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죽방멸치쌈밥·멸치회

봄봄봄봄, 멸치 왔어요~!

여기저기서 터지는 꽃이 봄소식을 전한다. 봄의 전령은 또 있다. 추위를 이겨내고 새 생명의 기운을 담뿍 담아낸 음식이다. 겨우내 잃은 입맛을 돋우고 몸에 활력을 줄 제철 음식이 전국 각지에서 유혹한다. 모든 유혹을 떨치고 따뜻한 남쪽으로 달려간다. 은빛 반짝거리는 죽방멸치가 봄을 머금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지 않은가.

한려수도의 비경을 품은 남해는 태생적으로 섬이지만, 후천적으로 뭍과 연결됐다. 노량대교와 남해대교가 남해와 하동을, 창선·삼천포대교가 남해와 사천을 잇는다. 죽방멸치로 유명한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명승 71호)으로 가기 위해선 창선·삼천포대교를 이용하는 게 빠르다.

창선·삼천포대교는 삼천포대교, 초양대교, 늑도대교, 창선대교, 단항교가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연결하는 명물로,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대상에 선정됐다.

수려한 풍광

바다와 섬이 빚어내는 수려한 풍광을 눈에 담고 다리를 건너면 남해 창선도다. 남해는 크게 본섬인 남해도와 창선도로 나뉘는데, 두 섬은 다시 창선교로 연결된다. 창선도는 북쪽이 사천과 창선대교로, 남쪽이 남해도와 창선교로 이어진다. 창선교 아래, 즉 창선도의 창선면 지족리와 남해도의 삼동면 지족리 사이로 지족해협이 지난다.

지족해협은 좁은 물목이라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물살이 거세다. 게다가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수심이 얕아, 죽방렴을 설치하기 좋은 조건을 두루 갖췄다. 죽방렴은 문자 그대로 대나무 발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일이며, 조선 시대 문헌에도 기록이 있는 전통 어로 방식이다.


지족해협 죽방렴은 물길을 따라 나무 말뚝을 ‘V 자형’으로 박고, 그 꼭짓점에 원형 통발을 설치한 형태다. 빠른 물살을 따라 이동하던 물고기가 죽방렴의 넓은 입구로 들어가면 통발에 갇힌다. 통발은 촘촘히 엮은 대나무 발로 둘러싸여, 물은 빠져나가도 물고기는 빠져나갈 수 없다.

어민들은 썰물 때 통발에 모인 물고기를 뜰채로 건진다.

단순한 조업 방식이지만 생태 환경과 물고기의 습성, 물때 등 자연의 섭리를 복합적으로 고려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죽방렴을 포함한 ‘전통 어로 방식-어살’이 2019년 국가무형문화재 138-1호로 지정됐다. 죽방렴홍보관에서 죽방렴의 역사와 원리를 자세히 볼 수 있다.

홍보관에서 해안로를 따라 약 1km 거리에 죽방렴을 가까이 보는 죽방렴관람대도 있다. 단 죽방렴홍보관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에 따라, 죽방렴관람대는 기상 상황에 따라 개방 여부가 달라지므로 방문 전에 확인해야 한다.

죽방렴에서 잡히는 다양한 어종 가운데 대표 주자는 단연 멸치다. 물살이 빠른 지족해협을 헤엄치던 멸치는 탄성이 좋아 살이 탱글탱글하고, 죽방렴에서 소량씩 건져 올린 덕에 비늘이 훼손되지 않을 정도로 싱싱하다. 죽방멸치가 상대적으로 비싼 이유다.

특히 봄멸(봄에 잡히는 멸치)은 오동통 살이 오르고 기름기가 많아 씹는 맛이 좋고 고소하며 뼈는 연하다. 회, 구이, 찌개 등 어떤 요리로 즐겨도 맛있다.

살이 올라 씹는 맛 좋고 고소해
회·찌개 등 어떤 요리든 맛있어


봄에 많이 잡히는 대멸은 어른 손가락만큼 길고 굵직해 제법 생선다운 모습이다. 싱싱한 대멸은 회로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른 멸치가 워낙 익숙해서 멸치회라는 메뉴가 낯설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영롱한 은빛을 빛내는 죽방멸치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멸치회는 주로 매콤하고 새콤한 양념에 무쳐 먹는다. 대가리와 내장을 없앤 멸치를 각종 채소와 함께 무치는데, 막걸리 식초로 비린내를 잡는다. 굵은소금 톡톡 뿌려서 구워도 그 맛이 일품이다.

멸치쌈밥은 멸치찌개 속 통통한 멸치를 상추에 싸 먹는다. 멸치찌개는 싱싱한 죽방멸치에 시래기, 고춧가루, 다진 마늘 등을 넣고 자작하게 끓인다. 음식점마다 다르지만, 남해의 또 다른 특산물 남해마늘로 담근 장아찌를 함께 내는 곳도 있다.

상추에 멸치와 시래기, 마늘장아찌를 싸 먹으면 더욱 맛깔스럽다. 삼동면 죽방렴 일대에 오래된 멸치쌈밥 음식점과 죽방멸치 판매장이 여러 곳 있다.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식당이 유명하다.

지족해협 죽방렴에서 동부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며 남해의 다양한 매력을 만끽하자. 지난해 말 개장한 설리스카이워크가 새로운 명소로 인기를 끈다. 설리스카이워크는 캔틸레버(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있는 보) 방식으로 제작돼 이색적이다.

높이 38m 스카이워크 끝에서 타는 대형 그네가 포인트다. 세계적인 명물인 인도네시아 발리의 그네를 모티프로 제작해 어느새 ‘SNS 성지’로 떠올랐다. 스카이워크 끝에서 세차게 출발한 그네는 바다 위를 날아오른다. 기분이 짜릿하고 사진은 예술이다.

최근 드라마 〈여신강림〉에 등장해 더 유명해졌다.

물미해안전망대라고도 불리는 남해보물섬전망대는 원통형 구조로 이뤄져 파노라마 바다 전망을 자랑한다. 이곳의 백미는 바닥이 유리로 된 길을 와이어에 의지해 걷는 스카이워크 체험이다. 어떤 사람들은 걷는 것만으로 다리가 후들거리겠지만, 어떤 이들은 와이어를 잡고 공중에서 점프하거나 스카이워크 끝에 발을 대고 바다를 향해 몸을 뻗기도 한다.

이런 체험은 안전 요원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다.

독일마을

이국적인 분위기로 눈길을 사로잡는 독일마을도 놓치기 아쉽다. 독일마을은 1960~1970년대 독일로 파견돼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간호사와 광부들이 고국에 돌아와 정착할 수 있도록 조성된 마을이다. 물건항이 내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오밀조밀 들어선 전통 독일식 건축물이 그림 같은 풍경을 완성한다.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남해파독전시관, 독일 맥주와 독일식 소시지를 판매하는 가게, 독일마을 전경이 내다보이는 전망대 등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지족해협 죽방렴(죽방멸치쌈밥과 멸치회)→독일마을→남해보물섬전망대→설리스카이워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지족해협 죽방렴(죽방멸치쌈밥과 멸치회)→독일마을→물건리 방조어부림→남해보물섬전망대→설리스카이워크 
둘째 날: 상주은모래비치→보리암→다랭이마을→섬이정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남해문화관광 http://www.namhae.go.kr/tour/main.web
- 남해보물섬전망대 http://www.instagram.com/namhae_cliffhill 
- 독일마을 http://남해독일마을.com 

문의 전화
-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055)860-8601
- 남해관광안내 1588-3415
- 설리스카이워크 070-4231-1117
- 독일마을관광안내소 055)867-8897 

대중교통
[버스] 서울-남해,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4회(7:10~19:30) 운행, 4시간30분~5시간 소요. 남해공용터미널 정류장에서 뚜벅이버스(9:00, 14:00) 이용, 지족 죽방렴 정류장 하차.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남해공용터미널 1668-3506 뚜벅이버스


자가운전
통영대전고속도로→진주 JC→남해고속도로→사천 IC→사천·사천공항 방면 우회전→사천대로→창선·삼천포대교→동부대로→창선교→지족해협 죽방렴

숙박 정보
- 남해비치호텔(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남면 남서대로, 055)862-8880 
- 남해편백자연휴양림: 삼동면 금암로, 055)867-7881
- 쉴가펜션: 삼동면 동부대로1122번길, 010-9411-6363
- 엘림마리나앤리조트: 삼동면 동부대로1122번길, 055)867-6767

식당 정보
- 우리식당(멸치쌈밥): 삼동면 동부대로1876번길, 055)867-0074 
- 단골식당(멸치쌈밥): 삼동면 동부대로1876번길, 055) 867-4673 
- 동천식당(멸치쌈밥세트): 삼동면 동부대로, 055) 867-3560 

주변 볼거리
원예예술촌, 송정솔바람해변, 두모마을, 양모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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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