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어느덧 대세 배우 조병규

JTBC·SBS·OCN…3연타석 홈런 치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 조병규를 두고 ‘3연타석 홈런타자’라고 한다. JTBC <SKY캐슬>에 이어 SBS <스토브리그>, OCN <경이로운 소문>까지, 그가 출연한 작품은 시청률과 작품성 면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시나리오를 보는 눈이 탁월하고, 맡은 배역을 준수하게 수행해 낸다. 최근 종영한 <경이로운 소문>에서는 타이틀 롤을 맡아 흠이 없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20대 남자 배우 중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다. 
 

▲ 배우 조병규 ⓒHB엔터테인먼트

OCN <경이로운 소문>은 방영 전 그렇게 관심을 받은 작품은 아니었다. 악귀를 물리치는 악귀 사냥꾼과 서민 판 히어로라는 설정이 다소 생소할 뿐 아니라, 유준상을 제외하고는 주연급으로 히트한 배우가 없었다. 

<SKY캐슬> 
<스토브리그>

타이틀롤을 맡은 조병규에 대한 의문점도 있었다. JTBC <SKY캐슬>과 SBS <스토브리그>가 대성공을 거뒀지만, 조병규가 성공의 주역으로 불리기엔 무리가 있었다. <SKY캐슬>에서는 이태란, 윤세아, 오나라, 염정아, 김서형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고, <스토브리그>는 남궁민과 오정세에게 관심이 쏟아졌다. 

어쩌면 <경이로운 소문>은 조병규에게 있어 시험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주인공으로 주어진 첫 시험을 만점에 가깝게 풀어냈다고 볼 수 있을 만한 성적을 냈다.

첫 회 2.7%라는 비교적 아쉬운 성적으로 출발한 <경이로운 소문>은 꾸준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12회에서는 10.6%를 기록하며 OCN 최고 성적이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16회는 11.0%, 드라마 내 최고 시청률로 마무리했다. 


수치뿐 아니라 작품의 내용도 극찬 일색이었다. 주로 밤에 활동하는 악귀를 잡는 카운터라는 직업의 네 사람이 최고 악귀를 잡아내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서민판 히어로의 매력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어릴 적 교통사고로 몸과 마음이 유약한 소문(조병규 분)이 우연히 융의 위겐(손숙 분)을 받아들이면서 카운터에 합류해, 추 여사(염혜란 분), 가모탁(유준상 분), 도하나(김세정 분), 최장물(안석환 분)과 함께 선량한 사람들을 죽이는 악귀를 퇴치한다는 게 이야기의 줄기다. 

그 과정에서 남녀를 가리지 않는 과격한 액션이 돋보였다. 선명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각 인물 간의 시너지도 눈에 띄었다. 신구 조화가 절묘했을 뿐 아니라 악귀와 형사 등 조연급 배우들의 임팩트도 강렬했다. 주요 순간에 등장하는 CG도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 중심에 조병규가 있다. 조병규가 맡은 소문은 선량한 마음씨를 갖고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인물이다. 우연히 강력한 힘을 얻으면서, 학교 폭력 가해자들을 처치할 뿐 아니라 자신의 부모를 죽인 악귀를 찾아 복수한다. 

단숨에 힘을 얻고 정의를 발현하는 1차원적인 구조가 아니다. 고등학생으로서 감정을 가누지 못해 실수도 저지르고, 일부 시행착오도 겪는다. 힘이 세지는 것도 단계를 밟는다. 1회부터 16회까지 꾸준한 성장이 있어, 섬세한 표현이 요구되는 인물이다. 

<경이로운…> 데뷔 후 첫 ‘타이틀롤’
자체 최고 시청률 “예감이 좋았다”

연출을 맡은 유선동 PD 역시 소문 역할을 고심해 캐스팅했다. 비중이 클 뿐만 아니라 소문의 성장을 입체적으로 그려낼 배우가 필요했다. 고등학생 설정이기 때문에 어린 나이대 배우이면서 상당한 내공과 경험이 있어야 했다. 


20대 배우 중 이런 조건을 갖춘 인물이 많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제작진은 조병규를 낙점했다. 조병규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최근 비대면 인터뷰를 통해 만난 조병규도 유 PD와의 캐스팅 미팅을 통해 충분히 좋은 작품을 만들 자신이 생겼다고 했다. 

“30분 정도 작품에 대해 얘기를 하고, 2시간30분 정도는 다양한 파트의 이야기를 했어요. 재즈에 대해서, 넷플릭스에서 눈여겨본 작품, 인생의 서사 등 다양한 방면의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캐스팅되든 안 되든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독님과 제가 이 작품을 바라보는 방향이 같다고 느꼈어요. 다른 생각은 안 하고 몰두해서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어요.”
 

▲ ⓒOCN

타이틀롤이라는 무게감을 소화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정말 중요한 건 소문이 성장하는 단계에서의 감정들을 얼마나 섬세하게 표현하느냐가 작품의 관건이었다. 캐스팅된 후 조병규는 이 부분에 있어 고민이 컸다고 한다. 

“소문이는 트라우마도 깊고, 몸도 성치 않아요. 아픔이 많은 소년인데 주변의 도움을 받아 이겨냈다가 다시 무너지고, 또 일어나고를 반복해요. 결과적으로는 악귀에게 사로잡힌 부모님을 구해내야 하죠. 부모님을 만나서 아이처럼 대화하는 장면이 궁극적인 목표였어요. 그런 부분에서 감독님과 생각이 통했죠. 영화 <아바타>에서 링크가 연결되는 듯한 짜릿함을 느꼈어요.”

<경이로운 소문>은 초반부터 반응이 좋았다. 유준상과 염혜란, 김세정, 안석환 등 카운터들의 조화가 눈에 띄었다. 이들 다섯명에게서 한 가족 같은 화목함이 엿보였다. 조병규는 촬영 초반부터 결과에 대한 기대감이 감돌았다고 한다. 

트라우마
이겨내다

“처음엔 사실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없었어요. 결과는 하늘이 점지해주는 것이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현시점의 시청자들이 가진 답답함이나 짐을, 우리 드라마를 통해 뚫어주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기대가 된 이유는 스태프와 배우들 사이에 협업이 잘 이뤄졌고, 분위기가 정말 완벽했기 때문이에요.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고 했지만, 과정이 워낙 좋다 보니까 ‘잘하면 정말 좋은 드라마가 만들어질 것 같다’고 예측하게 됐어요.”

이 드라마의 협업이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대목은 액션이다. 카운터들이 악귀와 싸우는 장면이 매우 많이 나오는데, 매번 새롭고 강력한 액션 연기를 선보였다. ‘저러다 다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액션이 주는 쾌감이 상당한 작품이다. 

“액션 장면을 촬영할 때는 언제나 예민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위험하니까요. 스태프들이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저도 좀 더 화려한 액션을 하기 위해 각종 보호장비를 샀어요. 그래서 더 화끈한 액션이 나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앞선 웹 드라마 <독고 리와인드>에서 액션 연기를 펼친 바 있는 조병규는 액션 장르를 ‘애증의 관계’라고 표현했다. 워낙 힘들지만, 막상 촬영하면 멋있는 결과물이 나오는 딜레마 때문이라고. 
 

▲ ⓒOCN

“액션을 하면 멋있게 잘 나오긴 하지만, 그만큼 힘든 것 같아요. 사실 ‘(액션이)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막상 하게 되면 이 악물고 하긴 하는데, 정말 힘들어요. 그러다가 화면을 보면 정말 멋있게 나오기 때문에 늘 복잡한 생각이 있었어요. 액션물이 또 들어온다면 고민을 많이 할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또 선택할 것 같네요.”


<경이로운 소문>을 보다 보면 ‘저거 애드리브 아냐?’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매우 많다. 대사를 하는 과정에서 어딘가 완벽하게 준비된 느낌은 아닌 장면이 곳곳에서 보인다. 그 장면이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신선함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애드리브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경이로운 
카운터들

그만큼 배우들 간의 합이 잘 맞았은 덕분이라고. 특히 유준상과의 애드리브가 많았다고 했다. 

“유준상 선배님은 훌륭한 리더라고 생각해요. 가모탁과 소문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 같다는 반응이 꽤 있었는데, 그럴 수 있었던 건 선배님이 좋은 액션을 보여주셔서인 것 같아요. 선배님이 좋은 액션을 보이면 제가 그에 맞는 리액션을 하고, 또 선배님이 그걸 받아서 리액션해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애드리브가 굉장히 좋았던 적이 많았어요.”

조병규는 안석환에 대해 ‘안석환 키즈’라고 했다. 연극영화과 시절에 안석환의 작품을 접하면서 연기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고 한다. 염혜란은 여러 차례 작품을 함께했지만, 함께 호흡하는 신이 작았는데, 이번에 원 없이 소통하면서 행복했다고 한다. 김세정에 대해서는 ‘경이로운 동료’라고 했다. 

“세정이랑 저랑 동갑인데요. 정말 다재다능한 친구 같아요. 능력치가 한 군데만 있는 게 아니라 모든 능력이 다 최고치예요. 천재 같아요. 부럽고 사실 질투도 많이 했어요. 세정이랑 연기에 대해 회의를 많이 했어요. 그 친구의 장점을 체화하려고 노력했어요. 덕분에 촬영하는 순간마다 학습의 장이 됐던 것 같아요.”


사람을 사냥하는 악귀들과 악귀를 사냥하는 악귀 사냥꾼의 대결구도였던 터라, 작품에서는 러브라인이 보이지 않는다. ‘어쭙잖은 사랑 이야기는 제거하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드러난다. 그러다 막판에 소문과 하나의 러브라인이 슬며시 드러났다. 이 작품의 애청자들은 두 사람의 러브라인에 대해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심지어 김세정마저도 더 깊은 러브라인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조병규도 마찬가지였다. 

“악귀에게 당하는 인물들을 구해내는 작품이고, 언제나 생사가 달린 장면을 촬영하는 작품에 러브라인은 사실 불필요하게 여겨져요. 생사가 걸린 순간에 멜로의 포인트가 있는 건 맞지 않아요. 사실 노파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드라마가 너무 무겁기만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실소가 나올 정도로 웃긴 장면을 러브라인을 통해 만든다면,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매우 명확한 선악 구도를 지니는 <경이로운 소문>은 권선징악이라는 뻔한 결과를 갖지만, 그 과정은 매우 복잡하게 흘러간다. 학교 폭력 가해자인 신혁우(정원창 분)는 오랫동안 가족의 학대를 받아왔다. 애정면에서 심한 결핍을 느낀 인물이다. 어른들로부터 받은 학대를 친구들한테 풀고 있던 셈이다. 

“김세정과 러브라인 반대…웃기는 포인트로만” 
“난 ‘운빨’이 좋은 배우…좋은 어른 되겠다”

카운터의 파트너인 기란(김소라 분)이나 위겐의 경우에는 어느 순간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두 사람이 하는 말이 대체로 옳지만, 선택의 순간에는 자기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문 역시 복수심에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엄청난 폭력을 저지르기도 한다. 

악이라고 해서 악하지만도 않고, 선하다고 해서 선한 행동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입체적인 선과 악을 그려내고 있는 부분이 이 드라마의 매력 중 하나다. 
 

▲ ▲배우 조병규 ⓒHB엔터테인먼트

“작품을 하면서 선과 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윤리적인 선악과 무관하게, 자신의 마음에 들면 선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우 이분법적으로요. 뚜렷한 정의를 내리지는 못하겠어요. 저 같은 경우는 누군가에 대해 쉽게 평가하지 말고, 직접 만나보고 알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고 노력해요.”

인터뷰 내내 조병규는 겸손함을 드러냈다. ‘3연타석 홈런’을 강조하는 취재진 앞에서 자신의 능력치를 최소화했다. 주위 동료들과 스태프들의 노력이 절대적이었다며 공을 돌렸다. 그럼에도 조병규가 좋은 작품을 골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SKY 캐슬>과 <스토브리그> <경이로운 소문> 모두 작품적인 면에서 호평을 받았다. 좋은 연기자들이 대거 모인 것도 장점이지만, 결국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도 현재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중요한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메시지를 많이 봐요.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의미가 있는가 생각해요. 다음이 사람이에요. 메시지가 좋아도 어떤 사람이 던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같이 하는 사람이 누구고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가를 봐요.”

깔끔한 인상이기는 하나, 배우 사이에서 외형적으로 특별할 정도는 아닌 조병규는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오디션을 100번 볼 정도로 많은 작품의 문턱에서 떨어졌다. 그때의 실패가 피와 살이 된 듯하다.

무서운 
성장세

“벌써 연기를 하려고 한 지 10년이 된 것 같아요. 16세에 연기하려는 마음을 먹고 다른 곳엔 눈을 돌리지 않았어요. 저는 사실 남들보다 나은 게 별로 없어요. 다만 한 가지 내세울 수 있는 건 연기에 투자한 시간이에요. 잘하는 건 크게 없고요. ‘운빨’도 있는 것 같아요. 늘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네요. 저는 소문이처럼 그렇게 정의롭지 못해서 작품을 하면서도 매우 부끄러웠어요. 결국 <경이로운 소문>도 좋은 어른과 나쁜 어른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전 어린 편이지만, 좋은 어른이 돼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배우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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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