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동궁과 월지, 월정교

신라 천년의 밤을 만나다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18호)는 왕자가 거주한 곳이자,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 연회를 베푼 곳이다. 676년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나라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규모가 크고 호화로운 시설을 갖췄다. 674년 월지를 만들고, 5년 뒤인 679년에는 궁궐을 정비하고 동궁을 지었다.

▲ ‘한국관광공사 야간 관광 100선’에 오른 경주 동궁과 월지

<삼국사기>에 “(문무왕 14년) 궁 안에 못을 파고 못 가운데 3개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개 봉우리 산을 만들었으며, 화초를 심고 기이한 동물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발굴한 토기 조각에서 이곳을 월지라 불렀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동국여지승람>에 “안압지 서편에 임해전이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

안압지

조선 시대에는 월지를 안압지로, 동궁을 임해전으로 부른 것이다. 신라가 패망한 뒤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폐허가 된 월지에 오리와 기러기만 날아다녔기에, 기러기 안(雁), 오리 압(鴨) 자를 써서 안압지라 했다. 신라가 번성할 때 월지는 화려하고 위엄 있는 곳이었으나, 멸망한 뒤엔 시인 묵객만이 안압지의 본모습을 알아봤다.

월지는 사각형으로 조성했는데, 서남쪽은 직선으로 건물을 들이고, 동북쪽은 곡선으로 3개 섬과 무산12봉을 연상케 하는 언덕을 만들었다. 직선 공간에는 동궁의 화려함이, 곡선 공간에는 자연의 수려함이 돋보인다.

1975년 월지의 물을 빼고 발굴 조사를 했는데, 여기서 유물 3만여점이 쏟아져 나왔다. 월지에 떠다녔을 나무배를 비롯해 금동초심지가위(보물 1844호), 금동삼존판불, 놀이용 주령구(주사위) 등 생활용품이 대부분이다. 월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에서 볼 수 있다.


동궁과 월지는 첨성대와 함께 ‘한국관광공사 야간 관광 100선’에 오른 명소로, 어둠이 내린 뒤에 진가가 드러난다.

▲ 고대 교량 건축 기술의 백미, 월정교 야경

월정교는 통일신라 때 남천(옛 이름은 문천)에 세운 다리다. 월정교가 있는 남천 주변이 경주 춘양교지와 월정교지(사적 457호)다. <삼국사기>에 “(경덕왕 19년) 궁의 남쪽 문천에 월정과 춘양이라는 두 다리를 놓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1986년 복원에 필요한 발굴 조사 과정에 월정교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월정교의 세굴 방지목이 발견됐다. 이를 토대로 다리 양쪽 교대와 날개벽, 4개 주형 교각이 있으니 길이가 60m 정도로 추정되며, 교각 사이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으로 보아 다리 위는 기와지붕을 인 누각이었을 것으로 알려졌다.

고증을 거쳐 복원한 월정교는 고대 교량 건축 기술의 백미로, 길고 곧게 뻗은 회랑과 웅장한 2층 문루가 장관이다.

▲ 낮에 본 월정교

월정교는 경주 월성(사적 16호) 남쪽을 휘감아 흐르는 남천 위로 조성해 월성과 남산을 이어준다. 월정교 관련 기록이 고려 충렬왕 때인 1280년에도 등장하니, 500년이 훨씬 넘게 남아 있었다. 남천은 원효대사의 파격적인 행보가 이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신라 관리가 왕의 칙명을 가지고 오자 원효대사는 일부러 남천에 빠졌고, 관리들이 원효를 모시고 요석궁으로 가 옷을 말리게 했다. 원효는 궁에 있던 요석공주와 하룻밤을 보냈고, 이어 설총이 태어났다고 한다.

월정교와 이웃한 곳에는 김유신의 집터로 알려진 재매정(사적 246호)이 있는데, 장군이 천관녀를 만나기 위해 천관사로 갈 때도 월정교를 건너야 했다. 신라에 유리구슬을 전한 아랍인이나 신라군의 출정 대열도 월정교를 건넜으리라.

▲ 굵은 기둥이 늘어선 월정교 회랑

월정교는 주차장 방면이나 교동 방면 어디서든 갈 수 있다. 넓은 진입 공간 너머로 월정교 현판을 단 문루가 우뚝 섰다. 문루를 지나면 남천 너머 기다란 회랑이 이어진다. 굵은 기둥이 늘어선 모습이 인상적이다. 교각 위로는 남천과 어우러진 풍경이 드러난다. 서쪽으로 남천 너머 선도산과 벽도산이, 동쪽으로 월성이 보인다.

한국관광공사 야간 관광 100선
화려하고 위엄 있는 신라의 모습

문루 2층은 월정교홍보관으로, 월정교의 역사와 복원 관련 내용을 전시한다. 옛 월정교의 세굴 방지목을 보면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 월정교는 최근 야경 명소로 인기다. 월정교를 비추는 빛에 화려한 문루와 단아한 회랑이 돋보인다. 월정교 앞 징검다리나 교촌교에서 바라보는 월정교의 풍경도 일품이다.

▲ 황금빛으로 물든 첨성대

경주 첨성대(국보 31호)는 선덕여왕 때 만든 것으로 보이는 관측대다. 정사각형 기단 위로 술병을 닮은 원통형으로 돌을 27단 쌓고, 정상부에 ‘정(井) 자형’ 석재를 얹었으며, 높이 약 9m에 이른다.

옛 기록에 따르면 사다리를 놓고 원통형 중심의 네모난 창으로 들어간 뒤, 다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하늘을 관측한 것으로 보인다. 밤이 되면 첨성대에 경관 조명이 빛을 발한다. 첨성대가 경주의 8색(적·홍·황·녹·청·자·금·흑색)으로 변신한다.

월정교가 있는 곳이 남천이고, 월성 북쪽으로 북천이 있다. 북천 건너편에 자리한 황성공원에 지난해 12월, 빛누리정원이 개장했다. 장미와 수국 꽃을 형상화한 2만여개 LED 조명과 화려한 연꽃 조형물이 눈에 띈다. 잔잔하면서도 웅장한 음악과 함께 천천히 바뀌는 LED 조명이 아름답다.

▲ 파도소리길 주상절리전망대에서 본 부채꼴 주상절리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경주 문무대왕릉(사적 158호) 남쪽에 경북동해안지질공원의 지질 명소 양남 주상절리군(천연기념물 536호)이 있다. 여기서 만나는 부채꼴 주상절리는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용암이 흐르다 둥그런 구덩이에 갇히거나, 둥근 통로를 따라 용암이 솟아오르다 식어 생긴 흔적이라고 한다.

부채꼴 주상절리를 제대로 보려면 파도소리길 주상절리전망대로 가자. 읍천항과 하서항을 잇는 1.7km 해안 산책로인 파도소리길은 지난해 태풍으로 일부 구간이 유실돼, 현재 주상절리전망대에서 하서항까지 출입을 통제한다.

양남 주상절리군

부채꼴 주상절리를 형상화한 주상절리빵도 맛보자. 베이킹파우더와 식품첨가물을 넣지 않고, 물 대신 우유와 생크림으로 반죽한다. 구운 호두와 통팥 앙금이 들어가 마들렌 풍의 건강하고 맛 좋은 빵이다. 양남 주상절리군으로 가는 길에 본점이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파도소리길→문무대왕릉과 이견대→감은사지→국립경주박물관→대릉원→동궁과 월지→월정교→첨성대→빛누리정원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국립경주박물관→대릉원→황룡사지와 분황사→동궁과 월지→월정교→첨성대→빛누리정원 
둘째 날: 선덕여왕릉→신문왕릉→원성왕릉→장항리 사지→골굴암→감은사지→문무대왕릉과 이견대→파도소리길  

관련 웹 사이트 주소 
경주문화관광 https://www.gyeongju.go.kr/tour 

문의 전화
- 경주시청 왕경조성과 054)779-6136~7
- 동궁과 월지 054)750-8655
- 빛누리정원(황성공원) 054)779-8772
- 주상절리전망대 054)775-6366
- 경주역관광안내소 054)772-3843 

대중교통
[버스] 서울-경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8회(08:10〜22:00) 운행, 약 3시간30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6회(08:40〜19:00) 운행, 약 4시간 소요. 경주고속버스터미널 건너편 경주고속·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11번·602번·604번·605번·607번 일반버스 이용, 동궁과월지 정류장 하차. 경주고속버스터미널 건너편 경주고속·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60번·61번 일반버스 이용, 황남초등학교 정류장 하차, 월정교까지 도보 약 800m.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경주고속버스터미널 054)741-4000 경주시외버스터미널 1666-5599 
[기차] 서울역-신경주역, KTX 하루 17~20회(05:15~21:30) 운행, 약 2시간10분 소요. 신경주역 정류장에서 700번 좌석버스 이용, 동궁과 월지 정류장 하차. 신경주역 정류장에서 60번·61번 일반버스 이용, 황남초등학교 정류장 하차, 월정교까지 도보 약 800m.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자가운전
동궁과 월지: 경부고속도로 경주 IC→약 5km 직진→배반네거리에서 시청 방면 좌회전→박물관네거리에서 250m 직진, 우회전→동궁과 월지
월정교: 경부고속도로 경주 IC→서라벌대로 약 2.1km 직진→오릉네거리에서 오릉 방면 좌회전→700m 직진, 국립경주박물관 방면 우회전→월정교

숙박 정보
- 리버틴 호텔(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경주시 태종로685번길, 054)620-8988 
- 블루보트 게스트하우스(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경주시 원화로, 010)2188-9049 
- 한옥인(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경주시 포석로1050번길, 054)749-8090 
- 신라가족모텔: 경주시 산업로, 054)743-8288 
- 지지관광호텔: 경주시 태종로699번길, 054)701-0090 
- 토함산자연휴양림: 양북면 불국로, 054)750-8700 
- 라마다호텔&리조트 경주감포: 감포읍 동해안로, 054)741-3000


식당 정보
- 국시집(손국시): 경주시 북문로, 054)773-3050 
- 백리향 황성본점(굴짬뽕): 경주시 황성로69번길, 054)741-0100 
- 고색창연(한우떡갈비정식): 경주시 보불로, 054)748-0952 
- 팔우정해장국(해장국): 경주시 태종로, 054)742-6515

주변 볼거리
경주 김유신묘, 경주 포석정지, 불국사, 석굴암, 황리단길, 경주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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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