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아름다운 건축물 ③안양예술공원

산책이 예술이다!

산책은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이다. 더불어 오랜 세월 명상의 한 과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숲속을 거닐며 강의와 토론을 즐겨 산책을 뜻하는 페리파토스학파로 불렸다. 독일 철학자 니체도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걷기에서 나온다”고 했다. 걷고 사유하며 예술적인 감성까지 물씬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산책로가 있다. 경기도 안양에 자리한 안양예술공원이다.

안양예술공원의 역사는 1930년대,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안양역장이었던 혼다 사고로가 삼성천을 막아 천연 수영장을 만들고, ‘안양풀’이라고 이름 붙였다. 피서객을 끌어모아 막대한 철도 수입을 챙기려는 목적이었다.

1969년에 정부가 국민관광지로 ‘안양유원지’를 지정하면서 해마다 평균 100만명이 몰려, 수도권 최고의 피서지로 자리매김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안양유원지란 이름을 여전히 익숙하게 사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연과 함께

하지만 1977년 유례없는 대홍수가 안양유원지를 휩쓸었다. 천연 수영장이 참혹하게 파괴되고, 상류에서 토사와 자갈이 쏟아져 옛 모습을 완전히 잃었다. 1984년 국민관광지 지정이 취소되면서 안양유원지의 영화는 지난 추억이 됐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 안양유원지 정비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고, 2005년 안양예술공원 탄생의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이하 APAP)’가 시작됐다.


APAP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회복하고, 예술과 건축이 어우러진 휴식 공간을 지향한다. 첫 회에 세계 각국의 건축가와 예술가 60여명이 참여해, 유원지 일대에 영구 설치 작품 50여점을 선보였다. 이때부터 안양예술공원이란 이름이 공식적으로 사용됐다.

대표적인 작품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건축가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의 ‘안양파빌리온’과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 MVRDV의 ‘전망대’다. 지금도 ‘안양파빌리온’은 APAP의 역사와 주요 작품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전망대’는 삼성산 주변의 빼어난 풍경은 물론 안양 시내와 공원 전체를 조망하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최근 SNS를 통해 새롭게 주목받은 건축물도 있다. 주차장과 야외공연장을 잇는 산책로를 복합 구조물로 완성한 아콘치스튜디오의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은 기하학적인 조형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에코 프라워토의 ‘안양 사원’은 대나무로 둘러싼 돔 형태 구조물이 인도네시아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볼프강 빈터와 베르트홀트 회르벨트의 ‘안양상자집’은 다양한 색 음료 박스를 재활용한 작품으로, 태양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빛이 사진작가와 동호인들을 매료했다. 나빈 라완차이쿨의 ‘로맨스 정자’는 태국 정자의 건축양식과 천장에 그려진 가상의 러브 스토리 덕분에 태국 인플루언서까지 방문하며 관심을 모았다.

걷고 사유하며 예술적인 감성까지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로 재탄생

삼성산 자락의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예술 작품도 걷는 재미를 더한다. 오노레 도의 ‘물고기의 눈물이 호수로 떨어지다’는 삼성천을 끌어올려 14개 물줄기를 뿜어낸다. 이색적인 분수처럼 느껴지는데, 작품이 놓인 바위가 대홍수 때 굴러 내려온 것이라니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승택의 ‘용의 꼬리’는 전통 가옥의 기와지붕을 활용해 전설 속 용의 비늘처럼 연출했다. 당장이라도 살아서 움직일 것처럼 역동적인 형태가 걷는 이들에게 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서정국·김미인의 ‘신종생물’은 상어 머리에 공룡의 몸, 장미꽃 머리에 치타의 몸 등 전혀 다른 두 종을 결합해 엉뚱하고 장난기 가득한 형태를 완성했다. 산책로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신종생물’이 어른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APAP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안양예술공원에 설치된 건축물과 예술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임시 폐쇄된 작품이 있으니, 방문 전 홈페이지에서 공지 사항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안양예술공원 스탬프 투어도 운영하는데, ‘안양파빌리온’ ‘전망대’ 등 주요 건축물에서 기념 스탬프를 찍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중업건축박물관과 안양박물관도 안양예술공원 산책에 매력을 더한다. 원래 이곳에는 (주)유유산업 안양공장 건물이 있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근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꼽히는 김중업이 설계한 초기작이다.

공장 외벽에 ‘모자상’과 ‘파이어니상’ 등 조각품을 설치하는가 하면, 기둥 역할을 하는 구조물을 외부로 드러내고 벽면을 유리로 처리해 개방성을 높이는 등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인다.

2006년 공장이 이전하면서 안양시가 건물을 사들여, 시민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만들었다. 박물관 근처에 안양시의 유일한 국가 문화재인 안양 중초사지 당간지주(보물 4호)가 있어 볼거리가 풍성하다.

조선 정조 때 만든 만안교(경기유형문화재 38호)도 놓칠 수 없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갈 때 통행 편의를 위해 건립한 다리다. 정교하게 다듬은 돌을 아치형으로 축조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석교로 평가된다.

원래 안양예술공원 입구에 있었는데, 국도1호선 확장 사업으로 지금의 위치에 옮겨 복원했다. 안양 시내를 가로지르는 안양천을 끼고 자리해 산책 코스로도 인기다.

만안교

해 질 무렵엔 망해암에 올라 안양9경으로 꼽히는 일몰을 감상해도 좋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처음 미륵불을 봉안했다고 전해지는 망해암은 좁은 절벽에 건물을 배치해 소박하지만 아늑한 인상을 풍긴다. 이곳에서 안양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사찰이 서향이라 특히 저녁노을이 아름답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김중업건축박물관, 안양박물관→안양예술공원→만안교→망해암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김중업건축박물관, 안양박물관→안양예술공원→만안교→망해암 
둘째 날: 병목안시민공원→수리산성지→안양1번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안양시 문화관광 www.anyang.go.kr/tour
-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www.apap.or.kr
- 김중업건축박물관 www.ayac.or.kr/museum/main/main.asp
- 안양박물관 www.ayac.or.kr/museum/anyang/anyang_01.asp

문의 전화
- 안양예술공원(안양시청 문화관광과) 031)8045-5496
- 김중업건축박물관·안양박물관 031)687-0909
- 만안교(안양시청 문화관광과) 031)8045-2474
- 망해암 031)443-5559 

대중교통
[버스] 수도권전철 1호선 안양역 1번 출구 안양역 정류장에서 2번 마을버스 이용, 안양예술공원 정류장 하차. 
*문의: 경기버스정보 www.gbis.go.kr 대성운수 031)473-4551

자가운전
서부간선도로→금천 IC에서 서해안고속도로 진입→일직 JC에서 성남·안양 방면→석수 IC에서 수원·과천·안양 방면→안양예술공원 방면 고가차도 오른쪽 옆길→예술공원사거리에서 안양예술공원 방면→안양예술공원

숙박 정보
- CS프리미어관광호텔: 만안구 경수대로, 031)478-0100 
- CNC  호텔: 만안구 안양로324번길, 1599-9382 
- 코암관광호텔: 만안구 만안로, 031)445-6601

식당 정보
- 명촌바지락칼국수(바지락칼국수·김치전골): 만안구 예술공원로, 031)473-1992
- 촌골오리(한방오리누룽지백숙): 만안구 예술공원로, 031)474-5292 
- 은행나무식당(생고기김치찌개·동태탕): 만안구 예술공원로, 031)471-5853


주변 볼거리
안양천생태이야기관, 안양새물공원, 삼막사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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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