적인 상황과 다르기 때문에 손군의 가족들이 충분히 의혹을 제기할만하다고 밝혔다.

답답한 국민
선물과 응원

아들이 실종된 이후부터 수차례 실종 장소를 방문하고 있는 손씨는 관련 의혹들을 해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유족들은 경찰의 발표가 있을 때마다 수사가 종결돼 실족사로 처리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인 상태로 전해진다. 손씨는 “어떤 진실이든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며 “전문가인 경찰이 잘 해결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프로파일러가 보는 정민이 사건은?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A씨 측의 입장문이 전체적으로 지금까지 제기된 의문점들에 대해 하나씩 짚어 해명하는 방식이었다며 핵심적인 부분은 블랙아웃 되어 기억이 안 난다는 게 가장 큰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손정민군과 함께 술을 마셨던 A씨의 당시 대응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배 프로파일러는 “A씨의 행동이 현장상황과 맞지 않는다”며, “손군을 찾는다거나 최소한 경찰에 신고를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친구가 보이지 않는데 자기 집에 돌아가고 이후에 부모님이랑 찾는 다는 점에서 사건과 사고가 결합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A씨가 방어적일 수밖에 없었던 점은 이해하지만, 너무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

프로파일러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은 “술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 소장은 손군의 사망 원인으로 타살, 실족사 등을 꼽으며 “제3자가 개입했다면 늦은 시간까지 범행 장소 근처에서 술을 마신 사람들 중 한 명중 범인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알코올을 일정량 이상 섭취하면 과잉행동을 하게 되고 감정도 격해진다”며 “조절 능력도 상실하게 돼 비틀거리거나 헛디디게 되고 심지어 기억상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손군의 사건은 음주 상태에서 상호 간 어떤 행동들이 있었는지 밝히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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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