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VS 이란 3차 세계대전 시나리오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1.13 14:32:25
  • 호수 12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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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현실로? 김정은에 달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최근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제거했다. 이로써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고조된 상황. 이란이 미국에 대한 보복을 예고하면서 전쟁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미국과 이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미국이 이란 군부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공습해 살해한 계기로 이란이 미국 상대로 보복을 선언했다. 이 말은 미군 기지를 대상으로 공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괜찮다”

AP,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라크 국영방송은 지난 2일(현지시각)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타고 있던 차량이 이라크 바그다드서 미군의 공습을 당해 사망했다고 보도했고, 이란 혁명수비대도 “명예로운 최고사령관 솔레이마니가 순교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국방부는 성명을 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사살해 해외 주둔 미군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적인 방어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전역서 미국 외교관과 군인들을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며 “그와 그의 군은 수백명의 미군·연합군 사망 및 수천명의 부상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이라크 내 친이란 세력의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에 대한 공격도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승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은 세계 어디서든 자국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별도의 발표는 없었으나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망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 8일 오전 트위터에 ‘괜찮다(All is well)! 이라크에 위치한 미군기지 2곳에 이란으로부터 미사일 발사가 있었다’고 썼다. 이어 ‘사상자와 피해에 대한 평가 작업이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리는 전 세계 그 어디서도 단연코 가장 강력하고 가장 잘 갖춰진 군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 공습 이후 무력충돌 긴장 고조
러·중 “미 견제하고 이란 지지”

이란 혁명수비대 장성이자 헌법기관인 국정조정위원회 사무총장인 레자에이는 지난 5일(현지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만약 미국이 이란의 군사적 대응에 어떤 반격을 한다면 이스라엘 하이파와 텔아비브는 가루가 될 것’이라고 썼다. 하이파는 무역·휴양·상공업 중심지인 이스라엘의 3대 도시이고 텔아비브는 국제법상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2대 도시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을 지켜보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입장은 어떨까.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을 견제하고 중동 내 입지를 키우기 위해 이란을 지지하고 있다.

지난 5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전날 이란과 러시아, 프랑스의 외무장관과 각각 통화하고 미국과 이란 간 갈등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왕 부장은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의 통화서 “미군의 위험한 작전은 국제관계의 기본 규범을 위반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또 왕 부장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통화서도 “군사 모험주의는 수용할 수 없다”고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가 현 중동 정세를 놓고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브로프 장관도 “러시아는 중국과 같은 입장”이라며 “미국의 행동은 불법이며,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언급했다.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의 바바라 슬라빈 이란 미래연구소장은 미국 CBS 뉴스와의 인터뷰서 “미국과 이란 간 사이가 더욱 틀어지면서 러시아와 중국이 중동 내 영향력을 더욱 키울 것”이라며 “이번 공습 사태의 승자는 러시아와 중국”이라고 말했다. 

미 1위
이 14위 

벤 월리스 영국 국방부장관은 지난 7일, 이라크가 원한다면 현지 주둔중인 영국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월리스 장관은 이날 하원에 출석해 중동 지역 정세에 관해 설명하면서 이 같은 입장을 보였다.

이후 이라크 의회는 지난 5일 긴급회의를 열고 미국을 포함한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 결의안을 가결했다. 이라크에는 400명의 영국군과 5200명의 미군이 훈련지도,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 잔당 격퇴 등을 위해 주둔하고 있다.

월리스 장관은 “우리(영국군)가 계속 주둔하는 것이 이라크에 최선의 이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이라크의 주권을 존중한다. 그들이 우리가 떠나기를 원한다면, 이는 그들의 권리이며 우리는 이를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이견 없이 지지할 경우, 영국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야당 의원의 지적에 월리스 장관은 “미국에 대한 우리의 지지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력에도 관심이 쏠린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은 2018년 기준 미국 방위비 6488억달러(약 756조원)을 기록해 전 세계 군사비의 36%를 차지했다. 세계 1위인 미국은 2위인 중국에 비해 무려 2.5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역 128만1900명, 예비역 81만1000명, 동원 가능 인구는 7300만명이다.

글로벌 파이어파워(GFP)의 2018년 세계 군사력 순위에 따르면, 미국은 파워 지수가 0.0818로 전 세계 1위다. 파워 지수는 0에 가까울수록 군사력이 높은 형태다. 육군은 128만명에 전차 5884대, 공군은 전투기 1962대에 폭격기 2840대, 해군은 구축함 75척, 항공모함이 무려 11척이다.

걸프전 
재현되나

반면 이란은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 분석 결과 총 병력 52만3000여명으로 집계됐다. 정규군이 35만명, 정예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최소 15만명 이상이다. 중동권에선 최강의 국방력을 자랑하지만 전 세계 기준으로 보면 14위 정도다. 

특히 미사일 전력은 중동 지역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현대전서 군사력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는 미사일이다.
 

미국 국방성은 지난해 11월 발간한 ‘이란 군사력’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란은 국경서 2000km 떨어진 지점까지 타격 가능한 중거리탄도미사일(MRBM), 근거리(CRBM),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상당량 보유했다”고 평가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은 물론, 유럽 남동부까지 타격할 수 있는 범위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키는 IRGC 해군도 2만명 정도며 무장 초계선을 운용하고 있다. 이란 해군은 요노급 잠수함 14대도 보유하고 있다.

최근 발표한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2009부터 10년간 이란의 국방 분야 수입은 같은 기간 사우디아라비아 수입액의 3.5%에 불과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와 비교해 공군력이 크게 떨어지지만, 이란의 미사일 능력은 최고급으로 알려져 있다. 중·단거리 미사일을 중심으로 한 이란의 미사일 능력은 중동 지역서 최대 규모라는 게 미국의 분석이다.

장거리 미사일 개발이 지난 2015년 핵 협상 이후 정체돼있으나 현재 수준으로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까지 타격할 능력을 갖췄다.

또 이란은 제재 속에서 드론 공격 능력도 키웠다. 지난 2016년 이라크서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와 전쟁 당시 이란의 드론이 투입됐다. 또 이란은 이스라엘 영공에도 무장한 드론을 침투시키기도 했다. 지난해 사우디의 석유 시설 2곳이 드론 공격을 당하자 미국과 사우디는 이란을 배후로 지목하기도 했다.

미, 전 세계 군사비 36% 차지···
이, 중동권 최강이지만 전력상 약해

같은 중동 국가인 이라크는 1991년 걸프 전쟁 당시 이란보다 군사력이 4~5배 강했다. 정규군 54만명, 예비군 30만명 등 병력이 100만여명에 달했지만, 미군 43만여명, 세계 34개국서 파병된 다국적군 70만명에 버티지 못하고 45일 만에 미국에 백기를 들었다. 

1·2차 걸프전서 미군과 다국적군의 사망자는 300여명에 그쳤지만, 이라크군은 5만여명이 사망했다.

중동 국가들은 아직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이는 종교적으로 분열된 지역 특성 탓에 섣불리 이란을 자극하면 상황이 더 복잡해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등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이란은 시리아와 가자 지구의 무장 세력,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예멘 등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 국가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빚어질 경우 중동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빠질 우려가 있다. 중국 전문가들도 전쟁 가능성을 염두하면서 이란의 보복이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8일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내 중동연구소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화리밍 전 UAE 중국대사는 “현재 상황서 미국이 이란의 보복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중요하다”며 “양측의 군사적 행동이 통제불능 상황이 되면 전쟁의 위험이 커져 전 세계에 매우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 의회와 여론, 다가오는 선거가 트럼프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반드시 이란에 추가적인 조치를 할 것”이라며 “핵심은 미국이 어느 정도까지 보복할 것인지, 이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전면전
가능성

박원곤 한동대학교 교수는 “이란의 입장에서는 전면전을 해서 미국에 이길 수가 없다. 현실적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상황서 이란이 미군 기지를 공격해서 적지 않은 사망자 수가 나왔다. 그럼 미국은 당연히 이에 대해 공격을 하게 되고 이란이 다시 대응공격을 하면서 전면전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한 가지, 희생자가 나왔는지 밝혀지겠지만 만약에 나왔다면 미국이 공습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확전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1·2차 세계대전은?

1차 세계대전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4년여 동안 진행됐다.

1914년 6월28일 보스니아 사라예보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그의 부인 조피 폰 초테크가 세르비아 민족주의 청년들로부터 암살당한 사건이 실마리다.

이때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세르비아에 대한 전쟁 선포를 시작으로, 연합국(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이탈리아 등) 대 동맹국(독일, 오스만제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등)의 구도 하에 30여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을 전장으로 삼아 진행됐다. 결과는 연합국의 승리였다. 

2차 세계대전 시기는 1931년(만주사변), 1937년(중일전쟁), 1939년(독일의 폴란드 침공) 등을 시작으로 1945년 일본의 항복까지, 10년 안팎으로 본다.

연합국 대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대결이었는데, 참가국은 40여개국. 전장은 1차 세계대전으로 확장됐다.

유럽, 중동, 아프리카는 물론 아시아와 미국(일본이 공격한 하와이 진주만)으로까지였으며 이번에도 결과는 연합국의 승리였다.

두 차례 세계대전의 공통점은 한마디로 ‘미국이 참가한 연합국이 승리했다’는 것이다.

사실 1차 세계대전의 주역은 유럽 국가들이고 미국은 엄연히 조연이었다. 전쟁이 끝나기 1년 전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존재감은 급격히 커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미국은 전쟁 도중 참여했다.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해 본격적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다.

다만 미국의 참전 후 전쟁 양상이 반전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일본에 2차례 핵폭탄을 투하하며 전쟁을 끝낸 활약만 보면 미국은 주역과 조연의 구분을 넘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극작술서 자연적인 힘을 이용해 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해 이를 결말로 이끌어가는 수법)였다고도 할 수 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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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만 아는 보수대연합

장동혁만 아는 보수대연합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방선거를 53일 앞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자 일각에선 “장 대표가 지방선거 패배 후 부정선거론을 제기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장 대표가 취임 직후 구상했던 보수 대연합은 이미 무너졌다. 그의 구상은 왜 무너졌을까? 그리고 누가 그다음을 노리고 있을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11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장 대표는 미국 국제공화연구소의 초청을 받았다. 원래는 지난 14일부터 2박4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초청 측의 요청으로 3일 앞당겨 출국했다. 누가 뭐래도 앞당긴 출국 장 대표는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세계의 자유를 지키는 최전선 워싱턴 DC로 출발했다”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코 외면할 수 없기에 나아간다”고 주장했다. 6·3 지방선거를 53일 앞둔 시점에서, 그것도 일정을 더 늘린 출국이었다. 그 스스로는 “6·3 지방선거는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거대한 전선이 될 것”이라며 “지방선거를 앞둔 현재의 분열과 고통의 시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고, 위기의 대한민국 앞에서 우리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선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지난 14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너무 갑작스럽게 비밀스럽게 가셔서 명분을 모르겠다”며 “선거를 코앞에 앞둔 상황에서 공천도 마무리가 안 됐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도 같은 날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지금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것은 선거가 어려운 상황에서 뛰어야 하는 후보들이 단 하루라도 낭비하지 않도록 후보를 빨리 결정지어 주는 일”이라며 “그걸 포기하고 미국에 간 것은 이번 선거가 이미 어렵게 된 마당에 포기하는 심정으로 차라리 다음에 어떤 정치적 행보를 위해서 지지층 결집을 목적하려고 간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지난 11일 경기 수원 방문 도중 기자들을 만나 “미국에 지방선거 표를 찍어줄 유권자가 있느냐”며 “리더가 이번 지방선거를 포기한 거 아니냐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런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이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9일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국제공화연구소의 중요한 목적·역할 중 하나는 각국 부정선거 감시”라며 “장 대표가 그에 대한 기법을 배우고 와서 지방선거 패배 후 부정선거 때문에 졌다고 얘기하려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윤희석 전 대변인도 같은 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비슷한 주장을 했다. 보다 못한 <조선일보>는 지난 10일 국제공화연구소 근무 경력이 있다는 익명의 워싱턴 DC 외교·안보 싱크탱크 연구원의 발언을 인용해 “개발도상국·후진국의 선거 도중 발생할 수 있는 부정을 감시하는 국제공화연구소를 단순히 부정선거론 연구기관으로 매도하는 것은 상당히 모욕적인 수사”라면서 장 대표를 두둔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8월 당 대표 당선 과정에서 대여 투쟁과 단일 대오를 강조했다. 선출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단일 대오로 뭉쳐 제대로 싸우는 야당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지금부터 단일 대오에서 이탈해 내부 총질하는 분들과 당론을 계속 어기는 분에 대해서는 결단하겠다”고 주장했다. 선거 앞두고 미국행…일각선 “부정선거론 배우러?” 극복 못 한 모순…당내 한 제외하고 당외 이와 연대? 이후 진행된 것은 한 전 대표·김 전 최고위원 제명과 배 의원 당원권 1년 정지 등 친한계 일원들에 대한 징계였다. 이들 중 배 의원은 법원에 징계 효력 정치 가처분을 신청했고, 지난달 인용돼 징계 효력에서 벗어났다. 친한계 구성원들은 다수의 방송 시사 프로그램에 활발하게 출연하면서 이익과 불이익을 동시에 전달하고 있다. 원외 인사들도 방송 출연을 통해 존재감을 유지하면서 이들의 의견을 왕성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장 대표 등 친한계가 아닌 국민의힘 인사들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의견을 밝히기 때문에 비판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장 대표는 지난해 9월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면서 “방송에서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를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가 한 전 대표 대신 선택한 연대 시도 대상은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였다. 지난 1월엔 이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공천 헌금 의혹·통일교 게이트 특검법 공동 추진을 합의했다. 지난달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여 투쟁 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이 대표와의 연대를 통해 보수 대연합을 시도한 것이라는 해석이 다수 나왔다. 하지만 이 대표는 “공조와 연대는 다르다”면서 선거 연대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도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서 징계를 받고 대표직에서 물러나 개혁신당을 창당하기까지의 과정을 토대로 국민의힘에 대한 강한 반감을 유지하고 있다. 당내 경쟁자와의 투쟁을 위해 불미스럽게 당을 나간 외부 인사와의 연대를 추구하는 그림에 대해선 한동안 “모순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보수 대연합은 당내 갈등을 봉합한 후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인 순서”라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당선 과정에서 구 친윤(친 윤석열)계와 강경 보수 성향 윤 어게인 세력의 지원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장 대표의 구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장 대표는 친한계를 국민의힘에서 내보낸 후 구 친윤계·윤 어게인을 묶어 강경한 선명 보수 야당을 만들어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구 친윤계 중 상당수는 대구·경북·강원 등 국민의힘의 텃밭으로 통하는 지역 내 유지들과 밀착해 정치활동을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어게인 세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두둔하면서,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했다. 두 세력에 대해선 “같은 ‘보수’라는 테두리 안에 있을 뿐, 성향이 전혀 다르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구 친윤계는 언론 노출을 가급적 피하면서 지역구 관리에 공을 들이는 토착 보수 성향을 보인다. 반대로 윤 어게인 세력은 대규모 집회 개최·유튜브 활동 등 강경한 의견을 왕성하게 표현하는 것에 주력한다. 실패한 연대 이대로 포기? 아울러 구 친윤계는 윤 어게인 세력과 밀착하는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지난달 국민의힘 의원 전원 명의로 발표된 절윤(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선언에도 참여하는 등 윤 전 대통령을 이미 지웠다. 반대로 전한길씨 등 윤 어게인 세력은 절윤 선언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장 대표에 대해서도 독한 비난을 이어갔다. 장 대표로선 지난해 당 대표 선거 출마 이후부터 구상했던 “구 친윤계·윤 어게인을 묶는다”는 목표가 어긋난 것으로 보여질 여지가 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 지방선거 패배와 장 대표 체제 붕괴에 대비해 ‘포스트 장동혁’을 거론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거친 후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할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포스트 장동혁에 도전할 수 있는 인사로는 ▲오세훈 서울시장 ▲한 전 대표 ▲신동욱 수석최고위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달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공천 1차 마감 시한까지 신청하지 않았다. 이어 당의 인적 쇄신·절윤 선언 실천·혁신 선대위 설치 등을 요구하면서 장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다. 오 시장은 추가 공모 기간 내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이때까지도 “서울시장 출마가 아니라 장 대표 체제 붕괴 후 당권에 도전하려는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아다녔다. 따라서 오 시장의 선거 당락을 떠나 그가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되지 않는다. 서울시장 5선에 성공하더라도 당 대표 출마 및 당선 후 겸직을 막을 법적 제한은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4일 전입신고를 하는 등 부산 북갑에서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확정된 전재수 의원은 이곳에서 3선을 했고, 현재 부산 내 유일한 민주당 의원이다. 한 전 대표가 이곳에서 당선돼 민주당의 부산 내 근거지를 소멸하면 국민의힘에 복귀해 다시 당권·대권에 도전할 명분이 붙는다. 신 최고위원에 대해선 지난해 12월부터 “포스트 장동혁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장 소장은 지난해 12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의힘 내 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몇몇 의원이 장 대표로는 안 되겠다면서 신 최고위원이 비대위원장을 맡으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고 주장했다. “구 친윤계로서는 오 시장도 구 친윤계와 성향이 다른 수도권 내 보수 성향 엘리트에 속해 부담스러워할 것이고, 오랫동안 갈등했던 한 전 대표는 말할 것도 없다”는 분석도 돌아다녔다. 신 최고위원에 대해선 한동안 서울시장 출마설도 돌았지만, 실제로 출마하지는 않았다. 3인방 행보는? 성향이 전혀 다른 세력을 조율하면서 그 수장으로 군림하는 데에는 ▲전략적 경계 설정 및 수용 ▲고도화된 소통 ▲정치적 영향력 행사 기술 ▲유연한 지도력 등 고난도 정치술이 필요하다. 이 정치술을 갖추고 세력 조율을 시도했던 대표적인 정치인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였다. 효종·현종은 어느 한 세력이 일방적인 우위를 점하지 않는 방향으로 서인·남인의 당쟁을 관리했다. 하지만 2대 독자로서 강한 정통성과 고집 센 성격을 가졌던 숙종은 주기적으로 환국을 일으켜 한 세력에 일방적으로 정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왕권을 강화했다. 서인은 학문 방향·남인에 대한 대응 등 논점에서 의견이 엇갈려 노론·소론으로 갈라졌다. 영조가 즉위했을 때는 노론·소론의 당쟁이 극대화됐다. 이 때문에 소론·남인 강경파가 영조를 인정하지 못해 군사 반란을 일으킨 이인좌의 난이 발생했다. 이후 영조가 추진했던 탕평책은 노론·소론의 온건파만 조정에 남겨놔 균형을 유지하는 완론 탕평이었다. 이 때문에 종전엔 없던 탕평파라는 당파가 탄생했다. 이들은 영조의 완론 탕평에 협조해 살아남았다. 하지만 탕평파에는 영조의 사도세자 살해를 끝까지 막지 못했다는 정치적 약점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탕평파의 핵심이었던 사도세자의 처가 풍산 홍씨는 세손 정조의 정치 보복을 우려해야 했다. 정조의 즉위를 도왔던 세력은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처가 경주 김씨 가문이었다. 결국 영조의 완론 탕평은 유교에서 금기시하는 척신 정치로 나아갔다. 정조는 즉위 초엔 홍인한·정후겸 등 자신의 즉위를 방해한 세력의 핵심을 숙청한 후 측근 홍국영에게 전권을 맡겼다. 그러다가 홍국영이 과도한 권력욕을 드러내자 숙청한 후 영조와 정반대로 준론 탕평을 추진했다. 준론 탕평은 각 당파의 강경파를 전면에 내세워 당파마다 선명한 당론을 내세우게 한단 것이다. 이는 곧 “영조 이전의 정치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고, 각 당파에 스스로 생각하는 의리를 명확하게 밝히라고 요구하는 체제였다. 그들의 의리 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택하는 심판 겸 절대자는 정조 자신이었다. 정조가 홍국영 숙청 이후 선택한 정국 관리 대리인은 소론 강경파 겸 시파였던 서명선이었다. 이어 그를 견제하기 위해 영조 대에 사실상 조정에서 사라졌던 남인을 조정에 편입시키려고 남인 영수 채제공에게 고위직을 부여했다. 아울러 자신의 스승이었던 김종수와 초강경파인 심환지 등 노론 벽파와 정민시 등 노론 시파도 조정에 공존시켰다. 각 당파의 수장들을 골고루 챙겨 자신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한 경쟁을 시킨 것이었다. 각 당파의 강경파만 엄선해 조정에 공존시켜야 했기 때문에, 정조의 갈등 조정 업무는 매우 많았다. 김종수는 이따금 갈등을 일으켰다. 정조는 매번 적당한 선에서 김종수를 처벌하면서 그 갈등을 무마했다. 정조도 김종수에 대해선 “위험에 직면하면 위험에서 건져주고, 거의 죽게 되면 죽음에서 구원해 줬다”고 말했다. 선거 패배하면 주목받을 ‘포스트 장’ 누구? 정조의 준론 탕평 갖가지 비결…누가 갖췄나? 서명선은 공개적으로 “저는 채제공과 의리상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고, 채제공이 역적이 아니면 저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명선은 이인좌의 난 이후 남인에 대한 감정이 격렬해진 소론 일각의 정서를 조정에서 공론화했다. 그런데 막상 서명선은 심환지로부터 탄핵당했다. 서명선이 영의정이 된 것에 심환지가 불만을 품은 것이었다. 그러자 정조는 크게 분노해 김종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렵다”면서 벽파를 ‘우리 벽패는’이라고 일컫는 등 심환지에게 수많은 밀지를 보냈던 사람은 정조였다. 심환지는 보는 즉시 태워 없애야 하는 밀지를 보관해 후세까지 전하게 했다. 이 밀지 모음이 ‘정조 어찰첩’이다. 정조는 심환지에게 밀지를 보내 정국 관리 구상을 밝히면서 심환지에게 구체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등 막후에서 ‘정국’이란 거대한 연극의 감독 겸 주연을 맡았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정조는 세자에게 양위한 후 스스로 정예부대로 육성했던 장용영을 데리고 수원 화성으로 물러앉아 조정을 감독하는 원격 통치를 구상했다. 정조가 정했던 시기는 1804년이었지만, 정조는 1800년 훙서했다. 정조가 구상했던 준론 탕평은 정조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정조는 할아버지의 극진한 총애를 받을 정도로 공부에 몰두해 즉위 후엔 스스로 성리학의 정통이자 스승을 자처했다. 이는 신하들이 임금을 가르치는 경연을 없애고, 임금이 신하를 가르치는 초계문신제를 채택한 것에서 확인된다. 아울러 서명선·김종수·정민시 등은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면서 사조직 동덕회를 조직할 정도로 측근이었다. 조정 내부엔 정조의 준론 탕평에 동조하는 시파가 있었고, 정조 어찰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벽파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조정 외곽엔 영남 남인 1만명이 연명해 정조의 사도세자 복권을 시도하고 정조의 준론 탕평에 호응하는 등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친위 무력 기반 장용영도 있었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밀지를 주고받으면서 막후에서 정국을 설계하면서 이끄는 부지런함까지 갖췄다. 꿈꾸는 잠룡들 과연 국민의힘은 서로 전혀 다른 구 친윤계·친한계·강경 보수를 모두 조율할 수 있는 수장을 배출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선 모두의 인정을 받는 월등한 실력과 부지런함을 갖춰야 한다. 장 대표가 지금이라도 이를 소화할 수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누군가가 나타날지, 보수 성향 유권자의 가슴은 타들어 가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