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김용균 모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또 다른 용균이를 살려주세요”

“2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위로받아야 할 피해자가 다시 거리로 내몰렸다. 아들 얼굴을 못 본 지 꼬박 2년째 되는 날. 엄마는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통과를 촉구하며 단식을 시작했다. 영하 17도의 강추위. 여의도의 칼바람에 살이 에일 듯했지만, 엄마는 “밥 먹는 것조차 미안하다”고 했다. <일요시사>는 지난 21일 단식 중인 고 김용균씨의 모친,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을 국회 본청 앞 농성장에서 만났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는 김용균 모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성준 기자

지난 2018년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고 김용균씨(당시 24세)가 끔찍한 사고로 숨진 지 어느 덧 2년이 지났다. 김용균씨는 한국서부발전의 도급업체인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세상을 떠났다. 몸이 두 동강 난 처참한 죽음. ‘제2의 김용균’을 막기 위한 여론이 들끓었고,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후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전면 개정됐다.

거리로

그럼에도 김용균법은 또 다른 ‘용균이들’을 막지 못했다. 개정안은 김용균씨 산재의 원인으로 꼽혔던 ‘위험의 외주화’에 해당하는 금지 대상을 협소하게 규정했다. 김용균씨가 일했던 발전소를 비롯해 철도, 조선업, 지하철 등이 위험 업무에 대한 도급 금지 대상에서 빠졌다.

원청업체에 대한 처벌에 하한선이 없는 ‘솜방망이’ 규정에는 산재 예방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 일었다. 김 이사장은 개정안을 두고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며 “아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 했다. 

“달라진 게 전혀 없다. 법안을 만들 때 용균이처럼 사고가 나면 책임자 모두 처벌할 수 있고, 용균이 같은 사람들을 모두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외주화 금지 대상에)다 빠져 있었다. 구의역 김군 같은 경우도 제외됐다. 이렇게 해서는 이 죽음들을 막을 수 없겠단 생각을 했다. 개정안이 시행되고 1년이 지났는데 산재 사망자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김 이사장은 지난 8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 청원을 올렸다. 해당 법안은 산업재해 사망사고 발생 시 안전관리의 책임이 있는 경영책임자를 처벌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청원은 한 달도 되지 않아 10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산업재해로 날마다 7명, 한 해에 2000명이 죽는 나라,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1위, ‘기업 살인’을 막아 달라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였다.

2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다”

국회 역시 국민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듯했다. 정의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21대 국회의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174석의 거대 여당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국민의힘 역시 유사 법안을 내놓으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불었던 노동계의 ‘염원’이 이번 정기 국회에서 실현될 것이란 희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지난 9일 끝난 정기국회에서 본회의 상정은커녕 소위원회 안건으로조차 채택되지 못했다. 지난 22일을 시점을 기준으로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에서 단 15분 논의된 것이 전부였다.
 

▲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의 인터뷰 도중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김 이사장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성준 기자

김 이사장은 산재로 가족을 잃은 다른 유족들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단식에 나섰다. 정의당도 함께했다. 만약 강은미 원내대표가 단식으로 쓰러지면 김종철 대표가 릴레이 단식을 이어 가겠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위해 10만명이 입법 발의 운동을 했다. 산재 사고로 사망한 유족들, 시민사회들이 모두 모여 법 제정을 논의했다. 자살이든, 사회적 타살이든 하나도 빠지지 않도록 논의했다. 이후 여야 할 것 없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발의했다. 그런데 누구 하나 나서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안 보였다. 내년에는 재보궐선거도 있어 새로운 정치적 이슈가 터지면 이 사안이 묻힐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법이 제정된다고 보기가 어렵다. 연내에 꼭 통과시키기 위해 단식을 결심했다.”

모든 사람이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 법 제정의 당위성은 이미 확보됐다. 하지만 법안마다 핵심 쟁점에 대한 괴리가 있어 조율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 처벌 4년 유예’를 두고 민주당과 정의당의 입장 차가 큰 상황이다. 김 이사장은 중대 재해의 85%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 처벌을 4년간 유예하면 사실상 실효성이 없어, 또 다른 용균이들을 막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
“국회가 응답할 차례”

“지금 재계의 반대가 심하다. 사람의 가치가 기업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법으로 말해줬으면 좋겠다. 이 법안은 기업을 망하게 하는 법안이 아니다. 억울하게 죽는 사람을 막기 위해 안전한 현장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산재로 인해 1년에 11만명이나 죽거나 다친다. 산재 사망은 기업들이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고 방치했기 때문에 난 사고다. 노동자들은 계속 죽어 나가는데 새해만 되면 다들 경제성장률만 운운한다. 우린 허망하게 자식까지 잃었다. 또 다른 억울한 죽음을 막아야 한다.”

인터뷰는 김 이사장의 단식농성이 11일째 되는 날 국회 본청 앞에서 진행됐다. 긴 단식으로 김 이사장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인터뷰는 최대한 짧게 진행하기로 했다. 인터뷰 내내 김 이사장의 목소리는 작게 떨렸고, 무척 수척한 모습이었다. 인터뷰 도중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본청을 지나가자 김 이사장은 말을 끊고 그를 붙잡았다.
 

▲ ▲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답변 도중 눈물 훔치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성준 기자

법안 통과에 힘써달라는 부탁이었다.

김 원내대표는 “우리끼리만 할 수가 없다”며 야당이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다. ‘공정경제 3법’을 밀어붙였던 민주당의 모습과 사뭇 다른 태도였다. 법사위 논의 날짜라도 정해 달라는 김 이사장의 말에 김 원내대표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대답만 남긴 채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지금 힘이 많이 빠진다. 용균이한테 항상 미안하다. 그때 그 사고가 나고 투쟁하면서 밥 먹고 살고 있다는 게 용군이한테 너무 미안했다. 살아 있을 때 못 지켜준 것에 대해 가슴에 한이 맺혔다. 하늘에서 엄마가 이러는 거 보고 있으면 많이 힘들겠지만….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국회가 달라질 수 있다. 제발 많이 도와달라.”

억울한 죽음

이번 임시국회 임기는 내년 8일까지로 조율할 부분에 비해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올해 마지막 본회의가 끝난 후 거대양당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노동자의 산재 사망은 멈추지 않았다. 인터뷰가 진행됐던 날 국회는 경기 평택시 한 물류센터 공사 현장에서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난 3명의 또 다른 용균이들을 추모했다.


<sangm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취지 무색’ 공회전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9일 처음으로 여야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법안심사 제1소위를 열고 중대재해법 제정안을 심사했다.

하지만 각 부처의 의견을 모은 정부안이 오히려 중대재해에 대한 처벌과 책임 수준을 낮춰 법안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김 이사장은 “정부안을 봤는데 어처구니없고 억장이 무너져 잠을 설쳤다”며 “취지에 안 맞기 때문에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취지를 무색케 하는 누더기 정부안도 문제인데, 심지어 단일안조차 마련하지 못했다니 어이가 없다.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이미 상정된 5개 법안에 대한 밀도 있는 병합심사를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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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업체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업체는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도자료를 쓴 의원실 보좌관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국회의원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입법 기능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종’으로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활동 상황을 보고한다. 국회의원 민원 창구? 국회의원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건씩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지역구 예산을 수주했다는 내용,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다. 언론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로 작성한다. 언론 보도는 사정기관의 감사나 수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정부 기관, 그 기관과 일하는 업체 등이 후폭풍에 휘말렸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부 매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오모 보좌관은 ‘경찰청, 순찰차 납품 지연 및 특정 업체 유착 의혹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냈다. 신정훈 의원은 전남 나주·화순을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순찰차는 일반 차량에 특장 작업을 거쳐 경찰청에 납품된다. 멀리서도 순찰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경광등을 달고 겉면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데칼’ 작업을 거쳐 수배·체납·도난 차량을 확인할 수 있는 멀티캠을 내부에 다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순찰차 한 대를 특장하는 데 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000여대의 노후 순찰차가 교체된다. 신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노후 순찰차 959대를 교체하기 위해 총 491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중 약 225억원 상당인 343대가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납품업체의 문제로 순찰차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인 경찰청은 지체상금 부과,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정훈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경찰청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정훈 의원실은 ‘공공계약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경찰청이 계약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데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 의무의 명백한 방기”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코멘트를 인용했다. 순찰차 납품 과정 지적 해당업체 “사실과 달라”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정훈 의원실은 “동일한 지배 구조를 가진 Y사(보도자료에는 A사)와 N사(B사)가 10여년간 경찰청의 대형 계약을 반복적으로 수주해 왔다”며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내정 또는 담합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 및 ‘입찰 방해’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N사는 Y사의 임직원이 만든 회사로 두 업체는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신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치안 장비 도입 사업이 법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일부 업체에 특혜로 왜곡되고 있다”며 “기존 계약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발주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언론이 기사를 냈다. 보도 이후 납품업체인 Y사가 보도자료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 법무부 등에 차량을 개조해 납품하는 특장업체다. Y사 관계자는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 기사가 나가기 전에 신정훈 의원실이나 언론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오 보좌관을 만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에 관련 보도가 한 차례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청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현대자동차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이번 납품에 참여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현대자동차로부터 616대(소나타), Y사로부터 73대(스타리아 37대, 넥쏘 36대), N사로부터 270대(아이오닉 181대, 그랜저 89대) 등 총 959대를 납품받았다. Y사 관계자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지적한 납품 지연과 검사 불합격에 대해 “제작은 이미 완료됐고 출고를 기다리던 중에 검사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검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5개월 동안 시간을 끌었다”며 “2015년부터 경찰청에 순찰차를 납품해 왔지만 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납기에 늦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N사의 계약 차량은 납품까지 5개월 넘게 걸렸고 H사의 계약 차량은 검사 하루 만에 출고 처리됐다”며 “그동안 경찰청 검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든 H사든 같은 잣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확인 안 했다? H사는 순찰차에 설치하는 리프트 경광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와 N사가 담합해 경찰청 계약을 10년 동안 수주해 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찰청은 조달사업법에 따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업체들과) 계약했다. 나라장터에 물건을 올리면 경찰청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면서 “우리와 N사는 같은 차종으로 경쟁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오 보좌관은 순찰차 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를 고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시정되지 않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비서실에서 <일요시사>와 만나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소간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관행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시정하면 끝까지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순찰차 관련 문제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1차 차량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왔는데 2차 검사를 할 때 보니 1차에서 나온 문제가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다. 3차 검사는 나도 모르게 진행됐다. 시험성적서를 달라는 말에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납품한 순찰차에 설치된 경광등이 사양서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오 보좌관은 “리프트 경광등의 핵심 기능은 주야간 150m 구간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납품된 것은 그게 안 된다. 30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순찰차에 치명적인 장애”라고 비판했다. Y사 관계자는 “사양서가 존재하는데 30m 밖에서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경찰청에서 3회가량 시연회를 진행했고 현장에서도 더 밝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광등이 사양서와 일부 맞지 않는 건 애초에 사양서 자체가 H사의 제품에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H사의 경광등이 경찰청 순찰차 사양서에 적용돼 2015년부터 2024년, 우리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10여년간 독점적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 고장이 잦아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이 관계자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도 H사가 자사의 경광등을 납품하기 위해 오 보좌관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정 안 해” “문제 없다” 순찰차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자사의 경광등이 아닌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H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Y사 관계자는 “2022~2023년 H사 경광등에 문제가 발생해 현대자동차가 납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해 5~6월 경광등 납품업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Y사 역시 H사와 경광등 발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Y사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경광등 발주 견적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납기가 (지난해) 12월12일까지라 우리한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15일 경찰청과 경광등 업체를 바꾸는 문제로 협의를 진행했고, 11월26일에 바뀐 업체의 경광등으로 우리 공장에서 시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H사는 순찰차 납품업체들과의 갈등을 ‘민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사 대표가 신정훈 의원실 오 보좌관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내용이 지난 5월 나온 보도자료의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오 보좌관은 처음에는 민원을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H사 대표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8월경 지역의 향우회장과 함께 H사의 대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 보좌관이 경찰청의 순찰차 사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 보좌관은 지난 5월14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대해 묻자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를 파고 있었다”며 “내부에서 나온 정보도 있고 경찰청에서도 (순찰차 사업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로 경찰청 관계자를 30~40번 만났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H사 대표가 같은 시기 신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나주시·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신 의원의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H사 대표는 지난해 8월22일 500만원을 기부했다. 신 의원은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20대(2020년), 21대(2024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2014~2016년, 2020~2024년 등 신 의원이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 H사 대표가 후원금을 낸 건 지난해 8월이 유일하다. 경광등 업체 변경 문제 때문? “사기업 갈등에 보좌관이 왜?” 오 보좌관은 H사 대표가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면서 “회계를 관리하는 직원은 나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사 대표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 3억원 중에 5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겠느냐”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업체의 문제 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자료를 받아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관은 “경찰차 특장 시장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뛰어드는 업체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맨날 같이 했던 업체를 빼버리면 가만히 있겠나. 나는 Y사가 욕심을 부리면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해왔던 곳과 똑같이 하면 되지, 더 이익을 취하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업체 간 중재의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일을 잘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후원금을 냈다. 지금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사업을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머리 아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 보좌관을 만나 민원을 넣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Y사는 신정훈 의원실발 보도자료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Y사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엄연히 사기업 간 일어난 일에 국회 보좌진이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회사는 경제, 이미지 부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지체상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업체 문제로 인한 지연이 결정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서 보관을 위한 토지 대여료가 1억2000만원 정도 나갔다. 무엇보다 자회사인 N사의 신용등급 하락, 기사로 인한 이미지 훼손 등 무형적인 피해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받아쓴 언론 “취하해 달라” 한편 Y사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매체 3곳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Y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민에게 경찰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신청인(Y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해 치안 활동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어 정정보도를 구한다”고 조정을 신청했다. Y사 관계자는 “2곳의 매체에서 ‘기사를 내릴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