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명일 기자] “돈 앞에선 30년 우정도 소용이 없었다.” ‘빨간펜’으로 유명한 교원그룹의 이정자(65) 전 부회장이 장평순(62) 교원그룹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230억 원대의 소송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1982년 웅진출판(현 웅진씽크빅)에서 영업사원으로 처음 만나 지금의 교원그룹을 일궈낸 ‘30년 지기’ 동업자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자본금 3000만원으로 1985년 그룹의 모태인 ‘중앙교육연구원’을 설립해 27년 만에 연매출 1조4400억원에 달하는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두 사람은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진 지난 30년간 친남매처럼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호사가들 사이에선 두 사람의 관계가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놓고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정자 전 교원그룹 부회장이 지난 6월25일 "교원그룹과 장평순 회장이 지난해 5월 퇴진하는 대가로 약속한 공로보상금 200억과 보수 및 퇴직금 31억원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청구소송을 냈다. 30년 지기 장평순 회장과 이정자 부회장이 200억원대 퇴직금을 놓고 법정행을 택한 것이다.
교원의 꼼수?
두 사람의 갈등은 장 회장이 지난해 5월 이 전 부회장에게 퇴진을 요구하면서 서서히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전 부회장은 교원그룹 성장과정에서 신규사업은 물론 인사, 예산, 마케팅 등을 총괄해온 2인자였다. 교원그룹은 이 전 부회장의 나이가 많아 정년퇴임의 개념으로 이 전 부회장에게 퇴임을 요구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재계에서는 장 회장이 2세들의 운신 폭을 넓히기 위해 이 전 부회장을 비롯한 창업세대의 퇴진을 요구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실제로 지난 2월 장 회장의 맏딸 선하(31)씨와 아들 동하(30)씨가 교원그룹에 입사했다. 선하씨는 호텔사업부문 차장으로, 동하씨는 그룹 전략기획본부 신규사업팀 대리로 각각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갈등은 장 회장이 이 전 부회장에게 퇴직금 및 공로금 명목으로 무려 300억원의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며 잘 마무리 되는 듯 했다. 또 그중 100억원은 이 전 부회장이 이미 수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지난 2월 발생했다. 이 전 부회장이 건강식품, 학습지 등 그룹의 주요사업과 중복되는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 회장이 그룹 상무와 직원, 변호사를 대동하고 이 전 부회장의 사무실에 들이닥친 것이다. 장 회장은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그룹과 사업영역이 중복되는 개인사업을 준비하는 것이 도리에 맞느냐"며 매우 진노하고 이 전 부회장을 그 자리에서 바로 내쫓아버렸다는 후문이다. 결국 이 전 부회장은 두 달 뒤인 4월23일 주주총회를 통해 정식으로 해임됐다. 또 교원 측은 200억원의 남은 공로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 전 부회장 측은 강력히 반발했다. 식당을 낸 것과 출판업을 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회사 주요사업부문과 중복되지도 않을뿐더러 퇴임 후 진행할 사업들을 준비했던 것에 불과한 만큼 해사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또 이 전 부회장은 소장을 통해 "장 회장 측이 지난 3월부터 나와 주변 사람의 뒷조사를 하며 명예를 훼손하고 돈을 포기하라는 협박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두 사람의 법정다툼에 대해 재계에선 이 전 부회장이 일방적인 해임에 대해 앙심을 품고 일부러 중복되는 사업을 준비했다는 설과 장 회장이 200억원에 달하는 공로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설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30년지기 이정자 전 부회장과 200억대 퇴직금 놓고 법정행
"교원과 중복사업 준비 해사행위" VS "퇴임 후 사업, 문제없다"
교원 측의 한 관계자는 "회장님은 이 전 부회장을 배려해 퇴임 통보 후 1년간이나 정리할 시간을 줬는데 그 기간 동안 교원그룹과 중복되는 영역에서 사업을 준비한 이 전 부회장에게 무척 큰 배신감을 느낀 것 같다"며 "이 전 부회장이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면 교원그룹에서 재직하며 터득한 노하우와 인맥 등을 이용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심각한 해사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전 부회장은 그룹에 대한 자신의 기여도를 고려했을 때 공로보상금 300억원은 당연하다는 입장이지만, 장 회장이 약속했다는 300억원은 교원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교원 임직원 1321명의 퇴직금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은 액수다.
장 회장이 제시한 300억원의 공로보상금은 해임에 따른 이 전 부회장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제시한 것 일뿐 처음부터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현재로서 법적 판단은 무척 애매하다. 근로기준법상 해사행위를 한 근로자라 하더라도 밀린 보수와 퇴직금 31억원을 지급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200억원은 공로보상금이라는 매우 예외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적 공방은 매우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원이 공로보상금 지급을 거부한 것도 법률검토를 통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 법률 전문가는 "근로기준법상 회사는 퇴직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하고 근로자가 회사에 끼친 손해에 대해서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통해 변상을 받는 것이 맞다. 따라서 퇴직을 전제하고 주기로 한 돈이었다면 도덕적으로는 주는 것이 맞겠지만 공로보상금이라는 개념자체가 법적으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사업주가 단순 변심으로 주지 않겠다고 말해도 뭐라 할 말이 없을 것"이라며 "이 전 부회장 측이 승소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교원 측이 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적 판단 '애매'
두 사람의 법정다툼에 대해 모 그룹 관계자는 "아무리 작은 사업도 30년 동안 동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맨손으로 시작해 연매출 1조원에 달하는 교원그룹을 일궈낸 두 사람이 결국 퇴직금을 놓고 소송을 벌인다는 게 무척 씁쓸하다. 이번 소송으로 교원그룹도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원그룹 홍보팀 관계자는 "소송과 관련해 아직 확인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모든 부분이 진행 중인 사항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