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②안동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내앞마을, 임청각

독립운동의 성지에 가다

▲ 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추모벽에 새겨진 경북 출신 독립 유공자의 이름

1919년 3월1일 경성(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의 함성은 독립을 염원하는 기운을 타고 3월13일, 경북 안동에 이르렀다. 이날 울려퍼진 만세 소리는 보름간 계속됐으며, 14회에 걸쳐 약 1만여명이 조국의 광복을 부르짖었다. 100년 전 만세 함성을 따라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을 찾았다.
 

▲ 안동의 독립운동사를 살펴볼 수 있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전경

일제강점기 많은 사람이 독립운동에 나선 안동은 시·군 단위로 전국에서 독립 유공자(약 350명)가 가장 많은 지역이지만, 그동안 역사의 뒤편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안동의 독립운동사를 살펴보기 위해 먼저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으로 가자. 1894년 갑오의병부터 1945년 광복까지 줄기차게 이어진 안동과 경북 독립지사의 투쟁을 문헌과 자료, 영상으로 소개한 곳이다. 전시 관람은 해설사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좋다. 의병항쟁과 대구의 국채보상운동, 만주 지역의 항일투쟁, 의열단과 광복군 전투 등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며, 깊이 있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 안동과 경북 독립지사의 투쟁을 문헌과 자료, 영상으로 소개한 실내 전시

불꽃 같은 독립운동

안동은 본래 유학이 뿌리 깊은 지역이지만, 의병 활동이 실패한 뒤 신학문을 받아들인 혁신 유림이 생겨난다. 혁신 유림은 국권을 빼앗긴 이후 만주로 건너가 항일투쟁을 이어가는데, 가족과 친지 등 이들을 따라 망명한 사람이 1911년에만 2500명이 넘었다고 한다. 험난한 상황에 물심양면 독립군을 도운 이들이 없었다면 만주의 항일투쟁은 더욱 어려웠을지 모른다.
 

▲ 전시관에 마련된 일제의 벽관 고문 체험 코너

전시관을 둘러보다 보면 낯익은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도쿄에서 법정투쟁을 벌인 문경 박열, 의열단 김시현은 안동이 고향이다. 김시현은 영화 〈밀정〉에서 의열단 리더 김우진(공유)의 모티프가 된 인물이다. 영화 〈암살〉의 여주인공 안옥윤(전지현)도 영양 출신 독립운동가 남자현을 모델로 했다. 남자현은 1933년 하얼빈 감옥에서 풀려나 숨을 거두면서도 “독립은 정신으로 이뤄진다”는 말을 남겼다.
 

▲ 협동학교 교사(校舍)로 쓰인 내앞마을 김대락의 집, 백하구려

전시관에는 일제의 고문 시설인 벽관 체험을 비롯해 독립선언서 등사하기, 비밀 요원이 돼 미션 수행하기 등 체험 프로그램이 많아 아이들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 
야외에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린 추모벽이 있다. 전국의 독립 유공자 1만5000여명 가운데 경북 출신이 약 2160명이다. 추모벽에 끝없이 새겨진 이름을 하나씩 읽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 임청각 대문에 걸린 ‘국무령 이상룡 생가’ 현판
▲ 임청각 내부에 마련된 전시관에는 이상룡과 그 가족이 걸어온 험난한 여정이 자세히 기록됐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바로 옆에는 의성 김씨 집성촌 ‘내앞마을’이 있다. 안동 지역 애국 계몽운동의 산실인 협동학교가 이곳에서 처음 열렸다. 당시 내앞마을은 신학문을 가르치고 민족의식을 고취한 독립운동가의 요람이었지만, 지금은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내앞마을 사람들은 일제 치하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싸웠다. 이 가운데 ‘만주벌 호랑이’로 불린 김동삼과 일가를 데리고 만주로 망명한 김대락이 있다. 자기 집을 내주며 협동학교를 후원한 김대락은 나라를 잃은 뒤 만주로 떠났는데, 이때 마을에서 150여명이 그와 함께 망명했다고 한다. 김대락은 힘겨운 상황에도 만주의 생활과 활동을 기록한 <백하일기>를 남겼다. 마을에는 과거를 잊어선 안 된다는 듯 일송 김동삼의 생가와 협동학교 교사(校舍)로 쓰인 ‘백하구려(白下舊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집 앞마당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도가 놓이는 바람에 수십 칸이 강제 철거된 임청각 전경

안동의 독립운동 명소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임청각’이다. 활짝 연 임청각 대문에는 ‘국무령 이상룡 생가’ 현판이 걸렸다. 고성 이씨 종택인 이곳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생가이자, 3대가 독립투쟁에 나선 명실상부 독립운동가의 집이다. 지난해 이상룡의 손부 허은 여사가 건국훈장 애족장에 서훈돼 이 집에서 독립 유공자가 10명이나 배출됐다. 임청각 안에 있는 군자정에는 퇴계 이황이 쓴 현판과 독립유공자 증서가 나란히 걸렸다. 임청각 내부에 마련된 작은 전시관에는 이상룡과 그 가족이 걸어온 험난한 여정이 자세히 기록됐다.
 

▲ 뜨끈한 아랫목에서 고택 체험이 가능하다.

전국에서 독립 유공자 가장 많은 지역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 다양한 체험으로

임청각은 원래 민간 살림집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99칸 가옥이지만, 지금은 절반가량이 남았다. 독립운동가가 많은 임청각을 눈엣가시로 여긴 일본이 맥을 끊겠다며 집 앞마당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도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때 대문과 행랑채 등 수십칸이 강제 철거됐다. 이 사연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소개하며 널리 알려졌다. 다행히 임청각 복원이 결정돼, 몇 년 뒤에는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아름다운 야경을 품은 월영교
▲ 월영교 앞 음식점에서 헛제삿밥을 맛볼 수 있다.

임청각은 내부 관람이 가능하며, 고택 체험도 운영한다. 독립운동가의 집이자 500년 역사가 있는 고택에서 묵어가는 하룻밤은 그야말로 특별하다. 한지를 곱게 바른 전통 한옥의 고풍스럽고 아늑한 기운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직 쌀쌀한 초봄, 뜨끈한 아랫목에 손발을 넣으면 추위에 움츠러든 몸도 사르르 녹는다. 이왕이면 이상룡 선생이 태어난 사랑채에 묵어보자. 긴 밤 꿈속에서 한평생 독립을 향한 길에 섰던 그의 삶과 마주할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에는 임청각 뒤쪽 소담길을 걸어보자. 무궁화가 곱게 핀 길을 걷다 보면 이상룡 선생의 강인한 정신과 신념이 가슴 깊이 스며든다.
 

▲ 퇴계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친 도산서당

밤이 길게 느껴진다면 ‘월영교’를 추천한다. 안동댐 아랫자락에 놓인 월영교는 밤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늦은 시간에도 방문하는 사람이 많다. 월영교에는 ‘원이 엄마 편지’로 알려진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 안동시 택지조성 중 발견된 무덤에서 무려 400년이나 된 미라 상태의 시신과 한글 편지가 발견됐는데, 병든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의 슬픔과 사랑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고 한다. 월영교에는 남편의 쾌유를 바라며 자기 머리카락을 넣어 미투리를 만든 원이 엄마의 마음이 담겼다. 미투리 모양을 본뜬 다리를 건너면 괜스레 마음이 애틋해진다. 월영교 앞에는 음식점과 카페가 있어 안동의 음식을 맛보며 쉬었다 가기도 좋다.
 

▲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육사 선생을 만나는 이육사문학관

다음 날은 도산서원과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해보자. 도산서원은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퇴계 이황을 모신 곳이다. 일찍이 관직에서 물러난 퇴계는 고향에 내려와 학문에 힘썼다.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한가로운 풍경 속에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친 도산서당과 퇴계 선생 사후에 제자들이 건립한 도산서원이 앞뒤로 자리한다. 1575년(선조 8)에 ‘도산’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도산서원 현판은 명필가 한석봉이 썼다.
도산서원 곳곳에 이황의 교육과 학문에 대한 철학이 묻어난다. 제자들이 기거한 ‘농운정사’는 퇴계가 직접 설계한 건물이다. 농운정사의 평면은 일반적으로 잘 짓지 않는 ‘工 자형’인데, 공부(工夫)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옥진각에는 퇴계의 유품과 저서를 전시하며 그의 학문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육사문학관이 있다.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 선생과 만나는 공간이다. 독립과 민족정신을 담은 시를 쓴 이육사는 교과서에 실린 〈청포도〉 〈광야〉를 비롯해 수십편의 명시를 남겼다.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을 염원한 작품을 이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 독립운동가 이육사의 활동을 보여주는 실내 전시

영화의 모티프

이육사는 국외를 오가며 독립운동에도 뛰어들었다. 본명은 이원록(李源祿)으로 ‘이육사’라는 필명에서 그의 투철한 독립의식과 굽힐 줄 모르는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이육사는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발 사건(장진홍 의거)에 연루돼 1년7개월간 옥살이를 했는데, 이때 수인 번호가 264였다. 이후 일본에 저항하는 의미로 이름을 이육사(李陸史)로 지었다. 대구형무소에서 첫 옥고를 치른 이래, 1944 년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하기까지 총 17차례 수감 생활을 한 그는 모진 고문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독립을 향한 불꽃 같은 열망은 그의 작품에 남아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다. 전시관 2층 끝에 이육사의 고향 마을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 ‘문학카페 노랑나븨’가 있다. 차 한 잔 마시며 이육사 시인을 추모하는 마음을 글로 남겨보자.

 

<여행 정보>

당일 여행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내앞마을→임청각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내앞마을→임청각→월영교 
둘째 날: 이육사문학관→도산서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안동관광 www.tourandong.com
-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http://815gb.or.kr
- 임청각 www.imcheonggak.com
- 도산서원 www.dosanseowon.com
- 이육사문학관 www.264.or.kr

문의 전화
- 안동관광 문의 054)856-3013, 840-6591
-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054)820-2600
- 임청각 054)859-0025
- 도산서원(관광해설사 문의) 054)840-6599
- 이육사문학관 054)852-7337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안동,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37회(06:00~ 22:30) 운행, 약 2시간50분 소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21회(06:10~22:00) 운행, 약 2시간40분 소요. 안동터미널 정류장에서 11번 버스 이용, 천전(독립운동기념관) 정류장 하차.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까지 도보 약 5분.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안동터미널 1688-8228, www.andongtr.co.kr

자가운전
중앙고속도로→서안동 IC에서 서안동·경북도청 방면 오른쪽→서안동 IC 안동 방면 3시 방향→경서로→경동로→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숙박 정보
- 지례예술촌: 임동면 지례예술촌길, 054)852-1913, www.jirye.com
- 수애당: 임동면 수곡용계로, 054)822-6661, www.suaedang.com 
- 전통리조트구름에: 안동시 민속촌길, 054)823-9001, www.gurume-andong.com 
- 안동그랜드호텔: 안동시 관광단지로, 054)851-9000, www.andonggrandhotel.com
- 안동리첼호텔: 안동시 관광단지로, 054)850-9700, www.richell-andong.co.kr

식당 정보
- 까치구멍집(헛제삿밥): 안동시 석주로, 054)855-1056 
- 묵향(한우): 안동시 경동로, 054)840-7710 
- 안동대가찜닭(찜닭): 안동시 번영길, 054)856-7888, www.대가찜닭.kr 
- 안동간고등어직영식당(간고등어): 안동시 석주로, 054)859-2767

주변 볼거리
봉정사, 병산서원, 안동하회마을, 부용대, 하회세계탈박물관, 경상북도산림과학박물관, 안동물문화관, 안동시립민속박물관, 유교문화박물관,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유교랜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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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