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한국케미호 사태 ‘이란통’ 윤석헌에 묻다

“특사보단 밀사가 필요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국케미호를 둘러싼 한국과 이란의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한국과 이란의 문제로 보이지만 그 배경에는 미국이 존재한다. 한국은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묘수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일요시사>가 윤석헌 전 한‧이란상공회의소 회장(현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 회장)을 만나 이번 사태의 원인과 해결책을 물었다.
 

▲ ▲ 일요시사 기자와 대담 나누는 윤석헌 전 한‧이란상공회의소 회장(현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 회장) ⓒ고성준 기자

지난 4일 한국 국적의 유조선 ‘MT-한국케미호’가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유주는 부산 소재의 ‘디엠쉽핑’으로, 선박에는 한국 선원 5명을 포함해 20명이 승선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나포 당일 한국케미호가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해양오염?
동결자금?

디엠쉽핑은 한국케미호의 해양오염 혐의를 전면 부인했고, 이란 측 역시 현재까지 해양오염과 관련된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케미호의 나포 배경으로 한국에서 출금이 묶인 동결자금 문제가 거론됐다. 한국 내 이란 자금은 70억달러(약 7조6000억원)로 멜라트 은행의 지불준비금까지 합치면 10조원이 넘는다.

이란은 2010년 이란 중앙은행 명의로 IBK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원화 계좌를 개설하고 이 계좌를 통해 원유 수출 대금을 받아왔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2018년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려 이 계좌를 통한 거래가 중단됐다. 이란 정부는 그동안 이 동결자금을 해제하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해왔다. 

압돌나세르 헴마티 이란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19일 미국 <블룸버그>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동결자금을 풀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며 “하지만 그런 약속은 처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한국은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고, 이란과의 협력을 거부해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동결자금과 한국케미호 나포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지난 10일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을 대표로 하는 대표단을 이란에 파견했다. 한국 대표단은 이란 최고 지도자의 외교 고문인 카말 하르라지 외교정책전략위원회 위원장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 등 이란 고위 관계자를 면담했지만, 해결에는 실패했다.

당시 ‘빈손 귀국’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케미호, 나포라고 볼 수 없어
이란과 미국 사이에 낀 한국 정부

한·이란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한 윤석헌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 회장은 현재 양국의 갈등이 이란의 ‘섭섭함’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이란 입장에서는 ‘친구의 나라’라고 생각한 한국이 미국 제재에 있어 다른 국가보다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다음은 윤 회장과의 일문일답.

-정부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한국케미호를 나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부 발표와는 달리 한국케미호는 나포됐다고 볼 수 없습니다. 공해상에 있던 우리 선박은 저항 없이 자진해서 이동했고, 이란 해역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이란 정부의 무력 대응은 없었습니다. 또 선박 소유주인 디엠쉽핑 이천희 이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케미호가)영해에 자발적으로 진입했기 때문에 나포라고 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 ▲▲ 한국케미호

-한국케미호의 나포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포라고 하면 국제법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한 국가의 민간상선을 다른 국가의 군이 끌고 갔다면 제네바 협정을 위반한 것이 됩니다. 한국과 이란의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정확히 해석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나포가 아니라고 정의를 해주는 게 맞다고 봅니다. 선사에서 직접 ‘우리는 나포된 게 아닙니다’라고 했기 때문에 그 말이 가장 정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일어난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핵심은 이란의 서운함입니다.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친서가 지난해 6월에 이어 두 번이나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됐습니다. 또 2019년 11월에도 유정현 주이란한국대사를 초치하는 등, 이란 정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 정부에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 이란 제재라는 담 뒤에 숨기 급급했습니다. ‘미국 제재 때문인데 우리도 어쩔 수가 없잖아?’ 이런 논리가 이란 입장에서는 친구의 의를 저버린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란이 정부에 갖고 있는 섭섭함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현재 주한이란대사관의 공식 계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란 정부의 입장에서 한국 정부가 너무한 것 아니냐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란에 제재를 가한 장본인 미국도 비엔나 협약에 따라 뉴욕과 UN주재 이란 대사관에는 모두 미국 은행 계좌가 개설돼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의 핑계를 대면서 계속 계좌 개설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이 남대문 시장에 가서 환전을 할 때마다 한국 정부에 대해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초기대응
매뉴얼대로

-미국의 제재로 묶여 있는 이란의 동결자금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지금 한국에 있는 동결자금에 대해 이란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많을 것입니다. 동결돼있는 자금은 비자금도, 정치자금도 아닌 석유수출대금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석유수입을 금지한 미국이 JCPOA 포괄적공동행동계획의 예외조항을 인정해 미국과 국제사회가 동의한 정상적인 석유수출대금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합의한 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동결한 것입니다. 

-정부는 이번 사태 초기 청해부대를 급파했습니다. 

▲청해부대의 업무는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해적으로부터 한국 국민과 상선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 매뉴얼에 따라 행동한 것이지 다른 정치적 목적이나 군사적 의도는 없었습니다. 실제 청해부대는 현지에 파견된 이후 한 번도 다른 나라 군과 교전한 적이 없습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이란을 찾았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귀국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협상을 위해 외교부 고위급 인사가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전에 아무런 합의 없이, 회담의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방문하면서 결과 없이 빈손으로 왔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현재 상황에서 방문 성과가 없다고 마냥 잘못된 방문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외교적 프로토콜에 따라서 책임부서의 장 방문 등 매뉴얼대로 움직인 것입니다.
 

▲ ▲▲ 이란 반다르아바스(Bandar Abbas)가 속한 호르무즈간(Hormozgan) 주의 주지사 자데리(Jasem Jaderi, 사진 왼쪽 뒤에서 두 번째)와 이란 국가안보위 실력자 애슈리(Ashouri Taziani, 왼쪽 뒤에서 세 번째), 윤석헌 전 한·이란상공회의소 회장(앞줄 오른쪽)

-한국케미호의 억류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의 공무원들은 힘든 일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마치 벽을 보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한국 정부의 끊임없는 미국 핑계에 이란 정부는 그동안 친구로서 믿고 있던 것에 대한 배신감으로 분노하고 있는 겁니다. 정부의 태도에 따라 사태 해결에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정부 태도에
장기화 달려

-선원들의 안전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요.


▲선원들의 안전 문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란과 한국의 국가 간 우호상태나 외교관계를 보면 현재 감정이 좋지 않을 뿐 적대관계는 아닙니다. 다만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곳이어서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 이란 상황은 어떤가요.

▲이란은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 이후 40년 동안 제재를 당했습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역대 어떤 정권보다도 더 강력한 제재를 당했기 때문에 지금 현재 경제상황이 굉장히 안 좋습니다. 사실 온건파인 로하니 대통령 같은 사람을 미국에서 지지해 줬어야 이란이 개방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을 텐데 그런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란은 미국에 대한 불신이 많습니다. 
 

▲ ▲이란 국가안보위 실력자 애슈리(Ashouri Taziani, 사진 가운데)와 윤석헌 전 한·이란상공회의소 회장

-이란 혁명수비대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혁명수비대는 이란의 종교지도자인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의 사병입니다. 이란에는 정규군이 있지만 그 위에 혁명수비대라는 약 20만명의 사병이 존재합니다. 이란에서 종교지도자 하메네이는 인간이 아닌 신의 대변자입니다. 로하니 대통령도 혁명수비대에는 명령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협상을 해도 사태 해결이 쉽지 않을 겁니다. 

-지난 20일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이번 사태에 영향이 있을까요.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강하게 제재한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협상을 통한 다자간 외교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바마정부 때 바이든 대통령이 그 당시 부통령으로서 이란과 핵협상을 실무적으로 주도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란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본인 자신이 의회주의자고 국가 간 다자주의자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많은 국가들의 의견을 청취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친구의 나라 섭섭함 때문”
진심 어린 태도만이 해법

-정부가 대 이란 외교에서 이 사건을 푸는 해법이 있다면. 

▲우선 한국 정부에서 이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서로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외교도, 사업도, 인간관계도, 그 어떠한 경우가 생기더라도 설령 멱살잡이를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너무 계산에 치우치면 안 됩니다. 싸우는 한이 있어도, 밤새도록 싸워도…. 지금의 해법은 이기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해하기 위해 진심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길이 열릴 것입니다. 

-과거 외교 사례에서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한국 정부는 한국이 중국과 수교할 때의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1992년 수교 전날인 8월23일 당시 맹방이던 대만에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8월24일 중국과 수교를 맺었습니다. 이후 대만과의 모든 거래가 단절되면서 경제적으로도 많은 손실을 입었습니다. 우리와는 반대로 중국은 북한을 끊임없이 설득했습니다. 당시 강택민 국가 주석이 김일성 주석을 만나 충분히 설득하고 설명하는 등 한국 정부와는 완전히 다른 외교 스탠스를 보여줬습니다.
 

▲ ▲이란 적신월사(IRCS) 구호단체 수장 살리미(Morteza Salimi)와 케르만샤 지진 구호품 전달식, 적신월사 테헤란 본부

-정부가 대통령 특사 파견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사 파견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그렇게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정권 초기에 사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해찬 전 총리를 중국에 특사로 파견했지만 홀대만 받았습니다. 카메라를 앞에 두고 어떤 속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겠습니까?

외교는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특히 이번 같은 경우에는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개인적 친분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공개적인 특사보다는 모든 섭섭함을 서로 다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친밀한 인사의 밀사 방문이 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일 해결되면
더 친해질 것

-이란인들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한마디 해주신다면. 

▲이란 사람들은 가족을 중시하고 우리 한국처럼 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어른을 공경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과는 신라 때부터 교류해 신라의 허황후가 후에 페르시아 제국을 다시 세우는 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이란의 역사서에 나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와는 오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이번 사건 뒤에 좋은 결과가 이어져 양국의 관계가 더욱 발전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 마지않습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윤석헌 회장은? 국내외 손꼽히는 ‘이란통’

윤석헌 전 한·이란상공회의소 회장은 국내외에서 중동 전문가로 꼽힌다.

특히 이란, 이라크에 많은 인맥이 있다.

1990년부터 30여년 간 중동지역 인사들과 교류를 통해 친분을 쌓아왔다. 

2018년 30억 상당 구호품 전해

윤 회장은 지난 2018년 5월17일 한·이란상공회의소를 통해 2017년 11월 강도 7.3의 지진 피해를 겪은 이란 케르만샤주 지역에 민간 차원으로는 처음으로 구호품을 전달했다.

30억원 상당의 구호품이 도착한 항구는 반다르아바스.

현재 한국케미호가 억류돼 있는 곳이다. 

윤 회장은 “일반적으로 구호물품은 재고품으로 구성되는데, 이란에 대한 한국인들의 애정과 응원을 담아 모두 신제품으로 마련했다”며 “당시 구호물품을 직접 받은 이란인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고마워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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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