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집> '코로나 대공황' 그래도 희망은 있다

암흑기에 비친 실낱같은 빛줄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이 만든 암흑 터널에 갇혔다. 우리나라도 1년 넘게 출구조차 잘 보이지 않는 미로를 헤매고 있다. 경제·사회·문화할 것 없이 모든 분야의 모든 지표가 바닥을 향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이제야 조금씩 터널 끝,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2019년 12월27일 중국 후베이성 의사 장지셴이 중국 보건당국에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을 보고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2019년 12월31일 중국은 후베이성 우한에서 정체불명의 폐렴이 발생했다고 세계보건기구(WHO)에 알렸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창궐의 시작점이다. 

중국서 시작
전 세계 패닉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월20일 첫 확진자가 확인됐다. 정부는 ‘신종플루’ 이후 감염병 위기 경보를 ‘경계’로 격상하고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설치하는 등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하지만 2월18일 신천지를 중심으로 대구·경북에서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1차 유행이 시작됐다. WHO는 3월11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집중적인 진단검사와 역학조사가 이뤄졌고 대면 접촉을 줄이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시행됐다. 이태원 클럽이나 물류센터 등에서 소규모·산발적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8월 중순경 종교시설과 다중이용시설에서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2차 유행이 시작됐다.

고령층 감염의 증가로 중증 환자가 많이 발생한 시기다.

11월 중순부터 3차 대유행이 시작됐다. 하루 평균 100명 내외로 유지 중이던 확진자 수가 12월 말에 이르러서는 하루 평균 1000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사망자 역시 급증해 누적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현재는 하루 평균 확진자 수가 600~700명을 오가면서 4차 유행의 기로에 서있다.

더 이상 방역만으 코로나19의 확산을 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백신이 ‘게임 체인저’로 떠올랐다. 화이자·모더나·얀센·노바벡스·아스트라제네카·스푸트니크V 등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에서 백신 개발이 이뤄졌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가 백신 물량 확보를 위한 협상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가 현재(지난 20일 기준)까지 확보한 코로나19 백신 물량은 총 9900만명분(1억9200만회분)이다.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 등은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면서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4일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에 한해 실내외 어디서든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밝혔다.

전 세계 최초의 ‘노 마스크’ 선언이다.

코로나19는 사람들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제2부본부장은 지난해 4월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며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생활 속에서 감염병 위험을 차단하고 예방하는 방역활동이 우리의 일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 코로나19 창궐 이후 경제·사회·문화·교육·복지·보건 등 모든 분야에서 두드러진 변화가 나타났다. 대면접촉이 줄어들고 비대면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이른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수준으로 사회가 바뀐 것이다. 모든 지표가 하향 곡선을 그렸고 국민들의 삶은 암흑 속으로 빠져 들었다.

지난해 2월 첫 확진자 이후
1년3개월만 사회 전반 파탄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했다.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도 전년보다 줄어든 3만100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로 집계됐다. 외환위기 당시 1998년(-5.1%) 이후 22년 만이다.

1980년(-1.6%)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역대 3번째 역성장이다. 

경제활동별 GDP 성장률을 보면 건설업(-0.8%) 감소폭은 줄었지만 서비스업(-1.2%)과 제조업(-1.0%)은 감소로 전환했다. 서비스업과 제조업은 각각 1998년(-2.4%)와 2009년(-2.3%)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이다. 코로나19 충격이 1998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에 버금간다는 방증이다. 

특히 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때 아닌 호황기를 맞은 택배나 배달 업계와는 달리 대면 영업을 하는 자영업의 타격이 컸다. 사회적 거리두기·5인 이상 집합금지 등의 시행으로 대면 모임이 대폭 줄어들면서 매출이 90% 이상 감소한 업종이 속출했다.

정부가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급한 불을 끄려 했으나 자영업자들의 줄폐업을 막진 못했다. 

지난 1월 통계청과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전국 자영업자는 553만1000명으로 전년보다 7만5000명 감소했다. 창업보다 폐업이 7만5000명 많았다는 뜻이다. 특히 수도권에서 자영업자의 수가 가장 많이 줄어들었다.

코로나19 2·3차 유행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어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른 지역보다 강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문만 열어둔 채 영업을 제대로 못하는 식당이 적지 않다"며 "임대기간이 남아 있어 폐업을 안 한 것뿐이지 사실상 폐업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식당은 통계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자영업자들 가운데는 빚으로 가게를 지탱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4차 유행 기로
언제까지 갈까

지난해 자영업자들이 받은 신규 대출액은 120조가량을 기록했다. 2019년 증가액의 2배 수준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803조5000억원이다. 2019년 말(684조9000억원)보다 118조600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자영업자 대출 차주는 238만4000명으로, 1년 전(191만4000명)보다 47만명 늘었다. 잔액 증가율과 차주 증가율 모두 최근 5년새 가장 높았다.

장 의원은 "지난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과 버팀목 자금 등을 지원했음에도 많은 자영업자들이 이례적으로 많은 부채를 동원해 코로나19 위기를 견뎌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의 여파는 청년층을 덮쳤다. 코로나19 2차 유행을 앞둔 지난해 7월 청년실업률(15~29세)은 10.7%까지 치솟았다. 21년 만에 최악의 수치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정식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시기인 20대 후반(25~29세) 실업률도 10.2%로 1999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나빴다. 

잠재적 구직자까지 포함한 체감실업률을 의미하는 확장실업률은 26.8%로 2015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였다. 4명 중 1명 이상이 실업자인 셈이다.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하고 1차 유행이 시작된 2월부터 전체 취업자 수 역시 꾸준히 줄어들었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 지원 사업으로 60세 이상 연령층만 선방했을 뿐, 전 연령층에서 타격을 받았다.

고용시장 한파는 혼인율·출산율에도 연쇄작용을 일으켰다. 지난해 혼인 건수(21만4000건)는 전년 대비 10.7%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와 집합금지 명령으로 결혼을 미루거나 취소한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또 집값 상승과 고용위기 등 경제적 요인의 영향으로 혼인 건수와 혼인율은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70년대 이래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출산율은 재앙에 가까웠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7만2400명으로 전년 대비 10% 감소했다. 합계출산율은 0.8명대로 떨어지면서 사상 최저 기록을 1년 만에 갈아치웠다. 반면 사망자 수는 30만5100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 인구가 자연 감소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84명으로 전년보다 0.08명 하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63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은 물론 OECD 37개 회원국 중 유일하게 0명대다.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면 이 수치가 0.7명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경제부터
연쇄작용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문화예술계는 유례없는 타격을 입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수식이 달릴 정도였다. 특히 공연계는 지난해 괴멸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때 위기보다 심리적 타격이 더 컸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6일까지 공연 개막 편수는 5216편, 매출은 약 172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개막 편수는 9038편, 매출은 2293억원이었다. 지난해 대비 개막 편수는 40% 이상 감소했고, 매출 역시 25%가량 줄었다.

수기로 표를 발권하는 영세 극단, 극장의 작품은 집계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치로 추정된다.

영화계는 ‘붕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2020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극장 관객 수는 5952만명으로 전년 대비 73.7% 감소했다. 2019년 5편의 1000만 영화를 배출하고 전체 극장 관객수 2억2668만명을 동원하며 호황기를 누렸던 극장가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매출액도 최저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인구 1인당 연평균 극장 관람 횟수는 전년 대비 3.22회 감소한 1.15회로 조사됐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73.3% 감소한 5104억원으로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한국영화 매출액은 2019년보다 63.9% 감소한 3504억원으로 집계됐다. 

박스오피스를 살펴보면 지난해 처참했던 영화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20년 박스오피스 1위는 <남산의 부장들>로 관객수는 475만명에 그쳤다. 제작사에서 라인업 중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우는 ‘텐트폴 영화’ 중 하나였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436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실업 등 경제적 불안은 커지는 반면 이를 상쇄할 문화생활 등이 제한되면서 ‘코로나 블루’가 증가했다. OECD가 지난 12일 발표한 <코로나19 위기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이후 우울감을 느끼거나 우울증이 있는 비중이 36.8%로 조사대상 15개국 중 가장 높았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불과 1년 만에 사회 전반이 망가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백신 공급이 원활한 나라를 중심으로 경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방안 마련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

지난달 2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1분기(1~3월) GDP는 민간소비 증가와 정부 지출에 힘입어 전분기 대비 1.6% 성장했다. 지난해 3분기부터 상승 흐름을 타기 시작한 게 이번 분기까지 이어졌다. 주요국의 경기부양책에 따른 글로벌 수요 확대 상황이 생산·수출·투자 등에 영향을 미쳤다. 

바닥 찍었던 지표들 회복세
자영업자 "바닥경제는 아직"

3월 산업생산은 서비스업 생산과 소비가 호조를 보이면서 0.8% 늘었다. 4월 수출은 511억9000만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41.1% 증가했다. 10년 3개월 만의 최대치다. 경제 지표가 회복 기미를 보이자 성장률 전망치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올해 성장 목표치인 3.2%를 웃돌 기세다. 

고용시장에서도 미약하게나마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된다. 지난달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직장 폐업이나 정리해고, 사업 부진 등 비자발적인 이유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 수가 14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 전환했다. 가사·육아·심신장애·정년퇴직·급여 불만족 등 자발적 이유로 일을 그만둔 사람은 포함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실이 통계청 고용동향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비자발적으로 실직한 지 1년 이하인 사람은 170만112명이었다. 1년 전보다 21만9676명 줄어든 것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난해 2월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연령별로 30대를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줄어들었다.

공연계도 대면 공연 부분에서 기지개를 펴고 있다. 뮤지컬, 연극계 등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시기, 비대면 온라인 공연을 진행하는 등 활로 모색을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의 완화로 대면 공연이 재개되면서 대형 작품을 중심으로 매진 행렬을 기록하는 등 뚜렷한 회복세가 나타나는 중이다.

지난 2월 기준 공연 시장 매출액은 167억7407만원으로 전월(37억3090만원) 대비 4배 이상 늘어났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 전인 지난해 11월 수준으로 회복했다. 공연 건수도 1월 351건에서 2월 431건으로 늘었다. <맨 오브 라만차> <위키드> 등 대형 뮤지컬들의 흥행이 공연 시장의 회복세를 이끌었다. 

대중들의 소비 심리도 폭발하고 있다. 이른바 보복소비의 현실화다.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소비가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5월 최근 경제동향’의 내수 지표를 보면, 지난달 백화점 매출액은 전년 대비 26.8% 늘었다. 같은 달 국내 카드 승인액의 전년 대비 증가율 또한 18.3%였다. 3개월 연속 증가세다. 소비자 심리지수도 지난해 3월부터 두 달 째 기준치(100)를 웃도는 등 올해 들어 꾸준히 상승 중이다. 

코로나 이전
더이상 없어

다만 전문가들은 실물경제가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소비 심리의 폭발은 ‘반짝 특수’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소득 계층별로 소비가 양극화되는 양상을 띠는 점도 불안하다. 명품 소비와 백화점 매출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등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소비 욕구가 분출되고 있다.

실제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여전히 한파에 가깝다. 코로나19 대응 전국 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7일에도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영업자들의 손실을 실질적으로 보상할 수 있는 보상안을 제안했다. 이들은 "손실 보상은 불쌍해서 은혜를 베푸는 '지원'이 아니라 응당히 해야 할 '의무'"라며 "빚을 내서 창업했고 피해도 일반 직장인들보다 훨씬 큰데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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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확정된 사건이 다시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BBQ 내부망 불법 접속’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ID·비밀번호 메모장’을 둘러싼 위증 여부를 다투는 후속 재판이다. 박현종 전 bhc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사건임에도 검찰은 관련 증인들을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했다. 핵심은 과연 BBQ 직원의 ID와 비밀번호가 적힌 그 메모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창성 전 bhc 정보전략팀장의 손을 어떻게 거쳐 전달됐는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둘러싼 법정 진술의 신빙성이다. 검찰은 최근 공판에서 “피고인(박현종 등)에게 유리한 허위 증언이 반복됐다”는 판단 아래 유 전 팀장 등 관련자 3명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메모장 전달자 통상 위증 여부는 재판부 판단 이후 별도 절차로 넘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검찰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단순한 진술 번복이나 기억 착오 수준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허위 진술이 있었다고 본 셈이다. 이번 공판의 중심에는 ‘메모장 전달자’로 지목된 유 전 bhc 정보전략팀장이 있다. 그는 과거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로 채택된 BBQ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를 박현종 전 bhc 회장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이 메모장은 박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축이었다. 이 메모장의 출처와 작성 경위가 흔들리면, 사건 전체의 구조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건넨 메모장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메모장에 기재된 임직원 계정 정보 뒤에는 ‘퇴사자 임시’라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이는 BBQ 내부망에서만 확인 가능한 정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에서 추정이나 기억만으로 재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성명불상자가 BBQ 내부망에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해 계정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유 정보팀장을 거쳐 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재판부 역시 “기억과 추리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검찰 주장에 일정 부분 무게를 싣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재판부는 “특정한 심증을 가진 것은 아니”라며 추가 심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인 측은 거칠게 반격했다. 변호인은 검찰 주장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bhc와 BBQ가 극도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상황에서, bhc 소속 직원이 BBQ 내부 직원과 접촉해 계정 정보를 빼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검찰이 실제 내부망 침입을 입증하지 못한 채 추측만을 쌓고 있다고 공격했다. 6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 리스크 추가 ‘BBQ 직원 ID·비밀번호 유출’ 둘러싼 공방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기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와 증인 진술 전반에 대해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데이터베이스(DB)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사실상 1·2심은 물론 대법원 판단의 기초 자체를 뒤흔드는 주장이다. 확정 판결 이후 재판에서 “증거 자체가 위조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법조계에서도 보기 드문 강수로 평가된다. 유 전 팀장은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근무하다가 bhc 매각과 함께 bhc 정보전략팀장으로 이직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박 전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적은 쪽지를 전달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인물은 BBQ 재무임원과 재무 실무진이다. 2021년 11월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관련 7차 공판에 유 전 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 전 팀장은 박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건넨 이유에 대해 “박현종 회장이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 소송 때문에 BBQ 직원들의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했다”며 “해당 직원들의 개인정보가 업무 수첩에 적혀있어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위법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와 비밀번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과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해 묻는 검찰 질문에 유 전 팀장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은 모르겠고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 전 팀장은 BBQ와 bhc의 ICC 중재 소송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소송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 취득 경위와 관련해서는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BBQ 재무임원이 그룹 전산망의 데이터가 다르다고 확인 문의가 왔다”며 “당시 물류 전산망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 임원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해 받은 뒤 이를 업무 수첩에 적은 이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이 개인정보를 받았다고 지목한 BBQ 재무임원은 앞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도 전달한 적 없다”며 “업무 처리도 유씨가 아닌 다른 직원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검찰은 유 전 팀장이 그룹 전산망에 접근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내부 정보 취득 시점이… 유 전 팀장은 재무임원의 개인정보를 취득한 시점에 대해서도 그간 검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011년~2012년 즈음에서 2013년 1월로 시점을 바꿨다. 검찰은 증인에게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물류 전산망이 바뀐 시점으로 맞추기 위함이냐고 묻자 유 전 팀장은 “단순 착오”라고 답했다.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으로 일할 당시 BBQ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검찰 질문에 “자신이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의 증언에 BBQ가 퇴사자에게 부여하는 임시 비밀번호를 줄 때 증인이 말한 방식을 쓴 것은 증인 퇴사 이후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BBQ 전·현직 직원들의 정확한 개인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bhc가 BBQ의 데이터베이스(DB)를 모조리 빼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허락하에 BBQ DB를 모두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 진술 이외에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2013년 6월 말 bhc 매각 이후 bhc는 자체 전산망 구축을 위해 BBQ와 bhc 전산망 분리 작업이 필요했다. 그해 7월2일 외부 업체는 해당 작업이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과 부하 직원 한 명, 그리고 한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던 외부업체는 2013년 7월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불과 12시간 만에 BBQ로부터 분리된 bhc 전산망을 구축했다. 이와 관련해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이 100명 남짓에 불과해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옮겨 가능했다”며 “BBQ DB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BQ DB 관련 박 회장과 유씨의 진술이 배치되는 데 대해 유 전 팀장에게 묻자 “자신은 박 회장에게 BBQ DB를 가져왔다고 말한 적 없다”며 “박 회장이 검찰에서 왜 그리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유 전 팀장은 노트북 하드 교체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해킹의 목적 첫 증언에서는 bhc 매각 시기인 2013년 이후 노트북 감가상각 5년을 계산해 2018년에 바꿨다고 했지만 이후 2017년으로 고쳤다. 기존 사건이 ‘불법 접속이 있었느냐’는 사실관계 다툼이었다면, 이번 후속 재판은 ‘그 사실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거짓말이 있었느냐’는 문제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BBQ 직원 계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할 수 없었고, 불법적 경로일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무죄였지만,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명확히 유죄로 못 박았다. 그러나 사건은 집행유예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위증을 별도의 범죄로 끌어올린 이상, 수사는 ‘위증교사’를 밝히는 단계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관련자들의 위증을 인정할 경우, 그 진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도했는지가 핵심 수사 대상이 된다. 화살이 결국 박 전 회장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증교사는 기존 사건과는 별개의 범죄로, 추가 기소로 이어질 경우, 사법 리스크도 한층 더 커진다. 문제는 입증이다. 위증교사는 단순한 정황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지시나 교감, 사전 조율 정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이미 “유리한 허위 증언 반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고발까지 단행한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가능성 제기를 넘어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BBQ 출신 정보전략팀장 진술 번복 검, 증인들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 이 사건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bhc와 BBQ 사이의 오랜 분쟁이다. 박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BBQ 글로벌 대표로 영입됐다. 이어 2013년 BBQ 자회사 bhc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팔린 뒤 bhc 대표로 옮겨가며 양사 갈등의 중심에 섰다.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등과 함께 bhc를 사들여 오너 경영자가 된 동시에 각종 소송과 형사적 리스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 역시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라, 기업 간 치열한 법적 분쟁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검찰에 의하면 박 전 회장은 2015년 7월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bhc 본사에서 BBQ 직원 2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무단 도용해 BBQ 전산망에 접속한 뒤 bhc와 BBQ가 연루된 국제 중재 소송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다. 이로 인해 박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은 유 정보팀장으로부터 BBQ 직원 이메일 아이디, 비밀번호, 전산망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3차 공판 때 검찰과 변호인은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2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먼저 의견 개진 기회를 얻은 변호인은 “BBQ가 여러 차례 박현종 회장을 영업비밀 침해 등의 이유로 고소했지만 계속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그런데 검찰이 정보통신망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박현종 회장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를 입증한 것도 아니”며 “왜곡 가능성이 큰 간접 증거만 제시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현종 회장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에 참석해 BBQ 전산망에 접속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검찰은 “bhc가 2013년부터 BBQ 전산망에 무단 접속한 횟수가 236회에 달하지만 행위자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하지 못했다”며 “박현종 회장은 무단 접속이 명백해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지시했나 사면초가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범행 동기에 대해 “2015년 BBQ 직원들이 박현종 회장이 bhc 매각을 총괄했다”는 진술서를 국제 중재 법원에 냈다. 국제 중재 소송에서 질 경우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었던 박 전 회장은 “해당 진술서를 검토하고 반박해야만 했다”고 했다. 이어 “박현종 회장 휴대전화에서 BBQ 직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 사진이 나왔다. BBQ 전산망 접속 데이터 분석 결과, 박현종 회장이 BBQ 사내 메일을 포워딩(전달)한 개인 메일을 2년 만에 열람한 기록도 있다”며 혐의를 입증할 물적 증거가 많다고 했다. 검찰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 참석자 2명은 박현종 회장을 회의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며 박 전 회장의 알리바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