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집> '코로나 대공황' 그래도 희망은 있다

암흑기에 비친 실낱같은 빛줄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이 만든 암흑 터널에 갇혔다. 우리나라도 1년 넘게 출구조차 잘 보이지 않는 미로를 헤매고 있다. 경제·사회·문화할 것 없이 모든 분야의 모든 지표가 바닥을 향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이제야 조금씩 터널 끝,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2019년 12월27일 중국 후베이성 의사 장지셴이 중국 보건당국에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을 보고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2019년 12월31일 중국은 후베이성 우한에서 정체불명의 폐렴이 발생했다고 세계보건기구(WHO)에 알렸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창궐의 시작점이다. 

중국서 시작
전 세계 패닉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월20일 첫 확진자가 확인됐다. 정부는 ‘신종플루’ 이후 감염병 위기 경보를 ‘경계’로 격상하고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설치하는 등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하지만 2월18일 신천지를 중심으로 대구·경북에서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1차 유행이 시작됐다. WHO는 3월11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집중적인 진단검사와 역학조사가 이뤄졌고 대면 접촉을 줄이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시행됐다. 이태원 클럽이나 물류센터 등에서 소규모·산발적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8월 중순경 종교시설과 다중이용시설에서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2차 유행이 시작됐다.


고령층 감염의 증가로 중증 환자가 많이 발생한 시기다.

11월 중순부터 3차 대유행이 시작됐다. 하루 평균 100명 내외로 유지 중이던 확진자 수가 12월 말에 이르러서는 하루 평균 1000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사망자 역시 급증해 누적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현재는 하루 평균 확진자 수가 600~700명을 오가면서 4차 유행의 기로에 서있다.

더 이상 방역만으 코로나19의 확산을 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백신이 ‘게임 체인저’로 떠올랐다. 화이자·모더나·얀센·노바벡스·아스트라제네카·스푸트니크V 등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에서 백신 개발이 이뤄졌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가 백신 물량 확보를 위한 협상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가 현재(지난 20일 기준)까지 확보한 코로나19 백신 물량은 총 9900만명분(1억9200만회분)이다.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 등은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면서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4일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에 한해 실내외 어디서든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밝혔다.

전 세계 최초의 ‘노 마스크’ 선언이다.

코로나19는 사람들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제2부본부장은 지난해 4월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며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생활 속에서 감염병 위험을 차단하고 예방하는 방역활동이 우리의 일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 코로나19 창궐 이후 경제·사회·문화·교육·복지·보건 등 모든 분야에서 두드러진 변화가 나타났다. 대면접촉이 줄어들고 비대면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이른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수준으로 사회가 바뀐 것이다. 모든 지표가 하향 곡선을 그렸고 국민들의 삶은 암흑 속으로 빠져 들었다.


지난해 2월 첫 확진자 이후
1년3개월만 사회 전반 파탄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했다.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도 전년보다 줄어든 3만100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로 집계됐다. 외환위기 당시 1998년(-5.1%) 이후 22년 만이다.

1980년(-1.6%)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역대 3번째 역성장이다. 

경제활동별 GDP 성장률을 보면 건설업(-0.8%) 감소폭은 줄었지만 서비스업(-1.2%)과 제조업(-1.0%)은 감소로 전환했다. 서비스업과 제조업은 각각 1998년(-2.4%)와 2009년(-2.3%)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이다. 코로나19 충격이 1998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에 버금간다는 방증이다. 

특히 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때 아닌 호황기를 맞은 택배나 배달 업계와는 달리 대면 영업을 하는 자영업의 타격이 컸다. 사회적 거리두기·5인 이상 집합금지 등의 시행으로 대면 모임이 대폭 줄어들면서 매출이 90% 이상 감소한 업종이 속출했다.

정부가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급한 불을 끄려 했으나 자영업자들의 줄폐업을 막진 못했다. 

지난 1월 통계청과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전국 자영업자는 553만1000명으로 전년보다 7만5000명 감소했다. 창업보다 폐업이 7만5000명 많았다는 뜻이다. 특히 수도권에서 자영업자의 수가 가장 많이 줄어들었다.

코로나19 2·3차 유행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어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른 지역보다 강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문만 열어둔 채 영업을 제대로 못하는 식당이 적지 않다"며 "임대기간이 남아 있어 폐업을 안 한 것뿐이지 사실상 폐업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식당은 통계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자영업자들 가운데는 빚으로 가게를 지탱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4차 유행 기로
언제까지 갈까

지난해 자영업자들이 받은 신규 대출액은 120조가량을 기록했다. 2019년 증가액의 2배 수준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803조5000억원이다. 2019년 말(684조9000억원)보다 118조600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자영업자 대출 차주는 238만4000명으로, 1년 전(191만4000명)보다 47만명 늘었다. 잔액 증가율과 차주 증가율 모두 최근 5년새 가장 높았다.


장 의원은 "지난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과 버팀목 자금 등을 지원했음에도 많은 자영업자들이 이례적으로 많은 부채를 동원해 코로나19 위기를 견뎌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의 여파는 청년층을 덮쳤다. 코로나19 2차 유행을 앞둔 지난해 7월 청년실업률(15~29세)은 10.7%까지 치솟았다. 21년 만에 최악의 수치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정식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시기인 20대 후반(25~29세) 실업률도 10.2%로 1999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나빴다. 

잠재적 구직자까지 포함한 체감실업률을 의미하는 확장실업률은 26.8%로 2015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였다. 4명 중 1명 이상이 실업자인 셈이다.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하고 1차 유행이 시작된 2월부터 전체 취업자 수 역시 꾸준히 줄어들었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 지원 사업으로 60세 이상 연령층만 선방했을 뿐, 전 연령층에서 타격을 받았다.

고용시장 한파는 혼인율·출산율에도 연쇄작용을 일으켰다. 지난해 혼인 건수(21만4000건)는 전년 대비 10.7%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와 집합금지 명령으로 결혼을 미루거나 취소한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또 집값 상승과 고용위기 등 경제적 요인의 영향으로 혼인 건수와 혼인율은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70년대 이래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출산율은 재앙에 가까웠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7만2400명으로 전년 대비 10% 감소했다. 합계출산율은 0.8명대로 떨어지면서 사상 최저 기록을 1년 만에 갈아치웠다. 반면 사망자 수는 30만5100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 인구가 자연 감소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84명으로 전년보다 0.08명 하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63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은 물론 OECD 37개 회원국 중 유일하게 0명대다.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면 이 수치가 0.7명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경제부터
연쇄작용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문화예술계는 유례없는 타격을 입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수식이 달릴 정도였다. 특히 공연계는 지난해 괴멸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때 위기보다 심리적 타격이 더 컸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6일까지 공연 개막 편수는 5216편, 매출은 약 172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개막 편수는 9038편, 매출은 2293억원이었다. 지난해 대비 개막 편수는 40% 이상 감소했고, 매출 역시 25%가량 줄었다.

수기로 표를 발권하는 영세 극단, 극장의 작품은 집계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치로 추정된다.

영화계는 ‘붕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2020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극장 관객 수는 5952만명으로 전년 대비 73.7% 감소했다. 2019년 5편의 1000만 영화를 배출하고 전체 극장 관객수 2억2668만명을 동원하며 호황기를 누렸던 극장가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매출액도 최저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인구 1인당 연평균 극장 관람 횟수는 전년 대비 3.22회 감소한 1.15회로 조사됐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73.3% 감소한 5104억원으로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한국영화 매출액은 2019년보다 63.9% 감소한 3504억원으로 집계됐다. 

박스오피스를 살펴보면 지난해 처참했던 영화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20년 박스오피스 1위는 <남산의 부장들>로 관객수는 475만명에 그쳤다. 제작사에서 라인업 중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우는 ‘텐트폴 영화’ 중 하나였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436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실업 등 경제적 불안은 커지는 반면 이를 상쇄할 문화생활 등이 제한되면서 ‘코로나 블루’가 증가했다. OECD가 지난 12일 발표한 <코로나19 위기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이후 우울감을 느끼거나 우울증이 있는 비중이 36.8%로 조사대상 15개국 중 가장 높았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불과 1년 만에 사회 전반이 망가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백신 공급이 원활한 나라를 중심으로 경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방안 마련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

지난달 2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1분기(1~3월) GDP는 민간소비 증가와 정부 지출에 힘입어 전분기 대비 1.6% 성장했다. 지난해 3분기부터 상승 흐름을 타기 시작한 게 이번 분기까지 이어졌다. 주요국의 경기부양책에 따른 글로벌 수요 확대 상황이 생산·수출·투자 등에 영향을 미쳤다. 

바닥 찍었던 지표들 회복세
자영업자 "바닥경제는 아직"

3월 산업생산은 서비스업 생산과 소비가 호조를 보이면서 0.8% 늘었다. 4월 수출은 511억9000만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41.1% 증가했다. 10년 3개월 만의 최대치다. 경제 지표가 회복 기미를 보이자 성장률 전망치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올해 성장 목표치인 3.2%를 웃돌 기세다. 

고용시장에서도 미약하게나마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된다. 지난달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직장 폐업이나 정리해고, 사업 부진 등 비자발적인 이유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 수가 14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 전환했다. 가사·육아·심신장애·정년퇴직·급여 불만족 등 자발적 이유로 일을 그만둔 사람은 포함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실이 통계청 고용동향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비자발적으로 실직한 지 1년 이하인 사람은 170만112명이었다. 1년 전보다 21만9676명 줄어든 것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난해 2월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연령별로 30대를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줄어들었다.

공연계도 대면 공연 부분에서 기지개를 펴고 있다. 뮤지컬, 연극계 등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시기, 비대면 온라인 공연을 진행하는 등 활로 모색을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의 완화로 대면 공연이 재개되면서 대형 작품을 중심으로 매진 행렬을 기록하는 등 뚜렷한 회복세가 나타나는 중이다.

지난 2월 기준 공연 시장 매출액은 167억7407만원으로 전월(37억3090만원) 대비 4배 이상 늘어났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 전인 지난해 11월 수준으로 회복했다. 공연 건수도 1월 351건에서 2월 431건으로 늘었다. <맨 오브 라만차> <위키드> 등 대형 뮤지컬들의 흥행이 공연 시장의 회복세를 이끌었다. 

대중들의 소비 심리도 폭발하고 있다. 이른바 보복소비의 현실화다.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소비가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5월 최근 경제동향’의 내수 지표를 보면, 지난달 백화점 매출액은 전년 대비 26.8% 늘었다. 같은 달 국내 카드 승인액의 전년 대비 증가율 또한 18.3%였다. 3개월 연속 증가세다. 소비자 심리지수도 지난해 3월부터 두 달 째 기준치(100)를 웃도는 등 올해 들어 꾸준히 상승 중이다. 

코로나 이전
더이상 없어

다만 전문가들은 실물경제가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소비 심리의 폭발은 ‘반짝 특수’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소득 계층별로 소비가 양극화되는 양상을 띠는 점도 불안하다. 명품 소비와 백화점 매출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등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소비 욕구가 분출되고 있다.

실제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여전히 한파에 가깝다. 코로나19 대응 전국 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7일에도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영업자들의 손실을 실질적으로 보상할 수 있는 보상안을 제안했다. 이들은 "손실 보상은 불쌍해서 은혜를 베푸는 '지원'이 아니라 응당히 해야 할 '의무'"라며 "빚을 내서 창업했고 피해도 일반 직장인들보다 훨씬 큰데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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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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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